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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 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내 주변의 하나님 의도들 연결법>의 줄거리 :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있게 하시려는 의도를 따라 날아 다니다가, 하나님의 없게 하시려는 의도를 따라서만 땅에 떨어집니다.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의도가 미치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의도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연결이 될 수 있을까요? 내가 하기 나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갈렙이 내 주변의 하나님 의도들이 서로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도록 연결되게 하는 모범을 보여 줍니다. 결국에 갈렙이 보여 준 길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자리에 서는 길이었습니다.
내 주변의 하나님 의도들 연결법
(여호수아 15:1~63)
13.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을 유다 자손 중에서 분깃으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주었으니 아르바는 아낙의 아버지였더라
14. 갈렙이 거기서 아낙의 소생 그 세 아들 곧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었고
15. 거기서 올라가서 드빌 주민을 쳤는데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
16.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점령하는 자에게는 내가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17.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점령함으로 갈렙이 자기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18.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그에게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니
19. 이르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네겝 땅으로 보내시오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본문 중심으로 <내 주변의 하나님 의도들 연결법>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1~12절까지는 유다 지파에 할당되는 땅을 남, 동, 북, 서의 순서대로 경계를 말씀하시고, 13~19절에는 갈렙이 헤브론 산지 중에서 드빌 성읍을 점령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0~62절까지는 유다 지파에 속한 125개 성읍이 나열됩니다. 우리는 갈렙이 드빌 성읍을 어떻게 정복했는지를 중심으로 말씀을 살펴봅니다.
내 주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들을 향해 의도를 갖고 계십니다. 여기에는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내 주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의도를 올라탄 자들이 아님에도, 각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의도는 어떻게 충돌하지 않고 연결될 수 있을까요? 이와 관련하여 본문은 하나님의 의도를 올라탄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연결될 수 있을 것인가를 가르쳐주십니다.
본문에는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갈렙과 갈렙의 딸 악사와 옷니엘입니다. 이들은 각자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이 됩니다. 본문은 세 사람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의도가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보여 주십니다. 15장은 유다 지파에 할당되는 땅의 경계를 남, 동, 북, 서의 시계 반대 방향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경계 안에서 125개 성읍을 말씀하십니다.
한편, 마지막 63절에는 여부스 족속은 점령하지 못했음이 언급됩니다. 여부스 족속은 예루살렘에서 살았습니다. 본문은 예루살렘이 400년 뒤인 다윗 왕 때에 이르러서야 정복됨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라는 별명을 가진 메시아로서 이 땅에 오시는데 유다 지파의 혈통을 따릅니다. 본문은 예루살렘을 언급하며 다윗 왕을 암시함으로써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실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본문 전체가 예수님을 향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땅 분배에 대한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문을 보면서 가장 우선적인 질문은 갈렙의 딸 악사의 결혼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이 의문인 이유는 아직 헤브론 산지 정복이 끝나지 않은 전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전시 상황에서 유다 지파의 제일 연장자이자 지도자인 갈렙이 개인적으로 딸의 결혼식을 거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딸의 결혼을 마음먹고 사윗감을 구하는 과정에서 왜 하필이면 헤브론 산지의 드빌 성읍을 점령하는 자로 공언했는지도 의문이 생깁니다.
갈렙은 유다 지파의 지도자로서 헤브론 산지를 점령하는 것은 공언된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드빌 성읍에 대해서는 자신은 뒤로 빠지고 결혼하지 않은 젊은이 중에 점령할 자를 찾으며 딸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쉽게 말해 딸을 포상으로 내걸었던 것입니다. 상황 자체만 보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조금씩 맞물리지 않는 의문점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갈렙은 가데스 바네아 정탐 때부터 지금까지 45년 간을 오직 믿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자기 삶에서 어떤 의도를 갖고 계신지를 생각하며 그 의도에 올라탄 것입니다. 이러한 갈렙이 딸 악사의 결혼을 자의적으로 생각하여 결정한 것은 아니었음이 분명합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신랑감을 결정해 둔 것도 아니었습니다.
갈렙은 하나님의 의도를 올라타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갈렙에게 드빌 성읍을 정복하는 것과 딸 악사의 결혼이 동시에 하나님의 의도로 제시되었던 것입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갈렙은 하나님의 의도가 아니면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딸 악사를 결혼시키는 일이 하나님의 의도라는 사실을 알게 된 때와 드빌 성읍을 점령해야 하는 시점이 겹친 것입니다. 어차피 드빌 성읍의 점령은 하나님의 의도를 올라타고 헤브론 산지를 점령하는 과정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딸의 결혼이라는 상황이 하나님의 의도 아래에 제시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필 전시 상황에서 딸의 결혼이 하나님의 의도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본문을 보면 딸 악사의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옷니엘이 드빌 성읍을 정복한 후 결혼을 하고 악사는 이제 옷니엘의 집으로 나귀를 타고 갑니다. 이때 18~19절을 보면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그에게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니 / 이르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네겝 땅으로 보내시오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라고 했습니다. 악사는 옷니엘의 집으로 가기에 앞서 아버지 갈렙에게 땅과 샘을 요구합니다. 악사가 향하는 네겝 땅은 메마른 곳이었습니다. 그 메마른 땅을 일구려면 물이 필요했기에 샘을 요구한 것입니다. 얼핏 당연한 요구처럼 보이지만 당시 기준에서 볼 때 딸이 땅이나 샘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땅 문제는 가장인 남자가 결정하는 일이지 여자가 나설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로부터 악사의 성격이 굉장히 적극적이고 당돌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땅은 결혼할 때의 지참금 명목으로 제시된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갈렙이 드빌 성읍을 점령한 자를 사위로 삼겠다고 공언한 상황에서 지참금을 준비하지 않았을 리 없습니다. 악사는 나귀를 타고 시집으로 가던 중에 갑자기 멈추어 아버지에게 땅과 샘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악사의 성격을 염두에 둘 때 갈렙이 딸의 결혼을 언급하게 된 것에는 악사의 요청이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결정해야 될 땅의 문제를 스스로 요구한 당돌함으로 혼사 문제에 대해서도 직접 요구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 살던 갈렙이 전시 상황에서 갑자기 딸의 결혼을 생각했을 리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전시 상황에서 지도자가 개인적 이유로 딸을 결혼시키겠다고 나서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결혼식이 벌어질 동안에는 전쟁이 중단되기 때문입니다. 갈렙은 딸의 혼사 문제를 자의적으로 결정했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사건의 힌트를 본문으로부터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당돌하고 적극적인 딸이 결혼을 하겠다고 나섰으리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딸을 바라보는 갈렙의 마음입니다. 갈렙은 하나님의 의도만을 생각했습니다. 삼척동자라도 전시 상황에서 결혼이 어려운 일임을 알기에, 갈렙의 딸 악사도 이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악사는 강력하게 결혼을 주장하였고 이에 대해 갈렙은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갈렙은 ‘이런 철딱서니 없는 것아! 지금이 어떤 때인지를 아느냐! 이제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서 헤브론 산지의 점령이 막바지에 달했으니 좀 더 기다려라! 전시 상황이 끝나면 결혼을 시켜주마.’라고 넘어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여기서 혹시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합니다. 전시 상황에서의 결혼이 얼마나 생뚱맞은 일인지를 잘 알고 있는 딸이 결혼을 주장하고 나선 것을 보며 하나님의 의도에 의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던 것입니다. 갈렙의 딸 악사가 아버지처럼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하며 살았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시집으로 가던 중에 나귀에서 내려 땅과 샘을 요구한 당돌하고 적극적인 성격을 보면, 아마도 하나님의 의도를 차분히 기다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갈렙은 딸의 생뚱맞은 결혼 요구에서 하나님의 의도를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의도가 딸을 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만 생각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의도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만 따라 사셨던 주님에게는 공중에 나는 새도 하나님의 의도이고, 백합화도 하나님의 의도이고, 가룟 유다도 하나님의 의도이고, 빌라도도 하나님의 의도였습니다. 갈렙도 이러한 태도로 딸의 강렬한 요청이 하나님의 의도가 아닌지를 생각했습니다. 갈렙은 하나님의 의도 때문에 당시로서는 절대적이었던 아버지로서의 결정권과 권세를 치워버렸습니다. 다만 결혼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닙니다. 사윗감을 어떻게 찾아내느냐가 문제가 됩니다.
이때 갈렙의 나이는 85세였습니다. 그런데도 갈렙은 앞장서서 헤브론 산지 점령을 수행했습니다. 다만 갈렙이 유다 지파에 속한 군인들을 볼 때 자기처럼 하나님의 의도를 따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유다 지파의 군인들은 헤브론 산지를 주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갈렙을 뒤따르며 전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포착한 갈렙은 이제 자기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의 의도를 올라타서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미혼 청년을 찾고자 합니다.
이제까지의 전쟁은 갈렙이 지도자로 앞서가고 유다 지파의 군인들이 뒤따르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드빌 성읍에 대해서는 갈렙은 뒤로 빠지고 나설 사람을 찾습니다. 그리고 드빌을 점령한 자에게 딸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올라탄 자라면 갈렙이 빠진 상황에서도 반드시 드빌을 점령할 수 있겠으나, 갈렙을 뒤따르는 자라면 그렇게 할 수 없으리라 여겼던 것입니다. 이러한 의도에서 갈렙은 사윗감의 기준을 정하고 드빌을 점령한 자에게 딸을 주겠다고 공언합니다. 이러한 갈렙의 제안을 풀어보자면 헤브론 산지를 유다 지파에 주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에 올라타고 전쟁에 참여하는 자에게 딸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갈렙의 동생 그나스의 아들 중에 옷니엘이라는 자가 나섭니다. 옷니엘이 갈렙의 제안을 받아들여 드빌 성읍을 점령하고 악사와 결혼을 했습니다. 옷니엘은 갈렙을 뒤따르며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옷니엘은 여호수아가 갈렙에게 헤브론 산지를 점령하라고 허락한 배경을 알고 있었습니다. 갈렙은 45년 전 가데스 바네아 정탐 사건에서 하나님의 의도에 올라타는 믿음을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갈렙을 기뻐하시며 모세를 통해 헤브론 산지를 주겠노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옷니엘은 유다 지파가 헤브론 산지를 얻는 것은 이미 45년 전에 하나님의 의도에 의해 결정된 일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신 또한 하나님의 의도를 올라타고 큰아버지 갈렙과 함께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출애굽 1세대의 20세 이상의 모든 남자는 전부 광야에서 죽었기에 갈렙의 동생인 그나스도 이미 죽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족보만 언급됩니다만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은 드빌 성읍을 점령하고 갈렙의 딸 악사와 결혼을 했습니다. 한편, 이로부터 기가 막히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뒤 이스라엘은 약 400년간 사사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사사는 이스라엘이 이방 족속들의 침략을 당할 때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의도를 올라타는 것이 필수였습니다. 사사란 하나님의 의도를 올라타서 이스라엘을 이끌고 전쟁을 치르는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 사사 시대의 첫 번째 사사가 바로 옷니엘입니다.
거꾸로 보자면 옷니엘을 첫 번째 사사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이미 움직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갈렙의 딸 악사는 하나님의 의도를 아랑곳하지 않는 당돌하고 열정적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갈렙의 딸 악사를 결혼으로 몰아가십니다. 뜬금없이 전시 상황에서 결혼을 하겠다는 불같은 소원이 일어나게 만드신 것입니다. 악사는 아버지 갈렙에게 결혼을 재촉했고, 하나님의 의도만 염두에 두고 살던 갈렙은 여기에서도 하나님의 의도를 발견합니다. 갈렙은 아버지의 권위로 딸의 비상식적인 요구를 억누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아버지의 권세와 권위를 뒤로 하고 하나님의 의도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갈렙은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 사윗감을 구하기 위해서 유다 지파의 지도자라는 일선에서 물러나 드빌 성읍을 점령할 자를 구합니다. 이에 갈렙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의도를 올라타고 전쟁에 참여했던 옷니엘이 나서서 드빌 성읍을 점령하고 갈렙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악사로 하여금 전시 상황에서 결혼을 하도록 의도적으로 몰아붙이셨을까요? 전시 상황에서 하나님의 의도를 타고 있는 젊은이를 찾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의 의도를 아랑곳하지 않는 당돌한 아가씨를 의도적으로 몰아가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도에는 몰아가시는 의도가 있고 올라타야 하는 의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에 의해 몰려가는 자가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의도를 올라타는 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가 적용되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가룟 유다도, 빌라도도, 제자들도 다 하나님의 의도에 의해 움직였던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악사를 몰아붙이셔서 전쟁 중에 결혼할 마음을 주셨고, 이로부터 사사 시대의 첫 번째 사사인 옷니엘이 등장하게 됩니다. 옷니엘이 온 유다 지파와 이스라엘 사람들의 무대 앞에 전면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어 가실 때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주변에는 나를 마주하는 다양한 대상이 있습니다. 나를 마주하고 있는 배우자가 있고, 나를 마주하고 있는 자녀가 있고, 나를 마주하고 있는 부모님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이들이 왜 이러한 생각을 하고, 왜 이런 주장을 하고, 왜 이런 모습을 띠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때가 많습니다. 옷니엘이 사사 시대의 첫 번째 사사가 될 줄을 알았던 사람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사실을 위해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 주변에는 상식적이고 나를 배려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이든 직장이든 어디든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배려하기는커녕 이유 없이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경우도 있습니다. 중상모략하고 뒷담화하며 헐뜯습니다. 반면 나에게 우호적으로 대해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좋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람 모두에게 지금도 하나님의 의도는 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가 없는데 살아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의 악행도 하나님의 의도가 몰아가신 일이었습니다. 다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도를 올라타고 계셨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의도를 올라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하나님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도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도가 적용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을 본문의 인물들에게 적용해 보면 하나님의 의도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갈렙이 없었다면 악사와 옷니엘은 만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을 위해 갈렙은 하나님의 의도를 올라타야 했습니다. 만약 갈렙이 하나님을 올라타는 자가 아니었다면, 하나님께서는 갈렙을 그러한 자가 되게끔 하시기 위한 의도를 발동하실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갈렙은 하나님의 의도를 잘 올라탔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의도를 올라탄 갈렙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의도를 아랑곳하지 않는 딸인 악사와 하나님의 의도를 올라타는 옷니엘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가 잘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갈렙은 전시 상황에서의 결혼이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철딱서니 없는 딸을 아버지의 권위로 억누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하며 절대 결정권자인 아버지의 권위에 대해 죽었습니다. 딸의 요구가 하나님의 의도에 의한 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갈렙은 온 유다 지파가 존경하는 최고 연장자였으며, 여전히 기력이 왕성하여 헤브론 산지의 거인 족속과의 전쟁을 앞장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갈렙은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하며 영광스러운 지도자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그 자리에 옷니엘이 섭니다. 이처럼 갈렙이 하나님의 의도만을 신경 쓰는 중에 드빌 성읍의 점령이 이루어지고 악사와 옷니엘이 결혼하였고, 하나님의 의도대로 옷니엘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사사가 됩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주변에 하나님의 의도를 모르는 사람들만 있더라도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보고 계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의도를 올라타기를 주시하시며 기다리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의도를 올라타려면 모든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도를 보아야 하고 인정해야만 합니다.
갈렙의 딸 악사가 아무리 당돌하고 적극적인 성격이라도 전시 상황에서의 결혼 요구는 무척 생뚱맞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갈렙은 하나님의 의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또한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의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 중에는 때로 몰상식하고 엉뚱하고 나를 해치려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 모든 사람들의 있음을 하나님의 의도로 보면서 십자가에서 죽어야 합니다. 그들의 있음을 거부하려는 나를 십자가에서 죽이는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렙이 지도자의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듯이, 내게 주어진 특권과 내게 주어진 자리에 대해 십자가에서 죽습니다.
내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주변 사람들을 향하는 하나님의 의도가 원하시는 대로 들어맞아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다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사건 이전에도 당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셨고, 당신의 위치를 주장하지 않으셨고, 당신의 생각을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변 모든 사람들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도를 수용하시기 위해 죽은 자가 되셨던 것입니다. 그중에는 가룟 유다와 같은 악한 자도 있었고, 빌라도와 같은 멍청한 자도 있었으며,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의도가 정확하게 맞아들어가면서 하나님의 역사는 진행되어 갑니다.
우리는 때때로 ‘나 혼자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한다고 과연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갈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이나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은 도무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의도에 올라타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아무도 모르게 나 혼자 하나님의 의도에 올라탄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자리에 대해, 여러분의 위치에 대해, 여러분의 판단 기준에 대해 십자가에서 죽습니다. 그러면 나를 둘러싸고 있는 하나님의 의도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든, 내게 유리하게 나타나든 불리하게 나타나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타나든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나타나든, 하나님의 의도가 내 안으로 수용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을 향하여 갖고 계신 계획을 빈틈없이 이루어 가십니다.
유다 지파에 속하게 된 125개 성읍은 갈렙을 지도자로 삼아 연결이 된 성읍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성읍들은 관계를 의미합니다. 핸드폰의 연락처를 보면 수많은 이름들이 있습니다. 자주 연락하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그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허락된 성읍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의도를 고스란히 수용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의 나라가 빈틈없이 맞아떨어지며 이루어져 가게 됩니다.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은 유다 지파를 통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의도가 내게서 수렴되게 하셨습니다. 수렴됨으로써 서로 맞아들어가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하신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십자가가 어떤 사람 앞에서라도 나의 자리인 것을 잊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그럼으로써 어떤 사람을 향해서라도 갖고 계신 하나님의 의도가 나를 매개체로 삼아 빈틈없이 맞아떨어지며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들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