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죽음
여국현
"사모님, 안녕하세요
1층 방입니다.
죄송해서 몇 번을 망설였는데...
저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
번번이 정말 죄송합니다
2월 중하순에는 밀린 돈들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전기세 꼭 정산해드릴 수 있게 하겠습니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항상 도와주셔서 정말 면목 없고 죄송하고....감사합니다
-1층 드림"
촉망받던 젊은 작가가 죽었다
밥이나 김치를 부탁하는 메모를
정갈하게 남겨놓고
배고픔과 아픔 속에 죽었다
기상 관측 이래 가장 추웠다는 겨울
더 춥고 고통스러웠을 마음으로
세상의 끈을 놓는 순간까지
그는 지인들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지병이 갉아먹은 육신의 고통
밥과 김치를 부탁하는 절박함을
한자 한자 또박또박 써내려갔을 비통함
철저한 고립과 단절이 후벼낸
그의 마음에 패였을 절망의 동굴이
참담하다
찢은 노트에 깔끔하게 써내려간
정갈한 필체에 담긴 처연함과
화면 속에서 바라보는
생전의 미소 띤 얼굴이 그렸을
이루지 못한 꿈의 안타까움이
가슴을 옭죄어 온다
텔레비젼에서는 1미터가 넘는 폭설로
고립된 영동지방과
남편이 살해해 밀봉한 것으로 추정되는
12년 만에 딸에게 발견된 여인의 시신과
기상관측 이래 최대 폭설을 기록했던 지방에
다시 폭설이 쏟아졌음을 보도한다
그곳에 사시는 부모님은 날 밝는대로
전화를 하실 것이다
석관동 캠퍼스에서
바람을 사이에 두고 스쳤을지도 모를
작가 최고은
그가 떠났다
떠난 최고은도
남은 최고은도
마음도 배도 고프지 않는
세상을 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