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제1회 김동명문학 작가상〉 수상자 선정 결과를 다음과 같이공지합니다.
∎ 제1회 김동명문학 작가상 수상자 : 유금숙 시인
∎ 수상자 약력 : 유금숙 시인
출생 : 경북 영주
학력 : 영주여고 졸업,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등단 : 2007년 <심상>으로 신인수상
수상 : 2004년 방송대문학상 당선
2015년 강릉문학 작가상 수상
저서 : <꿈, 그 간이역에서> <해변의 식사>
활동 : 강릉문인협회 이사(현), 강원문인협회 이사(현), 강원여성문학인회 부회장(현),
관동문학 회원, 명주문학회 회장(현)
∎ 제3회 김동명문학상 수상 소감
11월
나뭇잎들의 수런거림이 떠나고 경계경보가 해제된 숲
속내를 다 드러내고 당당하게 서 있는 나무들과 멀리서 온 바람들이
가지를 가만가만 어루만지는 모습, 구름이 떠가는 소리마저 들릴 것 같은
투명한 11월을 나는 좋아한다.
단풍의 계절을 보내고 순백의 계절을 기다리며 11월의 빈숲을 걷다가 당선 소식을 들었다.
늦여름 김동명문학관에 들러 방을 뱅뱅 돌면서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을 많이 했었다.
돌아와서 가을까지 시 쓰기에 붙잡혀 살았다.
당선 소식은 둔해진 시심을 일깨우라는 불호령 같았다.
동시에 단단히 펜을 잡으라는 격려 같기도 했다.
부끄러운 작품을 선정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깊은 감사의 절을 올린다.
주변의 좋은 도반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 제1회 김동명문학 작가상 수상작
여섯 개의 방
유금숙
초허가 가꾸어 놓은 여섯 개의 방을 따라
정갈한 정신으로 거닐었다
오래된 ‘나의 거문고 방’에 들어섰을 때 늙은 보들레르에게 받친 헌시가 보이고 암울한 식민지를 먹고 자란 허무의 꽃들이 무성히 피어 있었다
정오가 되어 ‘파초 방’ 속으로 들어갔다 깊은 잠에 취한 어휘가 내 발소리에 깨어나고 낮달을 쳐다보며 이국의 서러움을 달래던 수선화가 새벽 강을 밀고 간다
이념의 강이 흐르는 ‘38선 방’에는 포성에 놀라 피난길에 오른 난민도 보이고 지뢰밭을 건너지 못한 감자꽃도, 어미 찾는 단발머리 소녀의 울음도 푸르다
‘술의 노래’가 잠들어 있는 ‘하늘 방’엔 초허가 원고지 안에서, 혹은 원고지 밖에서 종려나무에 마흔 살의 번뇌를 걸어 두었으나 한 편의 시로 번뇌의 나무를 잘라내고 있다
‘옥중일기’가 꽂혀 있거나 저녁이 실종된 ‘진주만 방’엔 주인을 잃은 징용병이 태평양전쟁 터에서 죽어가며 뱉어낸 비명을 줍는 납빛 얼굴의 초허가 보인다
역마차가 은방울을 흔들며 종로 거리를 달리는 ‘목격자 방’에는 보신각 종소리가 단장의 미아리로 끌려가던 납북자들을 위해 새벽을 깨우고 있다
정원사가 사라진 여섯 개의 방, 그러나
시들어가던 내 정신의 꽃이 만발하고 있다.
∎ 2023년 제1회 김동명문학 작가상 심사평
초허 김동명의 문학적 업적과 생애를 높이 기리고 선양하기 위해 김동명선양사업회에서 제정한 ‘김동명문학상’이 올해로 3년째를 맞이한 가운데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선양사업회에서 ‘김동명문학상 본상’과 함께 올해부터 ‘작가상’을 신설하였다는 전언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진폭을 넓혀가는 김동명선양사업회의 행보에 찬사를 보낸다. 김동명문학상이 두 개로 늘어났으니 심사위원들의 입장에서는 다소 번거로운 일이겠으나 이런 수고로움은 언제든 좋다며 모두 기쁜 마음으로 심사에 임했다. 각 부문의 수상후보작들을 대상으로 심사위원들은 심사규정에 따라 심사를 진행하면서 진지한 토론과 함께 수상자를 결정하였다. 그 결과 김동명문학상 본상에 문정희 시인을, 작가상에 유금숙 시인을 선정하였다.
문정희 시인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시단의 대표적인 여성 시인이다. 그녀는, 가부장적 폭력과 억압들, 남성중심의 온갖 언어와 감각들, 강령한 이데올로기의 틈새에서 언제나 활력 있고 생명에 찬 언어로 맞서왔으며, 자신만의 시적 성체를 단단하게 쌓아올린 시인이다. 무엇보다 그녀의 시는 젊다. 등단 50년을 훌쩍 넘긴 시인이라고는 믿기 않을 만큼 여전히 노력하고 고민하고 저항한다. 현실에 안주할 법도 한데 그녀는 만족하는 법이 없다. 항상 새로움에 열광하고 과감히 파괴한다. 자신과 사물을 투시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기 위해 모험을 멈추지 않는다. 이번에 선정된 수상작 「프리웨이」가 젊어 보이는 이유이다.
수상작 「프리웨이」는 시 쓰기와 삶이 다르지 않음을 환유적으로 보여준다. 프리웨이 한가운데서 진짜 프리웨이가 어디 있는지를 찾는 모습에서 그녀가 시를 어떻게 대하고 삶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느낄 수 있다. 사방에 저녁이 오고 밤이 내려오는데, 뒤틀린 손목을 붕대로 싸매고 눈물을 훔치면서도 직진하는 것. 그것이 인생이고 시 쓰기이다. 그녀의 열정에 ‘김동명문학상’이 조금이나마 답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지금까지의 시적 이력으로 보나···.
유금숙 시인은 2007년 『심상』으로 등단한 이래 『꿈, 그 간이역에서』와 『해변의 식사』 두 권의 시집을 상재한 시인이다. 일상의 삶 속에 만나는 사소한 대상도 감각적으로 포착하여 자신의 삶에 대입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녀는 감성적인 언어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타인과 사회를 아우르는 메시지를 담아낸다. 이번 수상작 「여섯 개의 방 」은, 초허 김동명의 시집 6권을 여섯 개의 방으로 대체하여 초허의 방을 하나씩 방문하면서 깨닫게 되는 정신의 정갈함을 드러낸다. 그 정신의 정갈함을 자기 성찰로 연결하는 놀라운 발견은 자신만의 감각적 세계를 언어의 극점에서 피워 올리는 꽃이라 할 수 있겠다. ‘언어를 뛰어넘으려는 언어’를 연마하는 데에 게을리 하지 않기를 바라며,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심사위원〉
심사위원장 박주택 (시인, 경희대학교 교수)
심사 위원 임정연(문학평론가, 안양대학교 교수)
심사 위원 강동우 (문학평론가, 관동가톨릭대학교 교수)
심사 위원 이성천(시인, 경희대학교 교수)
심사 워원 권경아 (문학평론가, 관동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