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의 돈으로 세상 읽기 10
불놀이 단상
올해도 코로나를 퍼트리는 귀신 쫓기는 틀려버렸다. 무진정 낙화놀이를 즐길 수 없게 되어서다. 민속을 살펴보면 불놀이는 귀신과 관련되어 있다. 음력 정월 16일을 귀신날이라고 해서 불꽃으로 악귀를 쫓아냈다. 뽕나무 숯가루를 무명천으로 만든 가늘고 긴 주머니에 채워 대문이나 나무막대기 끝에 달아놓고 어두워지면 심지에 불을 붙인다. 불똥이 탁탁거리며 튀기 시작하면 귀신이 혼비백산하고 보는 사람은 환호성을 질렀으리라.
코로나19 백신을 두고 말들이 많다. 관련 정보가 충분히 공유되지 않기 때문이다. 투명한 사회가 되어야 미래예측이 가능하고 미래예측이 가능한 사회일수록 사회적 비용이 줄어든다는 점을 생각해서라도, 정부는 백신 접종과 관련한 정보를 국민에게 소상히 알려야 한다. 여야 정치권도 보건문제를 정략적으로 해석하여 혼란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 마스크를 로마군단의 방패로 아는 시민은 식당 문 앞에 놓인 볼펜이 코로나 투창으로 보일 뿐이다.
사람들은 듣도 보도 못한 코로나19라는 괴질과 맞닥뜨리자 적이 당황했다. 하지만 과학의 답은 분명했다. 인간과 바이러스의 싸움에서 끝내는 인간이 이긴다는 것, 치료제가 나올 때까지 가장 단단한 방패가 백신이라는 거였다. 이에 호응하듯 백신 제조기술을 가진 제약사들은 개발을 시작하여 일 년이 되기도 전에 효과적인 백신을 만들어냈다.
제약사들이 이렇게 빠른 기간 안에 백신을 개발한 배경에는 기술과 자본이 있었다. 화이자(바이오엔테크)와 모더나와 같은 기업들은 바이러스유전자를 대장균에서 배양한 후 복잡한 공정을 거쳐 백신을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미국 정부의 경우 20조 원이나 되는 돈을 투입했다고 한다. 문제는 수요에 공급이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와 일본도 일반 백신 제조기술은 미국에 크게 뒤처지지 않지만, 코로나 백신은 만들기 어렵다고 한다. 비교적 부작용이 적은 것으로 알려진 화이자와 모더나의 경우 백신 제조 방식이 mRNA(메신저 리보핵산) 유전자 설계라고 하는데 기술 이전이 아니면 복제할 수 없단다. 물론 이러한 기술은 특허라서 지구촌의 모든 사람에게서 하루빨리 마스크를 벗게 하려면 코로나 백신 제조기술을 공개하고 지식재산권을 제한해야 한다. 그렇다면 백신 제조사들을 향해 무턱대고 기술을 내놓으라고 할 수 있을까?
발명은 재산권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한 사람은 미국 3대 대통령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이다. ‘자연이 만든 것 중에 배타적 재산권과 가장 친하지 않은 것이 바로 관념이라고 불리는 사고력의 작용이다. 그것을 개인이 혼자 간직하는 한 그의 배타적 소유지만 밖으로 내뱉는 순간 모든 사람의 소유가 된다.’ 제퍼슨이 1813년 아이작 맥퍼슨이라는 사람에게 쓴 편지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고력 작용이 지식이고 지식재산권의 근원이다. 제퍼슨은 이어서 미국독립선언문의 기초를 썼던 문장가답게 화려한 비유를 들어 지식재산의 독점을 비난한다. ‘누가 내 등잔의 심지에서 불을 붙여갔더라도 내 등잔불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아름다운 문장이다. 이보다 더 그럴듯한 수사(修辭)로 모든 지식이 인류의 공동선으로 쓰여야 한다고 설파하기는 힘들 것이다.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은 지식재산권을 두고 보다 본질적인 문제로 고민한다. 우주의 삼라만상은 신의 창작물이고 인간도 그 피조물 중에 하나다. 따라서 누군가 우주의 질서와 작용법칙을 그린 신의 설계도 귀퉁이를 슬쩍 훔쳐봤다고 하여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모든 자연과 원리는 만인을 위한 만인의 것이어야 하고 이는 공평한 신의 정의다.
코로나로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는 뉴스를 볼라치면 공평한 신의 정의 편에 기대고 싶다. 지적설계를 부정하는 무신론자라고 하더라도 인류애의 울림에 공명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같은 마음일 거다. 의료 기술이 낮고 가난한 나라일수록 백신 접종의 기회가 멀어진다면 더욱더 그렇다. 백신 제조사들 비밀창고 주소를 찾아 제퍼슨의 편지를 등기 속달로 부친다. ‘뽕나무 숯가루를 빨리 무명천에 담아 보내라!’
특허제도를 두고는 두 가지 주장이 있다. 발명이 곧 노동이고 노동의 산물에 재산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자연권이다. 다른 하나는 발명자에게 그 발명품을 복제할 수 있도록 재현기술을 공개하는 대신, 일정 기간 권리를 독점하게 하는 산업정책설이다. 창의적인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발명하도록 유도하여 산업을 발전시키고 궁극에는 문명의 진보에 기여 하려는 제도인 셈이다.
아프리카에서부터 번지기 시작한 에이즈(AIDS)의 경우 치료제가 개발된 것은 1990년대였다. 하지만 한 해 1만 달러가 넘는 약값을 감당할 아프리카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특허권 때문에 복제약을 만들기도 어려웠다. 마침내 세계무역기구(WTO)가 보건 비상을 이유로 에이즈 치료제의 특허권을 일시 면제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그게 2001년 도하선언이었다. 이러한 비상조치가 지식재산권을 공개하도록 압력으로 작용하는 데는 효과적이다. 하지만 예외가 당위가 되면 결국 누가 먼저 등잔을 만들어 심지에 불을 붙이느냐 하는 질문에 봉착한다.
모든 자원을 투입하여 잠 안 자고 만든 에이즈 치료제를 하루아침에 다른 제약회사에서 복제하여 판다면 아무도 에이즈 바이러스를 주무르지 않을 것이다. 흙을 개어 등잔을 굽는 일도, 심지를 꼬고 성냥을 만드는 일도 지식이란 가마에 불을 붙여야 한다. 지식재산권이 강화되는 오늘날, 제퍼슨의 자비로운 호소는 철없는 아이의 응석이 되었고 신의 공평한 정의는 무능한 학생의 답안지가 되었다.
19세기 초 영국을 비롯한 서구 유럽으로부터 선진 기술을 베껴오기 바빴던 미국이 말을 바꾼 건 불과 반세기만이었다. 제16대 대통령이었던 링컨은 특허제도야말로 천재의 불꽃에 이익이라는 기름을 붓는 것이라고 찬양한 후 제퍼슨의 편지를 활활 타는 가마에 던져 버렸다. 지적 노동의 가치를 보장해 주는 것이 결국 인류의 공동자산으로 승화된다는 주장이었다.
인도를 비롯한 많은 나라가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지식재산권 면제를 WTO에 제안했고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지지의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독일을 비롯한 선진 기술을 가진 국가들과 제약사들이 반대하고 있어 이 같은 조치가 실제 취해질지는 미지수다. 더구나 코로나 백신이 바이러스 퇴치에 그치는 단순한 약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등잔의 심지에 먼저 불을 붙인 사람에게 합당한 대가를 줘야 하고 여기에 백신 기술확산의 안전성, 원료 수급, 국방물자생산법과 자국 우선주의, 국제 정치까지 고려하면 일반의 생각만큼 간단치 않은 난제가 있다.
우리 대통령이 미국에 간다니 등잔에 넉넉히 기름도 채우고 심지도 빠지지 않게 조심하여 불을 붙여오길 바랄 뿐이다. 아울러 지식정보 사회에서 원천 기술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금 생각해 볼 때다.
나라를 경영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은 4차산업혁명에 진입한 21세기의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무릇 나라의 지도자란 어떠한 국가 어젠다를 제시하고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지 깊은 통찰과 이해가 필요하다. 조선 시대에도 이웃집에 불씨를 얻으러 가는 일은 수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