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 훈민정음을 단독 창제했다는 것은 훈민정음이 로마자나 한자와 같이 오랜 세월 다듬어진 문자가 아니라 어떤 특정 시점에 만든 인공 문자 곧 발명품임을 의미한다. 전 세계 저명한 문자 전문가들도 한결같이 그 점을 인정한다. 1940년에 훈민정음 해설서인 “훈민정음” 해례본(1446)이 발견되면서 그 점은 더욱 명확해졌다. 해례본에는 누가 창제했는지, 왜 독창적인 문자인지 그 만든 과정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런 명명백백한 사실을 부정하고 아직도 파스파 문자, 중국 옛글자, 가림토 문자 등의 모방설이 꽤 많이 나돌고 있다.
훈민정음 각종 모방설은 모두 ‘훈민정음 해례본’을 무시하고 추론을 넘어선 상상으로 쓴 것이다. 훈민정음을 누가 ᅌᅥ떻게 만들었는가는 세종이 직접 쓴 정음 취지문(서문)과 세종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쓴 제자해를 가장 중심에 놓아야 한다. 해례본에서 창제자가 밝힌 내용을 부정하고 있는 모든 논의는 잘못됐다. 세종의 주장을 부정하고 해례본을 위서로 몰아가는 위험한 발상이다.
이 문제는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접근하면 된다. 고전의 대상이 되는 글자들에 대해 한 가지 질문을 던지면 된다. 그런 글자들이 훈민정음처럼 발음기관과 발음작용을 직선 중심으로 상형해서 만들었는가? 상형 기본자를 바탕으로 가획과 합성으로 문자를 확장했는가? 발음 체계와 문자 체계가 훈민정음처럼 매우 짜임새 있게 대응되고 있는가?
다만 해례본의 ‘정인지서’와 세종실록에 나오는 고전 관련 기록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한 점도 있으므로 이점을 먼저 자세히 알아보기로 한다. 정인지서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면, “훈민정음은 꼴을 본떠 만들어 글꼴은 옛 ‘전서체’와 닮았지만, 말소리에 따라 만들어 그 소리는 음률의 일곱 가락에도 들어맞는다[象形而字倣古篆(상형이자방고전) 因聲而音叶七調°(인성이음협칠조)_정음해례27ㄴ:6-8_정인지서]”라는 문장이다. 그런데 기존의 대부분의 번역이 온라인 조선왕조실록처럼 “고전(古篆)을 모방하고”처럼 ‘倣’를 모방으로 번역하여 많은 오해를 낳고 있다.
훈민정음 도형도. 문자 역사에서 전무후무하게 과학적인 소리 분석을 바탕으로 가장 간결한 기하학적 도형(직선, 점, 원)만으로 창제한 훈민정음. 그 어떤 문자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 독창성이 담겨 있다 @김슬옹 한글학 311쪽.
‘자방고전(字倣古篆)’이란 말은 1443년 음력 12월 30일 자 세종실록에 처음으로 나왔다. 사관은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서체를 닮았다(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라고 기록해 놓았다. 언문(훈민정음)은 세종 단독 발명품인데 그 모양이 중국 고대 한자 모습을 닮았다는 것이다.
훈민정음 창제 기록 → 최만리 등 반대 상소
→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인지서‘
여기서 ‘倣’을 흔히 ‘모방’이라고 번역하는 바람에 마치 훈민정음이 옛 글자나 다른 글자를 ‘표절’한 것처럼 알려진 내용이다. ‘倣’은 ‘닯았다’라는 뜻이다. 이 말에 대한 진실은 창제 후 대략 두 달쯤 뒤인 1444년 2월 20일 자 최만리 등 7인의 반대 상소에 나온다. “설혹 말하기를 ‘언문은 모두 옛 글자(전서체)를 본뜬 것이고 새로 된 글자가 아니다.’라고 하지만, 글자의 형상이 비록 옛날의 전자를 닮았을지라도 음을 쓰고 글자를 합치는 것은 모두 옛것에 반대되니 사실 근거가 없사옵니다.(儻曰諺文皆本古字, 非新字也, 則字形雖倣古之篆文, 用音合字, 盡反於古, 實無所據.)”라는 구절이다.
이들은 단호하게 ‘자방고전’ 주장은 일부가 말하는 뜬소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설혹 말하기를]과 설령 그 주장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모양이 비슷해 보일 뿐 실제로는 세종의 독창적 작품임을 강조하고 있다. 곧 ‘자방고전’은 글꼴에 관한 것임을 밝히면서 비록 글꼴(자형)이 옛 전서체와 닮았을지라도 소리를 적고 음소 문자를 합해 글자를 합자하는 것은 옛 전서체와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최만리 등의 이 주장은 상소문으로부터 2년 7개월쯤 뒤에 나오는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정인지’의 입으로 정확히 해명된다. 글꼴은 옛 전서체를 닮았으나, 실제 문자 기능 곧 소리를 나타내는 음소 문자(자모 문자)로서의 기능은 옛 전서체와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옛 전서체와 닮았다는 것이 ‘상형’ 차원에서 보면 얘기는 단순해진다. 한자도 상형 문자이고 한글도 상형문자이기 때문이다. 다만 무엇을 어떻게 상형했는지가 다를 뿐이다. 한자 서체 변천은 “고대 상형문자 → 갑골문(甲骨文) → 주대(周代)의 금문(金文) → 춘추전국시대의 대전(大篆)과 고문(古文) → 진(奏)나라의 소전(小篆) → 한 대(漢代) 이후 예서(隸書). 해서(楷書). 초서(草書). 행서(行書)” 등으로 잡는 것이 일반적이다. ‘篆(전)’은 주로 소전체나 대전체를 가리키지만, 여기에 ‘古’자가 붙었으니 훨씬 그 이전의 고대 문자(갑골문 수준 또는 그 이전의 상형문자, 갑골문은 세종 때 발견되지 않음)를 가리킨다
곧 훈민정음은 옛 전서체와 같은 상형 문자이지만, 말소리 이치에 따라 만들어 음률의 일곱 가락에도 들어맞는 마치 음표와 같은 문자이니 옛 전서체와 질적으로 다른 문자임을 밝히고 있다.
이 번역을 좀 더 풀어보면, “훈민정음의 글꼴 모양으로는 중국의 상형 문자처럼 상형 원리로 만들었으니 옛 전서체(초기 상형문자)를 닮았으나, 그러나 말소리 이치를 적용하였으니 한자 상형문자와는 달리 음률의 일곱 가락을 그대로 드러내는 소리문자이다.”라는 의미다.
사실 모든 문자는 한자와 같은 뜻글자이든, 일본의 가나 문자이든 소리를 적기 위해 만든 것이므로 그런 맥락에서 훈민정음이 옛 문자의 전통을 따른 것임은 분명하니 ‘자방고전’이란 말을 쓴다고 해서 새 문자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정인지는 ‘정인지서’ 앞부분에서 “옛사람이 소리를 바탕으로 글자를 만들어서 만물의 뜻을 통하고, 천지인 삼재의 이치를 실었으니 후세 사람들이 능히 글자를 바꿀 수가 없었다.”라고 하여 초기 상형문자도 소리를 닮기 위해 만든 것이라는 ‘인성(因聲)’이라는 말을 언급하고 있다.
정인지서 첫 문장 자체가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자연의 문자가 있다.”라는 것인데, 옛사람들이 만든 문자가 그런 차원에서 나왔는데 실제로 소리를 제대로 적는 문자가 아니었고 훈민정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런 인류의 오랜 문자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자방고전(字倣古篆)’에서 기존 번역은 ‘倣’을 지금의 통념으로 ‘모방’이라고 번역하면서 많은 오해를 낳았다. 여기서는 그냥 ‘닮았다, 비슷하다’라는 뜻이므로 오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닮았다’라는 뜻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결국 1443년 12월 30일 자 ‘자방고전’ 관련 기록은 세종이 직접 말한 것이 아니라 양반사대부인 사관이 기록한 것이고, 이 기록 뒤의 최만리 등 반대 상소문은 이 기록을 오히려 부정하는 식으로 기술했고 해례본의 자방고전은 이런 논의를 의식하여 일종의 반론 맥락에서 써놓았다.
티벳 문자를 변형하여 만든 파스파 문자. 직선 중심의 훈민정음과 질적으로 다른 문자임을 문자 지식이 없는 사람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정회선ㆍ김슬옹 기획 세계문자전 자료(울산, 2016)에서
해례본 제자해에서 왜 만들었고, 어떻게 만들었는지 아주 자세하게 밝혔으므로 그것이 1차 근거가 되어야 하는데 파스파 문자, 고대 한자, 가림토 문자 모방설은 이를 무시하였으니 낭설이라는 것이고 해례본의 위 문장을 정확히 번역하고 해석하지 않았으니 그 또한 낭설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레드야드(Ledyard, Gari Keith) 교수가 “The Korean Language Reform of 1446: The Origin, Background, and Early History of the Korean Alphabet. Ph. D. Dissertation,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1966)”에서 주장하여 더욱 널리 퍼진 파스파 문자 모방설은 몇몇 글자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해례본의 창제 원리를 전면 부정한 잘못된 주장이다. 이를테면 해례본에서는 혀끝이 윗잇몸에 닿는 모양을 본뜬 ‘ㄴ’을 만든 뒤 가획으로 ‘ㄷ, ㅌ’을 만들었다고 했는데 레드야드 교수는 파스파 문자에서 ㄷ을 따온 뒤 획덜기로 ‘ㄴ’을 만들고 획더하기로 ‘ㅌ’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레드야드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깊이 연구한 서양 학자인데도 소설 같은 주장을 펼쳐 훈민정음의 가치와 세종의 창제 진정성을 왜곡하고 있다.
가림토 문자 모방설이 성립할 수 없는 것은 가림토 문자는 1911년 계연수가 편찬한 ≪환단고기≫에 의한 것인데, 고려 때 이암이 지은 <단군세기>에 있는 글자임을 계연수가 환단고기에서 밝힌 것이다. 그런데 가림토 문자 38자는 훈민정음 28자 체계를 거의 그대로 수용하고 있으므로 만일 가림토 문자를 근거로 만들었다면 모방이라는 말 자체를 쓸 수 없고 ‘개량’이나 ‘보완’ 정도의 말을 써야 했다. 또한 만일 그 당시에 가림토 문자의 실체가 있었다면 ‘옛 전서체’와 같은 막연한 용어를 쓰지 않고 좀 더 구체적인 명칭을 사용했어야 했다.
이 또한 최만리 등 7인의 반대 상소에 나온다. “만약 우리나라가 원래부터 한자를 알지 못하여 끈을 매듭지어 글자 대신 쓰는 세상이라면 우선 언문을 빌려서 한때 이용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若我國, 元不知文字, 如結繩之. 則姑借諺文, 以資一時之用猶可.)”라고 한 것이다.
언문은 신묘한 발명품
최만리 등은 언문이 신묘하다고 하면서도 세종이 새로 만든 훈민정음(언문)을 비하하고 있다. 끈을 매듭지어 글자를 쓰는 세상이라면 바로 고대 상형 문자 수준의 문자를 사용하던 시대를 가리키는데 그때라면 혹시 한자를 본격 사용하기까지 만이라도 임시로 써 줄 만하다는 것이다. 세종이 가림토문자를 모방해 만들었다면 이런 말을 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훈민정음이 그 이전의 어떤 문자와도 다른 매우 독창적임은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낱낱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자방고전’의 진실이나 맥락적 의미도 해례본에 근거해 생각하고 추론해야 한다. 해례본 제자해에서 “정음 스물여덟 자는 각각 그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正音二十八字, 各象其形而制之. [정음해례1ㄴ:2-3_제자해])라고 했으니 이를 벗어난 모든 주장은 사실이 아니거나 진실이 아니다.
이 글은 2023년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 최초 동시 복간본의 필자 해설서인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의 탄생과 역사≫(가온누리)”를 대중용으로 수정 보완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다음호에 이어 집니다.>
출처 : https://www.ccreview.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6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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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훈민정음을 단독 창제했다는 것은 훈민정음이 로마자나 한자와 같이 오랜 세월 다듬어진 문자가 아니라 어떤 특정 시점에 만든 인공 문자 곧 발명품임을 의미한다. 전 세계 저명한 문자 전문가들도 한결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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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슬옹의 훈민정음 해설] 3. 훈민정음 ‘자방고전(字倣古篆)’의 사실과 진실|작성자 김슬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