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자유를 노래하라! 빼앗긴 권리를 찾는 아나키즘, 시대의 부름에 답하며 옷을 바꿔 입는다 거창하게 국가를 상대로 “내 자유와 권리를 침해했으니 보상하시오”라며 손해배상을 청구하지는 않더라도 생활 속에서 내 의사에 상관없이 당하는 부당함에 대하여 제목소리를 내는 당신은 아나키스트이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사상처럼 여겨졌던 아나키즘이 실상은 우리와 함께 숨쉬고 있다. 국가나 권력의 억압 속에 빼앗긴 개인의 권리를 찾는 데 기초를 제공하는 사상이 바로 아나키즘이다.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을 거부한다 아나키(An-archy)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통치자 없는”, “권위가 없는”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아나키즘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모든 위계와 권력에 반대하는 운동이다. 우리는 무정부주의자, 테러리스트, 지독한 개인주의자라고 하며 경멸하던 아나키스트의 옷을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입는 경우가 많다. 건강보험의 재정적자를 해소하는 명목으로 터무니없이 담뱃값을 올리는 데 대한 권리 주장, 내 땅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며 그린벨트를 풀어달라는 움직임, 인터넷내용등급제에 대한 동성애자 인권연대의 맞대응 등은 모두 아나키즘적 사상에 기초한 것이다. 강제적 군대 징집에 거부한 양심적 병역거부, 주민등록증 지문날인제 거부, 국가보안법 철폐 주장 모두 아나키즘운동에 속한다. 이처럼 오늘날의 아나키즘은 특별한 사상의 경도 없이 생활 속에서 실천되고 있다. 그렇지만 과거에는 달랐다. 젊은 세대의 아나키즘 활동가들 중에는 극단적으로 우리나라에 진정한 아나키즘은 없었다고 말할 정도다. 그들에 의하면 과거의 아나키즘은 한마디로 민족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국민문화연구소의 이문창 씨는 “독립운동 당시의 아나키스트들에 대해 테러리스트이며 민족주의자였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자기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유를 앗아간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폭력적 수단을 사용한 것이다. 그들의 모임은 위로부터의 연대가 아니라 자발적인 풀뿌리 민중의 연대였다”고 반박한다. 스페인도 우리와 같은 역사를 가진 나라이다. 다른 나라에 의하여 점령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1936년, 나치 지배 하의 독일과 파시스트 지배 하의 이탈리아 지원을 받은 프랑코가 공화정부를 무너뜨리고 군사독재를 시작했다. 이에 민중들이 들고일어났고 아나키스트들도 무장단체를 결성, 대항하였다. 역시 시대의 부름에 무력이라는 힘을 빌어 참여한 것이다. 스페인 내전 당시 신문을 돌리던 어린 소년으로서 “한 세상이 사라졌으며 새로운 세상이 태동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세상은 예전과는 전혀 달라질 것이다”라며 파시스트들과 싸운 아나키스트 아벨 파스는 “프랑코가 쿠테타를 일으키고 나서 노동자를 억압하고 독재를 행했다. 아나키스트들이 프랑코와 싸운 것은 시대적으로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어디서나 아나키즘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했을 뿐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 위계에 대한 투쟁이라는 본 바탕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제 환경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는 시대, 아나키즘이 환경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m
이제는 에코아나키즘이다 환경에 대한 관심 늘면서 생활개선운동, 생태공동체 조직 등 활기 근래에 에코아나키즘이 조망받고 있다. 구승회(동국대 윤리문화학과) 교수의 저서 '에코필로소피'를 통해 한국에 처음 등장한 에코아나키즘이란 용어는 올해로 일곱해 밖에 되지 않은 일반 사람들에게 다소 생소한 단어이다. 굳이 해석하자면 생태주의 정도로 말할 수 있을까? 지구는 지금 환경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에 에코아나키즘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농부, 환경보호를 위해 썩는 비닐을 개발한 사람도 에코아나키스트라고 불릴 수 있다. 또 생명존중의 사상가, 환경운동가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에코아나키즘은 생명, 자연과 관계된 작은 실천들의 총체라 할 만 하다.
자연과 인간은 동등하다 구승회 교수는 에코아나키즘의 주창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2~30년대 무정부주의자들의 활동은 폭력적이었다. 일제치하에서는 혁명이 유일한 대안이고 돌파구라 믿었다. 에코아나키즘은 그런 폭력이 대안이라고 믿지 않는다. 다만 초기 아나키스트들처럼 시대의 명령에 충실할 뿐이다. 현재 전지구적으로 그동안 방치하거나 파괴를 자행했던 환경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개인들의 이해관계만을 추구하는 요즘의 윤리철학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가 없다. 이를 아나키즘적 시각에서 접근하고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광폭적인 개인해방을 추구하는 아나키즘의 이론을 자연에 접목해서 자연해방을 추구하는 에코아나키즘은 에코페미니즘이나 여타의 환경, 생태철학보다 근원적이고 포괄적이다.” 그러면 실제 어떤 사례들이 있을까? 7~8년 전부터 시작된 대안교육운동은 아나키즘적 사상에 기초한 것이다. 소규모 공동체 속에서, 개인주의가 아닌 전인간적이며, 자연과 조화된 인간형을 지향하는 대안학교들은 에코아나키즘 사상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생활개선운동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예이다. “잘 살아보자”는 점에서 새마을운동과 유사한 듯 보이지만 운동의 이념이 아나키즘 사상이 배격하는 위계·서열, 권위에 바탕을 한 전체주의적이지는 않다. 생활개선운동은 밑으로부터의 개혁이고 자율적이다. 각 마을 단위별로 벌였던 음식물쓰레기 줄이기운동이나 YMCA가 1990년부터 벌여온 '바른 삶 실천운동'이 이에 해당한다. YMCA는 장바구니들기운동, 아나바다 장터, 재활용품 수집 등을 통해 생활 속에서 환경보호를 시행해 왔다. 에코아나키즘의 색채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생태공동체운동이다. 자본주의의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가 불러온 환경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생태공동체를 조직하고 있다. 경기도 화성의 야마기시 마을, 충남 홍성군 홍동면 문당리 생태마을, 경남 산청군 간디 생태마을, 전북 남원시 실상사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전북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 생태마을 등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생태공동체이다.
생태공동체는 자급자족, 물물교환, 저생산, 저소비의 생활을 원칙으로 한다.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공동구매해서 나눠 쓴다. 마을에 함께 해야할 일이 생기면 주민들끼리 모여서 의사를 교환하고 수렴해서 결정한다. 쓰레기는 최대한 줄이고, 음식물은 말려서 분뇨와 함께 거름으로 쓴다. 약간의 불편은 있지만 주민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감수한다.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이며 공생하는 관계다. 그들은 자연에서 얻은 것을 그대로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그게 순환의 법칙이다.
그대 자유를 노래하라! 빼앗긴 권리를 찾는 아나키즘, 시대의 부름에 답하며 옷을 바꿔 입는다 거창하게 국가를 상대로 “내 자유와 권리를 침해했으니 보상하시오”라며 손해배상을 청구하지는 않더라도 생활 속에서 내 의사에 상관없이 당하는 부당함에 대하여 제목소리를 내는 당신은 아나키스트이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사상처럼 여겨졌던 아나키즘이 실상은 우리와 함께 숨쉬고 있다. 국가나 권력의 억압 속에 빼앗긴 개인의 권리를 찾는 데 기초를 제공하는 사상이 바로 아나키즘이다.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을 거부한다 아나키(An-archy)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통치자 없는”, “권위가 없는”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아나키즘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모든 위계와 권력에 반대하는 운동이다. 우리는 무정부주의자, 테러리스트, 지독한 개인주의자라고 하며 경멸하던 아나키스트의 옷을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입는 경우가 많다. 건강보험의 재정적자를 해소하는 명목으로 터무니없이 담뱃값을 올리는 데 대한 권리 주장, 내 땅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며 그린벨트를 풀어달라는 움직임, 인터넷내용등급제에 대한 동성애자 인권연대의 맞대응 등은 모두 아나키즘적 사상에 기초한 것이다. 강제적 군대 징집에 거부한 양심적 병역거부, 주민등록증 지문날인제 거부, 국가보안법 철폐 주장 모두 아나키즘운동에 속한다. 이처럼 오늘날의 아나키즘은 특별한 사상의 경도 없이 생활 속에서 실천되고 있다. 그렇지만 과거에는 달랐다. 젊은 세대의 아나키즘 활동가들 중에는 극단적으로 우리나라에 진정한 아나키즘은 없었다고 말할 정도다. 그들에 의하면 과거의 아나키즘은 한마디로 민족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국민문화연구소의 이문창 씨는 “독립운동 당시의 아나키스트들에 대해 테러리스트이며 민족주의자였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자기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유를 앗아간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폭력적 수단을 사용한 것이다. 그들의 모임은 위로부터의 연대가 아니라 자발적인 풀뿌리 민중의 연대였다”고 반박한다. 스페인도 우리와 같은 역사를 가진 나라이다. 다른 나라에 의하여 점령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1936년, 나치 지배 하의 독일과 파시스트 지배 하의 이탈리아 지원을 받은 프랑코가 공화정부를 무너뜨리고 군사독재를 시작했다. 이에 민중들이 들고일어났고 아나키스트들도 무장단체를 결성, 대항하였다. 역시 시대의 부름에 무력이라는 힘을 빌어 참여한 것이다. 스페인 내전 당시 신문을 돌리던 어린 소년으로서 “한 세상이 사라졌으며 새로운 세상이 태동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세상은 예전과는 전혀 달라질 것이다”라며 파시스트들과 싸운 아나키스트 아벨 파스는 “프랑코가 쿠테타를 일으키고 나서 노동자를 억압하고 독재를 행했다. 아나키스트들이 프랑코와 싸운 것은 시대적으로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어디서나 아나키즘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했을 뿐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 위계에 대한 투쟁이라는 본 바탕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제 환경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는 시대, 아나키즘이 환경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m
이제는 에코아나키즘이다 환경에 대한 관심 늘면서 생활개선운동, 생태공동체 조직 등 활기 근래에 에코아나키즘이 조망받고 있다. 구승회(동국대 윤리문화학과) 교수의 저서 '에코필로소피'를 통해 한국에 처음 등장한 에코아나키즘이란 용어는 올해로 일곱해 밖에 되지 않은 일반 사람들에게 다소 생소한 단어이다. 굳이 해석하자면 생태주의 정도로 말할 수 있을까? 지구는 지금 환경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에 에코아나키즘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농부, 환경보호를 위해 썩는 비닐을 개발한 사람도 에코아나키스트라고 불릴 수 있다. 또 생명존중의 사상가, 환경운동가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에코아나키즘은 생명, 자연과 관계된 작은 실천들의 총체라 할 만 하다.
자연과 인간은 동등하다 구승회 교수는 에코아나키즘의 주창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2~30년대 무정부주의자들의 활동은 폭력적이었다. 일제치하에서는 혁명이 유일한 대안이고 돌파구라 믿었다. 에코아나키즘은 그런 폭력이 대안이라고 믿지 않는다. 다만 초기 아나키스트들처럼 시대의 명령에 충실할 뿐이다. 현재 전지구적으로 그동안 방치하거나 파괴를 자행했던 환경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개인들의 이해관계만을 추구하는 요즘의 윤리철학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가 없다. 이를 아나키즘적 시각에서 접근하고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광폭적인 개인해방을 추구하는 아나키즘의 이론을 자연에 접목해서 자연해방을 추구하는 에코아나키즘은 에코페미니즘이나 여타의 환경, 생태철학보다 근원적이고 포괄적이다.” 그러면 실제 어떤 사례들이 있을까? 7~8년 전부터 시작된 대안교육운동은 아나키즘적 사상에 기초한 것이다. 소규모 공동체 속에서, 개인주의가 아닌 전인간적이며, 자연과 조화된 인간형을 지향하는 대안학교들은 에코아나키즘 사상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생활개선운동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예이다. “잘 살아보자”는 점에서 새마을운동과 유사한 듯 보이지만 운동의 이념이 아나키즘 사상이 배격하는 위계·서열, 권위에 바탕을 한 전체주의적이지는 않다. 생활개선운동은 밑으로부터의 개혁이고 자율적이다. 각 마을 단위별로 벌였던 음식물쓰레기 줄이기운동이나 YMCA가 1990년부터 벌여온 '바른 삶 실천운동'이 이에 해당한다. YMCA는 장바구니들기운동, 아나바다 장터, 재활용품 수집 등을 통해 생활 속에서 환경보호를 시행해 왔다. 에코아나키즘의 색채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생태공동체운동이다. 자본주의의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가 불러온 환경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생태공동체를 조직하고 있다. 경기도 화성의 야마기시 마을, 충남 홍성군 홍동면 문당리 생태마을, 경남 산청군 간디 생태마을, 전북 남원시 실상사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전북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 생태마을 등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생태공동체이다.
생태공동체는 자급자족, 물물교환, 저생산, 저소비의 생활을 원칙으로 한다.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공동구매해서 나눠 쓴다. 마을에 함께 해야할 일이 생기면 주민들끼리 모여서 의사를 교환하고 수렴해서 결정한다. 쓰레기는 최대한 줄이고, 음식물은 말려서 분뇨와 함께 거름으로 쓴다. 약간의 불편은 있지만 주민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감수한다.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이며 공생하는 관계다. 그들은 자연에서 얻은 것을 그대로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그게 순환의 법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