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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현 - She (Inst.) (미녀의 탄생 OST)
“미안해요. 매니저형한테 남자분이라고 얘길 들어서 샤워하고 편하게 나온 건데.”
“아.. 아니요. 괜찮..”
내 맡은 편에 앉아있는 그를 마주보기가 부끄러워 괜히 눈을 이리저리 굴려댔다.
그의 눈을 마주하자니 자꾸 아까 그 맨몸이 떠오른다. 시발. 변태같은 나년..
내가 눈을 이리저리 굴려대도 그는 마냥 날 빤히 쳐다보고 있어 더 당황스러웠다.
아,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빨리 얘기를.. 가방에서 아까 팀장님께 받은 파일철을 주섬주섬 꺼냈다.
“오늘 무슨 얘,”
“근데 겁도 없네요.”
“네..?”
“남자 집에 혼자 막 들어오네. 무슨 일 나면 어쩌려고.”
시발 뭔 개소리.. 일이 나긴 무슨 일이 나. 네 비싼 팝아트 액자가 깨지는 일이 일어날 뻔했다 이눔시끼야.
김종인의 말에 어색하게 하하 웃으니 그가 다리를 꼬고 소파에 푹 기대앉는다,
“내가 거기서 그쪽 뒤집어엎은 상태로 안 봐줬으면 어쩔 뻔했어요.”
“하하..뭐.. 당치도 않은 소리를. 김종인씨 그런 사람 아닌 거 아는데요, 뭐.”
“아닌 거 알아요?”
“네..”
웃으며 다시 되묻는 그의 행동에 조금 주눅이 든 나는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다.
아니, 지금 해야할 건 이런 쓸데없는 대화가 아닌데요...
“그.. 김종인씨. 시나리오는 읽어보셨죠?”
“네.”
“시나리오 읽어보셨으면 엄청 대박일 거 충분히 아실 텐데, 왜 안 하시려고 해요? 다른 분들은 대본보자마자 너도나도 하겠다고 할 것 같은데.”
“그럼 다른 분들한테 줘요.”
“예..?”
아쉬울 것 없다는 듯 그렇게 말하고는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김종인.
아. 내가 혹시 말실수했나? 다른 사람들에게 주겠다는 식으로 들렸나? 그런 거 아닌데..!
다급하게 그의 다리를 손으로 톡톡 치며 다시 앉으라는 뜻을 전하자 그가 날 가만히 내려다보더니 다시 자리에 앉는다. 그의 입이 미묘하게 웃고 있다.
“남자 허벅지를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막 만지네.”
“아니.. 제가 언제 만졌다고,”
“손닿았으니까 만진 거지, 뭐. 새로운 부탁 방법이에요?”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다.
새로운 부탁 방법? 내가 몸 만지고 그런 식으로 해서 승낙을 받아낼 뭐 그럴 수준의 사람으로 보이나?
방금 그 말 진짜 무례한 것 같은데, 김종인은 별 생각이 없는지 그저 장난같은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어쨌든 이 사람을 좋게좋게 설득시키는 게 내 일이기 때문에.
그걸 또 그르치게 되면 팀장님께 얼마나 더 깨질지 두려웠다.
“하... 제가 말실수 한 것 같네요. 다른 분들한테 이 시나리오 줄 생각 없고, 김종인씨가 해줬으면 좋겠어요. 김종인씨를 위한 시나리오에요. 이건.”
“작가가 날 떠올리면서 쓴 것도 아닐 텐데,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쉽게 하시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레퀴엠 시나리오가 김종인씨랑 딱 어울린다 그거죠.”
말을 끝내고 어색하게 하하 웃었다. 비위 맞춰주기 드럽게 힘드네.
내 어색한 웃음에 김종인이 꼬아 앉은 발끝을 까딱거리며 날 가만히 보다가 ‘시나리오 있어요?’하고 묻는다.
그의 질문에 나는 냉큼 가방에서 레퀴엠 시나리오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고, 시나리오를 받아든 김종인은 소파에 몸을 더 푹 기대 앉고 시나리오를 넘겨 읽었다.
전에 준 시나리오는 버렸나.. 아니면 가차 없이 내치는 스타일이구나.
“내가 이거 하면 뭐 해줄 건데.”
“네..?”
시나리오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그의 입이 움직였다. 설마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어 그를 빤히 쳐다봤다.
아아. 혹시 시나리오에 적힌 대사를 읽어보신 건가? 목소리는 겁나 좋긴 하다.
별 생각 없이 그렇게 있는데, 그가 시나리오를 읽던 눈을 떼 날 쳐다본다.
“이거 하면, 뭐 해줄 거냐고요.”
“...제가요?”
“어. 제이.”
“..제이...?”
제이가 뭐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알만 이리저리 굴려댔다.
“네가 내 밑에 깔려서 처음으로 한 말이 제이잖아.”
김종인의 말에 아까의 실수가 생각나 다시 얼굴이 뜨거워졌다가 곧 그때 상황을 회상하고 나서 무슨 말인지 깨닫게 됐다.
아까 JJ E&M이라고 소개를 할 때, 당황스러워서 말을 느리게 했는데, 그때 J라고 말하고 잠시 아무 말도 못했었던 그 때를 말하는 것 같다.
..존나 특이하시네.
“저는 김여주.. 인데요.”
“알아요. 근데 그냥 그렇게 부르고 싶어서.”
“아... 혹시 그렇게 부를 수 있게 허락하는 게..”
“....?”
“김종인씨가 이 영화에 출연하는 의사를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것에 영향을 끼치나요..?”
그렇다면 허락을 하겠습니다만.
최대한 조심스레 묻고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말없이 날 쳐다보던 김종인이 갑자기 재채기를 하듯 웃음을 터뜨리더니 끅끅대며 웃기 시작했다.
...미친놈..? 까맣고 미친 젊은 배우.. 그를 표현하는 수식어가 자꾸만 늘어간다.
“아. 귀엽네.”
“예..?”
“허락받으려고 한 말 아니고, 그냥 그렇게 부르겠다고. 나는 누구 허락받고 뭐 하고 그러는 사람 아닌데.”
“아...”
“아니다. 허락 해봐. 부르게 해줘요.”
그가 소파에 기대고 있던 몸을 내 쪽으로 쭉 빼고 그렇게 말했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당황한 나는 되려 소파에 몸을 기대고 눈을 이리저리 굴려댔다. 초면인데 존나 특이한 사람인 것 같다..
갈 곳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리던 눈동자를 결국 김종인에게 두고 옅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이... 뭐.. 부르세요.”
“그래. 제이. 네가 나한테 한 첫말이 그거라서 그래.”
이젠 묘하게 말을 놓는 것 같은 김종인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어차피 내가 을의 입장이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했다.
스타라고 주변에서 엄청난 떠받침을 받는 사람일 텐데, 사소한 거 하나하나에 내가 딴지걸어서 뭐하나 싶기도 했고.
그때 갑자기 김종인이 시나리오 겉표지의 아랫부분을 찢더니 그 조각을 내게 내밀었다.
“볼펜 있죠? 여기에 제이 번호 적고 가고.”
“.....”
“시나리오는 조금 더 천천히 생각해 볼게요.”
“.....”
“앞으로 몇 번 더 만나는 동안 네가 나 설득해봐.”
김종인의 말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를 설득하라는 미션은, 내 생각보다 더더더 어렵고 어려운 일인 게 분명해지는 순간이었다.
-
결국 그에게 내 번호를 건네고 가까스로 그의 집을 빠져나왔다.
자신의 집을 나가는 내게 김종인이 한 마지막 말은 ‘연락할게. 제이.’였다.
제이라는 그 말은 아무리 들어도 적응이 안 된다. 제이가 뭐야. 내가 무슨 재미교포도 아니고, 연예인처럼 예명을 쓰는 것도 아니고.
그나저나 회사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또 하나의 고민에 빠졌다. 이걸 팀장님께 뭐라고 보고해야할까.
일이 잘 된 거야, 안 된 거야? 김종인이 저랑 몇 번 더 만나면서 설득을 시켜달라길래 제 번호를 주고 왔습니다. 이렇게 보고해야하나.
사실 저 까만또라이를 설득할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다. 그저, 어떻게 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 다였다.
확신은 없다만, 어떻게 잘 구슬리면 넘어오겠다는 생각까지는 들었다.
팀장님께 할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사무실로 들어서자 수정선배가 제일먼저 날 맞이해주신다.
“여주씨. 외근 잘 다녀왔어?”
“네.”
“팀장님이랑 따로 나가던데, 오는 것도 따로네.”
“아.. 팀장님은, 잠깐 약속이 있으셔서 가셨고 저 혼자 다녀왔어요.”
“..여주씨 김종인네 집 다녀온 거 아니야?”
“네. 맞는데요..”
“혼자 갔다고?”
눈이 이만큼 커져서는 되묻는 수정선배의 표정에 괜스레 무서워졌다.
다 큰 처자가 남자 집에 혼자 들어가는 게 큰일이긴 하죠. 근데, 일이고.. 그런 건데..
아까 김종인도 그렇고 왜 다들 이 사실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모르겠다.
수정선배는 비어있는 내 옆자리인 찬열씨 자리에 앉더니 의자를 바짝 끌어 내게 가까이 앉으셨다.
그리고 고개를 조금 낮추고, 목소리도 낮춘 채 입을 여신다.
“김종인 소문이 좀 그런데...”
“..소문이요?”
“어. 소문에는 김종인이 좀. 여자 엄청 밝히고, 문란하게 논다고 하더라고.”
“..아...”
수정선배의 말에 나는 조용히 탄식했다. .
.그치만, 내가 겪은 그는 그런 사람 같아보이지는 않았는데.. 비록 존나 당황스럽게도 발가벗은 채로 날 맞이했지만, 그것도 다 실수였고..
아. 허벅지 만진 걸로 존나 실례되는 말 한 건 좀 깨긴 했다.
“팀장님은 그런 소문 나도는 김종인네 집에 너를 혼자 보냈냐. 너무하시다.”
“....”
“아. 뭐.. 팀장님은 모르실 수도 있어. 이게 많이 유명한 소문은 아니고, 그냥 쉬쉬하듯이 도는 소문이거든. 그리고 팀장님은 원체 남한테 관심이 없으시니까, 뭐..”
“..네.”
“아무튼, 진짜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그런 얘기 도는 사람이니까 조심하라고. 여주씨.”
“네. 감사해요, 선배.”
역시 날 챙겨주는 건 수정선배밖에 없다. 역시 수정선배가 내 사수였어야했어..
내 사수는 유비인지 뭔지 정체모를 사람을 만난다고. 어? 나를 그 저런 무서운 소문이 도는 사람 집에 혼자 집어던져놓고!
“팀장님 오셨어요?”
“어. 여주씨 오기 한 20분 전에 오셨어.”
수정선배의 말에 감사하다고 말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팀장님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냥 대충, 일이 잘 풀렸다는 식으로 얘기해야겠다. 나중에라도 그를 설득하는 일에 실패하면, 김종인이 의견을 번복했다고 말하면 되니까. 문
을 두드리고 안에서 들어오라는 팀장님의 목소리가 들린 후에야 그의 사무실 안으로 발을 디뎠다.
팀장님은 날 힐끗 보더니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신다.
“잘 다녀왔어요?”
“네. 혼자서도 잘 했어요. 아주.”
“김종인씨가 한 대요?”
“거의 얘기가 긍정적인 쪽으로 흘러가고 있어요. 더 만나서 얘기해보려고요.”
“그래요. 그럼 다음부터는 나도 같이 가요. 수고했어요.”
“.....”
팀장님의 말에 나는 아무 말 없이 팀장님을 빤히 쳐다봤다.
내 시선을 느낀 팀장님이 조용히 타이핑을 하던 손을 멈추고 날 쳐다보신다. 우리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닿았고, 나는 괜히 심장이 답답해져오는 것 같았다.
“할 말 있어요?”
“아뇨.”
네. 있어요.
“그럼 나가보세요.”
“..네. 나가보겠습니다.”
유비가 대체 누구예요, 팀장님?
-
내 번호를 가져가고도 연락이 없던 김종인에게서 연락이 온 건 그 뒤로 며칠 뒤 점심시간 즈음이었다.
수정선배와 찬열씨와 함께 밖에서 점심을 먹고 들어오던 길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고, 곧 받은 전화 너머로 ‘안녕. 제이야.’하는 제법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정선배와 찬열씨를 먼저 들여보내고 휴게실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그와의 통화를 이어갔다.
-“너 가고나서, 시나리오 제대로 한번 읽어봤어.”
“아. 정말요? 시나리오 정말 좋죠?”
-“나한테 들어온 시나리오인데, 좋겠지. 그럼.”
아무래도 김종인에게는 나르시즘. 뭐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근데 뭐라고 반박할 수도 없는게, 그가 멋진 배우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주인공이 정말 멋져요. 김종인씨한테 딱이죠. 멋있는 게.”
-“액션이 좀 들어가서 몸이 힘들 것 같은데.”
“김종인씨 액션 잘 찍잖아요. 필모에 액션영화만 4개 아니에요?”
-“어떻게 알아?”
이번에 작업을 필히 같이해야하는 배우에 대해 사전조사도 안 해봤을까봐.
의외라는 말투로 되묻는 김종인의 말에 뭐라고 대답할지 잠깐 고민을 하다가 ‘원래 팬이었어요.’하고 얼버무렸다. 일종의 선의의 거짓말 같은 거지, 뭐.
-“의외네.”
“이 일 하다보면 여기저기 배우들한테 관심을 갖게 되는 일이 많더라고요.”
-“아. 그래서, 지금 나한테 관심이 있다고 돌려 말하는 거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당황하기는. 나 말고 또 관심 있는 배우가 누군데.”
갑작스레 물어오는 김종인의 질문에 나는 말을 잃고 눈만 굴려댔다.
사실 관심을 갖게 되는 것도 일을 하게 되는 사람들한테나 갖는 거지.. 딱히 누굴 좋아하거나, 선호하거나 그러는 건 없는데..
한참을 고민하던 내 입은, 마침 휴게실 TV광고에 나오던 한 남배우의 이름을 불렀다.
“김우빈..?”
-“여자친구 있는 사람한테 쓸데없이 관심을 왜 가지냐.”
“지는...”
-“뭐?”
“아..아니요.”
-“웅얼대지 말고 잘 들리게 말해. 안 들려.”
“그냥.. 멋있어서 관심 간다고요.”
애써 말을 지어내니 제가 더 멋있다고 말하는 김종인.
수정선배의 말에 따르면 여성편력이 어마어마 하시다는데, 한 여자만 만나는 남자를 욕할 명분이나 되나 싶어 코웃음이 났다.
-“아. 오늘 저녁에 시간 빼놔.”
“왜요?”
-“나 설득하셔야죠.”
“아.. 만나자고요?”
-“저번엔 네가 우리 집에 왔으니까, 오늘은 내가 너네 집을 가는 편이 낫겠지.”
“아뇨. 전혀요. 김종인씨가 왜,”
당황해서 그의 이름을 부르며 어물대는데, 내가 앉은 휴게실 소파 뒤편으로 누군가가 지나가는 게 느껴졌고, 곧 그가 내 앞쪽에 있는 자판기 쪽으로 걸어간다. 팀장님이다.
나는 편하게 앉아있던 몸을 서둘러 정자세로 고쳐앉고 두 손으로 핸드폰을 고쳐잡았다.
“제가 식당 예약해둘게요.”
-“쫄기는. 됐어. 내가 예약하고 연락 줄 테니까 그쪽으로 와. 7시 30분까지.”
“아.. 네. 알겠습니다.”
약속장소는 카톡으로 보내준다는 김종인의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가 끝났다. 통화가 끝나고, 휴게실에는 작은 TV소리만 웅웅댔다.
그리고 곧 자판기 아래로 떨어지는 캔커피 소리가 울렸고, 이어서 또 한 번 울렸다. 졸리신가, 캔커피를 두 개나 드시게..
커피를 꺼내드는 팀장님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데, 갑자기 팀장님이 뒤로 도는 바람에 두 눈이 딱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놀라서 푸드덕 거리며 허둥댔다. 그러다가 제정신을 차리고 두 손을 무릎위에 가지런히 모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척.. ... 시발. 존나 쪽팔려..
두 손에 캔커피를 쥔 팀장님이 내게 걸어오시더니, 하나를 내게 내미신다.
커피를 받아들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팀장님이 살풋 인상을 찌푸리시며 내게 캔커피를 조금 더 가까이 대신다.
“안 받아요?”
“아.. 제꺼구나.. 네. 감사합니다.”
두 손으로 캔커피를 받아들었다.
팀장님이 내 앞에 선 채로 자신의 캔커피를 따고는 한 두 모금을 들이키신다. 나도 조심스레 캔커피를 따서 한 모금 들이켰다.
“김종인씨랑 친해졌나봐요. 그렇게 사적으로 전화도 하고.”
“네? 아.. 사적인 전화 아닌데...”
“그 날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렇게 빨리 친해졌어요?”
“아니요. 친해진 건 아니고.. 아. 오늘 저녁에 약속 잡혔는데. 팀장님도 같이 가셔야죠.”
“몇 시요?”
“7시 30분이요.”
“그래요. 퇴근하고 같이 가요.”
팀장님은 그렇게 대답하시고는 먼저 휴게실을 빠져나가셨다.
팀장님이 나간 곳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울리는 카톡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김종인에게 약속장소가 카톡으로 보내져있었다.
내용보다도, 순간 눈에 들어오는 그의 프로필 사진을 눌러봤다. 오.. 연예인 셀카다. 신기하다. 배우라서 그런지 잘생기긴 했네..
우리 팀장님도 배우 못지않게 잘생기셨는데..
혼자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캔커피를 한 모금 더 들이켰다.
-
내가 홀로서기를 하겠다고 땡깡같은 투정을 부린 뒤로 실제로 팀장님과 출근, 퇴근을 함께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너무나도 쉽게, 아쉬울 것 없는 것처럼 구는 팀장님의 행동이 더 서운했지만..
어쨌든, 지금 김종인을 만나러 가는 길. 비록 퇴근이 아니라 야근 겸 외근을 가는 길일지라도, 오랜만에 팀장님의 옆자리에 앉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괜히 들뜨는 것 같았다. 팀장님의 냄새를 꼭 닮은 차안 냄새도 좋았다.
“이제 곧 우리 회사 창립 60주년 기념행사 하는 거 알아요?”
“아. 정말요?”
“어차피 본 행사는 간부들이랑 각 계열사 부장급 분들만 참석하는 자리라 나나 김여주씨랑은 상관없는 거고.”
“아...”
“밤에 뒤풀이 비슷하게 해서 한국 문화인의 밤이라는 특별 기념행사가 열릴 예정인데, 거기에는 참석해야지.”
“와.. 신기하다. 거기는 뭐 입고 가야돼요?”
“글쎄요. 나는 항상 수트만 입고 가서. 정수정씨한테 물어봐요.”
막 휘황찬란한 그런 원피스 입어야하는 거 아니야? 영화제 같은데서 배우들이 입는 그런 거?
그런 거 입고 샴페인 잔 서로 막 짠하고, 연예인들이랑 친분 쌓고 그러는 건가? 상상만 해도 신난다.
“팀장님도 막 연예인친구 같은 거 있어요?”
“글쎄요. 있을 걸.”
“누구요?”
“그냥 여기저기 몇 명 알지.”
“음.. 저는... 김종인씨가 첫 연예인 친구이려나.”
“......”
친구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내 핸드폰에 저장된 첫 연예인인 만큼 그런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잘못된 건 아닌 것 같다.
내 말에 팀장님은 말이 없었고,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또 끝났다.
그리고 곧 김종인과의 약속장소에 도착했고, 주차를 마치고 팀장님과 함께 차에서 내려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몇 분이세요?”
“저.. 아마 다른 분 먼저 와 계실 텐데. 김종인씨..”
“아. 제이씨세요?”
시발... 서버의 물음에 팀장님 눈치를 한번 보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방금 힐끗 본 팀장님의 표정이 ‘제이가 누군가.’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쪽팔리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서버가 이쪽으로 오라며 친절하게 자리를 안내한다. 연예인이라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제일 안 쪽에 있는 방 앞에 멈춘 서버가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김종인이 ‘네.’하고 대답한다.
“일행 오셨습니다.”
“네. 들어오세요.”
김종인의 말이 끝나자 서버가 문을 열었고, 식탁 앞에 앉아 있다가 내 모습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김종인이 보였다.
그리고 이쪽으로 걸어오려던 그가 걸음을 멈칫한다.
“팀장님. 먼저 들어가세요.”
“김여주씨가 먼저 들어가요.”
“네.”
팀장님의 말에 신발을 후다닥 벗고 안으로 들어갔고, 이어서 팀장님도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오셨다.
김종인은 가만히 선 채로 내 뒤의 팀장님을 빤히 쳐다봤다.
사람을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 것도 실례인데.. 저번부터 느낀 거지만, 김종인은 실례를 잘 모르는 사람인 것 같다.
그에게 눈치를 주려고 그를 빤히 쳐다보자 내 시선을 느낀 건지 김종인이 날 쳐다본다.
그리고 그가 옅게 웃는다.
“안녕. 제이.”
“..그릏그 브르즈 므으...”
“며칠 동안 보고 싶었는데.”
“......”
“웬 달갑지 않은 걸 달고 왔네.”
“.....”
-
“......”
타이핑을 하던 손이 멈칫했다.
자꾸만 신경이 쓰여 일에 집중이 되질 않았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옹졸하고 병신같은 새끼였는지.
“하...”
한숨을 쉬며 머리를 쓸어 올리고 몇 모금 남지 않은 캔커피를 한 입에 털어 넣고 쓰레기통에 던지듯 넣었다.
그리고 아까 휴게실에서 신나서 김종인과 통화를 하던 김여주의 모습이 또 다시 머릿속을 채웠다.
그날 널 김종인의 집에 혼자 보내지 말 걸 그랬나. 대체 그 날 너와 김종인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걔랑 하는 얘기들이 뭐가 그렇게 신나고 즐거웠을까, 너는. 내 앞에서 그렇게 신나있던 너를 본 게 벌써 까마득하다.
아까 김여주의 모습을 보며, 왠지 김종인에게 내 자리를 빼앗긴 기분마저 들었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았을 때, 내 자신이 정말 치졸하게 느껴졌었다.
안된다고 그렇게 나 자신을 자꾸 채찍질하는데도 한번 이상해진 마음이 좀처럼 제자리를 찾지를 않는다.
대체 어디서부터 이렇게 된 걸까, 나는.
언제부터 일이 손에 안 잡힐 만큼 네가 이토록 신경이 쓰이고, 어쩌자고 내가.
“......”
네 생각을 멈출 수가 없는 걸까.
첫댓글 경수너이자식 생각보다더빠졌군
아.어떡하 ㅠㅠㅠㅠㅠㅠ 다가가 먼저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