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행복
우리는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은 제각각이라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그런 까닭에 동서고금을 통한 철학자 혹은 현자도 시원스럽게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 듯하다. 어느 날 지인이 들려준 이야기가 가슴을 울렸다. 출근하는 며느리를 대신하여 집에서 손녀를 보살피고 있는데 아침에 손녀의 손을 꼭 잡고서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하였다. 이런 시간마저도 잠깐의 세월인 것을 생각하면 너무도 소중하고 가슴이 시린 순간이라는 술회였다. 가만히 생각하니 너무도 지당한 이야기였다. 이는 어린 육친의 손을 통해 평생에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아마도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여운은 누구에게나 벅찬 보람과 기쁨으로 각인되나 오히려 짧게 스치는 편린(片鱗)의 조각이 되어 마냥 아쉬워하며 고이 기억하다가 곧 영원으로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6월 8일에 외손들이 미국에서 잠시 귀국하였다. 만 3년 반 만에 대면하였다. 7월 24일에 출국했으니 달포하고 보름 남짓을 머물고 떠났다. 이미 오래전에 계획된 일이어서 재회할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순간처럼 꿈 같은 시간은 멈추지 않고 제 길을 앞장서 달려 지났다. 그동안 함께 어울려 지내면서 만사를 제치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무엇을 했는지 돌이켜 보면서 아쉬움을 털고 일어나 내 일에 충실 하려 하나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만큼 후유증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외손 가족은 본가와 외가를 번갈아 오가면서 나름대로 다양한 일정을 보냈다. 양가에서 주관하는 가족 모임에 참석하고, 양가의 선산을 찾아 조상님께 인사를 올리고, 제주도와 선유도를 다녀오고, 가까운 피서지를 찾아 사촌 간의 우의를 다지고, 가벼운 등산과 수영장 및 목욕탕을 찾고, 간간이 놀이터와 오락 게임, AI 바둑을 하는 사이에 훌쩍 시간이 흘렀다. 남은 3주 동안은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 다니느라 나름 빡빡한 시간을 보냈다.
무엇보다 속으로 기쁜 일은 딸이 스스로 자청해 성묘한 일이다. 예전에 모친이 병석에 누워 계실 때 고향으로 작별 인사차 갔었다. 곧 유학을 떠나는 손녀가 어쩌면 마지막 인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린 시절에 따뜻한 마음으로 손녀를 아끼고 사랑하시던 선비(先妣)께서도 마지막으로 손녀와 마주하는 자리임을 잘 알고 계셨으나 전혀 흔적없이 손녀의 인사를 받으셨다. 더구나 선친께서 알려주신 MIT(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대학을 수차례 반복하여 외우셨다고 어렵게 발음하시며, 건강과 장도(壯途)를 축하하는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는데 손녀에게는 그만 마지막 유언이 되고 말았다. 이후 매번 기회가 닿지 않아 고향 땅을 밟지 못하다가 이번에 함께 한 것이다. 당시에 선친께서는 시를 지어 축하해 주셨다. 유고 시문집(母岳山)에 실린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모악산 · 41
서 있다면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모악산을 두고 할 말인 듯 누가 말을 했다.
입신(立身)함에 불역방(不易方)이라
신문에서 본 말이지만 절실하기가 그지없다.
미국으로 유학 가는 손녀(孫女)가 인사차 온다고 하는데
붓을 들어 써주고 싶은 성구(成句)이다.
무엇을 하거나 권위자가 되어야 한다고
도산(島山)께서 아들 필립(必立)을 독려했던 것처럼
MIT에서 유학하는 나날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의 공덕(功德)을 쌓아야 한다.
뜻을 세움에 시종일관 한 우물을 파라.
바꾸어 말하면 일이관지(一以貫之)라, 내가 배우고 또 배운 말이다.
서안(西安)에 가서 제일 큰 벼루를 사왔던 내가
화선지를 펴고 입불역방(立不易方)이라 쓰고
청상(淸賞)이라 새긴 도장을 찍었다.
모악산을 두고 소원처럼 되풀이하는 다짐
모악산처럼 흔들림 없이 공부(工夫)해 달라.
아버지가 못 이룬 한(恨)을 대신하는 다짐에
서 있다면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2007년 5월 30일 대낮
생각할수록 큰 자식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자책의 회한이 담긴 시귀(詩句)를 읽으면서 오히려 민망하고 죄송한 생각이 들었다. 여러 생각이 있어 군문(軍門)에 들어간 것인데 선친은 끝내 대학에 보내지 못한 것을 자신의 탓으로 여긴 것이다. 하지만 그나마 손녀가 장성하여 모두가 꿈꾸는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니 커다란 위안으로 삼은 것이다. 안타깝게도 모친은 그로부터 5개월 후에, 선친은 15개월 후에 먼 길을 가셨으니 얼마나 슬프고 안타까운 일인가. 이제라도 손녀가 두 아들과 남편을 앞세우고 인사를 올리니 아비로서 대견하고 기특하며 감사한 마음을 절감하였다. 이어서 고향의 시민 문화 체육공원에 있는 선친의 문학 시비를 찾아 인사를 드리니 늦게나마 선친의 축시에 담긴 뜻에 보은하는 통한(痛恨)의 인사를 올린 셈이다. 세월은 무상한지라 벌써 시비를 건립 한지도 이미 13년이 지났다.
전주로 이동하여 한옥 마을과 경기전(慶基殿)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나마 한옥의 원형이 보존되어 많은 관광객이 드나든다. 하지만 나무가 우거진 휴식 공간이 부족하고 획일적인 모습으로 마치 시장과도 같은 분위기는 아쉬웠다. 다만 경기전이 그나마 문화 휴식의 공간으로 역할을 하고 있는데, 풍남문(豐南門)과 한벽당(寒碧堂)을 중심으로 공간을 확충하여 조선왕조가 열린 뿌리의 근원지를 복원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과거에 이곳에 보존되었던 『조선왕조실록』의 일부라도 옛 사고에 보존하고, 「어진(御眞) 박물관」도 현대 건물이 아닌 조선 궁궐의 건물로 바꾸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최명희 작가의 원래 고향인 남원에 있는 「혼불 문학관」과 유사한 조그만 규모의 기념시설을 돌아보았다. 선친을 위한 조그만 문학기념관을 마련하고 싶은 마음에서 유심히 관찰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아마도 강렬한 기억은 가족사진을 찍은 것이다. 오래전에 예약하여 옷을 준비하고 사전에 머리 모양을 단정하게 하였다. 모두 화장까지 하고서 갔는데 의복이 날개라는 말처럼 모두가 한결같이 달라 보였다. 여러 차례를 반복하여 찍는데 어린아이들 표정은 좋은데 어른들의 표정이 잘 따라주지 않으니 모두 고생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촬영 기사에게 조심스럽게 부탁을 하였다. 나와 아내의 상반신 사진을 추가로 요구하니 의아해하기에 영정사진용이라 하니 내 나이를 묻는다. 자기 아버지 나이와 같다고 하였다. 딸과 며느리도 만류했으나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는 나이에 찍어두어야 나중을 위한 준비가 된다고 설득하였다. 아무 철도 없는 손자들은 그 앞에서 활짝 웃으며 떠들고 있는데 이런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속으로 다짐하길 “내가 이 세상을 떠나가도 서러워 말아라, 이 기쁜 모습을 두 눈에 담아 가나니!”라고 되뇌었다.
기간 중 두 친구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하나는 롯데 시그니엘 호텔의 숙박권과 만찬을 제공하여 즐겁고 보람찬 일정을 보내게 하였다. 나 역시 덕분에 유명 빌딩에 올라가 서울 전경을 조망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또 하나는 본인이 거주하는 안채를 내주어 온 가족이 시원한 냇가와 잔디밭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진심으로 두 친구의 깊은 우정에 감사할 뿐이다.
나로서도 딱히 줄 선물은 없으나 외손들이 열심히 배우고 익혀 선친과 내가 소장한 책들을 물려받기를 바란다. 따라서 딸과 사위에게도 여러 번 강조하여 체계적인 독서지도를 할 것을 당부하였다. 어렵겠지만 고전을 읽는 습관과 일기를 기록하는 습관을 길러 주길 여러 번 강조하였다. 떠나는 날 아침에 두 외손을 불러놓고 다음을 당부하였다. 매우 평범한 내용이지만 딱히 다른 특정 사항을 강조할 형편은 아니었다. 영어 문장으로 써 가면서 설명하는데 틀린 문장을 즉석에서 수정을 받았다. 돌아가서 본인의 책상에 부착하길 당부하였다.
1. 장차 훌륭한 인물로 성장하길 기대함.
2. 학교생활에 소홀하지 말고, 독서를 많이 할 것.
3. 선생님과 부모의 말에 순종할 것.
4. 무엇보다 형은 동생을 잘 보살필 것.
5. 한국어를 공부하여 익히면 서적을 선물할 예정임.
6. 기타 생활 습관을 바로 하기.
여하튼 철들기 시작한 외손들과 지낸 한여름은 두고두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물론 언젠가 여건이 되면 내가 그들을 찾아가고, 그들도 주기적으로 귀국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위와 딸이 한목소리로 반드시 군 복무는 한국에서 할 수 있도록 국적 선택에 유념한다고 하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 더구나 한국에 있는 사촌들과 할머니 등과 함께 살기를 희망하고 한국어도 더 열심히 배워 대화의 폭을 넓히고 싶다 한다니 적어도 금번 한국여행은 성공했다는 기쁨의 안도감이 들었다. (2022. 7. 28 작성/7. 29.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