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노트
불현듯 거친 바람 한 소금 불어와 지상에 널부러진 가벼운 것들, 미쳐 거두지 못한 것들, 몽땅 안고 회오리처럼 하늘로 날아 오른 것을 본다. 그래 나도 저렇게 땅에서 이 땅에 쓸모 없는 듯 버려진 것들 소중히 안아 솟구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도저히 그렇게는 될 수 없음을 알기에 어쩔 수 없는 거친 들숨 한번씩 세상에 내 뱉고 싶다. 뿌옇게 서린 성에도 한 때는 소중한 생각들이 머문 뜨거운 숨결이었음을 말하고 싶다.
섬진포구에서
아내와 강변을 걷다보니 양쪽으로 경계를 이룬 억새들이 바람에 얹혀 끝없는 포옹을 하고 있다
가는 허리가 부러지도록 수없이 하느적거리다 세차게 부는 바람에 밀려 찰라를 스치며 닿은 곳은 피어버린 꽃자루에 그치고 만다
억 만 년을 흘렀을 섬진강도 저 억새풀처럼 兩岸을 맞대고 싶은 지 물 너울을 애타게 띄우고 있다 상 처 처 이모님의 쌀 가지러 오라는 기별에 곡성군 고달면 소재지 가는 이차선을 지나다 초 겨울의 빈 논바닥을 본다 섬진강을 건너는 다리를 지날 때까지 지난 여름의 태풍에 극성이던 애멸구들 어디로 다 가버려 보이지는 않지만 벼 잎 갉아먹는 소리는 짧은 가을 볕에 떨쳐내질 못하여 아직도 들리고 있다, 방앗간에서 쌀 가마 들쳐 업고 나와 그 들 녂 지나칠 때 어떻게 알았는 지 가마니 속 쌀 알갱이들 몸서리를 쳐 차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은 논배미를 떠난 뒤에도 지울 수 없는 상처가 깊어 몇 세월을 기억하는 것일까 칠분도로 말끔하게 깍아냈지만 깊숙히 박힌 상처는 지울 수가 없나보다
애멸구 : 벼잎과 줄기를 갉아먹는 해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