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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남을 두려워 할 수 없는 사연
5월 5일의 아침이 되었다.
나의 가슴 속에는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안타까운 마음이 쌓였다. 나는 이런 순간 지구당 당원이며 이웃에 살았던 친구 두 사람을 불러 상의를 해 보았다. 그리고서야 등록을 서둘게 됐다. 승패에 관계없이 내가 갈 길은 가야 한다는 사명감이 가슴에 생긴 것이다.
결단을 내리고 보니 타고난 운명적인 기질이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는 소리가 내 가슴을 쳤다.
언제 내가 돈 가지고 살았으며 누구의 도움으로 살았더냐 하는 배짱뿐인 마음에 운명의 신은 결국 내가 가는 길을 열어 주었다.
6일 가까스로 마감시간 전에 벽보 대금을 맞추어 내고 등록을 마쳤다. 그 날 저녁 평소 당내에서 나와 접촉이 있던 대중당 대덕, 연기지구당 위원장이었던 최희수 동지가 뜻밖에 찾아왔다.
전직 고등학교 사회 담당교사였던 모씨를 선거 사무장으로 기용하고 노동판의 십장 몇 사람과 이발관을 하던 친구 유무종을 참모진으로 갖추고 선거전에 임하게 되었다.
7일에는 선거에 경험이 없는 몇 사람이 의견을 내어서 선거공보를 만들어 지역선거 관리위원에 제출을 했다.
생각하면 연속해서 할 일은 태산 같은데 피로가 쌓여 금방 지친다.
8일 아침 9시 온몸이 천근처럼 무겁고 눈가에는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선거 사무실인 나의 하숙방에서 두 다리를 펴고 누워버리니 단번에 깊은 잠에 빠진다.
10시 30분이나 되었을까, 소란스러움으로 눈을 떴다. 사무장과 참모들 그리고 최희수 동지가 당황해 하고 있었다. 바로 오늘 오후에 합동정견 발표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한 번도 연설문을 준비하는 것을 보지 못한 그들이라 당장 닥칠 일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없이 태평스럽게 코를 고는 나를 보고 당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좀 더 잤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모두들의 심각한 표정에 나도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최희수 동지가 기막힌다는 표정으로 어처구니없이 웃으며 합동연설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망설이는 나를 보고 대가도 없이 선거운동을 해주러 왔던 여러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성토를 한다.
오후의 문제는 오후에 해결하더라도 당장의 이 소란은 수습해야 했다. 당의 정책 자료를 적어 보낸 책자를 뒤적이고 읽지도 못하는 외국서적을 읽는 척하며 슬슬 상대방의 눈치들을 살폈다.
12시가 넘어 누님이 준비해 준 점심을 먹고 나니 다시 나의 눈꺼풀에는 졸음이 왔다. 만사 제쳐두고 눕고 싶지만 옆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며 애써 표정을 바꾸었다.
그때 최 동지가 어서 나가자고 앞장을 서며 서둘렀다. 미리 연설 장소에 나가서 사람들한테 얼굴을 익혀야 한다고 했다. 그런 말을 하니 옆에 있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도 일어났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나의 마음은 죽을 지경이다. 그런데도 모두들 고맙게도 나를 에워싸고 전차종점 근처에 있는 남중학교 운동장까지 따라왔다.
낯선 사람들과 시선이 마주치니 점점 정신이 맑아진다. 연설 시간을 30여분 남긴 학교 운동장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고 다른 후보들은 이미 나와 있었다.
점잖게 행동을 하라는 최 동지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젊은 나에게 충고를 했다.
나는 우선 무게 있게 보이기 위해 일행과 함께 한쪽 담 옆에 사람들의 눈에 잘 띠일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비로소 나는 초조하게 다가오는 시간을 보면서 내 정견에 대해 머리속에서 말을 찾아 만들었다. 당장 떠오르는 것은 연설순위만 뒤에 되었음 하는 기대뿐이었다.
사실 나는 연설회를 두고 정리한 원고가 없었기 때문에 상당히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의 선거참모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신념 하나만 가지고 뛰어든 선거전이었기에 쉽사리 어떤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자신의 소리가 억지로 나를 힘들게나마 버티게 한 것이다. 일각일각 자신에게는 시간을 견디어 내어야 하는 투쟁이 이어졌다.
그런 시간에 안내방송이 스피커에서 흘러 나왔다. 선거관리 위원회 직원이 몇 번씩 마이크로 되풀이하며 알리고 있었다.
「곧 연설회가 시작되겠으니 후보자는 연단 옆의 참관석으로 나오시고 후보자 대리인인 경우는 후보자의 도장을 가지고 나와서 연설순위를 추첨해 주시길 바랍니다.」
내 주위에 모였던 동지들이 흥분을 하기 시작했다.
최 동지가 내 도장을 가지고 연설순위 추첨에 나갔다 돌아오더니 미안한 얼굴을 하면서 1번이라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마음은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당황하며 주저할 시간도 없었다. 이것도 운명의 소치인가. 나의 마음은 당장 어디에든 숨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후보자가 운동장 밖으로 도망칠 수도 없으며 연설을 기피할 수도 없었다.
즉시 나의 이름이 스피커를 통해 불려졌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사람처럼 되어 배에다 든든히 힘을 주고 연단으로 올라갔다.
많은 청중들이 나를 주시했고 나는 그런 현장을 보고 여기서 망신을 당할 수 없다고 다짐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또렷하게 눈을 뜨고 청중을 주시하며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사방에서 박수가 터지니까 웬일인지 그 순간 나의 몸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마이크를 얼굴 가까운 곳에 맞추어 입을 열었다.
「제가 기호 4번인 대중당의 후보 이삼한입니다.
제가 이번 5·25 선거에 출마하게 된 것은 이때까지 살아오는 동안 느꼈던 답답함을 풀어보고 싶었고 또한 저처럼 살아오면서 답답함을 가슴에서 풀지 못하고 있는 다른 분들을 위로해 주어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억압과 복종만 강요했던 왕권정치를 모방만 하고 있는 오늘날의 정치적 독선과 그들만이 진정한 조국의 수호자인양 떠벌리는 정권의 억지에 대항하고자 출마를 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양심이 있고 지혜가 있으며 용기가 있는 자가 조국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외치고자하며 저와 같은 뜻을 가진 분을 찾아 나라의 앞날을 구하고자 이 자리에 나섰습니다.
양심과 정의를 먼저 구하고 희망과 용기를 심어 번영되고 자유로운 조국을 가질 수 있는 이상적인 기회는 바로 지금이라고 여기면서 이러한 중대한 시기에 금력에 매수되고 권력에 억눌려 자신의 행사를 뜻대로 못한다면 우리는 희망을 잃게 되고 자유를 버리게 되는 사실을 경고하기 위해 저의 행동이 필요하다고 믿었으며 부패자와 싸우기를 원하는 젊은 기개를 가진, 여러분 같이 가난하고 순박하며 우직스런 저를 국회에 보내 주심으로 해서 여러분이 이 땅의 확실한 주인임을 확인시키기 위해 오늘 제가 이 자리에 나선 것입니다.
주인이 주인 구실을 못할 때, 질서는 파괴되고 정의는 어둠 속으로 숨어버리고 맙니다. 자신이 받는 고통이 아프다고 빌기만 하고 지낼 수 있겠습니까? 어리석은 자에게는 신의 축복이 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여 온 사실입니다.
다음에 이 자리에 올라올 다른 후보들은 저를 두고 어떻게 말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가난하며 학식도 없고 명성도 없습니다만 언제나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며 당당하게 조국과 민족을 걱정하면서 소신과 양심을 지킬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사실을 거짓으로 바꾸어 말하는 것은 웅변이 아니며 사기꾼의 행동입니다. 위선을 일삼는 자는 인재가 될 수 없으며 협잡꾼에 지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조국의 장래를 걱정하는 후보가 있다면 누구든지 자기의 영달보다 사회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으로 이 자리에서부터 행동으로 임해주길 제의합니다.」
그때부터 나는 나의 공약과 신념을 발표했고 대중당의 정책을 설명했다. 청중들은 나의 이야기에 어떤 때는 상당히 열광했고 음성을 높일 때마다 힘찬 박수를 쳤다.
나에게 주어진 연설시간이 잠시 만에 지나갔다. 시간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렸다. 나는 비로소 해방감을 느끼면서 연단을 내려왔다.
내가 연단을 내려오니 나의 일행들이 무척이나 반갑게 나의 손에 악수를 했다. 그들은 정말 가슴이 조마조마 했는데 태연하게 말을 잘 했고 반응도 좋았다고 칭찬을 했다. 다른 면식 있는 사람들도 연설을 잘 한다며 나를 새롭게 인식하는 듯 했다.
나는 처음 실시되는 합동연설이기 때문에 다른 후보들의 정견을 다 들어 보았다. 그러나 사실 전문가인 듯한 그들의 연설도 진실성이 없는 듯 신통하지 못했다. 하늘에는 저녁노을이 펼쳐지고 연설회는 끝이 났다. 나는 개인연설을 위해 자리를 떠났다.
돈도 권력도 조직도 없었던 나의 선거운동이란 내 가슴 속의 진실과 목소리에만 너무 의지하다 보니 어려움도 많았다. 언제나 고달픔에 지쳐 있었으며 정신은 피로를 이기려는 나의 억지에 더욱 만신창이가 되어 갔다.
어떤 곳에서도 연설만은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도 결과에 대해서는 기대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나의 행동이 어느 세대이든 한 사람이 걸어야 하는 사명의 길이라고 생각하며 시간을 견뎌가고 있었다. 그러했기에 하루도 쉬지 않고 고달픈 육신을 이끌며 악을 쓰고 거리를 누비고 이것이 곧 내가 걸어가야 하는 숙명이라 생각했다.
견디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점점 목이 잠기고 있었다. 나는 날계란과 용각산을 먹어가며 안타까운 마음은 목소리라도 살려 대중의 가슴 속에 자신의 외침이라도 남겨 두기 위해 애를 태웠다.
다행한 일은 하루도 변함없이 나를 위해 자기들의 일마저 그만두고 나의 뒤를 따라다니며 협조해 주는 몇몇 동지들이 외로운 나의 투쟁에 의지가 되었으며 특히 멀리서 와서 나를 위해 노력하는 최희수 동지의 정은 정말 고마웠다.
한 차례도 빠뜨리지 않고 깨끗한 목소리로 안내방송과 찬조연설을 도맡아 해 주는 최 동지의 목소리는 항상 차분해서 나의 부족함을 메워 주었다.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그는 하루에도 몇 차례의 안내방송을 했고 나는 몇 사람의 청중이 모인 곳에서도 허공과 거리를 향해 현실을 절규하고 외쳤다.
「존경하는 유권자 여러분! 타 후보들은 정당정치가 어떻고 살기가 좋아지고 경제가 발전했다고 떠들어 대는 것을 보고 저는 심히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내일을 외면한 위선의 소리일 뿐입니다. 정말 이런 정도가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는 환경이라 생각합니까?
정당정치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쥐를 잡지 못하는 고양이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권력의 횡포에 말도 못하고 부화뇌동하며 민중을 기만하면 그것이 어찌 우리들의 지도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정치는 도대체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까? 대통령을 위해서 입니까? 국민을 위해서 입니까?
저는 오늘날 너무나 상식을 벗어나서 전개되는 상황에 대해 답답함을 참을 수 없어 여러분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양심도 없는 자가 위선과 거짓을 보태서 말한다고 똑똑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엄청난 외국의 빚을 얻어 빌딩 몇 개 짓고, 쓰지도 못하는 공장을 계획 없이 짓는다고 발전이며 건설이라고 함부로 자랑하는 것은 조국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 빚은 누가 갚아야 합니까? 대통령이나 정당이나 국회의원이 갚는 게 아니라 그 빚과 이자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이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무계획적으로 엄청난 빚을 얻어 즉흥적으로 발전이라 떠들고 보면 그 덕은 극히 일부들만 보고 우리는 무거운 부담만 얻고 빚 때문에 허덕여야 할 날이 멀지 않은 장래에 다가올 것입니다.
오늘의 정부나 집권층은 상식 밖의 일을 너무나 잘 하고 말도 비단결 같이 잘 하는데 그것을 확인해 보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이 젊은이가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해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그런데도 항간에는 저를 말 잘하는 위선자 정도로 보는 경우가 허다하니 참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다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오늘을 세심하고 조심스럽게 지켜야 하는 것이 우리들 공동의 책임입니다.」
이렇게 절규하다 보면 나의 가슴은 정말 격해지고 금방 터질 것 같았다. 얼굴에는 땀이 흠뻑 흘렀으며 그럴수록 무언가 이 나라에 불안한 문제가 터질 것 같은 마음이 가슴을 떨리게 했다. 이야길 하다보면 목소리도 격해져서 고함이 되었고 절규로 변했다.
「자기 것은 자기가 차지해야 합니다. 위협한다고 굴복하고 기만한다고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밝은 것을 버리고 어둡게 살려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소치이며 영원히 후회해야 할 일이 될 것입니다.
자유와 행복은 신의 선물이며 이 귀중한 선물은 여러분의 양심 속에서 지켜져야 할 것으로서 결코 망각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는 내일의 밝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나와서 진심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자유와 행복은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한 것입니다. 이 사람의 말이 옳다고 보시면 주저하지 마시고 지지하여 주십시요.
저는 분명히 약속드립니다.
조국을 위해서 생명을 바칠 것이며 사회의 정의를 찾기 위해서는 어떤 매도 두려워하지 않고 맞겠으며 굶주림도 고달픔도 거부하지 않겠습니다.」
외로운 나의 절규가 허공에 퍼져 되돌아 와도 나는 절실한 마음으로 쉬지 않고 외치고 또 외쳤다.
내가 연설을 마치고 마이크를 놓으면 최 동지가 다시 나의 지지를 호소했고 하루에도 4∼5번씩 자리를 옮기며 개인정견을 발표했다. 상대편 운동원들은 나의 호소를 지나치다고 욕을 했다.
나는 그런 속에서도 마지막인 5번째의 합동정견 발표회를 맞이하였다. 자금도 조직도 부족한 나의 기대는 언제나 진실을 토할 수 있었던 웅변뿐이었다.
오후 3시부터인 동삼국민학교의 연설회를 위해 점심때가 지나면서 서둘렀다. 그 날의 연설순위는 5번째였으며 마지막이었다.
후보들의 연설이 끝날 때마다 청중이 줄었다. 마지막으로 연단에 오른 나는 넓은 운동장에서 띄엄띄엄 보이는 청중을 향해 목청을 올렸다.
「오늘 시간보다 일찍 여러분을 뵈옵고 제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리고자 동삼국민학교, 이곳 연설회장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제가 타고 오던 버스는 정류장마다 서면서 타는 사람과 내리는 사람을 위해 멈추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교통법규를 위반해 가면서 질주하는 승용차들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장 제 처지와 그분들의 처지가 너무나 하늘과 땅 같은 차이를 느꼈습니다마는 안타까운 마음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고 연단에 올라오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주위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예감에서 우리 사회의 앞날을 두고 좀 진지하게 의논도 하고 진실된 말로 내일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나의 사명을 찾아 조국에 바치고자 결심하고 나왔습니다.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또 오늘의 어두운 사회 현실에서 밝은 것을 찾으려는 애국적 유권자 여러분,
저는 오늘 이곳 연설회장에서 다른 후보들의 정견을 여러분과 함께 들었습니다. 제가 느낀 것은 그분들은 말씀도 수월하게 잘 했습니다만 도저히 그분들의 웅변 속에서 수긍이 안 가는 것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출세를 하기 위해 국회의원에 출마한 분인지 조국의 어려운 문제 때문에 사명감이 생겨서 출마하시 분들인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저의 반대자들은 저를 조소하고 저 자가 누굴 비방하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도 있을 줄 압니다마는 저는 결코 어떤 쪽을 비방하기 위해 이런 말을 끄집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분들은 정당정치가 어쩌고저쩌고 하며 우리들을 가르치려고 하고 있습니다마는 정말 ○○당이나 ××당을 믿고 우리의 행복과 이상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까?
오늘의 세상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의심이 생기는 문제들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나쁜 것을 무조건 덮어두려는 행위가 정당정치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현실에 대한 문제들을 알 수가 없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젊은 제가 오늘의 이런 쟁점에 뛰어들었습니다. 저의 용기나 저의 지혜가 여러분에 의해 이 땅에서 봉사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이든 잘 알고 행세를 한다면 낭패를 당하는 일이 적을 줄 믿습니다.
오늘 이곳에 마지막까지 남아 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시는 여러분들께서는 지난날 대통령 선거에 대한 기억을 아직도 잊지 않은 줄 압니다.
저는 당시 두 분의 연설회장에 나가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대통령후보의 연설과 찬조연사로 나온 쟁쟁한 분들의 말씀 속에서 아연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분들은 대통령 선거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선거에서까지 우리 부산 시민에게 당부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전직 국무총리의 말씀부터 들은 대로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전하겠습니다.
제1야당이라는 곳에서 공천 받고 후보로 나온 사람들을 국회에 뽑아 보내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합디다. 낮이면 국회의원 행세를 하지만 밤만 되면 장사꾼으로 변한다는 이 말의 의미가 납득이 안 가 저의 머리속에서는 몇 날이나 저를 괴롭혔습니다마는 현명하신 여러분들께서는 이 말이 무슨 의미에서 나온 말인지 짐작하실 줄 믿습니다.
제가 모략을 하는 것이 아니냐 의심하는 분들은 그 날 조방 앞에 가신 분을 붙잡고 물어 보세요. 다른 분들도 들은 것이 사실입니다. 나는 그 날 백만이다. 60만 명이다 하는 군중 앞에서 똑똑한 발음으로 웅변한 그들의 직위나 태도로 보아 거짓이 아닐 것이라는 심증을 확인했습니다.
이젠 김 모 후보의 당부말씀도 전하겠습니다. ○○당 국회의원 후보들 국회의원에 뽑아도 여러분 위해 별 소용이 없다. 그들은 하나같이 행정부의 시녀 노릇이나 하니 오히려 민주정치를 하려는 역사에 역행이나 하는 짓이다 하는 말씀에는 왜 우리 사회가 밝지 못하고 점점 음침해지는가 하는 의심이 더욱 나를 괴롭혔습니다.
존경하는 유권자 여러분!
우리의 생활 속에는 안면도 좋고 의리도 좋은 것입니다마는 더욱 중요한 것은 밝은 사회이며 활기 찬 조국인 것입니다. 이런 일을 위해 준비 없이 이번 선거전에 뛰어든 젊은 저에게 그놈 괜찮은 놈이다 여기시고 표 좀 모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는 언제든지 여러분과 조국을 위해 나의 양심과 용기를 바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각오 때문에, 제 어려움보다 조국의 어려움에 더 슬픔을 느끼며 양심을 버린 자들의 조소 속에서도 떳떳이 제 자신을 지키려고 버팁니다.
오늘 마지막까지 남아 제 연설에 귀를 기울여 준 여러분의 양심에 기대를 걸며 시간관계상 연단을 물러갑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다섯 번째 차례였던 합동정견발표를 다 마친 셈이었다.
나의 심신에는 피로가 몰려왔다. 그러나 나를 위해 보수 없이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쉴 여유가 없었다. 대중 앞에 서기만 하면 말이 저절로 나왔다.
26살인 나를 사람들은 대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바로 선거를 하루 앞둔 날 마지막 나의 개인 연설을 하였다. 그 날은 웬 우연인지 사람들이 제법 모였다. 나는 마음속에 가장 염려시 되던 앞날의 문제들에 대한 호소를 했다.
그러나 나는 5차례의 합동 정견발표와 54회의 개인 연설회를 통해 내 가슴 속에 응어리진 한을 전했지만 정치를 유희처럼 느끼려는 사람들의 마음은 돌리지 못했다.
결국 국회의원이 된다는 것은 애국심만으로는 불가능했으며 이 땅에선 금력과 권력이 무기였던 것이다.
5·25 선거는 끝이 났고, 나는 예상보다 더 외롭고 쓸쓸함을 맛보지 않을 수 없었다. 동지들이 개표장에 나가 있는데 나는 안주도 없는 깡소주로 허탈을 달래며 고달픈 육신을 잠재우려고 노력했다.
날이 샌 다음날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려 보니 내 주위에는 그동안 열심히 나를 도왔던 동지들이 둘러 앉아 연민의 표정으로 잠든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니 그들은 나를 위로했고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위로했다.
「여러분 고마웠소. 모든 결과는 내 탓이었소.
인물도 못났고 돈도 권력도 없는 나를 끝까지 따라다니며 협조했던 당신들로부터 나는 다시 많은 힘을 얻었소.
사실 나도 내 자신의 이름에다 표를 찍으면서 이 땅에 인물이 없음을 깊이 한탄했다오.
애기가 크면 어른이 되는 것 아니오. 우리는 지금부터 경험을 살리며 시작하는 것이오. 정말 신세 많이 졌소.」
순박하고 우직스러운 동지들에게 형식이 아닌 깊은 감사의 마음을 느끼며 말을 했다.
금방 방안의 분위기가 달라졌으며 나는 주머니를 털어 됫병 소주 한 병과 오징어 두 마리를 사서 술상을 벌였다. 얼큰하게 취하여 지난 일들과 앞으로의 일들을 토론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모두가 돌아가고 나니 술기운이 몸 전신에 퍼지며 다시 피곤이 엄습해왔고 급기야는 그냥 쓰러져 잠이 들었다.
누나가 저녁밥을 지어 놓고 하루 종일 술만 먹고 취하여 쓰러져 있는 나를 두고 걱정을 했다.
시간이 흐르니 또 세월이 변하여 갔다. 나는 언제까지 감상 속을 헤매며 세월을 먹고 있을 팔자가 못되었다. 이제 또 내 앞에는 방 문제를 비롯한 많은 일들이 쌓여 있었던 깃이다.
조금 모아두었던 돈은 선거를 치르느라 바닥이 났고 막노동으로 여러 식구의 생계를 책임진 자형한테 하루라도 나를 더 맡길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예견된 결과였지만 선거의 충격은 한동안 나를 공허하게 했으며 마음을 방황하게 만든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새로운 결정을 했다.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헌 옷가지를 챙겨 누나 집을 빠져 나와 곧장 부산역까지 걸어 나가서 서울행 완행열차표 한 장을 샀다.
정거장마다 쉬어가는 완행열차는 내 빈 창자를 더욱 자극했다. 그리고 역을 지나면서 차안은 또 복잡해져 왔다.
피로한 기색으로 앉지도 못하고 서 있는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몹시 아파왔다. 저들도 돈이 없어 나처럼 이렇게 지루하고 복잡한 여행을 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주를 마시는 사람, 의자에 기대서서 졸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내 옆에 앉은 어느 촌 노인이 쉴 새 없이 싸구려 담배를 피우고 있어 나를 질식할 것 같게 했지만 내색도 못한 채 참아야 했다.
드디어 열 시간을 넘게 달린 열차가 용산역에 도착했다. 낮이 긴 계절이었지만 새벽 4시는 아직 어두웠고 전등불이 역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역 광장에 나온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생각하며 서성거리고 있었고 「○○ ○○」를 외치며 여자들이 따라와 옷소매를 끌었다. 정말 어디 들어가 쉬고 싶었으나 도저히 형편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나는 끈질기게 달라붙는 여인들을 뿌리치고 새벽 공기를 들이키며 빠른 걸음으로 거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얼마쯤 그냥 걷다보니 먼동이 터오고 있었고 나의 발길은 남대문 시장 통으로 가고 있었다.
한쪽 편에 허수룩한 차림을 한 사람들이 모여 무엇인가 먹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의 발걸음이 그 쪽으로 향했다. 노동자 풍의 사람들은 새벽녘 길가에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꿀꿀이죽인 짬뽕을 10원에 한 그릇씩 사서 먹고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 속에 비비고 들어가서 10원짜리 한 닢을 죽을 떠주던 여자 앞에 내밀었다. 제법 뚱뚱한 여자가 돈을 보더니 꿀꿀이죽 한 그릇을 떠서 내 손에 건네준다. 비로소 배 속의 시장기가 느껴진다.
잽싸게 숟가락질을 해대었다. 꿀꿀이죽 한 그릇을 금방 먹어치우니 몸에 생기가 나서 제법 살 것 같은 기분이 생긴다. 가진 게 별로 없어서 인지 그 죽 맛도 별미로 느껴졌다. 한 그릇쯤 더 했음 하는 기분을 억제하면서 남산의 길을 걸어 올라갔다.
새벽의 찬바람을 오래 맞으니 피로도 사라져 버린다. 약수터에 들러 갈증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약수물을 떠 마셨다. 공짜는 무엇이든지 우선 먹어두고 싶은 심정이었다.
먼동이 터오는 서울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식물원 쪽을 향해 걸으면서 생각해 본다. 햇빛에 비친 아침 안개가 한 폭의 그림 같은 느낌을 준다.
마음껏 숨을 들이 마시고 내뿜으며 광장의 벤치에 주저앉아 젊은 나의 꿈과 이상을 어느 곳에서 찾아야 할지 모르는 부질없는 공상을 했다. 시간을 좀 수월하게 보내려고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생각이 떠오르지 않으니 그런 일도 힘이 들었다.
한 사람 두 사람, 산책 나온 사람들이 주위로 지나갔다. 나의 눈길은 할 일없이 지나가는 사람의 발길을 따라 움직인다. 눈을 붙인 발길이 멀리 사라지면 또 가까이서 다른 사람의 발길을 붙잡게 되고 또 그 발길을 따라 눈동자는 움직였다.
붐비던 사람들이 잠시 뜸했다. 시계의 바늘이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허공을 쳐다보는 시선에는 외로움이 느껴졌다. 몸을 의자에서 일으켰다. 남대문까지 걸어가는 시간이 한 시간만 걸려주었으면 했다. 시간을 소비하기 위해 무턱대고 걸었다.
남대문으로, 시청 쪽으로, 광화문 쪽으로, 10시가 될 무렵에는 종로 쪽을 걷고 있었다.
대중당 당사로 들어갔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텅 빈 사무실에는 사환 아이만이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나는 사무실의 소파에 기대며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시간이 흘러가니까 한 사람 두 사람 낯익은 얼굴들이 나타난다.
모두다 나의 얼굴을 보고 반가운 표정을 찾으며 굳게 손을 잡아 주었지만 그런 그들의 얼굴은 한 사람도 신색이 좋아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이 속에서 나 자신이 좀 더 의젓해 보려고 노력하였다.
정오가 되어도 주위에 점심식사를 하러 가는 사람이 없었다. 또 점심을 먹자는 말을 꺼내는 사람도 없었다. 해가 넘어가고 나서야 모두 서로의 눈치만을 살피며 돈타령이다.
잠시 후에 누군가가 막걸리 집으로 가자고 제의를 했고 여섯 사람이나 되었던 일행은 관철동의 싸구려 술집을 찾았다.
사람들은 막걸리 두 되를 안주도 없이 마시면서도 호기들은 대단하다. 술집 주인은 이런 우리 일행을 좋은 눈치로 보아주지 않았지만 홀 안의 큰 테이블을 차지한 일행은 술기 때문인지 떠들어 대었다.
빈속에 술이 더 잘 취한다는 말처럼 모두의 얼굴에는 주기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온종일 먹은 것이라곤 새벽에 꿀꿀이죽 한 그릇을 사먹은 것뿐인 나의 몸이 금방 술기로 머리가 띵하였다.
누군가의 입에서 <사람 팔자 시간문제>라고 팔자타령을 시작한다. 가게의 일하는 아주머니마저 이런 우리 일행들의 이야기에 건달 취급이다. 점점 정신이 흐려져 갔다. 애써 의식을 붙잡으려고 노력을 해야 자신을 지탱할 것 같다.
우리 일행은 좌석에서 일어났다. 내일 만나자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내밀며 뿔뿔이 제 갈 곳을 찾아 흩어져 버린다.
나는 혼자가 되어 큰길 쪽으로 걸으며 생각하였다. 어디로 간담! 생각을 하면서도 몇 잔 마시지 않은 술기 때문에 정신을 잃지 않으려 애를 써야 했다.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상도동쪽에 있는 단 한 집 알고 있는 친척집을 찾아가 보자는 생각이었다.
제법 촌수가 멀어 그냥 배짱을 부리며 찾아가기에는 염치없는 짓이었지만 당장 뾰족한 수가 없었다. 군대생활을 할 때 한두 번 들른 기억을 가지고 용케 길을 찾아 갔다.
잠을 잘려고 준비하던 사람들이 놀라며 나를 그래도 친척이라고 외면으로는 반겨준다. 저녁을 어떻게 했느냐는 질문에 미안해서 먹었다고 억지로 대답을 했다. 술기운이 나를 더욱 피로하고 괴롭게 했다.
누가 나를 흔드는 기척에 눈을 뜬 나는 새로운 아침을 확인하였다. 식사를 하라는 말에 급히 서둘러 세수를 하고 여러 사람의 밥상 앞에 앉았다.
아침을 먹는 동안 이 집 식구들과 이야길 주고받으니 얼마 동안이나 서울에 있을 것이냐는 사람들의 질문에는 할 말이 막혀 버린다.
나는 한 숟갈의 밥을 입 속으로 넣으면서도 부담을 느꼈다. 며칠 서울 사정을 보고 내려갈 날짜를 잡겠다고 말을 해 놓고는 친척집에 가방을 맡겨 놓은 채 출근을 하였다.
며칠이 지나니 나는 스스로 손님이 아니고 이 집의 짐이라는 눈치를 느끼게 되었다.
나의 행동이 점점 거북해져 갔다. 이쯤 되면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해 주어야 하는 것인데 나의 처지도 정말 딱했다.
나는 아침저녁 타고 다니는 입석버스의 요금도 겨우 정당의 당원 동지들한테 신세를 지고 있는 형편이었다.
며칠이나 더 친척집에서 잠을 자야 할지 몰라 너무 미안한 마음에 언제나 저녁때에는 당 동지들과 어울려 막걸리 몇 잔에 취하여서 들어가면 저녁은 밖에서 먹고 들어왔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상을 차려오지 못하게 하였다.
하루 종일 식사라고는 아침 한 끼를 먹으면서도 나의 가슴 속에는 커다란 꿈이 나를 배고픈 상태에서 참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어린 시절을 거쳐 내가 청년이 된 것처럼 언제든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내 자신의 지난 일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웃을 날을 찾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날그날 당의 청년 동지들의 도움으로 약간의 버스비 정도는 마련했지만 사실 그들도 빈털터리라 나에게 대한 자신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나는 서울에서 나의 꿈을 찾으려면 당장 급한 의식주 문제 때문에 부산으로 내려가서 다시 좀 준비를 해 가지고 와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당장 부산까지의 차비가 여간 걱정되는 게 아니었다.
넓은 서울바닥에서 지금의 딱한 사정을 나의 염치로서는 상의할 곳이 없었다. 여름날의 무더위 속에서 만원인 완행을 탈 수 있었던 것은 신의 도움처럼 생각이 들었다.
땀을 온몸이 젖도록 흘리면서 온종일 입도 다시지 못한 채 허기에 시달리며 부산의 누나 집으로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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