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07. 31
'먹방 스타'로 소문난 1인 방송 진행자가 자장면 16그릇을 먹어치우는 영상을 봤다. 카메라 앞에 한 상 가득 자장면 그릇을 올려놓고 젓가락질 한두 번에 그릇을 싹싹 비웠다. 목이 메는지 간간이 콜라를 들이켜기도 했다. 이 사람 유튜브 구독자가 265만명이라고 한다. 그의 자장면 영상은 600만명 넘게 봤다. 20대 후반이라는데 월급 주는 직원이 10명이 넘고 연매출 10억이 넘는 어엿한 회사 대표다.
▶ TV만 틀면 종일 맛집 소개와 음식 먹는 장면을 담은 '먹방'이 넘쳐난다. 온 국민이 먹방 시청자가 됐다. 지난달엔 걸그룹 멤버가 대낮에 혼자 곱창구이, 곱창전골에 된장찌개와 볶음밥까지 3인분을 먹는 방송이 있었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이 곱창 식당으로 몰리는 통에 일부 가게는 재료가 동나 문까지 닫는 '곱창 대란'이 일었다. '먹방 공화국'이다.
▶ 젊은이들이 모이는 서울 홍대 앞, 대학로엔 대여섯 명이 먹을 수 있는 '괴물 짬뽕' '괴물 떡볶이' '괴물 파스타' 같은 '괴식'(怪食)이 유행한다. '먹방' 1인 방송 제작자들이 앞다퉈 '괴물 ○○'을 먹는 영상을 찍어 올린다. 저렇게 먹어도 괜찮은가 싶은데 환호하는 이도 많다. 자기 학대라는 비판이 있지만 조회 수가 많아 광고 수입이 뒤따르니 앞뒤 안 가리고 덤벼든다. 서구 언론은 한국의 '먹방'을 식욕을 비정상적으로 자극하는 '푸드 포르노'라고 꼬집는다.
▶ 정부가 비만 관리 국가 종합 대책을 내놓으면서 '먹방' 규제 계획을 밝히자 의견이 분분하다. 정부는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비만이 느는 걸 막기 위해 한밤중엔 폭식을 부추기는 방송·광고를 제한하겠다는 방침이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어제 "국민이 어리석은 백성도 아닌데 '먹방'을 규제하겠다는 건 국가주의적 발상"이라며 반발했다. 먹방이 폭식과 직접 관련 있는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 중세 교회는 '탐식'(貪食)을 7가지 중대 죄악에 포함했다. 신앙보다 육체적 욕망을 우선하고 혼자 많이 먹음으로써 다른 사람을 굶주리게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풍요한 세상이 오면서 비만이 사회문제가 됐다. 세계보건기구는 비만을 질병으로 분류했고, 정부가 나서 비만 예방 캠페인을 펼치는 나라도 있다. 반면 '먹는 자유'까지 국가가 간섭해도 되는 거냐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청춘들이 정신적 허기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폭식에 빠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먹방 규제가 신발 신은 채 발바닥 긁는 일은 아닌지 모르겠다.
김기철 논설위원 kichul@chosun.com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