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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12
자동차 업계가 사활을 거는 분야는 어디일까요? 케이스(CASE), 즉 연결성(Connectivity), 자동화(Automation), 공유(Sharing), 전동화(Electrification) 분야를 들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다시 질문해 봅니다. 이 모든 요소를 망라해 지금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근본적인 단 하나의 변혁은 무엇일까요? 바로 ‘자동차 OS(Operating System·운영체제) 혁명’입니다.
OS 혁명은 전기차·자율주행 혁명보다 더 시급할지 모릅니다. 더 제대로 된 전기차, 자율주행차를 만들려면, OS라는 ‘토대’가 완전히 바뀌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몇 년 더 지나면, OS가 각 자동차 회사 제품 경쟁력의 차이를 가르는 핵심이 되겠죠. OS 혁명에서 뒤쳐지는 회사는 곧 쪼그라들거나 망하거나 다른 회사의 하청 업체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아이폰을 통해 휴대전화의 OS가 근본적으로 바뀔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경험했으니까요. 스마트폰은 단순한 휴대전화가 아니라, 전화 기능도 되는 손 안의 컴퓨터이지요. 자동차도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타고 다닐 수도 있는 컴퓨터·스마트폰이 될 겁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예상할 수 있을까요? 네, 피처폰이 스마트폰으로 바뀌면서 관련 업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살펴보면, 향후 4~5년간 자동차 업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 벤츠는 엔비디아와 함께 자사 차량에 탑재할 새로운 운영체제(OS)와 전자제어유닛(ECU)을 개발하고 있다. 벤츠는 이 시스템을 기본 탑재한 신차를 2024년에 처음 내놓을 예정이다. / 엔비디아
◇ 애플과 테슬라가 성공한 것은 전화·자동차가 아니라, 컴퓨터를 잘 다루기 때문이었다
2007년 말 아이폰이 등장했을 때, 기존 피처폰 업계는 아이폰을 무시했습니다. 본인들은 산전수전 다 겪으며 기술을 축적해 왔는데, 피처폰을 제대로 만들어 본 적도 없는 애플이 무슨 기술이 있겠느냐는 심산이었죠. 결과는 여러분들이 아시는 대로입니다. 이전까지 세계시장 점유율 40%를 자랑했던 피처폰 거인 노키아가 망하기까지 딱 5년 걸렸습니다.
여기에서 얻을 시사점을 딱 한가지만 고르라면 무엇일까요? 네, 기존 업계가 애플의 무서운 점 하나를 간과했다는 겁니다. 애플이 피처폰을 만든 경험은 없었지만, 개인용 컴퓨터를 아주 잘 만들어왔다는 것 말이지요. 아이폰은 피처폰보다는 컴퓨터에 더 가까웠기 때문에 애플이 가장 잘 만들 수 있었고요. 또 기존 업계가 아이폰에 대적하려고 할 때, 그들이 보유한 경쟁력·기술장벽이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죠.
이것은 자동차 업계에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CASE의 핵심은 자동차가 컴퓨터로 바뀐다는 것이죠. 자동차가 아니라 컴퓨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자동차 업계가 쌓아놓은 경쟁력은 무용지물입니다. 그리고 컴퓨터를 잘 다루는 회사가 앞으로 자동차 세상을 지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입니다.
어떤 분들은 자동차는 휴대전화와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아이폰 혁명이 자동차 업계에서 일어나기는 어렵다고 말합니다. 이것도 일부 맞는 말이긴 합니다. 자동차는 스마트폰 업계보다 느리게 움직이는 산업입니다. 스마트폰은 회사마다 자사 신모델을 매년 새로 내지만, 자동차는 모델 교체주기가 4~8년 정도 되지요. 또 자동차의 평균 보유 연한은 13년 정도입니다. 전 세계엔 10억대 이상이 운행되고 있지요. 기존 차량이 빨리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스마트폰처럼 급격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지요. 중요한 것은 결국 ‘자동차 버전의 아이폰 혁명’은 필연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핵심에 바로 OS가 있습니다.
다시 아이폰 쇼크 이후 피처폰 업계가 무슨 일을 했는지 떠올려 보겠습니다. 네, 바로 OS를 새로 개발해 대응하려 했지요. 노키아는 자체 개발로 대응하려다 실패해 망했고요. 삼성전자는 아이폰을 뜯어본 뒤 아이폰의 본질이 컴퓨터임을 간파했고, 그래서 사내 컴퓨터 관련 최우수 인재들을 모두 끌어모아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OS를 활용해 자체 개발에 나섰던 겁니다. 하지만 결국 이게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구글 안드로이드로 빨리 갈아타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럼 다시 자동차 업계에서 지금 일어나는 일로 돌아가 봅니다. 아시다시피 자동차 업계가 충격에 빠진 것은 테슬라 때문입니다. 자동차 회사들이 테슬라의 주력 자동차인 ‘모델3’를 구입해 샅샅이 뜯어보고 충격 받은 것은 전기차 성능 때문이 아닙니다. 테슬라의 OS, 그리고 그 OS를 가능케 하는 강력한 컴퓨터 성능 때문이었습니다.
◇ 자동차회사들이 테슬라 차량 뜯어보고 놀란 것은 전기차 성능이 아니라 전자제어장치·운영체제 성능
모델3를 뜯어보니 차량의 거의 모든 기능을 중앙에서 통합제어하는 강력한 컴퓨터가 들어있더라는 겁니다. 자동차 업계에선 이 컴퓨터를 ECU(Electronic Control Unit·전자제어유닛)라고도 하는데요. 기존 자동차에는 이런 ECU가 100여개나 들어 갑니다.
테슬라처럼 중앙에 아주 강력한 컴퓨터 하나가 들어가는게 아니라, 각 기능마다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100여개의 미니 컴퓨터들이 알알이 박혀 있다는 얘기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엔진 제어 따로, 에어백 제어 따로, 내비게이션·오디오 제어 따로, 공조장치 따로, 구동 부문의 각 요소마다 모두 따로따로인 것이죠. 하다 못해 차량 유리창이 오르락내리락 할 때 손이 닿으면 멈춘다든지 하는 것을 제어하는 ECU조차 독자적으로 움직입니다. 그럼 이 100여개의 ECU를 구동하는 OS는 어떨까요? 네, 대부분 따로입니다. 그리고 그 OS는 자동차 회사가 원천기술을 갖고 통제하는게 아니라, 그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에서 ECU·OS도 함께 납품하는게 보통입니다. 따라서 OS는 해당 부품회사가 가진 블랙박스 기술이라고 할 수 있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테슬라 모델3를 뜯어보니 이런 모든 기능을 중앙에서 통합해 콘트롤하고 있더라는 겁니다. 아이폰을 다시 예로 들어볼게요. 아이폰은 기기 안에 AP(Application Processor)라는 통합제어 장치가 들어있고요. 모든 기능은 하나의 소프트웨어 운영체제(iOS)로 구현됩니다. 이것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앱 서비스로 돈을 버는 생태계는 아예 만들어질 수가 없는거죠.
자동차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빌리티서비스다 뭐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소프트웨어적으로 구현해 소비자에게 만족을 주고 돈을 벌려면, 일단 자동차가 그것을 받쳐줘야 한다는 겁니다. 테슬라 차량을 뜯어본 자동차 업계는 그제서야 전기차·자율주행차보다 더 중요한게 바로 OS를 뜯어고치는 것이라는 것을 명확히 깨닫게 된 것입니다. 차량 기능제어의 통합이 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은 자동차 업계 전문가들이 다 아는 내용이었지만, 테슬라 차량에서 그 미래가 너무도 빨리 왔다는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 올해 초 일본의 자동차 전자장치 전문가들이 모여 테슬라 모델3를 뜯어보고 낸 보고서에서 “테슬라의 ECU가 폴크스바겐·도요타보다 최소 6년 앞서 있다”고 말할 것은 이런 의미였을 겁니다.
모델3 같은 차는 무선으로 운영체제가 업데이트됩니다. 스마트폰처럼 말입니다. 기존 자동차는 간단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하나 하려고 해도, 서비스센터에 방문해야 하지요. 하지만 테슬라 차량은 집에서 무선 업데이트만으로도 차량 기능이 개선됩니다. 도로에서 다른 차를 피해 목적지까지 가게 해주는 주행보조장치 기능도 더 좋아지고요. 주행성능도 소프트웨어적으로 조정 가능합니다.
테슬라 모델3의 대시보드를 보면, 중간에 큰 아이패드 모양의 패널이 하나 붙어있을 뿐 물리적으로 누르는 버튼이 거의 없습니다. 폴크스바겐이 최근 출시한 전기차 ID.3의 대시보드 형상을 보면, 모델3를 적극 참고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폴크스바겐 이외에도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테슬라의 대시보드처럼 대형 터치패널에 거의 모든 기능을 집어넣어 버튼을 최소화한 디자인을 따라가려 하지만,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모양만 따라한다고 되는게 아니라, 앞서 말씀드린 중앙에서 통합제어하는 ECU·OS가 기반이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죠.
▲ 폴크스바겐의 신형 전기차 'ID.3'의 콕핏 디자인. 대시보드 중앙의 대형 터치패널에 기능을 집약시키고, 물리적인 버튼을 최소화한 것이 테슬라 모델3와 흡사하다. / 폴크스바겐
▲ 테슬라 모델3의 콕핏 모습. 대시보드 중앙의 대형 터치패널로 차량의 거의 모든 기능을 조작할 수 있다. 이는 차량에 장착된 고성능 컴퓨터와 통합 운영체제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 / 테크크런치
◇ 현대차, 모델3 같은 실내 구조 만들려 했지만, ECU·OS 한계 때문에 난항
현대자동차도 테슬라 모델3 같은 디자인의 차를 개발하려고 하고는 있는데요. 현대차에서 큰 터치패널 하나로 차량의 모든 기능을 제어하려 할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하냐 하면요. 기존에 각각의 수많은 ECU와 OS가 존재하다 보니, 이것을 통합제어하는 시스템을 만드는게 불가능하더라는 겁니다. 또 각각의 부품업체들이 복잡한 관계로 얽혀있다 보니, 이런 관계부터 정리해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지요. 과거에는 다른 차에서 좋은 부분이 있으면, 그것을 빨리 참고해 자사 차량에 적용하는게 현대차의 강점이었지요. 하지만 테슬라의 경우는 겉모양을 따라하는 것만으로는 모방이 불가능하다는게 문제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이 아니라, 눈에 안보이는 부분을 따라해야 하는데, 이 눈에 안보이는 부분, 즉 ECU·OS를 제대로 따라하는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요. 엄청난 자금·시간·인력, 그리고 명확한 방향을 가진 기술 리더십이 필요한데, 이것은 대시보드 형상을 따라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지요.
그래서 현대자동차의 경우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어쩌면 전기차·수소차가 아니라, 테슬라의 진짜 경쟁력, 그리고 다른 글로벌 업체들이 그것을 따라가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바로 그 부분, OS 혁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라면, 지금 글로벌 자동차업계에서 OS 혁명과 관련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드려 보겠습니다.
우선 독일 벤츠와 미국 엔비디아의 OS·ECU 공동개발을 반드시 주목해야 합니다. 벤츠는 단순히 역사와 전통이 있는 독일 고급차가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소프트웨어에 대한 기술적 깊이나 이해도가 가장 높은 자동차 회사로 벤츠를 꼽기 때문이지요. 앞서 말씀드린 CASE라는 용어도 2016년 당시 디터 제체 벤츠 CEO가 처음 공개적으로 사용한 뒤, 일반화됐지요. 그만큼 벤츠는 미래 기술에도 민감한 회사입니다.
우선 벤츠·엔비디아의 공동개발을 논하기에 앞서, 테슬라 얘기를 잠깐 다시 하겠습니다. 테슬라는 당초에 주행보조(향후 자율주행으로 업그레이드 예정)용 반도체에 모빌아이(社) 제품을 썼습니다. 모빌아이는 전세계 거의 모든 자동차회사에 주행보조용 시스템과 반도체를 납품하는 회사입니다. 주행보조기술 시장에서 압도적 점유율을 갖고 있고요. 반도체 거인인 인텔 산하에 있습니다. 테슬라는 그러다가 모빌아이와 결별하고, GPU 시장 리더인 엔비디아의 칩을 썼습니다. 네, AI·자율주행 시대를 선도하겠다는 그 엔비디아입니다. 그러다가 엔비디아와도 결별하고, 2019년부터는 자체 개발한 반도체를 탑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테슬라는 자사 차량의 OS와 ECU를 전부 자체 개발해 쓰고 있다는 겁니다. ECU에 넣을 반도체 개발에는 엄청난 자금과 인력·시간이 필요한데, 왜 테슬라는 굳이 자체 개발을 강행했던 것일까요? 어렵더라도 그렇게 해서 반도체 업계의 지배를 피하는게 장기적으로 이익이라고 봤던 것입니다. 휴대전화 업계에서 애플이 걸어온 길과 똑같지요?
그럼 다시 원래 얘기로 돌아갑니다. 벤츠는 테슬라 모델3를 뜯어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빨리 따라가지 않으면 벤츠의 프리미엄 지위가 위험해진다고 판단했습니다. 피처폰 시대 LG전자의 프라다·초콜릿폰을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만듦새나 디자인은 좋았지만, 아이폰이 나오자 한 방에 무너졌습니다. 벤츠도 그런 위기감을 느꼈던 겁니다. 스마트폰처럼 작동하는 테슬라 차량을 소비자들은 다른 고급차보다 프리미엄이라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확산되면 벤츠가 쌓아올린 프리미엄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거지요.
▲ BMW는 모빌아이·인텔의 반도체 기반 컴퓨터와 새로운 OS를 탑재한 차량 'iNEXT'를 내년 출시한다. / BMW
◇ 벤츠, 자체 개발 포기하고 엔비디아와 협력해 테슬라 OS 추격
그래서 벤츠는 고민합니다. 테슬라처럼 OS도 ECU도 모두 자체 개발을 할까?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자사 엔지니어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그래서 테슬라와 같은 통합형 ECU에 들어갈 반도체는 엔비디아와 제휴해 엔비디아 제품을 쓰기로 했습니다. OS는 벤츠 독자시스템인 MB-OS(MercedesBenz-Operating System)를 열심히 개발 중입니다. 하지만 벤츠의 독자 OS 개발에도 엔비디아가 상당부분 관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벤츠는 2024년부터 새로운 OS를 탑재한 차, 즉 테슬라처럼 거의 모든 기능을 중앙에서 통합제어할 수 있고 무선 업데이트할 수 있는 차를 내놓을 예정입니다.
물론 벤츠가 엔비디아에 기술을 의존하면, 반도체 회사 쪽에 주도권을 빼앗길 위험도 있지요. 모든 것을 쥐고 흔드는 것을 좋아하는 자동차 회사로서는 어려운 결단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벤츠 같은 최고의 프리미엄 브랜드조차도, 망하지 않으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라 판단할 수 밖에 없었던 거겠죠. 아이폰 쇼크에 빠진 삼성전자가 자체 개발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빨리 깨닫고, 안드로이드에 올라탔던 것과 비슷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하나 중요한 것은 공동개발의 첫 작품이 내년·내후년이 아니라 2024년이 돼야 나온다는 겁니다. 또 일부 차량에만 옵션으로 탑재되는게 아니라, 해당 차량 전체에 기본 탑재될 것이라는 겁니다. 즉 벤츠·엔비디아의 OS·ECU는 기존 차량을 차츰 개선하는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완전히 뜯어고치는 전면개혁 방식이라는 겁니다. 벤츠는 왜 이런 과격한 방식을 택했을까요? 아마도 이것이 늦더라도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것은 테슬라의 방식과 똑같습니다. 테슬라에는 대당 원가만 250만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ECU가 장착돼 있지요. 겉으로는 그냥 전기차이지만, 그 안에는 값비싼 고성능 컴퓨터가 포함된 셈입니다. 옵션이 아니고 모든 차에 기본 탑재돼 있습니다. 테슬라 고객은 FSD(Full Self Driving)라는 주행보조(향후 자율주행 기능으로 무료 업그레이드 예정) 소프트웨어를 별도 구매할 수 있는데요. 모델3에서 이 기능을 쓰려면 한국의 경우 900만원이나 더 줘야 합니다.(기본적인 주행보조 기능은 FSD를 구입하지 않아도 사용 가능) 따라서 주행보조 기능은 필요 없고 전기차로만 즐기고 싶은 소비자는 FSD를 안사고 900만원을 아낄 수도 있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모델3 구매자가 FSD 소프트웨어를 별도 구매하지 않더라도, FSD를 구현할 수 있는 고성능 컴퓨터(ECU)는 모든 차량에 기본 탑재된다는 겁니다. 즉 소프트웨어를 안사도 그 소프트웨어를 돌릴 수 있는 성능의 컴퓨터는 그냥 넣어준다는 얘기죠. 그래서 고객이 차를 타다가 중간에 마음이 변해 FSD를 구매한다면, 그 차량에 이미 장착돼 있는 컴퓨터의 봉인만 풀면 됩니다. 스마트폰과 비슷한 개념이지요. 처음 살 때의 스마트폰 성능은 사실 오버스펙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수많은 업데이트가 될 것을 상정해 그 업데이트나 다양한 추가 소프트웨어를 즐기기에 충분한 고사양을 미리 만들어놓은 것이죠. 나중에 비싼 돈을 주고 소프트웨어를 구입해 쓰려고 할 때, 스마트폰 기기의 성능이 모자라 구입을 못하면 안되니까요.
벤츠가 2024년에 내놓는 차도 똑같은 방식이 될겁니다. 벤츠는 얘기가 되지요. 원래 비싼 차니까, 테슬라처럼 원가 250만원의 컴퓨터를 모든 차에 넣어줘도 채산성을 맞출 수 있을 겁니다. 그 때 가면 고급차의 정의가, 단순히 외관과 주행성능만 좋은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처럼 작동하는 고급차로 바뀔테니까요. 테슬라 같은 기능을 가진 벤츠라면, 내외장만 번지르르한 다른 고급차들과 다시 큰 격차를 벌리고 더 많은 인기를 누릴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다른 고급차 회사들은 어떨까요? 일단 BMW가 곧 결과물을 냅니다. 테슬라와 비슷한 수준의 차를 목표로 하는 ‘iNEXT’를 내년에 시판할 예정입니다. 벤츠가 엔비디아(그리고 엔비디아가 최근 인수한 ARM)와 협력한다면, BMW는 앞서 말씀드린 모빌아이·인텔 연합과 공동개발합니다. iNEXT에는 모빌아이·인텔의 반도체, 그리고 자동차·산업용 반도체의 강자인 독일 인피니온 제품을 조합한다고 합니다. 다만 벤츠와는 큰 차이가 있는데요. 벤츠가 엔비디아와 함께 OS·ECU를 아예 새로 개발하는데 비해, BMW는 자사가 보유한 소프트웨어 자산을 활용하며 점진적으로 바꿔나가는 방식입니다. 또 벤츠가 전차종에 일괄 탑재하는 것에 비해, BMW는 일부 특별한 차종에 우선 탑재하는 방식입니다.
◇ 폴크스바겐·도요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각 1만명 투입해 OS 뜯어고치는 중
폴크스바겐도 OS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폴크스바겐은 통합 ECU의 반도체로 일본 르네사스 제품을 선택했습니다. 역시 벤츠와 생각이 좀 다른데요. 테슬라처럼 한번에 바꾸는 벤츠와 달리, 폴크스바겐도 단계적으로 ECU 기능을 통합해 나가는 방식입니다. 이것도 이해가 가는 것이 폴크스바겐은 대중차이기 때문에, 테슬라나 벤츠처럼 대당 원가 250만원 이상의 고성능 컴퓨터를 장착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안그래도 전기차는 배터리 때문에 원가가 비싼데, 고성능 컴퓨터까지 넣어버리면 차값이 너무 올라버리거든요. 폴크스바겐은 올 9월 시판한 전기차 ‘ID.3’에 ‘ICAS1(In-Car Application Server 1)’이라는 통합 ECU를 처음 탑재했습니다. 르네사스 반도체를 사용해 독일 메가서플라이어인 콘티넨털이 만들어 납품합니다. 테슬라 수준의 성능에는 못미치지만, 아무튼 OS 혁명에 빠르게 동참했습니다.
도요타도 향후 르네사스의 반도체를 탑재한 ECU 기반으로 바뀔 예정입니다. 도요타가 아직까지는 OS 분야에서 큰 발표를 하지 않고 있지만, 물 밑에서는 조직 자체에 큰 변혁이 일어나고 있지요. 도요타 차량도 곧 테슬라처럼 무선 업데이트가 되는 차가 많아질 겁니다. 2022년까지 ‘소프트웨어 퍼스트(제일주의)’로 전사 조직을 개편하고, ECU와 OS도 완전히 새로 개발할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도요타에서 소프트웨어는 어디까지나 차량 자체 개발의 일부 혹은 들러리 성격이었지요. 하지만 앞으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개발체체를 분리함으로써, 하드웨어 개발에 앞서 전사적 관점에서 소프트웨어와 차량 개발을 주도하는 조직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소프트웨어 퍼스트 체제 이행의 열쇠는 2018년 도요타가 설립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전문 자회사인 TRI-AD(Toyota Research Institute-Advanced Development)가 쥐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아린(Arene)’이라는 도요타 차량의 소프트웨어 통합개발 환경(IDE·Integrated Development Environment)을 준비 중인데요. 아린의 성과가 도요타 전체 소프트웨어 개발의 효율과 성공 여부를 좌우할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아이폰 쇼크에 맞섰던 피처폰 업계가 완전히 새로운 OS를 개발해 대응하려 했던 것과 똑같은 일이 자동차 업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자율주행이든 모빌리티서비스든, 자동차가 그 기능을 구현할 능력을 가져야만 가능한 일이지요. 그러러면 피처폰 수준의 기존 자동차의 OS로는 불가능합니다. 현재 그것이 가능한 OS를 시판 차량에 적용한 회사는 오직 테슬라 뿐입니다. 그래서 실력 있는 거의 모든 자동차 회사들이 테슬라를 잡기 위해 테슬라와 같은 통합형 OS 개발에 나서고 있는 것이지요. 폴크스바겐이나 도요타는 각각 소프트웨어 개발인력만 1만명 이상을 확보하고, 여기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한편 테슬라는 OS부터 ECU, 핵심 반도체까지 계속 스스로 만들어 가면서 그 성능을 계속 높여 경쟁자와 격차를 벌리려 하겠지요. 기존 업계에선 이미 벤츠·엔비디아·ARM, BMW·모빌아이·인텔처럼 자동차회사와 반도체회사의 연합, 그리고 폴크스바겐·콘티넨털·르네사스처럼 자동차회사와 부품업체 연합이 결성돼 격전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중에 누가 주도권을 잡을지, 그래서 스마트폰 업계의 안드로이드 진영처럼, (자동차 업계의 애플인) 테슬라의 반대 진영이 대통합을 이룰지, 혹은 몇 개 연합으로 나뉠지도 주목됩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완전 자율주행차 시대가 오기 이전에, 자동차가 먼저 스마트폰처럼 바뀐다는 겁니다. 스마트폰처럼 무선으로 차량의 거의 모든 기능을 업데이트하고, 각종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즐길 수 있는 ‘바퀴달린 컴퓨터’가 될 것이라는 거죠. 그렇게 되면 내·외장 디자인만 강조하고 개별 편의장비만 늘려 소비자를 유혹하던 자동차 회사는 설 자리를 잃게 될지 모릅니다. OS 혁명에서 뒤쳐지는 회사는 아이폰·안드로이폰 시대의 피처폰처럼 매력을 잃고 도태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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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