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9. 09.
기상청이 힘겨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역대 최장의 장마 속에서 종잡을 수 없었던 집중폭우를 '예보'가 아니라 '중계'를 한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지구 반대편 체코의 앱(애플리케이션)을 선택하는 '기상 망명족'까지 생기는 모양이다. 태풍에 대한 부담도 무거워지고 있다. 이제는 일본·미국·중국·유럽과의 힘겨운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형편이다.
언론과 누리꾼들이 어느 나라 예보가 더 정확한지를 따져보겠다고 야단이다. 불행 중 다행인지 최근에 지나간 태풍 예보에선 우리 기상청이 모두 '승리'를 했다. 지난달 27일 서해를 통과해 황해도 연안에 상륙한 8호 태풍 바비와 3일 새벽 부산 남서쪽으로 상륙해 강릉 인근 동해로 빠져나간 9호 태풍 마이삭의 경우가 그랬다.
10호 태풍 하이선은 일본에 접근하면서부터 경로 예보가 어려워졌다. 우리나라 서쪽에 자리잡은 차가운 고기압 때문이었다. 결국 하이선은 울산 부근으로 상륙을 해버렸다. 부산 동쪽 해상을 통과할 것이란 예보가 어긋나기는 했지만, 미국·일본보다는 정확한 예보였다. 황소가 뒷걸음치다가 요행히 쥐를 세 마리나 잡은 셈이었다. 태풍의 경로는 비행기의 항적처럼 정확하게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태풍의 중심을 파악하는 일부터 쉽지 않다. 태풍의 눈이 뚜렷하게 보이는 경우에도 그 크기가 수십 킬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태풍이 우리나라 부근에 도달하면서 힘을 잃어버리고, 눈도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중심을 찾는 일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하이선도 그랬다.
태풍의 강도와 경로는 시시각각 변하기 마련이다. 심지어 뒤로 물러서거나, 제 자리에서 회전하는 경우도 있다. 태풍의 경로 예보에는 그런 불확실성을 분명하게 표시한다. 태풍의 예상 경로에 그려놓은 둥근 원이 바로 그런 장치다. 진행 방향에 따라 원의 크기가 점점 더 커진다. 경로의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뜻이다. 태풍의 실제 경로가 예보에 그려놓은 원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 예보는 성공으로 평가된다. 결국 언론이 비교 평가를 한다고 떠들썩했던 여러 나라의 바비·마이삭·하이선 예보는 근본적으로 동일한 예보였다. 아무 의미도 없는 도토리 키 재기에 울고 웃을 이유가 없다.
기상청 오보에 대한 비난이 더욱 강하고, 거칠어지고 있다. 이제 오보청·구라청·중계청 정도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는다. 국가기관인 기상청에 대한 비난에서는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무차별적인 비난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친 비난이 기상청의 예보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언론이 오보를 탓한다고 기상청 예보가 정확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예보관에게 불필요한 부담만 준다. 자칫하면 기상청의 예보 업무를 마비시켜버릴 수도 있다. 슈퍼컴퓨터와 기상위성도 기상청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서 마련해준 것이 아니다. 군인들에게 비싼 총을 사준 것은 절대 자랑거리가 아니다.
일기예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일기예보는 기상 재난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심각한 국가적 노력이다. 폭우·폭설·태풍·폭염·한파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일기예보의 핵심 목표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노력도 아니고, 대도시 주민들의 주말 나들이를 위한 것도 아니다. 그런 예보를 무작정 폄하하는 것은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다. 기상청을 국민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행정안전부로 이관하고, 소방방재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기상청의 노력도 중요하다. 다른 나라의 예보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예보의 근원적인 불확실성과 어려움을 알려주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행정구역에 따라 구분되는 동네예보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비구름은 행정구역을 가리지 않는다. 기상 현상에 대한 해설 방식도 바꿔야 한다. 짙은 비구름이 몰려와서 폭우가 쏟아졌고, 모든 것이 지구 온난화 탓이라는 해설은 사실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기상청이 마음 놓고 최악의 상황을 예보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실제로 일본 국민은 기상청을 가족보다 더 신뢰한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의 대통령·주지사·시장은 허리케인 예보를 무조건 신뢰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우리도 기상청을 무조건 믿어볼 필요가 있다.
이덕환 /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디지털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