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몰이
김형진
밤새 눈이 내린 날 아침. 막 아침밥을 먹고 난 참이었다. 동네 앞 당산거리에서 징소리가 들렸다. 징소리에 이끌려 밖으로 나온 나는 부엌 앞 토방에 서서 옆집의 동태를 살폈다. 징소리는 계속 울리고 있었다. 얼마 뒤, 영수 형이 찌그러진 세숫대야와 부지깽이만한 막대기를 챙겨들고 마당에 나오더니 딱, 딱, 딱 소리를 내며 싱글벙글했다. 시늉뿐인 울타리 사이로 그런 형의 수상쩍은 행동을 보고 있다가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누나에게 물었다.
"영수 성이 어찌서 저런 디여?"
"꿩 몰이 가는갑다."
겨울방학 전에 학교 뒷산에서 토끼몰이 한 일이 생각났다. 전교생이 촘촘히 둘러서 소리를 지르며 원을 좁혀 가면 놀란 토끼란 놈이 정신없이 앞을 향해 내달린다. 앞에는 크고 튼튼한 그물을 치고 젊은 선생님 몇이 지키고 있다. 토끼는 달리 빠져나갈 길이 없어 눈앞의 그물을 향해 그냥 돌진한다.
토끼는 길짐승이니 몰아서 잡을 수 있지만 꿩은 날짐승인데, 병든 놈이거나 약 먹은 놈 아니고서야 몰아서 어떻게…? 같은 날짐승이면서 꿩보다 빠르고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을 가진 매로 사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징소리가 그치자 하얀 마을은 정적에 잠겼다. 두껍게 쌓인 눈에 앞집 초가지붕이 여느 때보다 낮아 보였다. 마루에 오르는 누나를 뒤로 하고 마당에 내려섰다. 눈길을 부지런히 걸어 당산거리를 향했다. 꿩 몰이 가는 영수 형을 따라가고 싶었다.
당산거리에는 동네 청년들이 저마다 금간 세숫대야, 찌그러진 양재기, 구멍 난 양은냄비 등을 들고 둘러서 무어라곤가 떠들고 있었다. 나는 영수 형 옆으로 다가가 꿩 몰이에 따라 가겠다고 했다.
"쬐깐헌 것이…, 안 되야."
형은 한 마디로 딱 잘라버렸다. 여느 때에는 내 부탁이라면 다 들어주던 형이었는데 찬바람이 쌩 도는 말투라 떼를 써볼 틈도 주지 않았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밭에서 기껏 달음질이나 치는 사람이 날아다니는 꿩을 몰아서 잡다니? 참새나 비둘기나 물오리보다는 못하다지만 꿩도 새는 샌데. 그러나 영수 형이 세숫대야를 들고 마당에 나와 싱글벙글하던 모습과 누나의 '꿩 몰이 가는갑다.'던 말이 자꾸 마음에 밟혔다.
떠들썩하니 앞산을 향하는 청년들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맥없이 돌아섰다. 녹지도 얼지도 않은 눈길을 뽀드득뽀드득 걸어 집으로 왔다.
부엌문 앞에서는 누렁이가 아침식사를 하며 참새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누렁기가 밥그릇에 주둥이를 박으면 참새 몇 마리가 밥그릇 주위에 종종종 몰려와 밥알을 넘봤다. 그러다가 누렁이가 주둥이를 들면 잽싸게 포르르 날아올랐다.
꿩도 저러겠지. 사람들이 몰려가면 푸드득 날아오르며 '나 잡아봐라.' 비웃겠지. 그러면 사람들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허망하게 돌아서겠지. 기가 팍 죽어 돌아올 영수 형을 생각하니 미리부터 고소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누나를 찾았다.
"꿩 잡아온 것 봤어?"
누나 방에 들어서자마자 다짜고짜 물었다.
"보던 못했는데…."
누나는 벌겋게 언 내 얼굴을 보면 말꼬리를 흐렸다.
"그런디 꿩 몰인 어찌서 간디여?"
꿩 잡을라고 가재."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나는 누나의 말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잡아온 걸 보지 못했다면 못 잡은 것일 텐데 꿩을 잡으려고 간다니. 내가 머리를 갸웃거리고만 있자 누나는 다시 베갯잇 수에 눈길을 돌렸다.
마루에 나오니 해는 사립문 옆 가죽나무 위에 떠 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다. 하얗게 빛나는 눈의 세상에서 앞산에 간 사람들이 어떻게 꿩을 몰고 있는지 궁금했다. 햇빛을 받아 눈부신 앞집 지붕을 한참 바라보다가 하릴없이 안방에 들었다. 아버지께서는 그새 마을 가시고 어머니 혼자 놋화로 옆에서 인두질을 하고 계셨다. 나는 어머니 옆에 앉자마자 꿩 몰이를 왜 가는냐고 물었다.
"꿩 잡을라고 가지야."
누나와 같은 대답이었다.
"꿩 장아온 것 봤어?"
"봤지야. 그런디 그것은 어찌서 묻냐?" 내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시던 어머니께서는 내 궁금증을 알아차리시곤 꿩 몰이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꿩 몰이는 아무 때나 하는 게 아니라 하셨다. 한겨울, 그것도 눈이 발목에 찰 정도 내릴 때라야 할 수 있단다. 그 때라야 사람들이 몰려가며 쇠붙이를 두드리면서 함성을 지르면 꿩은 눈밭을 달리다가 지치게 된단다.
"후딱 날아가면 될 것인디?"
원래 꿩은 기는데 익숙해 급할 때가 아니면 날지 않는다. 그래서 참새나 기러기는커녕 까치보다도 멀리 날지 못한단다. 그런데다가 눈이 무릎에 차면 그나마 날기도 힘들게 된다. 뒤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면 놀래 제 정신이 아니기도 하고….
"그래서 기절헌다요?"
"숨지야."
숨는데 어떻게 잡는다는 건지, 의아한 눈빛으로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꿩은 다급하면 솔폭 속에 머리와 몸통을 처박고 꼬리는 내놓은 채 숨는다 했다. 몰이꾼들은 꼬리를 내놓고 숨은 꿩을 찾아 잡으면 된단다. 그러나 꿩 몰이를 나간다 해서 다 사냥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란다.
요즘 세상엔 쫓기는 꿩 숨듯 하는 사람이 많다. 그날 영수 형이 귀족 외양을 한 장끼 목을 움키고 동네 젊은이들과 함께 의기양양 마당에 들어서던 모습이 눈에 어린다. 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는 떼 지어 모는 사람도 있다, 생각하니 푸후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