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필의 행동이 이해가 갔나? 성필에게 가장 중요한 건 동생 경미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사람이 얼마나 변하고 막나가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시나리오의 초반보다 후반부를 많이 읽었다. 거꾸로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성필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될 때마다 영화 초반에 동생에 대한 사랑을 얼마만큼 표현해야 하는지 결정했다. ‘성필이 극악무도한 짓까지 하는 것은 경미를 정말 사랑했기 때문이다’라는 것에 집중했다.
영화의 네 명 친구들 관계가 참 복잡하다. 항상 어느 무리를 가도 가장 친한 친구가 있고, 그렇게 친하진 않은데 그 무리에 흡수 돼서 함께 노는 친구가 있는 것 같다. 영화에서 성필은 현명(호효훈)을 많이 동경했다. 자기가 갖고 있지 않은 것들을 현명이 많이 가지고 있고, 동생 경미를 현명이와 이어주고 싶은 마음에 더 현명에게 애착이 있던 것 같다. 건우(변준석)는 조금 의문이었는데, 현명과 친한 건우라서 함께 있는 냉소적인 관계라고 해야 하나? 어떤 일이 일어나도 눈치를 잘 채지 못할 정도의 서먹한 관계라고 봤다. 두용(이바울)은 콤비 같이 꼭 항상 같이 다니는 친구 관계다. 네 명의 친구들이 서로 죽고 못 사는 관계는 아니기 때문에 영화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와야 하는지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여동생을 끔찍하게 아끼는 오빠로 나온다. 실제 여동생이 있다면 어떤 오빠일 것 같나? 엄청 보수적인 오빠이지 않을까. 어느 정도 자유는 주겠지만, 세상이 워낙 무서우니까 일찍 들어오라고 잔소리를 많이 할 것 같다. 진짜 여동생이 있었으면 여자친구보다 더 챙기고, 간섭하고 했을 것 같은데, 형밖에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
못에 들어가는 장면을 빼놓을 수 없는데,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다. 앵글을 세 번 바꿔서 찍었기 때문에 물속에 총 세 번 들어갔다. 첫 번째는 괜찮았는데, 두 번째 찍을 때 물 안에서 몸이 얼어붙어서 못 나오고,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그때 앞에 대기하던 조연출과 스태프들이 다 물속에 뛰어 들어서 나를 그대로 들고 밖으로 나왔다. 촬영을 2월에 했는데 그렇게 추울 줄 몰랐다. 군대에서 냉수마찰 하고, 구보 뛰는 듯한 추위인 줄 알았는데, 촬영날 아침에 가보니 살얼음이 둥둥 떠 있더라.(웃음) ‘추워봤자 얼마나 춥겠어’ 하고 들어갔는데 장난 아니었다. 알몸이어서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칼로 몸이 베이는 거 같은 느낌을 받았다. 연기는 해야 하는데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먼저 정도였다. 세 번째 촬영을 앞두고 조명 감독님이 오셔서 따뜻하게 안아주셨다. 그때 촬영 그만 하자고 하실 줄 알았는데 “봉성아, 오늘 안하면 내일 또 해야 해”라고 하셨다.(웃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시 하긴 싫었는데 스태프들이 다 나만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눈 딱 감고 촬영했다.
군대를 갔다 온 줄 몰랐다. 21살 때 갔다 왔다. 그때 친구들이 다 가던 때였고, 일찍 군대 갔다 와서 마음 놓고 연기하자고 생각했다. ‘이왕 갈 거 빨리 갔다 오자’ 이런 마음? 바울 형도, 효훈이랑 준석이도 다 군대 갔다 왔다. 예비역들이 찍은 영화다.(웃음)
극중 ‘못’과 ‘굴다리’는 등장인물들의 비밀스러운 아지트로 나온다. 혹시 자신만의 아지트가 있나? 아지트는 아니고, 개인적으로 즐겨 찾는 장소가 있다. 청량리 영풍문고인데, 심심하면 그곳에 가서 책을 읽는다. 책 읽는 거 좋아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곳에 있는 편이다.
책 읽는 거 좋아하나 보다. 취미가 책 읽는 거다.(웃음) 책을 읽으면 누구와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좋다. 그 중에서 인문학을 자주 읽는 편이다. 은사님들이 ‘배우는 인문학을 봐야 인물에 대해 알 수 있고, 그것을 캐릭터에 녹일 수 있다’고 해주셨다. 성필도 그렇고, 캐릭터들을 내 것으로 만드는데 인문학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감사할 줄 알고, 겸손하며 치열한 배우
서로 역할을 바꾼다면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 현명 역할을 해보고 싶다. 감정을 한 번에 표현을 하지 않고, 순간순간 받는 느낌을 표현해야 하는 어려운 연기다. 다른 캐릭터보다 더 디테일하게 감정을 잡아야하기 때문에 재미있을 것 같다. 한번쯤은 배우로서 도전해봐야 하는 연기가 아닐까 싶다.
하고 싶은 캐릭터가 많을 것 같다. 지금까지 계속 학생 연기를 많이 했는데, 앞으로 전문직 역할을 해보고 싶다. 의사, 변호사 등 전문적인 역할을 맡아서 연구하고, 준비하면서 더 밀도 있는 연기를 보여주면 좋을 것 같다.그리고 조금 더 절제된 감정, 복합적인 감정 연기를 하고 싶다. 지금까지 센 역할을 많이 했는데 다 표출시키기 보다는 절제시키며 폭발하는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을 만나고 싶다.
2014년도 <족구왕>부터 시작해서 호평 받은 작품에 많이 출연했다.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지 않나? 그렇게 많이 알아보진 않으신다.(웃음) 한 번도 그런 걸 겪어보지 못했는데 <족구왕> 때문에 어디를 가도 <족구왕> 이야기를 해주시니까 감사하다. 얼마 전 19회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 섰다. 신인이고 무명이라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 사이에서 걸으려니 정말 떨렸는데 <족구왕> 팬들이 많이 오셨더라. 나를 보고 “창호야” 외쳐주셔서 긴장도 풀리고 웃을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그런 감사함을 잊으면 안 된다 생각한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식상할 수 있는데, 초심을 잃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 학교를 휴학하고 2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단편영화를 찍었다. 그러다 보니 연기 하나하나, 작품 하나하나가 대중성은 못 띄더라도 얼마나 가치 있는 건지 깨달았다. 독립영화 덕분에 좋은 기회를 계속 얻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그래서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기를 하면서 계속 되뇌는 게 있는데,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겸손하며, 더 치열하게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장편영화를 찍게 됐고, 상업영화도 하고 있다. 앞으로 나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주위의 모든 게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굴복해 옛날 모습을 잊어버리면 내 자신에게 굉장히 후회할 것 같다.
호효훈 캐스팅에 비하인드가 있다고 들었다. 내가 효훈이를 영화에 넣어줬다.(웃음) <못> 시나리오를 받은 날 효훈이를 만났다. 자랑하고 싶어서 시나리오 들고 있었는데, 효훈이가 한번 읽어보겠다고 하더라. 그리고 바로 다른 역할에 프로필을 넣었는데 잘 안됐다. 그래서 감독님께 이야기 하지 않고 시나리오를 토대로 내가 다시 효훈이의 프로필을 만들었다.
직접 프로필을 찍어준 건가? 효훈이에게 군복 입고 오라고 하고, 극중에 나오는 허름한 슈퍼 같은 곳을 찾아가서 담배 피는 모습도 내가 직접 찍었다. 연기하는 독백도 시나리오를 조금씩 비틀어서 “엄마 왜 바람폈어?” 이런 식으로 만들었다.(웃음) 다행히 현명 역할에 이름이 올랐던 분들이 일정이 안 맞아 못하게 되면서 내가 감독님께 계속 “효훈이라는 애가 잘 될 것 같다”고 말씀 드렸다. 그때까지 친구인 줄 모르셨는데, 캐스팅 확정 되고 나서 모든 사실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나는 확신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지만 효훈이가 연기를 뚝심 있게 잘 할 거라는 믿음이 강했다. 효훈이가 지금 다음 영화를 촬영 중인데 기대된다. 서로 의지하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
사진 정상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