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행복한 가정의 조건 Date 2009. 01. 25
Text Prv 31,10 & 28-31
(10)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28)그의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그의 남편은 칭찬하기를 (29)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느니라 (30)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31)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 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1. 설 귀성객들이 폭설 때문에 도로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신 분들은 안전하게 도착하시고 잘 도착하신 분들은 즐거운 명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한참 어려운 때라 가족들끼리 모이면 할 수 있는 한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신경을 누그러뜨려서 절대 짜증내거나 신경질, 원망을 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다른 생각에 대해서는 이해하려고 애쓰시고, 아픔은 어루만져 주시며, 서로간에 사랑과 위로를 나누시면서, 다들 용기를 내고 새 힘을 얻을 수 있는 명절로 삼아야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하시면 좋겠습니다.
인생의 행복은 작은 한 가지 일이 하나하나 모여서 만들어지고, 티끌모아 태산이 되며, 세상의 어떤 큰 숫자도 여러 개의 1이 모여 만들어지듯이 가정의 행복도 한 사람, 한 가지 행동이 중요합니다. 한 가지 행동을 위해서는 한 가지 생각부터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중요성을 말해줍니다. 한 사람의 힘으로 다 할 수 있는 일도 없지만 한 사람 없이 되는 일도 없습니다. 어떤 위대한 일도 거의 모두 한 사람, 한 가지 일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행복한 가정이든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행복이 만들어지는 데는 한 사람의 희생과 섬김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명절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가족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에게 주신 잠31장의 말씀이 우리 성도들 가정마다 이루어져서 행복한 가정들이 되시고, 각 가정마다 위대한 비전들이 세워지는 복이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2. 오늘 읽은 잠 31장에는 ‘현숙한 여인’이라는 말이 키워드입니다. 현숙한 여인 한 사람이 가정을 복되게 하고 가문을 빛나게 하며, 나아가 사회도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오늘 말씀의 요지입니다. 여기 ‘현숙한’으로 번역된 원문의 말은 어질고 지혜로우며 정절이 있어 가정을 화목하게, 넉넉하게, 그리고 살 맛이 있게 이끌어 가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런 여인이 있는 가정은 산업이 핍절하지 않고(11절), 가정이 점점 더 나아지게 하며(12절), 갑자기 닥칠 수 있는 시련에 대처할 준비를 하여 슬기롭게 극복한다(21-22절)고 했습니다. 또한 가족들은 존귀하게 되어 사회적 신분이 상승하게 된다(23-25절)고 하였습니다. 요지는 현숙한 여인 한 사람이 이렇게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아버지가 됐든 어머니가 됐든 아니면 자식이라도, 하여간 한 사람이라도 정신 차리고 있고 가족들이 조금만 협조해 주면 이 세상 누구도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 최고로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어머니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아멘.
이 말씀은 오늘 우리 가정도 마찬가지인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니 너도 네 집의 행복을 꽃피우는 한 알의 죽는 밀알이 되라는 것을 충고하고 있습니다. 힘들어 지쳐 있는 사람에게는 ‘가족을 위한 네 수고는 절대 헛수고가 되지 않으니 조금 더 힘을 내어 선한 싸움을 계속하라’는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바로 당신이 당신 가정의 행복을 위한 열쇠임을 아십시오. 행복한 가정의 조건 제 1이 바로 이 말씀을 듣는 당신입니다. 당신이, 켜 있는 등불이 되어 여러분 가정의 등경 위에 놓여져 있기만 하면, 여러분 가정을 짓누르던 불행의 먹구름은 사라지고 행복한 봄동산이 될 것입니다. ‘믿는 나’마저 주저앉으면 정말 위험합니다. 믿음의 싸움에서 승리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3. 그러면 어떻게 현숙한 여인이 될 수 있습니까? 현숙한 여인은 어떻게 사는 사람입니까? 다섯 가지의 행동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가족들이 서로 믿을 수 있게 이끕니다.(11절) 둘째, 자기 즐거움을 추구하기 보다는 다른 가족 구성원이 잘 되게 희생합니다.(12절) 셋째, 부지런합니다.(13-19) 넷째,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20절) 다섯째, 말과 행동으로 지혜와 인애의 법을 잘 가르쳐 따르게 합니다.(26절) 반대로 집안 말아먹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식구들끼리도 자꾸 속이고 거짓말을 하여 서로 믿지 못하게 하는 사람, 남 생각은 않고 자기 편한 것, 자기 좋은 것, 자기에게 이익 되는 것만 추구하는 이기주의 사람, 게으른 사람, 남에게 베풀고 도와주는 일에 인색한 사람, 입만 열면 짜증과 원망을 내 뱉어 불화를 조장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집안 말아먹는 사람이 아니라 현숙한 여인, 현숙한 성도가 되셔서 가족들을 일으키고 가정을 일으키며 가문을 일으켜서, 나아가 세상도 일어서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번 설 명절부터 이 말씀을 명심하고 가족들에게 칭찬 듣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미갈은 사울왕의 딸 공주입니다. 그의 남편은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왕으로 추앙 받는 다윗입니다. 그만하면 미갈은 이 세상 어떤 여자보다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그녀는 평생을 남편에게 제대로 사랑 한 번 받지 못하며 불행하게 살았습니다. 두고두고 지금까지도 재수 없는 여자라고 욕을 먹습니다.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좋은 것들인지 생각하지 않았고 도리어 왕인 자기 남편을 우습게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한 사람 룻은 이방 여인이요, 시집가서 아이도 하나 낳기 전에 남편을 잃었으며 낯선 나라에 가서 밭에서 이삭을 주우며 늙은 시모를 봉양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나중에는 시댁의 기업을 위해 자기 아버지뻘 되는 보아스와 결혼을 했습니다. 아무리 따져 봐도 룻은 행복할 수 없는 여자 같습니다만 룻은 공주 미갈보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가족뿐만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았고 칭찬이 자자했으며, 가문을 일으켜 세웠는데 그 증손자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두고두고 지금까지도 칭송이 자자합니다. 무엇이 미갈과 룻, 두 여자의 상반된 결과를 가져왔을까요? 희생, 섬김, 감사가 바로 그 차이를 가져왔습니다. 행복한 가정의 조건 두 번째는 내가 감사의 사람, 희생의 사람, 섬김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4. 저는 오늘 행복한 가정을 위해 한 사람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렸고, 그 한 사람 내가 감사와 희생과 섬김의 사람이 되는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정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러면 좋겠다.’ 수준이 아니라 ‘정말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인데, 정말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31절 말씀이 답입니다. 같이 읽을까요?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아멘.
고운 것도 아름다운 것도, 가정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 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칭찬 받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그리고 진실 되게, 두려움으로 섬기는 것이 ‘행복의 열쇠인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오스기네스’라는 유대인이 구소련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당국에 의하여 정치법으로 15년간 투옥되어 있었습니다. 시베리아의 강제 수용소에서 강제노역을 하면서 아무 희망도 없이 죽지 못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은밀히 예수에 대한 복음이 전해졌고,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믿음을 가지고부터, 언젠가는 4살 때 헤어진 아들을 보리라는 소망을 가집니다. 그 믿음과 소망으로 15년을 견디어 냈습니다. 마침내 석방이 되어 가슴이 울렁거리는 흥분으로 아들을 만났는데, 아들을 포옹하려는 순간 아들의 가슴에 십자가가 있는 것을 보고, 아버지는 너무나 감격했습니다. 죽을 것 같은 고통 가운데서 살 수 있는 소망을 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아들도 지니고 있다니. 포옹을 풀고 그동안의 쌓인 이야기를 털어놓은 후 이제 19세가 된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무슨 뜻으로 십자가를 지니고 있니?”
오스기네스는 아들에게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의 말을 기대하면서 늠름하게 자라난 아들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대답을 듣는 순간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 이거요? 유행이예요.”
아버지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희망이었고, 소망이었으며,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힘이었지만, 아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냥 유행이었습니다. 유행 십자가 장신구는 아무 힘이 없지만 신실한 신앙의 상징인 십자가는 시베리아 강제 수용소에서도 살아나오게 하는 능력이 됩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장신구가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그냥 유행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80 노인 모세를 세워 민족을 구원해 내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으시며, 갈릴리 바닷가의 촌부를 지상 최대의 인물로 변화시키시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기독교 신앙을 그저 싸구려 장신구 정도로 취급하는 것은 국보급 도자기를 엿가락과 바꿔 먹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예배를 떡국 한 그릇 먹는 것보다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크게 실수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경건은 틀림없이 당신을 하나님의 은혜로 무장시켜 당신의 가정을 행복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줍니다. 믿으시고,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