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4/사반과 토끼는 새김질하는 동물인가?
사반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토끼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레 11:5~6)
레위기 11장에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정결 음식법이 기록되어 있다. 이 중 정결한 짐승의 조건은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3절)이어야 했다. 그런데 이 규례에서 상식과 상충되는 듯한 진술이 나타난다. 그것이 바로 사반과 토끼가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다"는 5~6절의 진술이다.
6절의 '토끼'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아르네베트는 문자 그대로 '토끼'이다. 영어 성경들은 대개 '산토끼(hare)'라고 번역하고 있다.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짐승은 5절에 언급된 사반이다. 사반은 사판이라는 히브리어 발음을 따라 그대로 음역하였다. 흠정역(KJV)은 coney(토끼)로, 새표준개역성경(NRSV)과 새미국표준성경(NASB)은 rock badger(바위너구리)로 번역하였다. 시편 104편 18절에서 이 단어는 한글로는 '너구리'로 번역되었다. 사반은 크기가 토끼만 하다. 몸은 회갈색이거나 갈황색이지만 배는 흰색이다. 밝은 눈에 둥근 귀가 있으며 꼬리는 없다. 흡착력이 강한 발 덕분에 자유자재로 바위를 기어오르며, 부드러운 쿠션이 있어 쉽게 뛰어다닌다. 다른 동물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바위틈에 집단적으로 군생하며, 종종 동굴 입구 앞에 떼를 지어 앉아 있는 겁이 많은 짐승이다. 사반은 토끼와 비슷한 초식 동물이다.
관심의 초점은 '토끼(coney)'라고도 번역된 5절의 '사반'과 '산토끼(hare)'라고 번역된 6절의 '토끼'가 모두 새김질을 한다고 말하고 있는 점이다. 그런데 해부학적으로 보면 분명히 토끼는 새김질을 하지 않는다. 새김질을 하는 동물은 위를 네 개씩 가지고 있어 이 위 속에서 처리된 먹이들을 다시 입으로 넘겨 새김질을 한다. 그러나 토끼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비과학적으로 기록된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모세 시대 사람들의 과학적 무지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주어진 설명의 하나는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보지 않고 문화적으로 보는 것이다. 즉사반이나 토끼가 아랍인들의 식용으로 사용되고 있었으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방인의 음식 문화를 모방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금하신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설사 그런 해석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여전히 "새김질은 하되"라는 부분은 설명해야 한다. 흔히 새김질을 하는 짐승을 반추동물(反動物)이라고 부른다. 이 짐승들은 일반적으로 위가 네 개이다. 그 위들을 이용하여 먹은 것을 다시 씹을 준비가 됐을 때 입안으로 되뿜는다. 그러나 사반이나 토끼는 네 개의 위가 없기에 반추동물로 분류되지 않는다. 그러면 왜 새김질을 한다고 했는가?
무엇보다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은 성경의 생물 분류 방법과 오늘날의 생물학적 분류 체계는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성경에서는 동물들을 단순히 육안으로 관찰되는 대로 기는 것, 나는 것 등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현대 과학은 생물 및 화학적 구조에 따라 훨씬 더 복잡하게 분류한다. 성경의 분류 방법에 따르면 박쥐는 '날개 있는 모든 새창 1:21)에 포함된다. 그러나 현대 과학에서 박쥐는 포유동물로 분류된다. 레위기 11장에서 사반과 토끼를 반추동물로 분류하는 것도 같은 방식이다. 분명히 사반과 토끼는 해부학적으로는 새김질하는 동물이 아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늘 입을 오물거리며 먹이를 여러 번 씹는 것같이 보인다.
또 실제로 산토끼는 독특한 방법으로 반추 활동을 한다. 똥을 누고는 곧 그것을 다시 먹는다. 처음에 소화하기 어려웠던 음식물들을 두 번째에 소화시키는 것이다. 산토끼는 배설할 때, 씨코트로프(caccotroph)라는 알약과 같은 배설물을 만든다. 그리고 이것을 되씹어서 다시 한 번 소화시킨다. 이것은 원래 맹장에서 만들어지며 비타민B 종류가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어 소화 작용에 필수적이다. 산토끼가 이것을 다시 씹을 때, 셀룰로오스(Cellulose)를 분해하는 세균이 있어 반추동물의 되새김질과 같은 작용을 한다. 씨코트로프에 대해서는 1882년 프랑스 수의학지(French Veterinary Journal)에 처음으로 실렸다. 그때까지 많은 동물학자들은 이 과정을 새김질이라고 생각했다. 토끼가 새김질에 필수적인 씨코트로프를 생성하고 또 셀룰로오스를 분해하는 세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반추동물로 볼 수도 있다고 설명하는 동물사전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