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 1904~?) 선생은 문장이란 어느 것이든 언어의 기록이므로 말하듯이 쓰면 되지만, 말과 글이 같으면서도 다른 점이 존재하므로, 좋은 문장을 위해서는 ‘작법作法’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대상을 표현하는 데 인물처럼 복잡다단한 것은 없다고 합니다. 외모에서 특징을 찾는 세밀한 조사를 시작으로 그 사람의 성격을 규정하는 외부적 조건들과의 유기적인 인과관계를 찾아서 다소 과장하듯 한 묘사가 필요하다고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독자가 읽고 난 후에 은연히 그 인물이 두드러질 때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소이불루의 묘妙’라고 했습니다.
노자老子 제73장 임위편任爲篇에는 ‘천망회회天網恢恢 소이불루疎而不漏’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서 성긴 듯하나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표현》에 좋은 문장을 주시는 문우님들을 생각하면서 황동규 시인의 <야트막한 담장>을 다시 읽어봅니다.
동네 서달산 산책길 오르내리며/이 골목 저 골목 골라 걷던 곳에/다세대주택들이 빼곡 쳐들어왔다./지나가며 슬쩍슬쩍 넘겨다보면/조금씩 색다르게 꾸민 조그만 꽃밭들이/나 여기 있네! 하던/야트막한 담장들,/낮은 대문 지붕에/…//모두 주섬주섬 포대에 담겨/추억의 다락방에 쌓여 있게 되었다./다시 꺼내더라도 윤기 다 휘발되어/전처럼 만지듯 즐길 수는 없을 거다./옛 책 뒤적이다 끼워두고 잊었던 단풍잎 만나듯/꽃 대신 남새 심으며 마지막까지 버티던 집 낮은 담장에/가랑잎 하나쯤 얹혀 있을까?/바람이 일면 빨갛게 곤두서 바르르 떨기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