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허 상 문 명예교수(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
봄 가뭄을 뚫고 세상을 해갈하는 봄비가 밤새 내린다. 창밖에서 후둑후둑 쏟아지는 밤비 내리는 소리는 바흐의 음악처럼 감미롭게 또 강렬하게 귓전에 울려온다.
빗줄기가 거세져서 창문을 닫았다. 평소에도 늦은 시간까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음악을 들으며 밤을 새곤 하지만, 밤비 내리는 날에는 더욱 깊은 상념에 젖어든다. 비는 이 험난한 세상을 식혀줄 뿐 아니라 마음도 식혀준다. 밀린 생각들을 끄집어내 차분히 지나온 시간들을 되새김질하면서 반성과 사유의 시간을 갖게 한다. 밤비 오는 날 책을 읽으면 종이에 빗물이 스미듯 마음에 쏙쏙 박혀 들어오고, 음악 또한 가슴 저 깊은 곳을 흔들며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비 오는 날 듣는 음악은 훨씬 깊은 음색으로 영혼의 현을 울린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세상과 사물과 나는 하나가 된다. 밤늦은 시간, 지금 깨어 있는 것은 나와 빗소리와 음악 소리와 주변에 흩어진 사물들뿐이다. 이들은 모두 하나로 이어진다. 비는 내면으로 향한 여행의 출발점이 되면서 외로운 사람을 더욱 고독하게 만든다. 고독이란 흩어진 자아를 한자리에 모으는 소실점과 같은 것이다. 밤비내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자신을 찾아 내밀하고도 호젓한 여행길을 떠난다.
고독하다는 것이 반드시 외롭고 힘든 것만은 아니다. 고독은 혼자의 외로움을 견뎌낼 만큼 강인한 정신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이다. 고독이야말로 생각하고 추론하는 방법을 제공하며 고독이 없으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다. 데카르트도 칸트도 니체도 홀로 살아가다가 절대 고독의 상황에서 죽었다. 내가 감히 저들의 먼발치에도 닿을 수 없을 것이지만, 삶에 드리워지는 피할 수 없는 고독은 세상과 인생을 새롭게 사유할 수 있게 하는 큰 선물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인생은 어차피 혼자 와서 혼자 가는 것이 아니던가. 산에 오르는 사람이 비바람과 눈보라 속을 걷고 또 걸어 정상에 오르듯이, 우리는 자기 앞에 놓인 시간과 고독하게 싸워서 마침내 어딘가에 당도하게 된다.
인간으로 태어나 힘든 삶의 길을 여태 무사히 살아올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촛불을 밝히고 밤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인간으로서 귀한 영혼과 육체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나는 강아지나 개미로 태어날 수도 있었을 것이고, 비가 되고 눈이 되어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지금 이 시간 이곳에서 인간으로 숨 쉬며 살아가고 있다는 고귀한 축복에 대해서 부모님과 조물주에게 한없는 감사를 드린다. 나의 영혼과 육체가 살아 숨 쉬는 아름답고 고귀한 순간이 있기에, 인생과 세상을 두고 고민하며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올 수 있다. 창밖의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리고 이런저런 생각도 빗줄기처럼 추적추적 흘러내린다.
밤비 내리는 소리는 자꾸 지나간 시간을 뒤흔들어 깨운다. 만날 사람을 그리워하고 떠날 사람을 염려하는 듯 빗줄기는 창문을 흔들고 있다. 창문을 타고 내리는 비는 자꾸 그리움, 아득함 같은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멀고 아득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누군가를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 쉽게 만날 수 없는 머나먼 곳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움을 느낀다. 그리움은 아득한 것, 하늘 저 멀리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별 같은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너무 많은 약속을 한 것 같다.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했던 많은 약속을 얼마나 지켰을까. 이제는 어떤 약속도 쉽게 하지도 지키지도 못할 것 같다. 봄날처럼 흘러가버린 세월이 밤비처럼 흘러내린다.
그 동안 많은 봄을 맞이하고 떠나보냈다. 지나간 봄보다는 다가올 봄이 더 짧다는 것을 안다. 이제 인생에서 몇 번의 봄을 더 맞이할 것인가. 생각할수록 인생의 최고 시절은 봄바람을 맞고 있을 때였다. 바람 앞에서는 항상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래도 봄바람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오, 그 훈훈하던 봄바람이여, 충만하던 봄날의 빛이여! 그 찬란하고 아름답던 봄날을 새로 구워낸 빵을 떼어먹듯이 얼마나 함부로 소비했던가. 희망과 사랑으로 벅차오르던 봄날이 내게도 있었던가.
중년을 넘은 자들이 추억 속에서 되돌아보는 그리움과 아쉬움은 깊은 상처의 덩어리다. 이제는 시행착오에 대한 수정도 새로운 도전도 할 수 없는 무력 속에서 지난 실패를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다. 젊음의 용기와 패기는 자꾸 사라지고 모든 것에 신중하고 양보하는 일이 많아진다. 정신과 육체의 쇠락과 메마름을 바라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젊은 시절의 들끓던 감정과 도전 대신에 노경(老境)의 신중함과 너그러움만이 자꾸 가슴 속에 자리한다. 어느새 인생의 벼랑에 서서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주저앉아 있을 수도 없는 시간에 서 있다.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뒤돌아보지 않는 시간과 사람들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본다.
시간은 나에게 무한한 젊음의 아름다움과 희망을 주었지만, 이제 이 모든 것을 송두리째 거두어가려 하고 있다. 새로운 의식은 쌓이지 않고, 쌓인 의식은 자꾸 허물어져 간다. 뜨거운 감성도 조금씩 싸늘하게 식어간다. 시작해야 할 새로운 시간보다 끝내고 마감해야 할 시간이 더 많다는 것을 알려 준다. 모든 것을 주었다가 한순간에 빼앗아가는 시간의 폭력은 무자비하게 잔인하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아름답고 찬란한 꽃들은 결국 허무하고 쓸쓸하게 떨어진다. 이 세상을 그리 빛내던 찬란하던 꽃들의 아름다운 시간도 영원한 것이 있던가.
창밖에서 빗물이 모여서 강으로 바다로 가듯이, 우리는 쉼 없이 움직이면서 살아왔다. 삶은 움직이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니체처럼 그대 자신을 내던져라, 안으로 밖으로라고 소리치며 살아왔다. 잠시라도 쉬고 있으면 낙오라도 되는 듯 인생은 우리에게 가던 길을 계속 달려가라고 재촉하지만, 정지된 시간은 없었다. 멈추어 서서 삶을 냉정히 되돌아볼 시간이 없다. 일상은 고요를 관찰하지 못하게 한다. 병이 들거나 전혀 생각지 못했던 어려움이 닥쳐왔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과 주변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때에야 가던 길을 멈추고 삶의 식탁에 외롭게 앉아 등불에 비친 인생의 모습을 바라본다. 식탁에는 떠다니던 존재, 부서진 시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 깃털처럼 놓여있다.
누구나 위로를 받고 싶은 순간이 있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걱정을 다 버리고 모든 것을 말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밤비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누군가에게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며 위로를 받고 싶다. 이 세상에서 혼자서 감당해야할 짐과 슬픔을 앞에 두고 주저앉아야 했을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 비로소 인생의 진실은 조금씩 보였다. 나는 어디서 살았으며 어디로 가려고 했던가. 어느 길로 가야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어 주저앉아 있을 때 그 때가 바로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대속(代贖)해야 이 세상과 사람들에 더 너그러워질 수 있을까. 밤새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떠도는 섬에서 뭍을 그리는 로빈손 크루소의 심정이 그러했을까. 깊어가는 저녁은 자애로운 어머니의 긴 치맛자락이 되어 나를 안아 준다.
바흐의 선율이 다시 귓가에 들려온다. 젊은 시절에 나는 바이올린의 섬세하고 강렬한 선율을 좋아했지만, 이제는 그윽하고 무거운 첼로의 선율이 더욱 좋다. 바흐의 음악은 깊어가는 가을 숲을 스쳐가는 바람소리 같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바흐의 첼로 선율은 더없이 장엄하고 서정적이다. 비 내리는 밤의 첼로 선율은 심장을 저격하면서 마음을 흔든다. ‘음악은 나의 생명이며, 나는 연주하기 위해서 살고 있다.’고 바흐는 말했다. 그는 죽기 몇 달 전까지 그리고 실명 상태로 악보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작곡을 계속하여 1,100여곡을 만들어 내었다. 그 곡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달빛 아래서 그렇게 악보를 들여다 보다 실명에 이르고 만 것이 아닌가. ‘일그러진 진주’(바로크)의 시대와 함께 ‘시냇물’(바흐)도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
어떤 길을 가든,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소리와 색깔로 다가오든 재대로 살기 위해서는 하루하루 깨어나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잠들어 있는 삶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자유롭게 헤엄치는 영혼은 바다 속의 물고기처럼 해방과 생기를 가져다준다. 이 세상에서 무언가가 되어 산다는 것은 항상 힘겨운 일이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에서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은 무겁고 고통스런 일이었다. 누구에게나 가벼운 일상이 있을 뿐 가벼운 삶은 없다, 자신의 할 일을 매 순간 또렷이 자각하며 산다는 것은 버거운 일이지만, 그래야만 충실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잠 못 이루며 고뇌하던 아쉽던 시간이 이제 뒤늦은 회한으로 다가온다. 지나간 시간은 해변에서 두 손으로 쥔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에서 모두 빠져 나갔다. 가야할 것은 기어코 가지만 돌아올 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새벽녘에 비가 그쳤다. 밤새 들려오던 빗소리도 조용해졌다. 창문을 여니 어느새 깨어난 푸른 초목들이 손짓을 하고, 물소리 때문에 잠들지 못한 새들이 수런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기다렸다는 듯 아침 햇살도 사뿐대며 마당에 가득 방문했다. 다시 다가온 봄날에 소쩍새는 밤새 울어 댈 것이고, 여름의 천둥과 번개는 몸서리치게 세상을 흔들 것이다. 또 가을이 오면 낙엽은 화려한 시절을 거두며 떨어질 것이고, 겨울에는 나비같이 흰 눈이 펄펄 나릴 것이다. 그들을 바라보며 나도 저물어 갈 것이다.
나는 밤새 내리는 밤비 소리를 들으며 생의 소리를 들었다. 밤비와 함께 몸도 마음도 흠뻑 젖었다. 물기 머금은 삶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진 듯하다. 새벽이 되어 비가 그친다. 이제 나에게 생긴 모든 일에 행복해하고,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이 모든 인연에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