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을 꿈꾸며 시작한 낙농업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창세기 49장 24절)
보통 목장 하면 푸른 초장에 얼룩소가 떼지어 여기저기를 거닐며 풀을 뜯고 있고 밀짚모자를 쓴 순박한 농부가 소젖을 짜고 있는 모습을 떠올린다. 나도 목장을 시작할 때는 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운영해 보니 목장은 한가롭고 낭만적인 사업이 아니었다.
내가 평화시장의 유통업을 정리한 것은 1973년이었다. 오랜 기간 동안 이른 새벽부터 밤늦도록 일해야 했던 평화시장의 생활을 정리하고 생활의 여유를 느끼고 있었는데 이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 장로님들이 낙농업을 해 보라고 권했다. 나도 청년 시절에 가졌던 농촌에 대한 이상도 있고 공기 좋고 물 좋은 농촌생활에 대한 그리움도 있어 경험도 없이 낙농업에 뛰어들었다. 나는 사업을 하면서 사업의 구상과 계획이 잡히고 나면 늘 책임자를 선정하였다. 이 중간 책임자가 일선에서 사업을 관장하는 동안 나는 또 다른 사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도 대중목욕탕을 하면서 낙농업을 시작하였다.
경기도 남양주군 수동면에 농지와 임야를 구입하여 팔복목장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성경의 팔복(八福)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농지를 구입한 후에는 우사(牛舍)를 짓고 초지를 조성하고 건초를 보관하는 창고를 지었다. 그때 집에서 목장까지의 거리는 약 50킬로미터였다. 지금은 넓은 길에 아스팔트도 잘 되어 있고 터널도 생겼지만 그때는 그 거리도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나는 서울을 출발하여 비포장도로를 거쳐 목장에 매일 출근하였다. 그리고 목장 부지에 차를 세우고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직접 초지를 조성하고 우사를 짓기 위해 벽돌을 쌓아나갔다.
나는 원래 농촌 출신이고 청년 시절 농사를 지은 경험이 있기에 사실 큰 두려움 없이 낙농업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낙농업은 알고 보니 전혀 생소한 분야였다. 그 당시는 낙농업이 우리나라에 처음 시작되었던 때라 수입소인 착유(젖 짜는 소) 1두가 150~200만 원의 고가였고, 마치 소를 신주처럼 모실 때였다. 처음에는 젖소와 돼지 두 종류로 시작하였는데 우사도 짓고 착유 시설을 만들고 초지도 조성하는 일이 말할 수 없이 분주하였다. 목장에 착유가 4~50마리나 되니 매일같이 출산하고 도태하고 질병에 걸려 치료하는 일이 끊이지 않았다. 목장 운영도 사업이었기 때문에 대내적인 일뿐 아니라 우윳값, 돼지값, 소값 시세 등 대외적인 일에도 민감해져야 했다.
뜻밖의 어려움도 많았다. 한때는 돼지값이 폭락하고 돼지새끼는 매일같이 생산되어 처리가 곤란하였던 때도 있었다. 그때 돼지새끼를 동네에 무료로 나누어 주기도 했는데 별로 반가워하지 않을 정도였다. 어느 날 찬바람이 불어오면서 소들이 감기가 들기 시작하고 우사 전체에 퍼진 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목부들이 일제히 퇴직하는 등 목장에 큰 소동이 벌어졌다. 나는 주사기와 약을 가지고 치료를 해 보기까지 했지만 참으로 힘든 상황이었다.
이처럼 어렵게 낙농업을 하면서 무엇보다도 주인은 자기 하는 사업에 어느 정도의 상식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또 평소에 직원들의 관리에 소홀해서는 사업에 성공하기 힘들다는 교훈도 얻었다. 낙농업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뛰어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다. 나는 좋은 경험을 한 것에 만족하고 6년 만에 사업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막상 6년간 공들였던 목장을 정리하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했다. 내가 지은 목장과 우사, 창고, 내가 길러온 소들… 착잡한 마음에 기도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기도회를 갔더니 목사님 말씀에 오늘 저녁 수요예배에 영락교회에서 특별집회가 있다고 하시며 참석할 사람은 참석하라는 광고를 하셨다. 지금은 강사 목사님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저녁 때 영락교회에 가서 집회에 참석하였다. 그런데 강사 목사님의 설교말씀이 나에게 적합한 아이디어를 주었다. 설교는 이런 내용이었다. 사람은 두 종류가 있다. 문제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다. 사과 한 상자가 있는데 긍정적인 사람은 매일 그중 제일 좋은 것만 골라 먹어 한 상자 다 먹을 때까지 매일 좋은 사과만 먹고 부정적인 사람은 매일 그중 제일 나쁜 것만 골라 먹어서 한 상자를 다 먹을 때까지 매일 나쁜 사과만 먹게 된다. 두 사람의 차이는 어찌 보면 백지 한 장 차이도 안 되지만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다르다며 전자에 속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었다.
이 말씀은 당시 목장 정리 문제로 고민하고 있던 내게 크게 와 닿았다. 그때 나는 90여 마리의 소를 팔려고 내놓았다. 한꺼번에 팔려고 하니 원매자가 와서 모두 헐값에 사려고 했다. 나는 설교에서 들은 아이디어를 소 파는 데 적용하기로 했다. 한 원매자를 불러 좋은 가격에 우리 목장에서 제일 좋은 소 10마리를 사라고 했다. 그랬더니 목장의 책임자를 비롯하여 주변에서 한꺼번에 팔아야 나쁜 소까지 다 팔 수 있다며 만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설교말씀대로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더 비싼 값에 팔 수 있을 것이며 설령 덜 받는다 하여도 나는 소신껏 비싼 값을 받는 것이어서 내 생각을 밀고 나갔다. 다음 날 다른 원매자를 불러 우리 목장에서 제일 좋은 소 10마리를 사라고 했다. 그다음 날은 또 다른 원매자를 불렀다. 이렇게 반복하고 나니 가장 나쁜 소 10마리가 남았다. 이들은 헐값에 팔았다. 이러고 나니 처음에 한꺼번에 팔려고 했던 가격보다 무려 15%나 더 받을 수 있었다. 성경과 설교말씀을 생활에 적용해 실패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목장 사업은 살아있는 동물을 기르는 사업이기에 주일 날에도, 눈비가 와도, 사람이 몸이 아파도 지속적으로 일손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사업이다. 그래도 많은 경험을 얻고 큰 손해 없이 목장 사업을 정리할 수 있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