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위기론
유럽전체에 있어서 인구가 장기적으로 감소하거나 정체하고 경제적으로는 장기적인 침체가 나타나고, 정치, 사회적으로는 많은 반란과 혁명이 일어나는 등 혼란이 있었다는 지적. 이후에는 17세기의 장기적인 침체가 유럽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는 주장이 나타남. 그리고 그와 같은 현상의 근본적인 요인으로 태양의 활동이 저하되어 소빙하기가 나타나 이것이 농업생산에 타격을 주었다는 설이 제기됨. 나종일교수는 17세기 위기론이 우리나라의 17세기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를 모색. 인구변동으로 본다면 상당히 유사한 패턴. 농민반란은 그리 심각하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이는 a) 농민반란을 매개할 중간층 발달의 미비, b)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하여 농민의 저항이 토지와 정부통제로부터의 이탈, 즉 유민화와 도적화로 나타날 수 있었음 등으로 설명될 가능성.
그러나 17세기를 정체와 후퇴로 파악하는데는 문제가 있음. 이는 어쩌면 16세기가 큰 호황이었고 18세기후반-19세기초가 산업혁명에 의해 유럽의 경제가 도약한 시기이기 때문에 그에 비교되어 나오는 결론일 수도 있음. 네덜란드의 경제는 우월한 해운력을 배경으로 이 시기에 정점에 도달했음. 16세기에 시작된 유럽의 지리상의 팽창은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에 의해 계속 이어짐. 서유럽 각국의 중상주의적 활동이 강화되었던 때. 생산기술의 진보, 상업 및 금융상의 발전, 기업조직의 진보 등도 이루어졌음. 17세기는 산업혁명의 전야로 그 제도적 물적 토대가 마련된 시기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