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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부활(10) : 부활신앙으로 승리하라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11:17~27) = 부활신앙은 미래의 신앙이자 동시에 현재의 신앙이어야 한다
부활신앙은 미래적이며 동시에 현재적이다.
부활신앙은 미래의 신앙이자 동시에 현재의 신앙이어야 한다.
사실 교리적으로 알고 주장하기는 쉽다.
마지막 날의 부활도 믿을 수 있다. 천국도 믿을 수 있다.
그러나 부활이요 생명으로서, 지금 나를 치유하시고 나를 새롭게 하실 수 있는 살아계신 주님을 믿으십니까?
부활신앙은 성경책속에 계신 하나님, 무덤속에 계신 예수님, 교회안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성경책밖으로, 무덤밖으로, 세상밖으로 걸어나와 지금도 살아계셔서 하나님의 자녀와 교회와 온세게를 다스리시고 역사하심을 믿고 승리하는 신앙이다.
본문 : 요11:17~27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17 When Jesus got to Bethany, he found that Lazarus had already been in the tomb four days. 18 Bethany was only about two miles from Jerusalem, 19 and many people had come from the city to comfort Martha and Mary because their brother had died. 20 When Martha heard that Jesus had arrived, she went out to meet him, but Mary stayed in the house. 21 Martha said to Jesus, "Lord, if you had been here, my brother would not have died. 22 Yet even now I know that God will do anything you ask." 23 Jesus told her, "Your brother will live again!" 24 Martha answered, "I know that he will be raised to life on the last day, when all the dead are raised." 25 Jesus said 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He who believes in me will live, even though he dies; 26 And whoever lives and believes in me will never die. Do you believe this?" 27 "Yes, Lord!" she replied. "I believe that you are the Christ, the Son of God. You are the one we hoped would come into the world."
1. 인간의 공포와 두려움은 무엇인가?
독일의 신학자이며 철학자인 폴 틸리히는 인간은 항상 3가지 공포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즉 의미 없음(허무함)에 대한 공포, 죽음에 대한 공포, 죄에 대한 공포이다.
누가 인간의 숙명적인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
2. 인간의 소망은 무엇인가?
마19: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A man came to Jesus and asked, "Teacher, what good thing must I do to have eternal life?"
3. 죽은 자의 소망은 무엇인가?
행23:6 바울이 그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4. 믿는 자의 소망은 무엇인가?
행24:15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I am just as sure as these people are that God will raise from death everyone who is good or evil.
5. 모든 일에는 주님의 때가 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신 기적이 세 번 기록되어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마9:18), 나인성 과부의 아들(눅7:11), 나사로를 살리셨다. 그중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4일) 후에 살리셨다.
1)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6)
요11: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But he stayed where he was for two more days.
우리는 기도의 응답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간구한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주님의 때가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믿음으로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30: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The LORD God is waiting to show how kind he is and to have pity on you. The LORD always does right; he blesses those who trust him.
2) 왜 그 계시던 곳에서 이틀을 더 유하셨는가?
나사로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으시면 맨발로 뛰어오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회피하며 무려 이틀이나 지체하셨다. 주님께서 나사로의 죽음을 기다리고 계셨다는 것이다. 시체가 되어 썩는 냄새를 풍기기 시작할 때, 비로소 주께서 이 절망의 현장에 찾아오신 것이다.
제자들에게 완전하게 죽은 자를 살리시는 생명의 주님이심을 믿고 확신하게 하기 위해서다.
요11: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
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I am glad that I wasn't there, because now you will have a chance to put your faith in me. Let's go to him."
요11: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When Jesus got to Bethany, he found that Lazarus had already been in the tomb four days.
3) 주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메시여 곧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고 하신 것이다.
요2: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This was Jesus' first miracle, and he did it in the village of Cana in Galilee. There Jesus showed his glory, and his disciples put their faith in him.
6. 마르다는 원망스런 푸념과 절망하는 갈팡질팡하는 믿음의 소유자였다.
1)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치료하실 수 있다는 것은 믿었으나 죽은 자까지 살리실 수 있는 능력의 주님이라는 것을 믿지 못했다. 마르다는 죽음의 문제는 예수님도 어떻게 하실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요11: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Martha said to Jesus, "Lord, if you had been here, my brother would not have died.
2) 마르다는 아주 믿음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 믿음이 있다.
요11: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Yet even now I know that God will do anything you ask.
3)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죽음조차 생명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란 사실은 믿지 못했다.
마르다의 고백을 보면, 방금 22절에서 마르다가 한 말이 진정한 신뢰에서 우러나온 고백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르다는 ‘역사가 끝나는 그날, 주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성경에 약속한 그대로 부활된다는 그 사실을 저는 믿습니다’고 말한다.
마르다는 지금 여기에서 무엇이든지 행하실 수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구체적인'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요11: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Martha answered, "I know that he will be raised to life on the last day, when all the dead are raised."
4) 마르다는 예수님의 질문에 믿는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것은 지적인 동의일 뿐이다.
요11: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Yes, Lord!" she replied. "I believe that you are Christ, the Son of God. You are the one we hoped would come into the world."
5) 마르다는 눈앞에 펼쳐진 현실에 예수님의 말씀을 잊어버렸다.
요11: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Then he told the people to roll the stone away. But Martha said, "Lord, you know that Lazarus has been dead four days, and there will be a bad smell."
7.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선포하셨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절망하고 있는 마르다를 향해, 이제는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이 극한 절망의 순간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실로 엄청난 소망의 말씀을 선포하셨다. 예수님은 부활과 생명의 근원이 되신다.
요11:25~26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5 Jesus then said, "I am the one who raises the dead to life! Everyone who has faith in me will live, even if they die. 26 And everyone who lives because of faith in me will never really die. Do you believe this?"
이 말씀은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다섯 번째 자기선언으로서,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는 선포이다. 흔히 기독교를 영혼불멸을 가르치는 종교라고 말한다. 기독교는 영혼의 불멸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의 독특성은 영혼의 불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에 있다. 다른 이방 종교나 철학 사상들도 영혼 불멸을 주장하며 믿기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는 그 누구도 부활을 선포하지 못했다.
기독교가 세상의 모든 종교나 사상을 넘어서는 것을 바로 이 부활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C.S. 루이스는 “예수님의 최대의 업적은 그분이 부활의 메시지를 선포하신 것이고 그 메시지대로 다시 사신 것이다”라고 말했다. 예수께서 이루신 최대의 업적은 죽음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선포하신 것과 실제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부활을 증명하시기 위해서 세 사람을 실제로 살려내셨다. 야이로의 딸, 나인성 과부의 아들, 나사로를 살리셨다.
8. 마리아의 믿음도 마르다와 같이 원망스런 푸념과 절망하는 신앙이다.
요11: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Mary went to where Jesus was. Then as soon as she saw him, she knelt at his feet and said, "Lord, if you had been here, my brother would not have died."
9. 무엇이 문제인가?
1)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는 것이 문제다.
마22: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Jesus answered: You are completely wrong! You don't know what the Scriptures teach. And you don't know anything about the power of God.
2) 불신앙이 문제다.
마르다는 ‘저는 마지막 날의 부활, 그것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했지만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하시며 내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은 믿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고백은 온전한 믿음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도신경을 통해서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하고 고백하지만, 그들의 부활 신앙은 현재 그들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가 없다. 그들의 신앙은 현재의 절망을 치료하지 못하는 마르다의 신앙과 같다. 이들은 천국에 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그들의 삶에는 희망과 승리와 능력과 치유가 없다. 현재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부활 신앙은 미래의 신앙이자 동시에 현재의 신앙이어야 한다.
‘마지막 날은 살겠지요. 그러나 지금 현실은 절망이잖아요. 지금은 어둡고 슬프고 죽음이잖아요,’ 이것은 현실 직시가 아니라, 믿음이 부족한 것이다.
3)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는 것이 문제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니다. 입으로는 믿는 다고 하는데 마음속으로는 안 믿는 것이다. 행동으로 부인하는 자들이다.
딛1:16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Such people claim to know God, but their actions prove that they really don't. They are disgusting. They won't obey God, and they are too worthless to do anything good.
10. 부활신앙을 가르치시는 예수님
1) 부활신앙은 미래적이며 동시에 현재적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25절). 주님은 먼 훗날 다시 오실 그때만이 부활이 아니라, 바로 지금도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25절). 여기에서 '살겠고'라는 말은 원래 현재형으로 되어 있다. “죽어도 그는 여전히 계속 살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체험한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끊어질 수 없는 교제 속에서 날마다 살아가고 있다.
부활 신앙은 미래의 신앙이자 동시에 현재의 신앙이어야 한다.
문제는 이것을 믿지 못하는 우리의 불신앙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말씀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룻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25-26)
역경이 우리의 삶을 사납게 뒤흔들고 우리를 의기소침하게 하려 할지라도, 우리는 항상 살아계신 주님을 신뢰해야 한다.
사실 교리적으로 알고 주장하기는 쉽다. 마지막 날의 부활도 믿을 수 있다. 천국도 믿을 수 있다.
그러나 부활이요 생명으로서, 지금 나를 치유하시고 나를 새롭게 하실 수 있는 살아계신 주님을 믿으십니까?
삶에서 경험하는 온갖 부조리와 수수께끼 같은 인생의 허무에도 불구하고 나의 삶을 새롭게 하실 수 있는 부활의 주님을 믿으십니까?
부활신앙은 내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 영원한 생명이 지금 나의 삶을 지배하고 다스림으로써 오늘의 슬픔과 좌절과 불신앙을 극복하고 승리의 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오늘의 슬픔과 좌절을 딛고 일어서서 내일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이 부활의 신앙은 현재적인 승리의 체험을 우리에게 보장하고 있다.
2)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의 일화를 생각할 때 이 진리는 더욱 명백해진다.
그는 종교적 껍질을 뒤집어쓴 어마어마한 세력과 싸우느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기진맥진하게 되었다. 갈수록 위협이 가중되고 일이 힘들어지니까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포자기할 지경이었다. 그는 의기소침하여 깊은 절망감에 빠졌다. 완전히 탈진한 듯한 무기력한 상태에 있는 그를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는 무척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어느 날, 힘이 하나도 없이 서재에 앉아있는 루터곁에 상복을 입은 아내가 통곡을 하며 나타났다. 루터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아니 여보, 누가 죽었소?” “예,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아니,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는 거요?” 그때 루터의 아내가 이렇게 대꾸했다. “하나님이 돌아가시지 않고 살아계신다면, 오늘 당신이 이렇게 맥없이 앉아있을 리가 없잖아요. 당신을 보니 하나님이 돌아가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아이구, 아이구, 하나님이 죽으시다니!”
루터는 이 사건을 계기로 <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작사, 작곡하였다. 그리고 종교개혁을 완수하였다.
오늘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까? 살아계신 주님!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 오늘의 삶이 당신을 좌절과 어둠과 절망에 몰아넣더라도, 주님께서는 부활과 생명으로 다가오신다. 주님께서는 무덤 저 건너편의 놀라운 소망을 약속하실 뿐만 아니라, 동일한 부활의 능력으로 지금 이 순간도 내 삶을 치유하시며 나를 새롭게 하기 원하신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바라보고 그 주님을 내 안에 모시고 부활의 신앙으로 다시 일어서야 한다.
임마누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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