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진일신여학교(釜山鎭日新女學校)는 호주장로교선교회 여자전도부가 1895년 10월 15일 좌천동에 있던 한 칸의 초가에서 3년 과정의 소학교를 설치한 것이 시초였다. 서울 이남 최초의 근대 여성교육기관이다. 1905년 4월 15일에 현재의 교사를 준공하였고, 1925년 6월에는 동래구 복천동에 신축교사를 지어 이전하여 동래일신여학교라 불리게 되었다. 그러니까 부산진일신여학교는 오늘의 동래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이 된다.
본 건물은 정면의 계단과 계단 2층의 난간이 20세기 초 서양식 건물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비례와 균형미가 돋보이는 훌륭한 건축물이다. 우리나라 초기 학교 건물로는 손꼽을 만큼 희소가치를 지니고 있어 건축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이며, 교육시설로서 맡아 온 역할과 기독교의 전래과정 등을 고려할 때 역사적, 교육사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문화재로 평가된다. 2010년 4월에는 ‘스토리 텔링 기법’을 활용, 4개의 전시관으로 새롭게 꾸몄다.
부산진일신여학교는 부산 ․ 경남 지역 최초의 신여성 교육기관으로서 교사와 학생들이 3.1운동과 관련하여 부산지역에서 최초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 학교 출신으로 우리나라 여성 정치의 시대를 열었던 박순천 여사가 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항일운동을 했고,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5번이나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야당 당수를 맡기도 했다. 그러나 근래에는 친일 행적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도시철도(지하철) 1호선 좌천역에서 1번이나 3번 출구로 나와 조금만 걸으면 부산진교회 옆에 있고, 가까이에는 정공단(鄭公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