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송곳들
80년대 초에 신임교사로 강화도로 보이스카우트 상급 지도자 과정을 들어간 적이 있었다. 처음 경험하는 타이트한 많은 과정들이 3박 4일 동안 맹렬하게 진행되었다. 얼마나 긴장하였는지 연수 마지막 날에야 큰 볼일을 볼 정도로 몸과 마음은 팽팽하게 당겨졌었다. 스카우트는 몇 가지 지켜야 할 규율이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스카우트는 믿음직하고 충효하고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스카우트는 우애롭고, 예의 바르고, 친절하고 순종하여야 하고, 쾌활하고 근검하고, 용감하고 순결하여야 하며 경건하여야 한다는 규율이 대원들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다.
이러한 규율들은 상호간 대원들이 만나서 인사를 할 때 ‘준비’라는 구호로 내면화된다. 조금 궁금하였다. 충성, 멸공, 단결 같은 수많은 구호가 있는데 스카우트대원들의 구호는 ‘준비’였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이해되었지만 연수 내내 강조된 것은 자기가 맡은 업무와 일을 성공적으로 잘 하기 위해서는 만사 불여튼튼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를 잘하라는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인생에는 수많은 기회가 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최소한 3번은 찾아온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라는 것을 모른 채 지나간다. 왜냐하면 그 기회를 잡을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생은 준비한 사람이 승리한다. 매일 매 순간 최선을 다하여 목표에 집중하는 자세로 살아간다면 나에게 찾아온 기회는 온전히 내 것이 된다. 승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연히, 혹은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사실 우연이나 재수는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찾아오지도 않는다. 준비한 자만이 내 앞에 지나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강력하게 잡아채기 때문이다.
루이 파스퇴르는 그의 업적을 자평하며 '과학적 발견의 절반은 운에 의한 것이지만, 그 운은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 온다'고 하였다. 세렌디피티의 법칙(Serendipity’s Law)처럼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면 원하던 것이 우연히 행운처럼 찾아오기도 한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의 법칙을 발견하거나, 모래 위에 불을 피우다 유리를 개발하거나, 목욕탕에서 넘치는 물을 보고 부력의 원리를 알아내는 것이 해당된다. 사무공간에서 많이 사용되는 '포스트 잇'도 스펜서 실버란 연구원이 강력접착제를 개발하려다가 실수로 접착력이 약한 끈적거리지 않는 접착제를 만들었는데 이를 본 동료가 "꽂아 둔 책갈피가 자꾸 떨어져 불편했는데 이 접착제로 책갈피를 만들자!" 하여 이 접착제로 '포스트잇'을 만들어 3M을 세계적인 회사로 만들었다.
수도선부(水到船浮)는 "물이 차면 배가 떠 오른다" 는 의미이다. 물이 불어나면 큰 배가 저절로 떠오르듯이 준비된 자에게는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가? 우리는 흔히 ‘물들어 올 때 노를 저어라’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더 큰 조건을 기다리다 그 작은 기회마저 놓쳐서 후회하지 말고 작은 기회라도 왔을 때 잘 잡아서 내 것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 번 놓친 것은 다시 오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한계를 두고, 스스로 퇴장하는 용기없는 자들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허긴 온 기회를 잡는 것도 능력이긴 하다.
드라마'송곳‘은 노동 문제에 대한 성찰을 다룬 드라마로 최규석의 웹툰에 기반을 두었다. 이 드라마는 저항자들을 전면에 등장시키는 여백이 많은 서사를 보여준다. 기존의 가치와 인식에 물음으로 저항하고, 안주와 편안함을 밀어내며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뾰족한 ‘송곳’들의 이야기가 묵묵하게 전개된다. 치열하게 분투하며 남기를 선택한 사람들의 인생이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 필자는 궁금하다. 그러나 다음의 대사로 긍정의 힘을 얻는다.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다음 한 발이 절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저 자신도 자신을 어쩌지 못해서 껍데기 밖으로 기어이 한 걸음 내디디고 마는,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은 주머니속의 송곳이라는 뜻으로 송곳을 아무리 주머니로 싸도 비집고 뚫고 나오듯이 어떤 분야에서든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은 금방 사람들의 눈에 띈다는 의미이다.
"서 있는 곳이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는 것처럼 우리의 서는 곳이, 우리의 바라보는 풍경이 투박하고 거칠지만 정의와 올바름을 향하여 달려가는 송곳들과 함께 하기를 바라며 새해에는 많은 사람들이 목표를 향해 준비를 잘하고 구체적으로 실행하여 이 땅에 능력 있고 올곧은 수많은 송곳들로 솟아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