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과 담배건조실이 저리 정겨운데
유진택추천 0조회 023.06.02 20:24댓글 0북마크기능 더보기
게시글 본문내용
요즘은 트레킹 코스로 오지마을을 답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웬만한 곳은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 옛날과 같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찾을 수가 없다. 매달 기행장소로 인적이 많은 곳만 찾다가 오지마을을 기행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마도 맑고 순수함을 지향하는 인간의 본성 탓이리라. 대전과 인접한 옥천에 오지라고 일컫는 마을이 있다. 반짝이는 금강물과 울창한 숲, 하늘의 뭉개구름이 조화를 이룬 막지리다.
장고개 마을의 전경, 돌담뒤로 담배건조실이 보인다
빨간 열매를 조롱조롱 매단 보리똥나무가 눈을 압도한다
초록빛으로 익어가는 곡식과 감나무들이 싱그럽다
막지리로 가는 여정은 두 갈래다. 소정리에서 배편을 이용하는 방법과 답양리에서 에서 장고개를 넘어 좁은 산길을 따라 자동차로 들어가는 방법이다. 그런데 배편보다는 자동차를 타고 막지리를 들어가는 방법을 택했다. 막지리를 찾는데 큰 도움을 준 사람은 양봉업을 하는 전세봉 씨다. 몇 달 전 장선리에서 만난 송범돈 소설가가 소개해준 전세봉 씨에게 휴대폰을 걸어 그가 알려준 약도를 내비게이션처럼 활용하며 찾아가는 길이다.. 소문대로 막지리로 가는 길은 깊고 험했다. 뱀꼬리처럼 구불거리는 산길은 차 한대 빠져나가면 알맞을 정도로 폭이 좁았다. 두 차가 마주치면 어느 한 대는 한참동안 뒤로 물러서야 할 판이다. 원래 이런 길을 가는 데는 스릴을 안고 가야 제 맛이다. 가파른 고갯길을 넘었나 싶으면 구불구불한 산길이 이어지고 그렇게 30분을 지나니 울창한 숲에 가린 마을 하나가 옆 눈길로 스쳐 지나간다. 곧장 두 갈래 길이 앞을 막아섰다. 직진하면 매끼마을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 꺽어 돌아 내려가면 방금 옆 눈길로 지나쳤던 장고개 마을이다.
장고개 마을에서 내려다 본 금강이 한 폭의 그림이다
계단식 밭에서 싱그럽게 익어가는 곡식들
장고개 마을에서 내려다 본 금강은 소문대로 절경이었다. 잘게 저민 햇살이 금강의 유연한 물줄기를 휘어 감고 눈부시도록 반짝반짝 박수를 치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 곧장 전세봉 씨를 찾았다. 마을에 오면 전화 한 통 걸어달라는 그의 말이 산안개처럼 꾸역꾸역 피어올랐다. 양봉업을 하는 그가 벌꿀 한 병이라도 선사하려고 그러는 걸까. 얼굴조차 전혀 모르는 낮선 사람이 뭐가 예쁘다고, 이제 그런 상상은 달콤한 꿈 한 조각으로 남겨두자.
그런데 운 좋게도 집 앞에서 외지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를 만났다. 자기가 알려준 약도로 쉽게 마을을 찾아왔다며 인상 좋은 웃음을 선사했다. 깊고 험한 오지 마을을 달랑 약도를 들고 쉽게 찾아온 것이 대견하다는 눈치였다.
뱀에 얽힌 이야기에 마음은 오싹해지고
그런데 카메라를 메고 자리를 떴던 외지인 한 사람이 팔뚝만한 구렁이가 돌담 속으로 쑥 들어가더라는 말을 전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전세봉 씨가 불쑥 한마디를 던졌다.
애기똥풀
담쟁이 덩굴로 뒤덮인 돌담이 정겹다
“비가 오면 뱀이 말도 못해요. 돌담은 물론이고 짚빠가리를 들춰보면 뱀들이 우글거려요. 어떤 때는 새끼들이 어미를 따라 줄을 지어 갈 때도 있어요, 그래도 지금은 뱀들이 많이 줄어들었지요. 대전사는 사람이 뱀을 잡아 뱀탕집에 팔아넘긴 탓이지요 ”
그랬다. 70년대 내 고향 풍경이 그랬다. 중학교 2학년 무렵, 고향을 뜨기 전까지의 고향 풍경은 아직도 한편의 추억이 되어 내 마음 속에 머물렀다. 돌담에 척 걸쳐있던 구렁이를 맨손으로 잡아 껍질째 벗겨 아작아작 씹어 먹던 호랭이 영감의 엽기적인 행동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구렁이뿐 아니다. 불룩한 배를 땅바닥에 깔고 우엉우엉 울던 맹꽁이들은 얼마나 많았던가. 70년대 내 고향 마을처럼 장고개 마을은 아직도 오염되지 않는 청정지역이란 얘기다.
돌담과 담배건조실이 저리 정겨운데
담쟁이덩굴이 뒤덮은 둥근 돌담이 정겹다. 돌담은 예부터 소통의 장으로 여겨져 왔다. 낮은 돌담위로 서로 얼굴을 내놓고 정담을 늘어놓는 이웃집 아낙네들처럼 돌담의 정겨움은 마을에 한 폭 풍경을 더했다. 더구나 돌담 앞에 붉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휘늘어진 보리똥나무는 마을의 아름다움을 배로 더했다. 담배건조실은 또 어떤가. 그러나 이제 담배건조실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듯하다. 바깥의 아궁이에 불을 지펴 담배잎을 익히던 건조실은 이제 김치 숙성을 하는 냉동고용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정겨운 것들이 다가오는 문명 앞에서 사라지는 현실이 눈물겹도록 서운했다.
맥기마을의 정경
맥기마을의 정자, 멀리 금강이 보인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도시락을 까먹을 장소를 찾을 수 없는 것이 문제다. 주변은 깊고 험한 산들인데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이 없는 탓이다. 정자 속에서라도 밥을 먹고 싶었지만 일행들은 하나같이 마뜩찮은 표정이다. 지나가다 만나는 마을 사람들의 부담스런 눈길을 무슨 수로 피할 수 있겠는가.
할 수 없이 준비해온 먹거리를 들고 마을길을 따라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거기도 도시락을 펴놓고 점심을 먹을 공간조차 찾을 수 없다. 강렬한 햇살만 내리쬐는 금강 변, 돗자리 같은 그늘을 깔아주는 훤칠한 나무 하나 없으니 무더운 열기를 식혀주는 그늘 하나 찾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돌담과 담배건조실이 저리 정겨운데 터질 듯 빨간 열매를 매단 보리똥 나무도 저리 아름다운데, 맘 놓고 점심조차 할 수 없는 마을은 그냥 왔다가 절경 한번 훔치고 지나가면 딱 좋을 곳이다.
빨갛게 익어가는 산딸기
맥기마을 유래비
장고개를 넘어 매끼마을로 넘어간다. 여기가 행정구역상 막지리다. 매끼마을 역시 외지고 험한 산속에 들어앉은 마을이다. 정자 속 그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의 눈길이 일행에게 머문다. 혹시 점심 먹을 장소가 없나 싶어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비석 하나가 눈에 띄었다. 맥기마을의 유래에 대해 적어 놓은 비석이다. 우암 송시열 선생이 이 마을을 지나다가 갯가에 많은 보리농사를 짓는 것을 보고 맥계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이 음운 변화에 의해 맥기또는 막지라고 했다고 하는 기록이다.
옥천 이지당의 정경
이지당 입구에 놓인 나무계단
매끼마을로 들어왔던 산길을 다시 빠져 나온다. 장고개마을을 한참 지나친 지점에서 앞에 가던 차량 몇 대가 멈춰섰다. 반대편에서 오는 차 한대와 마주쳤다. 잠시 기다리는 중에 차창 밖으로 산딸기 몇 개가 빨간 빛깔을 머금고 있는 것을 보았다. 소나기가 한바탕 후려치고 지나간 뒤끝인가. 영롱한 물기를 머금은 산딸기의 빨간 빛깔이 선명하게 눈을 자극했다. 인적 없는 산길에서도 산딸기는 저리 달콤하게 익어가는 데 허기진 일행의 마음을 누가 알까.
이지당 앞의 냇물은 와전 오염됐구나
차로 달리다가 우연히 발길 닿은 곳이 옥천의 이지당이다. 군복면 이백리에 위치한 이지당은 조선 중기의 성릭학자인 조헌 선생이 후학을 양성하던 서당이다. 울창한 굴참나무 숲에 둘러싸여 은은히 냇가를 굽어보는 광경이 고풍스럽기 그지없다. 처엔 각신 서당이라고 하였는데 그 후 우암 송시열 선생이 많은 제자들을 모아 후진을 양성하기도 하였다. “산이 높으면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고, 큰 행실은 그칠 수 없다(高山仰止 景行行止)”라는 문구의 끝인 지(止)를 따서 ‘이지당’이라 서당의 이름을 고치고 현판을 써서 걸었다는 기록이 있다.
애기나팔
까치수영
메꽃인가 나팔꽃인가
쉬지 않고 달려만 가는 문명 탓일까. 이지당 앞의 냇물은 속속들이 오염이 돼 심한 악취를 풍기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바위가 깔린 냇가에 도시락을 폈다. 상상이지만 아마 옛날에는 이지당 주변은 풍광이 기가 막혔으리라. 그 앞을 흐르는 시냇물도 수정처럼 해맑고 이지당의 문살을 흔드는 굴참나무의 바람 소리 또한 청정했으리라. 그 풍광 속에서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는 냇물을 춤추게 할 만큼 낭랑했으리라는 것도 짐작이 간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오염 물질을 마구 내버리는 인간들의 무분별한 손길이 선비들의 숨소리 배인 이지당주변의 풍경까지 망쳐버렸으니, 그래도 그 냇물에 뭐가 나올게 있다고 물고기를 잡는 사람들이 더러 눈에 띄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배가 부르자 야생화 답사를 떠났다. 한질로 커버린 갈대풀과 거친 풀들이 뒤덮은 냇가를 벗어나 논두렁길을 걸었다. 갈대숲과 푸른 벼들이 촘촘히 박힌 논 사이의 논두렁은 한낮의 햇살이 내려준 불볕 무더위로 들끓었다.
저렇게 예쁜 꽃망울을 터뜨릴 수 있다니
냇가의 거친 풀밭에도 야생화들은 살아남아 곱게 꽃을 피우고 있다. 오염된 물이나 불볕 햇살에도 저리 예쁜 꽃을 피울 수 있다니, 제 몸을 단장하여 남의 눈길을 사로잡으려는 습성은 꽃이라고 다를 바 없다. 그렇게 흔한 꽃도 여기서는 꽤 귀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아마 희소가치 때문이리라. 메꽃이나 애기나팔, 까치수영, 금계국, 족제비싸리 등, 제 나름대로 꽃빛깔을 내어 냇가를 수놓는 야생화들. 그들에게도 하나같이 제 살아온 날의 삶의 빛깔이 있다.
금계국
이지당에서 바라다본 풍경
망초꽃이 흔들리는 묵정밭을 지나 갈대숲이 한질로 솟구친 냇가를 내려서니 메꽃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야생화에 문외한인 사람들이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메꽃은 나팔꽃과 비슷하다. 다른 나무를 휘어 감고 오르는 연약한 줄기며 줄기를 따라 피는 꽃 모양이 영락없는 나팔꽃이다. 메꽃을 나팔꽃으로 여기는 것은 아마도 어린 시절 흔하게 보았던 나팔꽃이 아직도 내 마음속에 선명하게 박혀있는 탓이리라.
홀로 외롭게 핀 까치수영을 보면 멋들어지게 기른 카이젤 수염이 생각난다. 코밑에서 시작하여 옆으로 가늘게 휘어진 카이젤 수염, 눈부신 빛이 날 정도로 때깔이 고운 카이젤 수염, 까치수영이 처음에는 까치의 흰 날개 빛 수염을 닮은 “까치수염” 인 것만 봐도 쉽게 짐작이 갔다.
멀리서 봐도 금계국의 빛깔은 선명하다. 따가운 햇살을 받아 강렬하게 눈을 자극하는 샛노란 빛깔 때문이리라. 처음엔 금계국이 나라이름인줄 알았지만 황금빛 닭 벼슬을 닮았다고 해서 고개를 끄덕거린 적이 있다. 꽃과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라 해도 그 연유를 들어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금계국을 보면 마음속에 쌓인 삶의 찌꺼기가 한꺼번에 씻겨나가는 청신한 기분을 맛볼 수 있다. 그래서 꽃말이 “상쾌한 기분”인지 모른다.
애기라는 단어는 누가 들어도 정감과 귀여움이 묻어난다. 애기나팔 또한 그렇다. 나팔꽃보다 작고 귀여워 애기나팔이라고 한지 모르지만 다른 나무를 도로록 휘어감아 옴팡하게 입을 벌린 꽃 모양을 보면 절로 귀여움이 묻어난다.
이지당
그러나 족제비싸리는 꽃이라고 하기에 너무 투박한 모습이다. 모양이나 색깔이 하나같이 야생화들과 어울리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 족제비들이 산을 타고 내려와 울창한 숲 속에 꼬리를 삐죽이 내놓고 숨어있는 모습이 더 어울린다. 총 한방을 쏘면 족제비들이 꼬리를 접고 우르르 산속으로 도망을 칠 것만 같다. 그러나 족제비싸리 들이 갈색으로 물들려면 멀었다. 아직은 푸른 물이 스며들어 풋풋함을 풍기는 중이다. 족제비싸리들이 갈색의 꽃을 피우면 계절은 숨이 턱턱 막히는 불볕더위로 몰아치리라.
냇가를 따라 내려가다 타오르는 불볕더위로 답사를 포기했다. 제자리로 돌아오니 일행들은 아직도 담소중이다. 한질이나 되는 갈대풀과 거친 풀들 속에서도 야생화는 숨어서 곱게 피어나는데, 오염된 냇물 속에서도 사람들이 싱싱한 물고기를 건져 올리는데, 뭉개구름은 나그네의 심란한 마음을 않고 폭발할 듯 서편으로 흘러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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