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영혼 보듬는 위로가(대전일보)
마음으로 읽는 시/언론과 문학지 서평
2005-12-28 22: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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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영혼 보듬는 위로가
「자본과 권력이 누르는 이 땅에도 사랑이 존재할까? 갈수록 첩첩산중인 부패의 땅에 그래도 다정히 손을 얹어줄 자는 오직 사랑, 그대뿐이다」
대전지역에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유진택 시인이 최근 세 번째 시집 「날다람쥐가 찾는 달빛」(문학과지성사)를 내 놓았다.
충북 영동출신으로 지난 93년 「문학세계」를 통해 시단에 데뷔한 유시인은 그동안 「텅 빈 겨울숲으로 갔다」와 「아직도 낯선 길가에 서성이다」등 2권의 시집을 발간, 호평을 받았다. 이번 시집 「날다람쥐가 찾는 달빛」에서 시인은 생존경쟁의 밀림 곳에 고단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민초와 도시 실직자등 가난한 영혼의 쭉정이들을 사랑으로 감싸안으며 그들의 삶을 일상적이면서 감각적인 언어로 그려내고 잇다.
특히 「어느 실직자의 변」은 치열한 생존경쟁속에서 희생당하는 고독한 현대인들의 암울한 자화상을 떠올리게 한다.
「풍구질을 한다/몇 해 만에 내려와 돌려보는 풍구질/잠시 기력 잃은 손으로도 풍구는 잘도 돌아간다/알맹이는 풍구 앞에 쌓이고/쭉정이는 멀리까지 날아 흩어진다/아, 야속하구나/산들바람 술렁대는/이 넓은 들판에도 치열한 생존 법칙이 있구나(중략)
이제는 어느 곳에도 쉴 수 없는 /나의 자리/알맹이들만 만고 쭉정이들은 영혼처럼 흩어진/거대한 빌딩숲을 생각하며/나는 쫓겨난 쭉정이가 되어/열심히 풍구질만 해댄다」(어느 실직자의 변中)
이와함께 「하소연」 이란 시에서 항상 아들을 안쓰럽고 안타깝게 여기고 있는 어머니의 마음을 민중적 표상의 대표꽃이라고 할 수 있는 민들레에 의탁해 감정이입의 방법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무슨 고민이 저리 많은지/민들레는 빡빡머리가 되어 담장 밑 양지쪽에 쭈그리고 있습니다/가끔씩 머리통이 박살나도록 담장을 치고 받으며/기구한 사연 더 들어 달라는 듯 앙탈을 부립니다/제 자식들은 어디로 가는 겁니까/길마저 끊긴 막막한 땅에서/도란도란 웃음꽃 필 가정을 꾸미고 살 곳은 어디입니까」
또한 환경오몀과 자연훼손의 문명지상주의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잇다. 그러나 환경파괴에 대한 그의 어조는 단순히 문명현실의 고발을 향해 치닫는 것이 아니라 위기의 환경현실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면서 오히려 낮은 목소리로 우리 각자의 결단을 촉구하면서 이를 실천하지 않을 경우 어두운 묵시론적인 애정의 현실을 날카롭게 던져준다.
「문명의 껍질을 껴않고 신음할 때/지옥의 범람 속으로 자결하는 버드나무의 꽃잎들/그 슬픈 추억의 풍경을 보듯/이내 우울해지는 시냇가/힘없는 약골로 꽃잎을 건지려는/길게 손 뻗은 냇가의 풀들을 보면서/부황 든 세상처럼/냇가에도 서서히 내려앉는 죽음의 그늘을 본다」(속죄하는 버드나무中)
이 시집에 실려 있는 시들 대부분은 실직, 환경파괴등 어두운 현실에 대한 독설적인 비판보다는 사랑으로 감싸안고 있다.
「밤낮으로 흩날리는 꽃잎의 분분한 아우성도 알고 보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니, 그만큼 눈물많은 세월을 달콤한 꽃향기로 몰아내려 하는 것이다」라는 시인의 말처럼 고단한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결국 사랑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송연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