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시(時)는 버리고 증(證)을 따르다
입재(立齋)가 이르기를 "경(經)에 이르기를 '제통(諸痛) 양창(癢瘡)은 모두 심(心)에 속(屬)한다.' 하였다.
만약 종적(腫赤)하고 번조(煩躁) 발열(發熱)하며 대통(大痛)하고 음냉(飮冷)하며 변비(便秘)하고 작갈(作渴)하며 맥(脈)이 홍(洪) 삭(數) 실(實)하면 순양(純陽)이니, 비록 엄동(嚴冬)의 시(時)이라도 반드시 크게 고한(苦寒)한 제(劑)를 써서 열독(熱毒)을 사(瀉)하여야 한다.
만약 부종(不腫) 불통(不痛) 맥세(脈細) 피한(皮寒) 사리(瀉利) 장명(腸鳴) 음식불입(飮食不入) 구토무시(嘔吐無時) 수족궐냉(手足厥冷)하면 순음(純陰)이니, 비록 성서(盛暑)의 시(時)이라도 반드시 대신(大辛) 온열(溫熱)한 제(劑)를 써서 양기(陽氣)를 조(助)하여야 한다.
비록 엄한(嚴寒) 성서(盛暑)를 불구(不拘)하고 단지 당연히 시(時)를 버리고 그 증(證)을 따라야 한다.
만약 미종(微腫) 미통(微痛)하고 궤(潰)한 것 같지만 궤(潰)하지 않아 시(時)로 청농(淸膿)이 출(出)하면 반음(半陰) 반양(半陽)이니 마땅히 신열(辛熱)한 제(劑)를 써서 위기(胃氣)를 온보(溫補)하여야 하니, 이도 또한 음양(陰陽)을 치(治)하는 법(法)이다.
경(經)에 이르기를 '한(寒)을 써서 한(寒)을 원(遠)하게 하고 열(熱)을 써서 열(熱)을 원(遠)하게 한다. 가(假)이면 이에 반(反)한다.' 한다.
비록 그 시(時)에 위(違)하여도 반드시 그 증(證)을 따라야 한다. 만약 상법(常法)을 고집(:執)하면 잘못되지 않음이 없다.
임오년(壬午年) 한겨울(:仲冬)에 금대(金臺: 하북성 이현(易縣))의 어떤 남자(男子)가 복통(腹痛)을 환(患)하였는데, 건리이중환(乾薑理中丸)을 잘못 복용하여 즉시(卽時) 구비(口鼻)에 출혈(出血)하고 번조(煩躁)하며 발광(發狂)하다가 우물(:井)에 뛰어 들어가 사(死)하였다.
신묘년(辛卯年) 겨울에 어떤 관리(:吏)가 상한(傷寒)을 앓고 부자(附子)의 약(藥) 1종(鍾)을 잘못 복용하여 하인(下咽)하고는 조(躁)를 발(發)하였으니, 분주(奔走)하다가 넘어져(:跌) 사(死)하였다.
성서(盛暑)의 제(際)에 부자(附子) 건강(乾薑) 육계(肉桂)의 세 가지 약(藥)을 병용(幷用)하여 연(連)하여 진(進)하니, 3~4제(劑)를 하여도 무사(無事)하였다.
엄동(嚴冬)의 시령(時令)에는 세 가지 약(藥)에서 단지 일미(一味)만 써서 단지 1제(劑)만 진(進)하여도 바로 사(死)하였다.
이로 나겸보(羅謙甫) 선생(先生)이 시(時)를 버리고 증(證)을 따르는 권의(權宜)한 용약(用藥)의 묘(妙)를 볼 수 있다.
내가 이 법(法)을 종(宗)하였으니, 겨울철 창증(瘡證)에 만약 맥(脈)이 침실(沈實) 홍삭(洪數)하고 대변(大便)이 비(秘)하며 창(瘡)이 흔통(焮痛)하고 번조(煩躁)하며 혹 음냉(飮冷)이 부절(不絶)하면 곧 망초(芒硝) 대황(大黃) 황금(黃芩) 황련(黃連)의 제(劑)를 써서 공(攻)하였다. 비록 하령(夏令)이라도 맥(脈)이 허약(虛弱)하거나 부대(浮大)가 나타나고 창(瘡)이 불궤(不潰)하고 농(膿)이 청희(淸稀)하며 한음(寒飮)을 싫어하면 곧 건강(乾薑) 육계(肉桂) 인삼(人蔘) 황기(黃芪)의 제(劑)를 써서 보(補)하였다.
맥(脈)에 침세(沈細)가 나타나고 창(瘡)이 불궤(不潰) 불통(不痛)하며 애역(呃逆)을 작(作)하고 수족(手足)이 냉(冷)하며 대변(大便)이 부실(不實)하고 혹 사리(瀉利)하거나 복통(腹痛)하면 부자(附子)를 더 가하였으니, 모두 대효(大效)를 획(獲)하였다.
우매(:昧)한 자들은 도리어 틀렸다고 하고 환자(患者)를 혹란(惑亂)케 하며 상법(常法)을 삼가 지켜(:恪守) 반드시 겨울에는 온열(溫熱)을 쓰고 여름에는 청량(淸凉)을 써서 사람을 잘못되게 하니, 심(深)하게 애(哀)하도다!" 하였다.
(설안(薛按)에 나온다.)
"1282년 (至元 壬午年) 음력 5월 28일 왕백록(王伯祿)의 나이가 57세가 되었다.
우(右)의 비박(臂膊)에 종(腫)이 심(甚)하니, 상(上)으로는 견(肩)에 이르고 하(下)로는 수지(手指)에 이르며 색(色)이 변(變)하고 피부(皮膚)가 양(凉)하며 육맥(六脈)이 침세(沈細)하면서 미(微)하니, 이는 맥증(脈證)이 모두 한(寒)한 것이다.
내가 천거(:擧)한 양의(瘍醫)인 손언화(孫彦和)가 이를 보고 이르기를 '이는 부골옹(附骨癰)이니, 개발(開發)하기에는 이미 지(遲)하다.' 하면서 번침(燔針)으로 계(啓)하니, 농(膿)이 청희(淸稀)하게 해(解)하였다. 다음 날 주하(肘下)를 다시 개(開)하니, 애역(呃逆)의 부절(不絶)이 더하므로 손언화(孫彦和)가 정향시체산(丁香柿蒂散) 2제(劑)를 주니, 다소 완(緩)하였다. 다음 날 애역(呃逆)이 더 심(甚)하고 자리(自利)하며 제복(臍腹)이 냉통(冷痛)하고 복만(腹滿)하며 음식(飮食)이 감소(減少)하고 시(時)로 혼궤(昏憒)가 발(發)하였다. 좌(左)의 유하(乳下) 흑(黑)이 다하는 곳에 14장(壯)을 구(灸)하고, 탁리온중탕(托裏溫中湯) 처방에 건강(乾薑) 부자(附子) 목향(木香) 침향(沈香) 회향(茴香) 강활(羌活) 등을 썰어(:㕮咀) 넣은 약(藥) 1량(兩) 반(半)을 주어 복용하게 하였다.
혹자(或者)가 이르기를 '모든 통양(痛癢) 창양(瘡瘍)은 모두 심화(心火)에 속(屬)하고, 또 성서(盛暑)의 시(時)를 당(當)하였는데 건강(乾薑) 부자(附子)가 가당한가?' 한다.
내가 응(應)하며 이르기를 '이치(理)로는 당신의 말이 당연(當然)한 바이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내경([內經])에 맥세(脈細) 피한(皮寒) 사리전후(瀉利前後) 음식불입(飮食不入)을 오허(五虛)라 하였다. 특히 애역(呃逆)은 위중(胃中)이 허한(虛寒)한 까닭이다. 모든 통양(痛癢) 창양(瘡瘍)은 모두 심화(心火)에 속(屬)하니 이는 그 정리(定理)를 말한 것이다. 이 증(證)은 내외(內外)가 상반(相反)하니 반드시 시(時)를 버리고 증(證)을 따라야 하니 대방(大方)의 신열(辛熱)한 제(劑)로 급히 치(治)하지 않으면 나을 수 없다.' 하였다.
이를 투여하였더니, 제증(諸證)이 모두 거(去)하고 음식(飮食)을 배(倍)로 진(進)하고 창(瘡)의 세(勢)가 온(溫)하고 농(膿)의 색(色)이 정(正)하게 되었다. 손언화(孫彦和)가 다시 오향탕(五香湯)을 여러 번 복용하게 하니 1개월 정도 후에 평복(平復)하였다.
아! 상(常)을 수(守)하는 것은 중인(衆人)의 아는 것이지만, 변(變)을 지(知)하는 것은 지자(知者)만이 능(能)한 것이다. 상(常)은 알고 변(變)은 모르므로, 세사(細事)로 인하여 패(敗)하는 경우가 또한 많다. 하물며 의(醫)에 있어서랴!" 하였다.
(나씨(羅氏: 나천익)의 위생보감([衛生寶鑑])에 나온다.)
나 경악(景岳)이 생각하건대, 나(羅) 선생(先生)이 시(時)을 버리고 증(證)을 따르는 법(法)은 후인(後人)에게 가르침을 베푼(:垂訓) 것으로, 진실로 백세(百世)에도 없어지지(:磨) 않는 요(要)한 도(道)이다.
단지 시(時)의 천변(遷變)도 본래 알기가 어려운 바이지만, 증(證)의 유현(幽顯)은 더욱 알기가 쉽지 않으니, 왜 그러한가?
상인(常人)의 말하는 시(時)는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시(時)이고, 세세(歲歲)의 시상(時常)의 주기(主氣)이니, 누가 모르겠는가? 그러나 오운육기(:五六)가 주환(周環)하면 장하(長夏)에도 한음(寒淫)의 령(令)이 있고 삼동(三冬)에도 염서(炎暑)의 권(權)이 있다는 것은 모르니라. 이는 비록 시(時)를 버려도 실은 시(時)를 따르는 것이니, 우매(:昧)한 자가 이를 알 수 있겠는가?
또 증(證)을 살피는 법(法)에서 맥세(脈細) 피한(皮寒) 설사(泄瀉) 궐냉(厥冷)의 종류(類)는 모두 이미 나타난 한증(寒證)이니 또한 누가 모르겠는가?
그 래(來)에는 원(源)이 있고 그 심(深)에는 점(漸)이 있으니, 곧 제증(諸證)이 나타나기 전에 본래(本來) 이미 갖추었다(:具)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이러할 제(際)에는 곧 난(難)하여 잘못 인(認)하니, 반드시 초두난액(焦頭爛額) 한 후에라야 곡돌사신(曲突徙薪)하니 이미 늦은 것이다(:晩).
이처럼 나(羅) 선생(先生)은 이연(已然)에는 명(明)하였지만 나는 또 다시 미연(未然)을 염려(:慮)하니, 사람의 견(見)이 지(遲)하면 사(事)에 미치지 못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렇지만 나는 상견(常見)하건대, 금인(今人)은 이연(已然)도 보지(:見) 못하면서 다시 미연(未然)을 보려고(:見) 하니, 진실로 멀기만(:迂) 하도다!
따라서 내가 개탄스러운(:慨然) 마음을 상세히 말하지(:道) 않을 수 없으니, 지음(知音)하는 자들이 심(深)하게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