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정화된 지성에 흡수되고
굳은 인내로써 감각과 몸을 정복하면서
소리나 그 밖의 감각 혼란들을 버리고
애착과 증오를 떠나며,
이기심, 힘, 허영심, 욕망, 분노, 소유욕을 버리고,
내것이라는 의식이 없이 평화로운 자는
브라흐만과 하나 되기에 적합한 자이다..----------- 바가바드 기타
세속적 대상과 욕망들로부터 분리되어
신성한 평정심을 지닌 그러한 요기는
요가 명상으로 몸에서 탈출하는 가장 미묘한 척추 통로인
브라흐마나디 속에서 생명력과 마음과 영혼을 지각하고
편재한 영 속으로 들어가
감각 소동에 벗어난 참된 은둔을 경험하고
거기에 머문다.
사마디 명상 속에서
요기의 생명력과 마음과 영혼이
가장 깊은 통로인 브라흐마나디(몸의 감옥을 벗고 브라흐만의 자유로 가는 마지막 출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 개의 바깥 통로인 수슘나, 바즈라, 치트라를 통과해야 한다.
그러한 요기는
명상하는 마음을 흩뜨리는 잘못된 식습관이나 과식으로
몸이 고통받지 않도록
물질 음식을 가볍게 먹고
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빛,
우주에너지의 에테르 음식만으로 그 자신을 유지할 수 있다.
그 빛의 자양물은 물질적 존재에게 조건 지워진 것으로 믿는
고체와 액체의 음식들, 산소, 햇빛에 의존하지 않게 만든다.
신과의 결합,
요가의 본보기인 예수 그리스도는
빛을 먹는 것에 대한 동일한 원리를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은 빵 만으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마태4:4)"
즉, 인간의 몸속의 무수한 세포 베터리들은 빵의 외부적 원천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신의 입, 연수를 통하여 흐르는 우주의 생명전류의
내부 원천으로 산다.
그리고 신의 입(연수)에서 나와
몸의 모든 부분과 몸의 활동 속으로 들어간 그때부터 산다.
에테르적 우주 생명력으로 살아가면서
이 생명을 유지하는 에너지를 지배할 줄 아는 요기는
언어의 중추와 모든 몸의 감각들을 다스리는 에스트랄 척추센터들로부터
명상 속에서
생명력을 어떻게 회수하는 지를 안다.
그리고 그 해방된 생명력을 마음과 심장 속으로 용해시키는 법을,
그리고 그들을 지복적 영혼 속에
융합시키는 법을 안다.
따라서,
물질과 미묘한 감각 대상들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의지로 마음을 분리시킬 수 있는 요기는
물질적 자아의 육체적이거나
초자연적 힘에 대한 집착,
또는 자만심의 "우월 콤플렉스"
또는 잠복된 감각 욕망들,
또는 소유욕 등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그는 갈망하고 좋아하는 것이 좌절될 때
치솟는 화로부터 자유롭고,
사치품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고
나와, 나의 것, 이라는 의식으로부터 해방된다.
그러한 요기는
브라흐만과 융합될 준비가 되었다.
요기가 브라흐만 속에 확고히 확립될 때(비록 완전히 해방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심장은 망상으로 산란되지 않고
영구한 지복에 흠뻑 젖는다.
내재하는 초월적 영과 하나가 될 때
모든 존재들은 그 자신의 진아가 된다.
하지만 불변의 주님처럼
그들은 그를 건드리지 못한다.
그의 의식이 자연 속의 파괴적이고 건설적인 변형들이 된 이래
그는 불쾌한 변화들에 슬퍼하지 않으며,
또한 즐거운 변화를 동경하지도 않으며
모든 존재들 속에서
신이 똑같이 존재함을 본다.
그러한 요기는
절대자와 하나 될 뿐만 아니라
신 속에 그의 독자성을 융합한다.
또한 신 지각상태를 보유하면서
그의 개체성을 회복하여
분리되어 머물 수 있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도 최상의 헌신으로
그의 가슴은 충만하고
브라흐만의 지복을 즐길 수 있다.
신의 넥타(감로)의 바다 깊이를 측량하기 위해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설탕 인형은
바다 속에 가라 앉자마자
그 자신이 녹아버리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급히 바닷가로 나와서 생각한다.
"왜 신의 달콤함의 깊이를 측정하려하면 나의 개최성을 잃는 것일까?"
설탕인형은 이미 바다가 매우 깊다는 것을 알고
신의 넥타가 매우 달콤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 설탕인형은 개체성을 지닌 분리된 의식으로
그 달콤한 바다를 지각하는 것을 선택한다.
헌신자가 무한자와 하나가 되어 사랑할 수 있지만
신의 기쁨을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
개체성을 보유하면서 경험한다.
이런 상태가 최선의 헌신의 경지이다. ---- 파라마한사 요가난다
최상의 헌신으로
그는 나와 나의 성품(내가 누구이며, 무엇인지)을 깨닫는다.
이 진리를 알고 난 후 그는 빠르게 내 속으로 들어온다. ----------- 바가바드 기타
처음에 요기는 분리된 상태로
최상의 헌신에 의해 신을 인식하고
신의 참된 성품인 영원한 존재
영원한 의식
영원한 새로움을 깨닫는다.
자신의 차별된 개체 의식의 지각을 통해
신에 대한 이 경험을 한 후
그 요기는 신과 하나가 된다. ---------- 파라마한사 요가난다
위의 내용이 한 문장, 한 마디
이해되지 않으면 수련이 완성되지 못한 것이다.
나머지의 잡다한 내용과 방법들에 취해
다 아는 양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야말로, 모래알로 밥을 짓는 행위에 다름없다.
괜히 쇠신만 닳게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