權燮(1671~1759)의 「梅花四章」 4首 등 時調 65首
權燮은 號를 玉所라 하며 顯宗 12년 (1671)에 난 사람이다. 그는 이름 있는 家門에서 출생했으니 부친 權尚明은 贈吏曹參判이며, 백부 權尚夏는 右議政, 左議政의 자리를 마다 한 당대의 大學者요, 清陰 金尙憲은 그의 외증조부이고, 白沙 李恒福의 증손 李世弼은 그의 丈人이다. 그리고 처 외조부가 三學士의 한 사람인 洪翼漢이다.
이런 명문 가정에서 자란 그는 한 번도 관에 오르지 않고 學問과 名勝을 탐승하며 隱居하였다. 물론 한두번 과거에 응시했었으나 모두 落傍하였다. 그의 문집 <遊行錄> 중「少時遊行記」를 보면, 5세 때 모친을 따라 泛波亭에 이르는 것을 시초로 80평생을 여행했다 한다.
그의 이런 생활이 그 가 詩作生活을 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의 漢詩作品은 무려 567首나 되며, 그의 時調는 1918년 그의 후손이 刊行한 全13卷 17册의 필사본 <玉所稿>에 수록되어 있는데 모두 65首나 된다. 이 작품량은 우리 時調文學史上 상위 多產 작가에 속하는 것이다. <玉所稿>는 총 143張 286面으로 전반부에 「記夢説」을 묵필로 그린 것이 있고, 후반부에 時調 65首와 歌辭 「寧三別曲」, 「道統歌」, 「黄江九曲」 등 3篇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黄江別曲」 부분은 떨어져 나가 그 전모를 알 길이 없고, 시조부분도 책장이 닳아 떨어져서 반만 남아 있는 작품들도 있다. 그의 작품은 우선 분량으로 보아 九家의 행렬에 서게 될 것이고, 작품의 素材, 主題, 詩語, 技法 등에서 독자적인 個性을 갖고 있으며, 그의 새로운 등장은 松江, 蘆溪, 孤山의 詩脈을 이어주는 位置에 속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양반계층 詩歌의 발전과 변모되는 様相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인 것이다. 이 權燮의 작품은 朴堯舜교수가 「玉所 權燮의 未發表 寧三別曲 外時調 65首」를 <文學思想> 통권 16호 에 1974년 발굴 소개하여 널리 알려졌다.
그의 작품 65首 중 완전하게 나타난 58首를 內容別로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梅槃發丹患
내용 | 매화4장 | 槃山獨步 | 發遠遊 | 丹丘途中 | 患瘟 | 望天 | 記夢 | 際樂肅 | 軍樂整 |
작품수 | 4 | 1 | 1 | 1 | 1 | 1 | 1 | 1 | 1 |
내용 | 禪樂整 | 女樂蕩 | 傭樂悽 | 巫樂謠 | 松 | 菊 | 梅 | 竹 | 山 |
작품수 | 1 | 1 | 1 | 1 | 1 | 1 | 1 | 1 | 1 |
내용 | 溪 | 江 | 海 | 仙 | 龍 | 虎 | 鶴 | 人 | 鯉 |
작품수 |
| 1 | 1 | 1 | 1 | 1 | 1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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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馬 | 鯁 | 壽詞5장 | 過善山砥柱碑 | 謂客 | 客答 | 病中詠盆梅3장 | 映湖樓 | 漫興 |
작품수 |
| 11 | 5 | 1 | 1 | 1 | 3 | 1 | 1 |
내용 | 부석사 | 騎牛歌 | 獨自往遊戲5장 | 食多鯁魚 | 安分自守 | 笑矣乎4장 | 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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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수 | 1 | 1 | 5 | 1 | 1 | 4 | 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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茅簷예 달이 긴 제 첫 잠을 얼풋 깨어
手壁殘燈을 의지 삼아 누웠으니
一夜에 梅花發하니 님이신가 하노라
<玉所稿: 梅花四章 4-1>
곧거든 마디 업거나 속은 어이 통했던고
雪霜風雨 사시에 한 빛일세
달밤에 영부소도 좋거든 척척성은 어떠오
<玉所稿:竹>
벗님네 남산에 가세 좋은 기약 잊지 마오
익은 술 점점 시고 지진 꽃전 시어 가네
자네네 아니 곳 가면 내 혼잔들 어떠리
<玉所稿: 獨自往遊戲五章 5-1>
이봐 우습구나 우숨도 우스웁다
우습고 우스우니 우숨겨워 못견디어
아마도 히히호호 하다가 하하허허
<玉所稿 : 笑矣乎四章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