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강물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강물의 공원 두물머리(양수리) 나들이..,"
(다산유적지,마재성지,두물머리,수종사 등..,)
"1973년 12월 팔당댐이 완공되면서 경기도 남양주시는 또 하나의
호수를 갖게 되었습니다.호수 가운데는 수몰을 면한 언덕이 소래섬으로
떠 있고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은두물머리(양수리)라고 하며,아름다운
풍광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습니다.소래섬이 바라보이는
마현마을에는 다산 정약용이 살았으며 길고 긴 유배 끝에
다산은 고향으로 돌아와 여유당을 짓고,이곳에서 생활하다
일흔다섯에 세상을 떠났습니다.이곳에는 다산유적지가 있습니다."
(검단산에서 바라본 양수리 : 두물머리 가는 한강변 길)

"팔당댐에서 흘러 내려오는 푸른 한강물과
예봉산을 휘감고 팔당댐을 거쳐 양수리(두물머리)로 이어지는
6번 국도가 시원서럽게 달리고 있습니다."

(양수리:두물머리로 가는 한강변 길)

"오른쪽으로 아름다운 한강과 검단산 자락과 함께
팔당댐을 거쳐 양수리로 향하는 6번 국도입니다."
(신록의 검단산 전경)

(검단산에서 바라본 양수리:두물머리 풍경)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양수리)입니다.
큰 두강이 만나는 팔당호와 다산유적지가 있는 마현마을,
팔당호에 떠 있는 소래섬,시원하게 뻗은 6번 국도가 한눈에 보이며
바로 아래에 팔당댐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팔당댐과 팔당호..,쭉~뻗은 6번국도))

(팔 당 댐)

"다산 정약용 선생 유적지 (茶山 丁若鏞 先生 遺跡地)"
(다산 유적지 안내도)

"정조(正祖)가 서거하고 순조(順祖)가 즉위하면서 다산(茶山)은
최대의 위기와 함께 전환점을 맞습니다.소론(小論)과 남인(南人) 사이의
당쟁이 신유사옥(辛庾死獄)이라는 천주교(天柱敎) 탄압사건으로 비화하면서
다산은 강진으로,형 정약전(丁若全)은 흑산도로 유배되었습니다."
(실학박물관 : 實學博物館)

"강진에서 18년이라는 유배기간은 다산(茶山)에게는 고통의 세월이였지만
학문적으로는 매우 알찬 결실은 얻는 수확기였습니다.이 시기에 다산학(茶山學),
경세학(經世學),경학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이루어 졌으며 500 여권에 달하는 그의
저서의 대부분은 이 유배지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실학박물관 앞의 책탑 : 冊塔)

"다산이 저술한 500 여권의
책을 상징하는 책탑(冊塔)입니다."

"다산의 대표적인 저서, 일표이서(一表二書)"
"경세유표(經世遺表),목민심서(牧民心書),흠흠신서(欽欽新書)"
(경세유표 : 經世遺表)

"경세유표(經世遺表)는 그 내용이 국가론입니다.
국가의 기본질서를 서술한 것으로 지금의 헌법(憲法)과 같은 것입니다."
(목민심서 : 牧民心書)

"목민심서(牧民心書)는 국가론에 부수되는 지침서와 같습니다.
지금 같으면 공무원 수칙 같은 것입니다."
(흠흠신서 : 欽欽新書)

"흠흠신서(欽欽新서)는
지금의 형법(刑法)과 같은 것입니다."
(거 중 기)

"정약용이 만들어 수원 화성을 지을 때 쓴 거중기 모형도입니다.
이 거중기 덕분에 본래 10년으로 예상했던 수원성 건축 기간을 2년7개월로
대폭 줄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산 선생 생가 앞에 자리한 표지석 : 여유당)

"여유당(與猶堂)이란?
노자 도덕경에 의하면 여(與)여! (겨울 냇물을 건느듯 한),
유(猶)여! (사방을 두려운듯 하다는..,) 글귀에서 세상을 조심조심
살아가자는 뜻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 생가 : 여유당)

(다산 정약용 선생 상 : 像)

"다산(多山)은 영조 38년 음력 6월 16일,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당시 광주시 초부면 마현리)에서
나주정씨(羅州丁氏) 재원(載元)과 어머니 해남윤씨(海南尹氏) 숙인(淑人)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그의 집안은 당시 세력을 잃은 남인(南人) 계열 이였음므로
그 고조부로부터 조부까지 벼슬을 하지 못했으나 8대에 걸쳐 줄곳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을 해온 명문이였습니다."
(다산 선생 묘지 오르는 입구)

(여유당 뒤쪽에 자리하고 있는 다산 정약용의 묘)

"다산은 여유당(與猶堂)에서 태어났고,일흔 다섯의 나이에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이틀 만에 그부인인 홍씨도 숨을
거두웠으며 그래서 여유당 뒷편에 합장되었습니다.다산 묘에서 남한강과 북한강의
합수지점인 두물머리가 보이는 천하 명당이라고 합니다."
(천 일 각 : 天 一 閣)

"다산 정약용의 강진 유배 생활중 10년 동안 거쳐하던
다산초당(茶山草堂) 곁에 세워진 것과 똑 같은 정자로 이곳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심신을 달랬다고 합니다."
"천주교 마재성지 (天主敎 馬在聖地)"
(마재성지로 가는 입구)

"팔당역에서 옛 철길을 따라 50분 가량 걸으면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자리잡고 있는 마재마을이 나옵니다.
이곳은 한국교회(韓國敎會)가 창설된 1784년 이전 부터 하느님의 숨결이 닿아있던
한국천주교(韓國天主敎) 신앙 못자리입니다."
(마재성지 : 馬在聖地)

"마재성지 뒷쪽으로 예봉산 정상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성 정하상(바오로),성녀 정정혜(엘리사벧),남매의 탄생지이자,
정약전(아우쿠스티노),정약용(세례자요한) 형제의 고향이도 한 이곳에서
처음으로 천주실의 등 서학(西學)이 받아들여진 곳이기도 합니다."
(성 전 : 聖 殿)

"한강변 양지바른 땅에 들어선 한옥 성전(聖殿) 현판에는
"나의 하느님"이라는 토마스 성인의 신앙고백이 붙어 있습니다."
(정약종 동산)

"한옥 성전 바로 앞에는 약종 동산입니다.
경사 20도 쯤의 야트막한 언덕 위에는 십자가의 길과
칼,십자가,성모상과 마리아 십자가 등이 마련돼 있습니다."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인자하신 성모님)

"다산을 비롯한 비롯한 나주 정씨 일가들은 순교와 유배로서
하느님을 증거 했습니다.정약종과 그의 부인 성녀 유소사(체칠리야),
세자녀 정철상(가롤로),성 정하상,성녀 정정혜,정약현의 사위 황사영(알렉시오),이
순교했고 정약전과 약현의 딸 정난주(마리아),정약용은 유배를 떠난야 했습니다."
(순교 현양탑)

(두물머리:양수리와 양수대교 풍경)


"남한강과 북한강 줄기가 만나는 양서면 양수리 일대에는
큰 물줄기 둘이 맞대어 *두물머리*라고 합니다.서울로 오가던 사람들이
주막집에서 목을 축이고,냇물을 건너 말에 죽을 먹이며 잠시 쉬어가던 곳으로
예전에는 말죽거리라고도 불렀습니다."
(두물머리의 자랑 느티나무)

"이곳에 위치한 높이 30m,둘레 8m의 두물머리 느티나무는
수많은 사람들의 쉼터로 400년 동안 자리를 지켜 왔으며 또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장소로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늘 그 자리를 빛내는 느티나무가 있는 두물머리.
계절따라 예쁜 옷 입고 늘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느티나무는
지금 온통 화려한 연초록 옷으로 강가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습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는 합수지점)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일대)

"남한강과 북한강,두물머리,양수대교 등 풍경이 그지없이 정겹습니다.
멀~리 여주 방면과 팔당호에 떠 있는 소래섬이 한가로운 풍경입니다."
(고목나무 조형물 사이로 보이는 팔당호)

(건너편 세미원으로 연결된 부교)

(세 미 원 : 洗 美 苑 석창원)




(양수대교에서 바라본 운길산 : 雲吉山)

"운길산(雲吉山)은 그다지 웅장한 맛은 없지만 그윽한 정취가 감도는
명산입니다.그 운길산 정상 가까이에 자리잡은 수종사 절마당에 들어 서면
일단 전망이 빼어납니다.
(수종사 : 水鐘寺 가는 입구 안내판)

"수종사(水鐘寺)는 일단 가는 길부터가 산수화 같이 아름답고
서정이 물씬합니다.팔당호를 거쳐 양수대교에 이르는 동안의 시야는
줄곳 한강변의 수려한 경관과 자연의 풍광으로 풍성한 여정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운길산 수종사 일주문)

(연초록 숲속의 수종사)

"연초록 숲속에 푹~싸여 있는 수종사는 너무 평화로워 보입니다.
이러한 풍경을보고 *서거정(徐居正)*은 수종사가 동방의 사찰 중 제일의
전망이라고 격찬하여 지은 시(詩)입니다."
"양수리 수종사
가을이 오매 경치가 구슬퍼지기 쉬운데
묵은 밤비가 아침까지 계속하니 물이 언덕을 치네
하계(下界)에서 연기외 티끌을 피할 곳이 없건만
상방(上方 : 절) 누각은 하는과 가지런 하네
희구름은 자욱한데 뉘게 줄꺼나
누른잎이 휘날리니 길이 아득하네
내 동원(東院)에 가서 참선 이야기 하려니
밝은 달밤에 괴이한 새 울게 하지 말아라."
(수종사 사적기)

"수종사 사적기에는..,
*구름이 가다가 산(운길산)에 걸려 멈춘다.
수종사는 이 상서러운 구름으로 둘러 싸인 산을
거쳐로 삼았다는 등의 글이쓰여 있습니다.*"
(수 종 사 : 水 鐘 寺 전경)

"금강산을 순례하고 돌아오던 세조(世組)가 마침 양수리쯤에 도착하자
마침 날이 저물어 이 부근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고 합니다.그날 저녁
한밤중에 세조는 귀를 의심했습니다.지금의 수종사 부근에서 은은한 종소리가
들리는 것이였습니다.기이하게 생각한 세조는 날이 밝자
종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수종사 대웅보전)

"종소리가 들리는 곳은 뜻밖에도 바위굴(巖穴)이었고, 굴속엔 16나한이
앉아 있었습니다.종소리로 들렸던 것은 그 굴속으로 물방울이 떨어져서
암벽을 울려 일어나는 공명(共鸣)이였는데 그리도 청량하고 명징하게 들렸던 것입니다.
세조는 왕명을 내려 그곳에 절을 짓고 절 이름을 수종사(水鐘寺)라 했습니다."
(팔당호 방면..,팔당대교,소래섬,두물머리 느티나무,다산유적지 등..,)

"첩첩으로 둘러 있는 산은 언제나 푸르고
담담하게 흐르는 푸른 강은 끝없이 흐르네
사람이 평생 살아야 백년이나
수종사의 종소리는 영원하여라."
(양수리 : 두물머리 방면..,북,남한강 합수지점,멀리 용마산,해엽산 등..,)

"마음에 짊어진 근심은 수천 근이고
골짜기에 서 있는 절은 걸린 구름을 다 담지 못하네
가슴에 담고 있는 번뇌는 한강 물에 흘려보내고
마음은 구름 한조각을 따라 피안의 세계로 가세,"
(북한강 방면..,청계산,용문산,유명산 등이 능선들을 맞대고 있습니다.)

(수종사의 자랑 은행나무)

"수종사 해탈문 뒤에 세조가 심었다는 4~5백년이 넘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푸르름을 더하고 있습니다."
(이포보 : 梨浦洑 풍경)

"이포보(梨浦洑)는 여주의 상징 새인 백로의 날개 위에
알을 올려 놓은 형상입니다.생명의 탄생 비상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자기 그릇이 있고 자기 몫이 있습니다.
그 그릇에 그 몫을 채우는 것으로 자족해야 합니다.
스스로 만족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 몫과 내 그릇을 알아야 하는데 그걸 모르고 남의 몫을,
남의 그릇을 자꾸 넘겨다 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나자신이 힘든 생활을 하게됩니다."
"청 풍 명 월~~남양주(두물머리 : 양수리) 나들이......................................끝"
첫댓글 전철로 중앙선 운길산역에서내려 수종사따라 시멘트길따라 오르면 수종사가 나오는데 수종사가 은행나무에서 바라본 남한강은 한폭에 그림이죠 수종사 뒤에 있는 봉우리는 절위에 있다하여 절상봉
절상봉에서 30분더가면 운길산 그리고 적갑산 예봉산 팔당역으로
떨 어지는 코스는 도심 등산 매니아에게는 축복이죠
산수유님 설명..,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