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처럼 미역을 좋아하는 민족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아이를 낳으면 반드시 미역국으로 산후 조리를 하고 생일상에도 어김없이 미역국이 오른다. 미역을 좋아하다 보니 미역으로 만든 음식도 종류가 많다. 뜨거운 미역국과 여름에 주로 먹는 미역냉국, 여기에 미역무침, 미역볶음, 생미역에 초고추장을 찍어 먹는 미역쌈, 미역자반에 미역지짐, 미역김치 등등 미역을 이용한 음식은 이루 다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다.
우리는 왜 이렇게 미역을 좋아하게 됐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환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러 고문헌에 한반도에서 좋은 미역이 나온다고 적혀 있다. 품질도 좋고 산출량도 많다. 좋은 품질의 미역이 많이 생산되니 미역 요리가 발달할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한자 사전인 《이아》에서는 푸른 실로 땋은 끈 같은 것이 동해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다산 정약용은 《경세유표》에서 바로 우리의 미역을 말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특히 함경도 앞바다의 미역은 맛이 좋아 중국에까지 널리 소문이 퍼졌다. 《당서》에서는 미역은 함흥 앞바다에서 채취하는데 맛이 뛰어나다고 했고, 청나라 때 문헌인 《길림외기》에서도 발해 남쪽(지금의 함경도 지방으로 추정)에 미역이 많다고 했다. 중국 고문헌 곳곳에 한반도에서 나오는 미역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식용과 관리의 역사도 깊어 고려가 건국할 무렵에 벌써 다량의 미역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채취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고려의 개국공신 박윤웅이 태조 왕건에게 건국의 공을 인정받아 지금의 울산 지역을 식읍으로 받았다. 이때 미역이 많이 나는 바위도 열두 곳을 함께 받았다고 했으니 자연산 미역밭이었던 것인데 소유주를 구분할 정도로 관리를 했다는 뜻이 된다.
1123년 송나라 사신으로 온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도 고려 사람들은 신분이 높고 낮음을 떠나서 모두 미역을 잘 먹는다고 했는데 조선의 풍부하고 질 좋은 미역은 중국에서도 유명했다. 조선시대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무역 품목으로 미역을 요구했고, 이런 사신들에게 조선을 방문한 기념으로 미역을 선물하면 좋아했다고 한다.
아무리 몸에 좋고 맛도 좋은 미역이라지만 미역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미역은 오히려 고역이 될 수 있다. 한국에 시집온 다문화 가정의 여성이 아이를 낳은 후에 가장 고역스러워하는 것이 시어머니가 끓여주는 미역국을 억지로 먹는 것이라고 한다. 멀리 외국에서 와 손자손녀 낳느라 고생한 며느리에게 산모에게 좋다며 끓여주는 음식을 거절할 수는 없고 입맛에 맞지 않아 먹기는 싫고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아이를 낳으면 반드시 미역국을 먹어야 하고 그래야 제대로 산후 조리를 했다고 여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출산 후에는 반드시 미역국을 먹을까?
조선의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미역국은 임산부에게 신선의 약만큼이나 좋은 음식이라고 했다. 조선 왕실에서도 왕비나 공주가 아기를 낳으면 다른 좋은 음식 다 제쳐놓고 미역국을 끓였다고 하니 출산 후 미역국을 먹을 때는 신분의 귀천이 따로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서는 왜 미역을 먹지 않았을까? 질 좋은 미역이 없었으니 산후 조리 음식으로 발달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중국을 비롯한 외국에서 미역의 효과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명나라 때 의학서인 《본초강목》에 미역이 아이를 낳은 산모에게 좋다는 기록이 보인다.
“(미역은) 동해의 바닷가 바위에서 자라는데 해초와 비슷한 것이 부드럽고 길다. 아이를 잘 낳게 하고 부인병 치료에 좋다”고 했다. 하지만 “미역은 고려에서 나는 것으로 쌀뜨물에 담갔다가 짠맛을 빼고 국을 끓이면 기(氣)가 잘 내린다”고 했으니 미역을 중국의 산물이 아닌 고려의 특산물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미역이 좋다고는 하지만 중국에서는 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니 그림의 떡이다.
반면 중국의 임산부들은 닭고깃국을 먹는다. 실학자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중국 임산부들은 오골계로 끓인 닭고깃국을 먹는데 피가 따뜻해지고 양기를 얻기 위함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산모들이 들으면 귀여운 아이 피부를 닭살 만들 일 있냐며 기겁할 일이다. 같은 음식이라도 역사와 민속에 따라 보는 시각과 느끼는 감정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롭다.
#음식#역사일반
#음식으로읽는한국생활사
글 윤덕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