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1절, 6장으로 건너갑니다. 이때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불만이 생겼습니다. 우리말로 헬라파 유대인들이, 여러분 '파'라는 말이 나오면 좋겠습니까? 나쁘겠습니까? 헬라파 유대인들이란 이 단어 자체가 헬라파, 즉 헬라주의자 이런 뜻입니다. 우리 한국말 성경으로 헬라파라고 보니까 아주 헬라 지역에 사는 유대인들, 즉 헬레니스트 유대인들인데, 헬라에서 사는 그 헬라파 유대인들이에요. 예를 들면 강원도파 안식교인들, 북한파 감리교인들처럼 출신 지역으로 구분한 거죠. 영남파, 호남파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헬라파 유대인들이 보니까, 똑같이 혼자 사는 불쌍한 여인들인데 헬라 지역에서 사는 우리 여인들이, 교회에 서로 통용하고 재산을 같이 나누려고 모아주고 하니까 매일의 구제에서 빠지게 된 겁니다. 가만히 보니 저쪽 예루살렘에 사는 여자들이 훨씬 더 혜택을 많이 받는 거예요. 왜냐하면 사도들이 그 지역 사람들이니까 자기 아는 사람들 위주로 돌아간 거죠. 그러니까 벌써 "이거 공평하지 않잖아"라는 생각이 든 거죠.
그래서 2절,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두고 구제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여기서 '구제'라고 번역되었습니다만, 난외주에 보면 재정 출납이라고 번역되어 있지요. "누가 도와주고 말고 이걸 우리가 이것 때문에 시간 뺏길 수가 없다"라고 하여 이 일을 전담하는 사람들을 세우기로 합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그래서 그 유명한 일곱 집사 선택이 나오죠. 초기 교회가 조직되기 시작합니다. 그다음 하는 말 4절을 보세요. 집사 일곱 명의 자격과 선출 내용에 대한 것을 일단 나누고 사도들이 하는 말을 들어봅니다. 4절에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이 '말씀 사역'이라는 표현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저도 참 좋아하는 단어입니다. "말씀 사역합니다" 이렇게 표현하기를 참 좋아하거든요. 성경에 나오는 표현이에요. 사도들이 한 말이거든요.
이 말씀을 풀고 기도하고 말씀 사역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 일은 그야말로 누군가가 전무하고 전담해도 에너지가 모자라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오직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한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걸 헬라어로 읽으면요, 번역 성경 읽는 것과 맛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6장 1절을 보세요.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 과부들의 매일의 '구제'에 빠졌다고 했고, 4절에는 '말씀 사역'이라고 했잖아요. 여기 6장 1절의 구제라는 단어와 6장 4절의 사역이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보면 똑같아요. 바로 '디아코니아'입니다.
디아코니아라고 하는 그 단어에서 영어 단어 집사(Deacon)라는 단어가 왔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 과부들이 매일의 디아코니아에 빠졌으니 사람들을 세워서 이 일을 하도록 하자 한 다음, 사도들은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의 디아코니아에 힘쓰리라" 한 것입니다. 똑같은 사역, 매일의 디아코니아에 빠짐으로, 누군가를 돕는 일이기 때문에 구제라고 표현했고 뒤에는 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역이라고 표현했어요. 그러나 기본적으로 개념이 같은 일이라는 거죠. 누군가를 살리는 일이고 누군가가 시간과 에너지를 바쳐야 하는 일이라는 뜻에서 다 디아코니아예요.
단지 그 방향과 일의 성격이 누군가를 재정으로 돕고 노력으로 돕는 일을 디아코니아 하느냐, 아니면 말씀으로 디아코니아 하느냐 그 차이인 거지요. 마치 구제 사역은 급이 낮고 말씀 사역은 급이 높아서 차이가 있는 것처럼 위임하는 것은 전혀 아니라는 겁니다. 똑같이 중요한 일인데, 전무하고 전담하기 위해 함께 영역을 나누어 봉사하자라는 의미에서 이 디아코니아를 할 사람을 세우고, 우리는 이 말씀 디아코니아에 오로지 힘쓰리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 일을 할 사람들을 뽑습니다. 5절, 6절, 7절입니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을 뽑습니다.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카노르, 디몬, 바메나, 그리고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까지 일곱 명이 뽑힙니다. 6절,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참 사도의 직분에 함께 동역할 일꾼들을 안수하는 일은 늘 기쁨입니다. 저도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 두 아들의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꼭 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애들 다 어릴 때부터 "아빠는 너희들에게 세 가지 해 주고 싶다. 첫째 아빠가 침례 주고 싶고, 둘째 아빠가 너희들 결혼 주례 해 주고 싶고, 셋째 아빠가 너희들에게 교회 봉사를 위해 안수해 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두 아들 다 제가 침례 주었고, 결혼 주례도 제가 했습니다. 딸은 집사 안수 받을 때 제가 안수를 해 줬습니다. 사도가 되어 하나님의 사업에 동역할 일꾼들을 안수하는 일은 사도들에게도 큰 기쁨 중의 하나죠. 사도들이 얼마나 이 안수식을 마치고 성령이 충만하지 않았겠습니까?
7절,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여기 '도'라고 번역되었는데요, 한자로는 길 도(道)자 같습니다만 헬라어 원어는 길이 아니라 '피스티스(Pistis)'라는 단어, 즉 영어의 '페이스(Faith)', 믿음입니다. 제사장의 무리도 이 믿음을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도라는 단어 옆에 믿음이라고 바꿔 놓으세요. 문자적 의미가 피스티스예요.
그리고 여기서 대표적인 스데반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8절,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이른바 자유민들 여러 사람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다고 거짓 증언을 하게 합니다. 12절,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서 잡아옵니다. 그리고 13절, 거짓 증인들을 세워서 이 사람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들었노라"라고 거짓 증언을 합니다.
15절, 다음 주에 7장 내용인 스데반의 설교가 나오는데요. 오늘은 15절을 봅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성경 66권에서 사람의 얼굴 보고 천사 얼굴 같다고 하는 유일한 표현이 여기에 나옵니다.
이것이 7장으로 이어집니다. 오늘은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에 여기서 마치고, 천사 같은 얼굴을 한 스데반의 이야기가 무엇일지 다음 주에 계속해서 살펴보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두 시간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핵심 요약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