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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를 통한 균형 잡기
-- 박종희의 수필세계--
1. 문학상 복이 많은 작가
훌륭한 문학작품이란 공감대와 감동에 따라 평가되기 일쑤다. 이를 위하여 많은 방법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그 원리는 진솔성과 기교일 것이다.
"대체 글이란 조화(造化)다. 마음속에서 이루어진 문장은 반드시 정교하게 되나 손끝으로 이루어진 문장은 정교하게 되지 않으니, 진실로 그러하다."(夫文猶造化也 成於心者必工 而成於手者不必工 固也) 라고 실학파인 이수광(李晬光)은 <<지봉유설(芝峰類說)>>에서 말한다. 기교보다 진실성, 진정성, 진솔성을 강조하는 이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조화란 예술적인 형상화가 잘되었다는 뜻도 되지만 독자들에게 공감대를 심어준다는 의미도
있다.
작가와 독자가 공감대를 형성시킬 수 있는 영역이 넓을수록 그 작품은 성공적이란 뜻이다.
수필문학은 더더욱 그렇다. 사람과 글이 똑 같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우러지는 장르가 곧 수필이다. 조화로운 인간이 조화로운 글을 낳을 수 있다는 말 역시 수필문학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박종희 작가는 생활과 글을 조화시키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데다가 기교보다는
진실성에 초점을 맞추는 솜씨를 돋보인다.
그녀는 이미 서울시 음식문화개선 전국 수필공모전 대상 수상(2003), 시흥전국문학상 수상(2007), 광주김치문화축제 스토리텔링상 수상(2009), 올해의 여성문학상 수상(2010)이란 상복 많은 작가로 지반을 굳히고 있다. 상복이 많다는 건 어폐가 있는 말로 실은 문학적 재능이 탁월하다는 의미의 변용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공로상이 아닌 현상공모에 이만한 수상 경력은 흔하지 않다.
<제사는 그리운 사람이 지내야 한다.>라는 작품은 서울시 음식문화개선 전국 수필공모전 대상 수상작이다.
추석날 시아버님과 시숙의 제사상을 소재로 한 이 글은 “아버님께서 가시기 며칠 전부터 통 식사를 못하시더니 갑자기 광어회와 명란젓이 드시고 싶다”고 하던 절절한 기억으로 제사상에다 그걸 올렸다가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제사상에 누가 회를 올리고 젓갈을 올리고 삶은 닭도 없이 갈비찜을 올리느냐며 드러내놓고 역정을 내셨다.”
범상한 소재면서도 글 속에 따뜻한 정감이 스며있어 결국은 시댁 식구들이 작가 나름의 제사상 차리기를 수긍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작가는 중언부언 않은 채 진솔성으로 생략한 채 결말을 예상한대로 끝맺는다. 가족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주장대로 제사상을 개편해 내는 슬기야말로 박종희 글쓰기의 비법에 다름 아니다.
시흥전국문학상 수상작인 <가리개>는 제목 그대로 어떤 사물이나 관계를 가리는 역할을 하는 걸 지칭하는데, 이런 보통명사가 박종희의 글에 대입되면 슬그머니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변한다.
가리개는 물건을 가리거나 칸을 막는 역할을 하지만 혼자서는 절대로 빛나지 않는다. 놓일 자리에 맞게 놓일 때에야 비로소 빛이 난다. 가리개 하나로 회사 구내식당이 고급 레스토랑처럼 우아하게 바뀌었듯이, 내 옆에 있는 보석 같은 가리개인 남편 때문에 나는 늘 빛이 난다. 그런 멋진 가리개가 쓰러지지 않도록 나도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야겠다.
<가리개>
이렇듯 어떤 사물을 인간으로 대치시키는 건 문학적 형상화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의 한 과정인데, 박종희 작가는 이 점에서는 단연 돋보인다.
2. 매개물을 통한 인간 관찰
올해의 여성문학상 수상작인 <뚜껑>은 이런 기법이 가장 두드러지게 장치한 작품의 하나라고 하겠다.
"행운권이 숨어 있는 음료수 한 상자"를 선물로 받고서 행운권에 당첨될 경우와 낙방의 경우, 그리고 뚜껑이 지닌 인생살이에서의 여러 의미들 등등을 엮어나가는 솜씨가 이미 능숙한 경지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행운권이 숨어 있는 음료수 한 상자가 선물로 들어왔다. 행운권에 당첨되면 전자수첩, 그리고 1등은 외국여행권도 준다 하니 구미가 당겼다. 10병씩 10통이 담겨서 100병이나 되는데, 음료를 놓고 고민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우매한 일에 목숨 걸지 말라며 핀잔을 준다."
이렇게 서두를 뗀 이 작품은 설레는 마음으로 첫 번째 뚜껑을 따자 "나를 향해 ‘씩’ 웃는 글자는 ‘꽝, 다음 기회에’라고 쓰여 있었다."는 표현에서 독자를 사로잡는다. 여기서 있는 그대로를 묘사하는 "꽝, 다음 기회에"라는 표현은 누구나 공유하는 대목이지만 그 앞에 "나를 향해 씩 웃는"이란 수식어는 바로 작가만의 독창적인 특허권에 속한다. 이런 작가 고유의 특허권이 많을수록 좋은 작품이다.
괜히 뚜껑을 따버려 음료수조차 못 먹도록 김 빼지 말라는 남편의 충고를 무시한 채 "설마 100 병중에 하나는 걸리겠지 싶어 아예 한통을 가져다가 차례대로" 다 따는 장면에서는 이 작가가 지닌 투지와 화끈함이 엿보이는데, 그것도 모자라 "행운권 때문에 음료수만 30병 더 사들인 꼴"에 까지 이르는 걸 보고는 이건 너무 심하다 싶으면서도 그 적극성과 능동성에 은근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이런 유별성이 없다면 아마 이 글은 얼마나 싱거워질까. 건조한 일상을 풍요롭게 변모시켜 주는 요인은 바로 이런 꼬투리 만들기일 것이며, 이게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단초가 된다.
그렇게 130병을 잃고서야 이 작가는 뚜껑의 철학에 이르게 된다.
"뚜껑은 외부의 유해 물질로부터 내용물을 보호하지만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며 맛을 보존하기도 한다."는 과학적인 해석은 이 작가가 겉보기와 똑 같이 무척 냉철한 측면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게 뚜껑에 대한 기능적인 설명을 하고서야 작가는 이 소재를 통하여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으로 돌입한다.
그러고 보면 모든 물건에 뚜껑은 사람의 입과 같다. 뚜껑을 여는 일은 물건의 입을 여는 일이다. 물건
의 뚜껑처럼 사람의 입을 여닫을 때에도 늘
조심해야 한다. 뚜껑이 제품의 맛을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면, 사람의 입은 자신의 품위와 인격을 높여준
다.<뚜껑>
이 단계에 이르면서 글은 한껏 고무된다.
"제 몸에 꼭 맞는 뚜껑처럼 사람의 입도 좋은 말만 하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입으로 하는 칭찬은 사람을 기쁘게 만들고, 무엇보다도 귀는 조근조근 입이 해주는 칭찬을 제일 좋아한다. 입으로 산삼을 먹는 것보다, 귀로 먹는 보약과 같은 것이 입이 해주는 좋은 말이다."
이어 작가는 "거울을 보며 다물어져 있는 입술을 들여다본다. 이제껏 내 입은 어떤 역할을 하며 살아왔을까. 살면서 입으로 한 실수 때문에 뼈저리게 후회했던 일이 나에게도 있다."면서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다가 "나이가 들어도 뻔뻔해 지지 않고, 거칠어 지지 않는 입으로 살고 싶다. 숙성을 잘 시켜 좋은 제품을 만들어 주는 뚜껑처럼, 내 입도 마음을 잘 다스려 얼굴에 담긴 이미지와 조화를 잘 이루도록 살아야겠다."고 끝맺는다.
참 좋은 글로 그 기법은 <가리개>와 한 항렬자에 든다.
그러나 한 마디 추가한다면 그 뒷부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문제이다. "이제껏 내 입은 어떤 역할을 하며 살아왔을까."라면서 반사경을 자신에게로 돌려 "간암으로 투병 중에 계시던 아버님께 서운한 말씀을 드린 것이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한이 된다."는 자책으로 옮겨가는데, 이런 대목이 요즘 한국 주부 표 수필의 한 전형이다. 수필을 통하여 자신의 삶과 내면을 드러내야 한다는 점에서는 권장할만한 대목이기도 하지만 수필의 완성미와 독립성을 위해서는 사족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대목을 잘라버리느냐 붙이느냐는 문제는 작가의식이 좌우한다.
광주김치문화축제 스토리텔링 수상작인 <어머니 김치와 며느리 양념>은 김치란 매개물을 통한 인간관계의 이해와 소통의 원활을 이룬다는 내용이다. 그런 경지에 이르기까지 어찌 평탄했겠는가.
“어머니와 내가 어우러져 알맞게 간이 맞는 김치가 된 것도 거저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때로는 고춧가루가 매워 돌아서서 눈물도 흘리고, 소태처럼 짠 시집살이에 각을 세우던 날도 많았다.”는 구절이 담아내는 축약 법은 고초당초 맵다한들 시집살이보다 더 할 소냐? 라는 전통적인 시집살이 민요의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이 만한 수상작을 든든한 배경으로 가진 박종희 작가이고 보니 자못 기대가 적지 않다.
3. 글쓰기란 마법의 묘약
이렇게 수상경력이 짱짱한 박종희에게 글쓰기란 “마법의 묘약”같다고 표현된다. 여기서 묘약이란 “삶에 지쳐 사는 것이 막막해질 때 묘약처럼 내 마음을 치유”해 줄 수 있는 수련의 경지를 의미한다.
글을 쓰는 동안은 산비탈에 외롭게 서 있는 작은 들꽃 하나에도 따스함을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 나만의 향기를 가진 언어로 일상에서의 아름다움을 글로 전염시키고 싶어 배회하던 시간이 많이 길어진 것 같다.
<책머리에>
학창시절부터 문학 전집을 끼고 새벽 기차를 타고 백일장을 다니다가 트로피를 안게 되면 작가라도 된 듯이 가슴 뿌듯했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박종희 작가는 직장생활과 결혼생활 속에서도 “글 쓰는 일은 유일한 탈출구였고 말수 적던 내게 있어 글은 내 속내를 전달하는 매체이기도 했다.”
이유 없이 마음이 소란스럽고 삶이 소태처럼 쓸 때면 내 글쓰기는 오히려 상승곡선을 탔다. 마음이 낳은 얼룩과 상처를 고스란히 원고지에 토해냈다. 그 상처를 다독이고 매만지는 사이 글은 나에게 치유의 손을 내밀었다. <태엽을 감다>
이런 그녀의 집념은 “한때는 상금에 맛 들여 직장생활보다도 글 쓰는 일에 더 빠져 있었다. 그 대가로 해외여행도 많이 다녔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세상 일이 다 그렇듯이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글 쓰는 일이 시들해지기 시작했다.”고 작가는 자가진단을 내리면서도 “내 이름 옆에 붙어 나를 꾸며주는 수필가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도록 에너지를 충전해야겠다. 째깍거리며 초침이 움직이듯 내 두 손도 열심히 자판을 두드릴 그날을 위해 느슨해진 내 삶에 힘차게 태엽을 감아야겠다.”(<태엽을 감다>)는 대목에 이르면 적이 안심하게 된다.
글쓰기란 이 작가에게는 노스탤지어를 자아내는 <옛날 다방>이기도 하고, 일상의 삶에서 <일탈을 꿈꾸며> 모험을 감행할 용기를 주는 음모이기도 하며, “더 나이 들기 전에 머리를 길러보겠다”는 <미장원에서>의 멋 내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는 사람을 만나면 손을 보듯이(수필 <손>) 문학을 통하여 인간을 관찰하는 지혜를 얻는가 하면, <편지>에서처럼 잃어버렸던 추억도 찾으며, 미묘한 심리적인 다양한 스펙트럼의 <잃어버린 빛깔> 찾기도 시도한다.
박종희 작가의 장기인 사람 관찰 글들은 그 다양성에서 흥미를 끈다. 예컨대 <낮은 목소리>는 전화를 통한 목소리만 듣고 만나지도 않았던 한 스님을 뇌세포에 입력한 경우인데, 그냥 단순한 기억에 머문 것이 아니라 시아버지의 종신 때의 저음과 대비시킴으로 써 그 섬세함을 느끼게 만든다. 어떤 사건 전개에서 후반부에 이르러 가족들을 끌어들이는 방법 역시 박종희 수필의 한 전형이 된다. 기법상으로는 좋으나 너무 가족이라는 울타리만 맴돌지 않느냐는 주변의 타박이 나올 법도 하지만 이 점 역시 박종희다운 생활글의 한 규격일 것이다.
<티눈>은 “신발이 직접 닿는 오른쪽 새끼발가락 옆”에 돋아난 티눈을 화두로 삼아서는 3년 전 교통사고로 큰아들을 잃은 시어머니의 가슴에 난 티눈을 연상시키면서 자신의 아픔을 원근법으로 몰아내는데, 역시 후반부에서 가족을 등장시키는 기법의 한 예가 된다.
<구르는 돌>은 박종희의 글 솜씨가 총체적으로 드러난 작품이다.
“회사 들어가는 모퉁이에 터줏대감처럼 골목을 지키는 돌”을 거론하면서 “무심코 밟은 돌에 걸려 아침부터 넘어지고, 지각하는 날엔 성급히 걷다가 부딪혀 발목을 삐끗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길로 다니는 사람 누구도 돌을 빼내려고 하는 이는 없었다.”고 서두를 뗀다. 작가는 이 돌을 예의 장기인 인간세상으로 대치시켜 “살다 보면 손톱 밑에 거스러미처럼 늘 옆에서 신경 쓰이게 하는 것들이 있다.”면서 돌에서 세상이야기로 시선을 전환시킨다. 그러다가 슬그머니 시집살이를 끄집어내더니 “어느새 남편의 성을 가진 사람들은 저만큼 물러나 있고,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성이 달랐던 내가 가권(家權)을 쥐게 된 것이다.”고 선포한다. 이제 서두의 돌과 자신의 처지를 절묘하게 변증법적으로 대비시킨다.
바로 “굴러서 들어온 돌이 박혀 있던 돌을 빼낸다”는 이른바 들어온 며느리가 박혀있던 시댁을 석권하기까지의 전말기가 돌 하나로 풀려진다.
때글때글 구르며 온갖 풍파를 겪을 때마다 모서리가 떨어져 나가 뭉툭해졌지만, 아직 각을 다 버리지 못해 오가는 사람들을 귀찮게 하는 이 돌부리도 언젠가는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무엇이든 영원한 것은 없다. 터무니없이 일복이 많은 나에게 젊어 고생하면 나중이 좋다고 하시던 친정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난다.
당장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내 자리를 내쳤다면 나는 지금쯤 어디에 서 있을까. 돌이 자갈이 되고 모래가 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듯이 순간순간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더 단단해지고 성숙해진다는 것을, 내 발목을 붙잡던 돌 때문에 깨닫게 된다.
<구르는 돌>
이런 기법은 박종희에게 이미 익숙하다.
<베란다>는 안주인의 눈 밖에 난 준 창고역할이란 점에서 외할머니의 광으로 연계되다가 종내는 베란다가 인간의 기억장치로 승화되면서 기억과 베란다가 일체화 된다.
살아가다 잠시 필요해 베란다를 뒤져 보듯 내 마음을 방문했을 때, 씁쓸했던 일도 세월과 함께 여과되어 추억이란 소중한 이름으로 디자인되어 있을 것 같다. 기억의 필터에 낀 먼지를 열심히 문질러 닦다 보면, 어느새 내 얼굴도 이슬 머금은 새벽의 화초처럼 윤기를 띠겠지. 이 모두가 내 마음속 추억의 장소를 만나 볼 수 있는 베란다를 벗할 수 있는 덕이 아닐까 싶다.
<베란다>
소도구를 통한 자기 고백을 도입부로 가족이나 친척을 끌어들이는 기법의 작품은 너무도 풍성하다. 고리는 안 바뀌어도 여자 얼굴만 바뀐다는 <반짇고리>는 이내 외할머니의 재봉틀이 등장하고, 복사기를 통해 친정어머니를 연상하는 <복사기>도 이런 계열의 기법에 속한다. 이런 현상은 비단 박종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필문학이 지닌 태생적인 구성법으로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기본 틀인데, 박종희는 이 구조를 탄탄하게 습득한 셈이다.
그래서 이 작가는 비단 가족만을 등장시키는 게 아니라 인간을 관찰하는 지혜의 돋보기로 수필문학을 이끌어간다. 예를 들면 <얼굴>은 제목 그대로 인상과 인간을 직접적으로 다룬 글로 이런 외모를 통한 인간 접근은 <흐뭇한 참외>에서 참외를 통한 인간론으로 나오기도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사용 설명서>는 고장 난 청소기를 통해 사용 설명서의 난삽함, 여기서 인간의 사용 설명서로 승화하는 기발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외모에서 내면으로의 인간의 기능론을 관찰토록 만든다. 그 기능론적인 인간 분석은 도자기 공방에서의 작업을 통한 인생론을 그린 <그릇>이나, 쓰임새 많은 인간론을 주장한 <아스피린 같은 사람>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런 달콤한 인간관계만 있는 게 아니라 불신과 손해를 당하는 세계도 있음을 작가는 <재식거리>에서 보여주며,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에서는 남편 지인의 죽음을 통한 인생론의 허망함도 제시한다.
4. 성과와 기대
이런저런 인간상들 속에서도 박종희 수필에 가장 빈도수가 높은 인물은 단연 가족들이다. <복사>와 <엄마의 갱년기>가 친정어머니를, <연장통>과 <아버지의 가방>이 아버지를 다룬 글이며, <훈장>과 <애증의 강>은 시부모를 다룬 글이다. 이 중 특히 <훈장>은 자신의 입술 부르트기를 통해 시아버지의 화랑무공훈장을 타기까지의 삶의 상처를 보듬어내는 마음씀씀이가 아름답게 부조(浮彫)된다.
<산타의 명퇴>, <탈>, <술 한 잔 할까요?>, <사진> 등이 핵가족(남편, 딸)을 다룬 글들이며, <빈 집>, <라면 한 그릇> 등에는 부부의 삶이 잘 직조되어 나타난다. 특히 <잔소리가 늘어나는 여자>와 <보험증서>는 작가의 슬기로운 가정생활 철학이 촘촘하게 누비 된 짜임새 있는 가정수필이다. 자신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가정을 장악해 들어가는 과정을 애교스럽게 그린 게 <잔소리가 늘어나는 여자>이고, 보험증서를 챙겨보다가 자신이 영구보험으로 든 남편을 거론하는 기발성을 살짝 드러낸 게 <보험증서>이다.
작가는 영원히 자신을 고백하는 참회자이다. 당연히 이 작가도 자신의 성장기에 대한 편린들을 털어놓는다. 야금야금 꺼내먹다 보니 점점 쭈그러드는 콩 자루를 통하여 어린 시절의 추억담을 펼쳐주는 게 <자루>이고, 큰고모 집의 소를 화두로 나중에는 찜질방의 황소 그림으로 비화하는 풍성한 입담의 <워낭소리>도 작가의 조용하면서도 관찰력 강한 성장기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친정 가는 길에 탔던 기차 여행담인 <무인역>이나, 20대 때 돈 잃은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희사했던 돈의 아까움보다는 그 따스한 마음씨가 돋보이는 <젊은 날의 초상>도 작가 자신의 옆모습을 잘 드러낸다.
박종희에게는 단독으로 처음 내는 이 수필입이 늦은 걸음마지만 이미 탄탄한 기반 위에서 이뤄지는 창작 활동이기에 그 전도는 실로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축하드리며 글을 통해 보다 많은 행운이 내리기를 빈다.
임헌영 / 문학평론가
첫댓글 이 글을 읽고 나니 선생님을 오랫동안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친밀감이 듭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태풍이 지나가면 완연한 가을이 될 것 같아요. 멋진 나날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