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대 성인의 가르침에는 공통점이 있다.
공자는 인(仁), 석가모니는 자비(慈悲), 소크라테스는 진리(眞理)를 예수는 사랑을 가르치셨다.
도움 행동에 대한 고전적인 사회심리학 연구 중 '선한 사마리아인' 연구로 널리 알려진 연구가 있다. 프린스턴대의 연구자 존 달리와 다니엘 뱃슨은 신학대에 재학 중인 예비 성직자들을 대상으로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도록 했다.
이때 설교를 준비하는 한 팀에게는 늦었으니 서둘러서 설교 장소로 빨리 이동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또 다른 팀에게는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천천히 이동하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때마침 설교 장소로 이동하는 길목에는 남루한 차림을 하고 쓰러져 있는 사람이 있었다.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은 연구자와 공모한 연기자이다. 이때 어떤 팀의 사람들이 얼마나 더 곤경에 처해 있는 사람을 도왔을까.
참가자들이 성직자들이고 낯선 사람도 곤경에 빠졌다면 도움을 줘야 한다는 내용의 설교를 준비한 만큼 조건에 상관 없이 많은 이들이 도움을 주었을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는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팀의 사람들은 약 60%가 낯선 이에게 도움을 주었지만, 빨리 이동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10% 정도만 도움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마음이 바쁘고 여유가 없으면 시야가 좁아져 면전(面前)에서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지나치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은 자신의 도덕성이 높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약 90%의 사람들이 자신은 도덕성과 인격에 있어 적어도 평균 이상은 간다고 응답한다. 비슷한 많은 사람이 자신은 남들과 다르게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위의 실험처럼 무심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또한 많은 사람이 선행이라고 하면 거액의 기부나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등 크고 멋진 일들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도움이 필요한 경우는 대부분 작은 관심과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한 경우일 때가 많다.
선행을 실천할 기회가 잘 없다는 생각과 다르게 선행은 작은 친절과 위로를 통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어떠냐고, 잘 지내고 있냐고 묻는 안부와 지금도 잘하고 있다고 하는 작은 응원이 그 사람에게는 그날 하루를 밝혀주는 따스함이 될 수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예수님은 ‘사랑’을 가르치셨다. 그 사랑의 의미는 서로 아끼고 베풀며 따뜻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다.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고 해서 사랑을 실천했다고 할 수 없다. 자신을 사랑하여야 한다.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내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불성설과 같다.
다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겠지만 잠깐씩이라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천천히 주변을 돌아볼 수 있다면 우리의 세상은 조금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