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에 나는 꿈에도 그리던 모국의 품에 안겼다. 이십대 중반에 이민을 와서 삼십여 년만의 귀환이었다. 그 사이에 잠깐씩 방문한 적은 있었지만 아내와 함께 살려고 돌아간 것은 처음이었다.
살던 곳은 수지였는데 새로 생긴 동네인데도 무슨 이유인지 길이 꼬불꼬불 엉켜있었고 언덕을 따라 고층아파트가 줄지어있는 동네였다. 마을버스로 약 15분 거리에 죽전역이 있고 집에서 약 십분을 걸어가면 서울 도심으로 들어가는 광역버스가 있어서 비교적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기가 어렵지 않았다.
가장 자주 만나고 반가웠던 친구들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동창들이었다. 어릴 적 친구 한 녀석은 나의 걸음걸이와 말투 그리고 성격까지 기억을 해주었다. 그것은 마치 잃어버렸던 나의 모습을 찾는듯한 고마움과 따뜻함 자체였다. 어릴 적 아이들을 만나면 무언지 모르는 연민과 우수에 빠진다. 그것은 세월을 향한 아쉬움이며 무한한 변화와 가능성의 사라짐에 대한 슬픔이기도 하다.
중학교 동창 셋을 만나는 곳은 종로나 홍은동 근처의 기원이었다. 서로 돌아가며 바둑을 서너판을 두면 해가 떨어진다. 그러면 우리는 근처의 탁구장에 가서 어릴 적 우열이 지금에도 변함없음에 놀랜다. 물론 마지막 행선지는 싱싱한 활어횟집이나 근처 맛집이다. 소주를 한 두 병 기울이며 우리의 살아온 인생을 서로 나누고 앞으로 살아갈 방식을 주절거렸다.
당시만 해도 어머니의 치매는 초기수준이었는데 건강보험공단에서 치매판정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오십대 후반이라는 나의 나이가 애매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며 미군 군속일이나 친구가 대표로 있는 씨니어케어 단체 등을 시도했지만 그 어디에도 직장을 얻을 수는 없었다. 아직 일을 완전히 놓기에는 이르지만 한국사회 어디에도 나를 쓸모있어 하는 곳은 없었다.
한국에서 사는 동안 또 하나의 기쁨은 역이민카페 회원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글로만 대하던 듀크님 아톰님 전영관님 청하님 등 대충 생각을 해도 약 스무 분 정도를 만났다. 이상한 것은 처음 만나도 마치 오랜 친척을 만나듯 낯설지 않고 쉽게 마음이 열리는 것었다. 어떻게 보면 어릴 적 친구들 보다도 더욱 서로 관심사와 나눌 이야기가 풍성했다.
미국에 돌아오면서는 살던 아파트에 여름에 즐겨 입던 옷과 새로 선물을 받아 한번도 신어보지 못한 등산화를 옷장과 신장에 놓아두고 왔다. 그때의 생각은 미국으로 돌아와 아틀란타로 이사를 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벌써 오년이 지났다. 그때는 메르스 때문에 한동안 거리가 한산했는데 지금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세상이 얼어붙었다.
나는 왜 다시 한국으로 가지 않았을까. 첫번째는 내가 살고있는 이곳이 너무 좋기때문이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건강과 가족이지만 은퇴자에게 특히 중요한 것은 아내와 친구가 추가가 된다. 우선 아내가 이곳의 생활을 아주 즐기는 중이다. 집에서 거의 갇혀서 지내는 지금도 혼자서 그림을 그린다, 영어를 배운다, 어머니들을 돌본다, 정원을 가꾼다 등으로 그동안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지낸다. 그에게 한국이야기를 하면 예전과 달리 눈빛이 반짝이지 않는다.
나 역시 부동산 일과 주식에 빠지면서 나 나름의 소일거리를 찾았다. 부동산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경제적 사회적 상황을 들여다보고 나름의 도움을 줄 수가 있어서 즐겁다. 그 대상이 팔십대의 한국사람으로부터 사십대의 아프리카 출신 혹은 삼십대의 이민 이세들까지 다양해서 나의 시각이 넓어짐을 느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시대를 함께 살아오고 같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경험한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그런데 지난 두달을 지내는 동안 다시 한국의 바닷가에 살아볼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프로를 보면 바닷가나 섬 이야기만 나오면 그 풍성한 먹거리와 역동적인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보면 당장이라도 달려가고싶다.
세상은 또 어떻게 변할까. 9.11이 우리의 생활양식을 바꾸어놓았다면 이번 사태는 우리에게 어떤 세상을 선물할까. 사람들은 서로 접촉을 최소화하면서 디지탈로의 변화가 가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돌아갈 아날로그의 고향이 있고 모국이 있다. 나의 두고온 과거가 나를 끊임없이 손짓을 하며 부른다. 태어난 냇가로 회귀하는 연어와도 같이 나의 마음은 벌써 서울의 남산을 제주의 중문시장을 헤메고있다.
05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