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로봇청소기라도 해도

[문정]

아무리 로봇청소기라도 해도

                                                                                                                   -김견남-

오랜만에 온 손녀딸을 재우러 방으로 들어갔다.

쉽게 잠들지 않는 아기를 겨우 재우고 거실로 나왔을 때 난 경악했다

방문을 여는데 혹시나 했던 예감이 믿을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졌다

방에 들어가기 전 나는 거실에 로봇청소기를 돌려놓고 들어갔었다.

손녀가 있을 때 로봇청소기를 돌리면 손녀는 그걸 무슨 킥보드인 줄 알고

올라타려다 넘어지기 일쑤라 아기가 자는 동안 조용히 거실을 청소해두려는 의도였다.

청소기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고 거실에는 애완견 쪼리와 베라만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 벌어진 참극은 눈뜨고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거실 바닥 한가운데 두 마리 중 한 마리의 개가 똥을 싸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로봇 청소기는 과감하게 그곳을 헤치며 지나갔고

청소기에 붙은 걸레에는 그것이 사정없이 묻혔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로봇 청소기는 그것이 묻은 걸레를 돌리며 거실 바닥 여기저기를 샅샅이 누비고 다녔다.

눈앞이 아찔했다.

마룻장으로 되어있는 거실 바닥은 온통 누런 로션을 발라 놓은 듯 똥 빛으로 반득거렸고

로봇청소기는 그것을 더 넓게 발라대고 있었다.

청소기를 잡아야 전원을 끌 수 있는데 청소기를 잡으려면 그 똥 바닥을 밟고 지나야 했다.

정말 울고 싶었다.

발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한참을 주저하다가 결국 까치발로 조심스레

똥이 퍼진 구역을 밟고 가서 청소기를 잡아 전원을 껐다.

아~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는 말은 그런 상황에서 나오는 것 같다.

숨을 고르며 사방을 둘러봤다.

세상에 이렇게 더러운 광경을 본 건 처음인 것 같다. 

청소기를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나는

물티슈와 걸레를 집어 들고 바닥부터 닦기 시작했다.

거실 바닥에 발라진 그것을 닦아내는 건 차라리 쉬운 일이었다.

문제는 청소기였다.

그 틈새마다 얇게 끼어 있는 똥을 어떻게 다 닦아내야 할지 막막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비싼 청소기를 버리자니 너무 아깝고 그렇다고 닦아서 쓰자니

그 끔찍한 냄새와 더러움이 나를 미치게 했다.

그러나 오래 망설일 시간이 없다

언제 아기가 깨어서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마음이 다급해졌다.

나의 행동은 빠르게 움직였다.

어떻게 닦을 것인가.

그냥 닦아서 될 일이 아니었다.

그 실처럼 아니 실보다 더 얇은 청소기 바닥 사이사이 낀 그것을 어떻게 닦아내느냐 말이다.

그러나 해야 했다. 

무작정 닦을 수도 없는 틈새. 물을 쓸 수 없으니 더 환장할 것 같다.

결국 돋보기를 꺼내 쓰고 이쑤시개와 바늘로 하나하나 틈새에 낀 그것을 파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는 끊임없이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팔은 저려오고 속은 울렁거렸다.

매 순간마다 청소기를 버려야 하나 고민하면서도 그럴 수 없는 현실에 한숨만 내쉬었다.

청소가 끝났을 때쯤 나는 거의 녹초가 되었다.

방금 겪은 일들을 다시 떠올리니 울컥한 감정이 치밀었다.

조금 편하게 살자고 로봇 청소기를 사용했다가 안 그래도 퇴행성 관절염으로 고생하던

내 무르팍은 작살이 났다.

마음 같아서는 싹 다 패대기쳐버리고 싶었지만,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고가의 청소기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나는 쪼그리고 앉아 아기가 깨서 나올 때까지 닦고 또 닦았다.

지금도 로봇 청소기를 보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긴 하지만 성능이 우수하고

편리한 청소기와 동행은 계속 할 생각이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청소기를 돌릴 때 애완견이 또다시 그런 실수를 못하도록

따로 분리를 해 놓는다는 것이다.

그날의 기억을 지우며 청소기는 묵묵히 돌아가고 있다.

[능소화]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고가의 청소기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
이 부분도 조금 더 고민해 보세요 " 예의" 란 말이 거슬려요

[문정]

여기서 '예의'는 일부러 '예의’라는 표현을 써서 현실적인 마음과 감정을 엇박자로 표현해 본 거예요.
청소기를 버리고 싶지만, 비싸게 산 게 아까워서 어쩔 수 없이 계속 쓰는 상황에서
물건에도 일종의 ‘예의’를 지킨다는 표현을 넣어 재미를 더하려 했어요.
저는 문장의 어색함이 오히려 위와 같은 상황을 더 잘 드러내 줄 거라 생각해요.

[능소화]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