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지 마라,
아프면 안돼," 수 없이 되뇌입니다.
제법 굵어지는 빗줄기 속을 광진교(廣津橋, 광나루다리)를 걷고 있습니다. 광진교는 강동구 천호동과 광진구 광장동을 이어주고 있는 한강 다리입니다. 서울의 한강 다리는 모두 서른한개이며 그 중의 하나입니다. 어제밤부터 내리는 비가 오늘 아침에도 계속 내리고 있습니다.
산에는 진달래 목련 산수유 벚꽃 그리고 패랭이꽃 더하여 이름 모르는 온갖 꽃들이 활짝 피었습니다. 이들 꽃들에게는 비의 고마움이 더 이상 필요 없을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리는 비는 왜 내리는지 모르겠군요.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한 왜 무엇 때문에 하나님은 비를 주시는지 묻습니다. 대답은 영영 없습니다. 그냥 어느 때든지 겨울 여름 봄 가을 계절을 가리지 않고 내립니다. 이 세상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며 진실입니다. 하다 못해 견공(犬公)도 여타 짐승들도 비 내리는 것을 감지하고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만의 하나 만약에 비가 없으면 이 지구상 생물체는 씨알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오늘의 나도 아무도 없는 황량한 사막 그 자체일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오늘 따라 나에게는 비가 내리는 이유를 알아야 하며 묻고 싶은지를 묻고 싶습니다. 갑자기 바보 멍청이가 되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비가 싫어서도 아니요 귀찮아서도 아니요 신발이 젖어 옴이 싫어서도 더욱 아닌가 봅니다. 그저 오늘 아침 나의 마음은 비에 젖은 느낌입니다. 그렇다고 가슴이 아리거나 시리지도 아프지도 저며오지도 않습니다. 어딘가 모를 허전함이 덧 없음이 내 몸을 회오리 바람에 휘감싸 버린 그런 느낌입니다.
나에게 묻고 있습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냐고 어떤 것이 더 필요하냐고 말입니다. 의식주를 초월하는 경제적인 풍요로움, 사회적인 지위와 명망, 자식들에 대한 기대감, 종교에 대한 배타심, 정치에 대한 불신, 한반도의 자유와 평화에 대한 위기감, 친구들의 유대 관계 등등 모든 것을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나의 대답은 전혀 아니 옳시다 입니다.
어제 밤부터 외손주 녀석이 구토와 고열로 시달렸습니다. 지금 일곱 살로 유치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항상 까불고 잠시도 가만히 있는 법이 없습니다. 한글 뿐 아니라 웬만한 한문과 영어 단어도 제법 주절대는 영악(靈惡)한 녀석입니다. 어린 아이 과학책을 비롯한 만화 캐릭터 장난감에 능숙한 놈입니다. 밥도 모든 음식도 가림이 없이 잘 먹습니다. 단지 계란 노른자는 퍽퍽해서 싫어 합니다. 팥이 들어 있는 붕어빵 팥빵도 멀리합니다. 자기 나이 또래에 비하면 신장도 큰 편이고 형 오빠처럼 보입니다.
이런 손주 놈이 탈이 생긴 것입니다. 개인 의원에서 처방전과 의뢰서 한 장 받았습니다. 처방전에는 유산균 제제와 트리메부틴(포리부틴)이라는 성분이 있습니다. 위와 장관 기능 조절제로 소화제 역할도 하는 약입니다. 내가 약국에서 준비해 갖고 온 포리부틴 드라이 시럽도 주머니에 있습니다. 의원 문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옵니다. 아랫배가 아프다며 찡얼댑니다. 먹은 것이라곤 없는데 멀건 물만 토해냅니다. 주머니에 있는 약은 먹여 볼 겨를이 없습니다. 걱정이 앞서고 혹여 충수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119 구급차를 부르려다가 오히려 번거러운 생각이 듭니다. 녀석과 나는 서둘러 택시를 탑니다. 이 녀석의 외삼촌과 외숙모가 근무하고 있는 대학병원으로 향합니다. 택시가 구의동에서 강변북로로 진입하여 신촌으로 내닫습니다. 카톡으로 아들 며느리에게 지금 상황을 알립니다. 근무 중인 딸과 사위에게도 보냅니다. 걱정 말고 근무나 잘하고 있으라고 안심시킵니다. 아플 때면 언제나 우리 가족은 자식들이 대학병원 의사로 근무하는 곳으로 갑니다. 그래야 마음이 놓이게 마련이니까 말입니다.
강변북로에는 한낮인데도 차량들이 차도를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옆에 손주는 얼굴을 찡그리며 괴로워 합니다. 이마에는 해열시키는 밴드를 붙이고 있습니다. 몸을 나에게 기대게 하고 수시로 이마를 짚어 봅니다. 열은 그리 심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혹시나 토할까봐 신경이 집중됩니다.
응급실로 서둘러 들어갑니다. 접수를 하고 소아 응급환자 대기실에서 기다립니다. 응급실 시계가 정오 열두 시를 조금 넘기고 있습니다. 두살 정도의 영아가 계속 울어댑니다. 이십대 후반 정도 되는 엄마가 안절 부절입니다. 안아 주기도 하고 업어 주기도 합니다. 우유도 입에 갖다 대어 봅니다. 휠체어에 억지로 앉히고 안전 벨트로 채웁니다. 그럴수록 소용이 없습니다. 온 몸을 뒤틀며 계속 울어댑니다. 발등에는 수액제 바늘이 꽂혀 있습니다. 엄마는 이마에 땀이 흐르고 지친 표정입니다.
다섯살 쯤이나 되어 보이는 또 다른 유아는 산소 호흡기에 계속 매달려 있습니다. 오른팔이 부러져서 개인 의원에서 응급 처치만 받고 통증을 호소하는 초등학생도 있습니다. 침대에는 다운 증후군 환자로 보이는 서너살 정도의 환아(患兒)가 있습니다. 손등에는 수액제 바늘이 고정되어 있습니다. 코에는 산소와 연결된 하얀 링겔줄이 부착되어 있습니다. 그렁 그렁하는 가래가 기도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방금이라도 숨이 막힐 것 같은 상황입니다. 함께 침대에 있는 할머니에게 어렵게 묻습니다. 다섯살 되는 외손자라고 합니다. 런닝 셔츠만 걸친 할머니 온 몸에는 파스로 도배가 되어 있습니다. 수시로 손주를 부등켜 안고 등어리만 두드려 주는게 고작입니다. 피로에 지친 할머니 눈은 충혈되어 있고 눈가에는 눈물이 서립니다. 태여나서 부터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답니다. 옆에서 잠시 지켜보는 내 마음도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소아응급 의학과 의사선생님을 대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 집니다. 최 * * 교수님 조카냐고 묻습니다. 연락 받은 아들이 응급실에 들어 옵니다. 한층 마음이 든든한 느낌입니다. 내 손주 손등에도 수액제를 꽂고 있습니다. 방울 방울 한방울 씩 맑은 수액제가 똑똑 떨어 집니다. 손주 녀석 몸속으로 세포속 까지 깊숙이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생명의 원천수처럼 느껴집니다. 갈증을 호소하던 손주가 수액제 덕분으로 어느 정도 해갈이 됩니다.
할아버지 스마트폰을 달라고 합니다. 녀석이 즐겨 보는 “T****”라는 만화 동영상에 빠져듭니다. 한 동안은 침대에 누운채로 내가 폰을 들고서 보여 달랍니다. 딸에게서 걸려 오는 전화도 못 받았습니다. 간호사가 부르는 이 녀석의 이름 소리도 흘렸습니다.
초음파 검사는 뒷쪽에 어린이 병원으로 건너 가야 합니다. 어른들 응급실을 거쳐야 합니다. 모든 침대는 환자들로 채워지고 통로 옆에 간이 침대에도 누워 있습니다. 성인 환자들이 있는 응급실은 조용하다 못해 무거운 적막감 마저 듭니다. 가끔 끌어 오르는 가래를 뱉어 내는 끈적한 기침 소리만이 들립니다. 바삐 움직이는 의료진들의 모습만이 병원이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얼굴이 수척하고 창백한 모습의 할머니 환자, 가냘픈 숨소리와 가느다란 신음 소리뿐으로 허공만 응시하고 있는 환자, 갖가지 증상의 응급환자임을 알립니다. 오히려 울음 소리로 가득찬 소아 응급실이 생동감으로 활기가 넘치는 것 같습니다. 밖에는 앰블란스의 다급한 경보음으로 소란스럽습니다. 응급실 문이 열리며 구급대원들이 황급히 들어옵니다. 산소마스크를 씌운 환자 침대도 눈에 들어옵니다.
손주의 손을 잡고 수액제를 매달은 받침대를 밀면서 서둘러 빠져 나옵니다. 어린이 병원에 있는 초음파실로 들어 갑니다. 손주 녀석이 들어 누워 있는 침대 위의 천장에도 만화 동영상이 나옵니다. 역시 어린이 병원답습니다. 초음파 기계로 복부 곳곳을 눌러 가면서 검사합니다. 일일이 아픈 곳을 물어 보며 확인 합니다. 손주의 눈망울은 만화 화면에 쏠려 있습니다. 누르는 곳 마다 아프지 않다는 대답입니다. 모든 검사를 받았습니다. 혈액, 심전도, X-RAY, 소변, 초음파 등을 여기 저기에서 서너 시간은 족히 걸렸습니다. 오전 12시 조금 넘어서 도착하여 오후 4시가 다 되어 끝이 납니다. 검사 결과 모든 것이 정상이랍니다. 단지 염증 수치가 조금 있지만 별 문제는 없을 것이랍니다.
미리 아들에게서 결과는 알고 있었지만 너무나 홀가분합니다.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 기분입니다. 응급실을 찾은 응급환자는 처방전으로 원내에서 약을 받아야 합니다. 딸에게 사위에게 아내에게 기분 좋은 결과를 알려줍니다. 다시 택시에 오르며 묻습니다. “ 후야, 무엇이 먹고 싶으냐”고 “ 응, 피자 ”돌아온 즉답입니다. “ 후야, 너 하루 종일 굶고 토하고 해서 피자는 오늘 안된다, 대신 할아버지가 피자 사 먹을 만큼의 돈을 여기 약 있는 봉투에 넣어 줄테니 나중에 엄마보고 사달라 해라, 알았지,” “ 알았어,”하는 예상외의 대답입니다.
강변북로에는 오전 보다 더 많은 차량들의 홍수입니다. 퇴근 시간은 아직 멀은 것 같은데 말입니다. 택시요금도 오전 갈 때보다 더 많게 이만 이천 몇백원 입니다. 또 한번 토했다는 전화가 밤 아홉시 경에 딸로부터 제 엄마에게 옵니다. 지금은 잠이 들었답니다. 딸에게 혹시 밤에 다시 애가 열이 심하게 오르면 전화 하라고 당부합니다.
하루 밤을 설치고 오늘 아침 딸네 집으로 달려갑니다. 이온 음료수 몇병 사들고 갑니다. 멀쩡하게도 할머니가 차려준 솥올치 끓인 것을 한 그릇 먹었습니다. 관장을 해 주려던 마음을 바꾸고 네 스스로 볼일을 봐야 한다는 말을 해 줍니다. 아침을 먹고 가라는 아내의 말을 삼키고 현관을 나섭니다. 항상 다니던 한강 공원 길로 접어듭니다.
간밤에 내리던 빗 방울이 제법 굵어지고 있습니다. 바람에 우산이 불안정합니다. 한강 물 위에는 어제처럼 오늘도 원앙 한쌍과 물오리와 흰색 왜가리가 나래를 폅니다. 그 중에도 눈에 띄는 그림이 보입니다. 한 마리의 어미 오리 뒤를 좇아서 대여섯 마리의 조그만 새끼들이 줄을 지어 따라갑니다. 가끔 자맥질도 하면서 놓칠새라 부지런히 엄마 뒤를 따릅니다.
팔당 쪽 상류에는 구리암사 대교와 강동대교가 우무(雨霧)에 희뿌였게 시야에 들어 옵니다. 오른 편으로는 올림픽대교와 잠실 롯데타워가 비구름에 떠 있습니다. 광진교를 걸어서 천호동에 있는 약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은 코스를 갑니다.
어제 밤에 교육방송 TV에서 인문학의 중용에 대한 특강이 떠오릅니다. 사랑과 가정에 대한 내용입니다. 사랑 중에 가장 순수한 사랑은 짝사랑입니다. 아무 조건이 없는 자신만이 느끼는 아름답고 숭고한 요조숙녀(窈窕淑女)와 같은 사랑입니다. 그냥 혼자만이 느끼며 갈망하는 한 마음에서 솟구치는 생각입니다.
다음은 가정이라는 테마로 들어갑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습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식을 대신하여 죽을 수 있는 존재가 부모입니다. 모든 것을 바치고 희생을 하여서라도 오로지 자식이 우선입니다. 무조건 주는 끝없이 주고픈 사랑입니다. 자식은 부모 마음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자신이 결혼하고 출가하여 자식을 낳아 기르더라도 알 수 없는 부모의 마음입니다. 한 마디로 조건 없는 가이 없는 오로지 주기만 하는 사랑 자체입니다.
하지만 부모를 무시하고 짓밟아 버리고 학대도 모자라 처참하게 살해를 하기도 하는 세상까지 왔습니다. 자식이 병들어 고생하면 차라리 내가 아픈게 편하다고 합니다. 한 두번도 아니고 자식도 손주들도 어쩌다가 아플 수도 있습니다. 숨 쉬고 살아가는 생명체들은 모두가 어딘가에 결함이 생기고 병마에 시달립니다. 어찌보면 당연하고 삶의 필요악 같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오늘 따라 허탈한 마음은 손자놈에게 별로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는 미안함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손주 녀석이 오늘은 무사히 예전과 같이 신나게 뛰어 놀기를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아프지 말라고 아프면 너의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가 슬프다고 말입니다. 더구나 손주 녀석들은 아직 어리고 철이 안들었습니다. 그러니 더욱 부모의 마음을 알 턱이 없습니다.
오늘처럼 비가 추적 추적 내리는 날이면 왜 이리 마음이 허전하고 허탈한 것일까를 전혀 모를 것입니다. 한강 물 위에 줄지어 가고 있는 물오리 가족이 눈에 어른거립니다. 아무 탈없이 행복스러운 가정을 이루고 있는 물오리들은 인간들의 삶의 허탈감은 더 더욱 모를 것입니다.
나에게는 외손주, 친손주가 있습니다. 각각 두명 씩입니다. 외손주는 사내 녀석과 계집애입니다. 친손주는 이란성 쌍둥이며 역시 남자 여자 아이입니다. 그런데도 생김새와 성격이 모두 다릅니다. 네 손주가 아직은 모두 유소년(幼少年)들입니다. 할아버지인 나와 할머니인 내 아내에게는 누구나 그러하듯이 금쪽 보다 귀한 보물입니다. 황혼녘에 서 있는 우리에게는 삶의 보람이며 살아가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특별히 해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녀석들이 자라는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볼 수 있으매 행복합니다.
" 아프지 마라, 아프면 안돼, " 고작 이 말만 마음 속으로 되뇌이며 기원할 뿐입니다.
이제 약국 창문 밖에는 내리던 비가 그쳤습니다. 다시는 비가 왜 내리느냐고 무엇 때문에 내리게 하느냐고 묻게 되지 않기를 마음으로 다져봅니다.
2016년 4월 21일 비오다 그친 날 무 무 최 정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