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러 있는 사랑
엄영아
기다리는 동안 줄 곳 흥분된 마음이었다. 제자 윤경이가 우리 부부에게 점심을 대접하겠다며 11시 30분에 호텔로 왔다. 나인트리 호텔 12층 옥상(루프탑)에 있는 "스페이스 오" 식당에서 우린 고급스러운 점심을 먹었다. 머리가 하늘에 닿기라도 할 것 같은 멋진 곳에서 사진도 찍었다. 점심을 끝낸 후 남편을 호텔에 모셔다 놓고 나는 윤경이와 서울공예박물관을 향해 거리로 나섰다.
서울공예박물관은 모든 전시가 다 새롭고 좋았다. 여러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흥미가 진진했다. 관람자는 제2의 작가라는 말이 실감 났다. 작품에 반응하고 나의 스펙트럼으로 바라보며 재해석하다 보니 나무에 장식한 나비작품이 더욱 좋았다. 윤경과 함께라서 더욱 감동스러웠다. 우리는 전시장 전체를 둘러본 뒤 박물관 안 도서실에서 책을 보며 잠시 쉬었다.
박물관을 나와 팔짱을 끼고 인사동 길을 걸어 내려가면서 윤경은 초등학교 6학년 선생으로서 여러 가지 보람되고 힘든 얘기를 나누었다. 윤경이가 착한 마음과 선량함, 온유한 품성을 가진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팔짱을 타고 느껴졌다.
5년 전 우리 부부가 한국에 갔을 때 윤경의 온 가족이 자가용을 몰고 호텔로 와서 우리를 데리고 고급식당 갈비찜으로 점심을 대접하고 즐거운 커피 타임을 가진 적이 있다. 그때도 윤경은 남편과 아이를 먼저 집에 보내고 우리 부부와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샀다. 없는 책은 호텔에서 받을 수 있게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것을 윤경이가 도와주었다. 우리는 서점을 나와 광장시장에 가서 빈대떡도 사 먹고 청계천을 따라 데이트도 하면서 추억을 쌓은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윤경 가족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12년이다. 남편이 회사(기업은행)에서 MBA 과정 석사 학위 취득 대상자로 선발되어 UCI 학생으로 파견되어 공부할 때였다. 윤경은 그때 내가 교회에서 지도하던 "부모양육교실"에 등록하여 12주 코스를 공부하던 제자였다.
윤경이는 남편이 공부를 끝낸 2014년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갔다. 벌써 10년 전 일이다. 윤경은 한국에서 교편을 잡고 최선을 다해 학생들을 사랑으로 가르치고 있다.
윤경의 남편은 요즘 교회 목장부부모임에도 참석하며 집안일도 더 많이 거들어준다고 했다. 중학교 3학년인 큰딸은 중국에서 유학 중이고 둘째는 아직 초등학교 5학년이다.
헤어짐은 늘 낯설다. 섭섭한 마음에 호텔까지 함께 온 윤경과 나는 아쉬움에 어쩔 줄 몰랐다. 너무 짧아 내일 또 봐야만 할 것 같았는데 벌써 6시간이 지나갔다니.
윤경은 헤어지기 전에 내가 예전부터 갖고 싶어 했던 장영희 수필가의 수필집 "내 생에 단 한 번"과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주었다. 안에는 편지와 용돈까지 넣었다. 부모님을 섬기는 예의를 나에게도 지키는 윤경은 정말 요즘 보기 드문 아름다운 사람이다. 언제나 변함없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윤경에게 하나님의 한없는 자비하심이 가득하길 소원했다.
떠나기 전날 전화를 했다. 한국에 온 나를 사랑해 준 것 잊지 못할 거라고, 서로 좋은 소식 주고받으며 또 연락하자고. 혹시 미국 동부에 있는 친정 언니집에 오게 되면 꼭 전화하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삼켰다. 윤경이는 10년 넘어 유대감을 가지고 인연을 지켜온 제자다. 좋아하는 사람과 인연을 맺고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어 가깝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순간순간 그리움이 파도처럼 몰려오는 것을 보면 나는 제자 윤경이를 많이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10/21/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