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희
거실 한 편에 덩그러니 피아노가 놓여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아 벙어리가 된 피아노는 나를 보는것 같아 애잔하다. 삶 속에서 가끔은 내 의지와는 다르게 혼자만의 어둠속에 갇힐 때가 있다. 누군가 뚜껑을 열고 눌러 주기를 바라는 피아노와 나는 왠지 닮았다.
스페인에서의 삶속에서 가끔은 먼 곳을 바라보며 고독을 즐겼다. 그런 날, 그윽한 커피 향에 눈을 돌려 보면, 딸은 어느새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시작한다. 가곡에서 가요로, 찬송가에서 쇼팽으로. 아름다운 곡들이 나를 감싸면 외로움이 저멀리 사라진다. 한 시간 정도 여러 장르를 넘나 들다 마지막 곡은 ‘즉흥 환상곡’으로 연주하며 나를 돌아본다. “엄마, 사랑해! 힘내.” 하며 나를 안아주는 딸은 그렇게 내게 힘이 되어 주었다.
딸이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을 때였다. “수진아! 엄마랑 네 이름 써 보자” 하며 부르면 딸은 언제나 딴 짓을 했다. 성격이 산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아노를 배우면 나아 질 것 같았다. 그 날 배운 것은 집에서 꼭 한 시간 연습 하는 조건으로 시작한 레슨 이었다. 5살 어린 나이지만 집에서도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사립 국민 학교에 다니며 해마다 있는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월광곡 등 어려운 곡을 연주 했다. 나 역시 아이의 틀린 곳을 지적해주며 함께 음악 속에서 살았다.
아들에게도 피아노를 가르치고 싶었지만 여유가 없었다. 아버지와 지하철역에서 만나기로 한 날. 20분이 넘도록 아버지가 안 오셨다. 아들은 지루해 몸을 뒤틀었다. 그때 복권 판매소가 눈에 들어왔다. 주머니에 지폐 한 장이 잡혔다. 왜 그랬을까? 복권 두 장을 처음으로 샀으니. 잊고 있었다. 주말이 지나 월요일. 청소를 하다 문득 생각이 나서 신문을 펼치고 숫자를 맞춰보는데... “어! 맞았네? 2등이네? 어머! 이럴 수도 있구나.” 또 한 장을 꺼내 살펴보았다. “어머머! 어떻게 이럴 수가, 똑같은 2등이네?” 나는 그때 처음 느꼈다.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도 실실 웃음이 나올 수 있다는걸. 그랬다. 바보처럼 나는 웃고 있었다.
그럴 때 제일 생각나는 사람은 남편이었다. 회사에 전화를 하니 자리에 없단다. 메시지를 남기고 다시 청소를 하는데 “띵똥” 벨이 울렸다. 대문을 여니 남편이 서 있었다. 출근하고 한 시간도 안됐는데 왜 왔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이리 와봐“ 하며 도둑질 하듯 남편의 손을 잡아 방으로 끌고 가니 ”아침부터 왜 그래“ 하며 어리둥절 하여 뒷걸음을 친다. 아마도 실실 웃으며 손을 잡아끄는 내 모습이 무언가에 홀린 듯 싶었나보다. 내가 생각해도 낯 설은 내 모습이었다. 헌데 왜 그리 실없이 웃음이 나오는지…”여보, 복권이 2등에 당첨됐다. “ 아침부터 웃기지 말라며 믿지 않는 남편에게 복권 한 장을 주며 신문을 보여주었다. “어! 진짜네. 그래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실실 웃었어?” 나는 또 한 장을 주었다. 장난치지 말라는 남편에게 숫자를 맞춰보라고 했다. “어! 진짜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며칠 후. 동생들을 불러 명동 칼국수 집에 가서 한 턱을 냈다. 남은 돈으로는 아들에게 피아노 레슨을 시킨다고 말했다. 그 돈으로 몇 달이나 시키냐며 남편은 어이없어 했다. 훗날 아들이 결혼 해서 아이와 함께 피아노 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좋다며 레슨을 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아들의 피아노 교습은 일 년이 지난 뒤 끊어야 했다. 한창 아이들과 어울려 뛰어 노는 데 온 힘을 쏟느라 집에서 연습을 게을리 하였다. 10분이 지나면 화장실로, 물 먹으러 간다고 뛰어가며 꾀를 부렸다. 연습을 안 하면 그만 둔다 겁을 주었지만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아무 미련 없이 아들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기초는 배웠으니 됐다며 나도 포기했다.
스페인에는 학교도, 직장도 낮에는 두 시간의 낮잠 시간이 있다. 12시면 모두 집에 가서 쉬었다가 2시에 다시 나간다. 어느 날부터 아들은 집에 오면 피아노 앞으로 달려가 누나의 악보를 펼쳐 피아노를 치곤했다. 감히 베토벤과 쇼팽의 곡들을 말이다. 일 년을 공부한 아이라고 믿을수 없이 열심이었다. 그즈음 딸은 왕립 음악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레슨을 받고 있었다. 피아노에 미쳐있는 아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었다. 아들의 자유곡을 딸의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으며 한 달 가량 연습했다.
딸은 5학년, 아들은 2학년을 기대하며 원서를 냈다. 시험 날. 떨리는 마음으로 아들을 보고 있노라니 심사위원이 함께 들어가도 된다며 내 손을 잡아주었다. 피아노 앞에 앉은 아들은 엄마가 옆에 있음을 알고 웃으며 윙크를 날리고. 나는 눈을 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들었다. 조용히 울리는 피아노 소리는 한 마리의 나비가 춤을 추며 나르듯 아름답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내 아들이 맞아? 쇼팽의 곡을 아름답게 소화하였다. 심사위원들은 모두 만족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며칠 후 결과를 들은 우리는 모두 놀랐다. 딸은 6학년에, 아들은 5학년에 들어가게 되었다. 딸은 한 방 맞은 듯 멍하니 말이 없었다. 동생이 5학년에 합격한 것에 자존심이 상한것였다. 아들에게 음악적 재능이 풍부하다며 심사위원은 말했다.
아들과 둘만 있던 어느 오후. 내가 쓸쓸해 보이는지 커피를 타 주며 아들이 말했다. “엄마! 뭘로 해 줄까?” 무슨 소리인지 몰라 의아해 하는 나에게 “가곡을 먼저 칠까? 찬송가를 칠까?”하며 정색을 하고 물어왔다. 순간 삶의 무게에 눌려 있던 나는 큰 소리로 한참을 웃었다. 마치 하늘을 나는 새가 높이 올라 자유를 느낀 듯. 아들은 누나가 엄마를 위해 연주하던 마음을 기억하고 나를 위로 하고 있었다. 나의 애창곡을 연주 하던 아들이 돌아보며 “엄마! 즉흥 환상곡을 누나만큼 못 치는데 괜찮아?” 묻는다. 연주를 마친 후 피아노를 덮으며 나를 꼭 안아주는 아들이 속삭였다 “엄마! 힘내 사랑해”
피아노를 손에서 놓지 않는 아이들과 달리 나는 피아노를 조금밖에 칠 줄 모른다. 나를 가르치는 딸은 연습 안 하면 그만둘꺼라며 엄마 흉내를 냈다. 몇 번의 과정 속에 이제는 멈춘 상태다. 아이들이 집을 떠나고 피아노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치매에 좋다며 피아노를 치라는 딸의 권유로 다시 두드려 보았지만 게으름 탓에 손을 놓은 지 오래다. 피아노는 내게 함께 놀자며 손짓을 하고 있다. 나의 닫힌 마음처럼 피아노도 숨을 쉴 수 없다며 말한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피아노를 쳐 주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이들이 피아노 음률에 담아 주는 엄마를 향한 사랑도 느껴진다. 삶의 긴 여정 속에 피아노는 가족의 구성원이었다. 스페인에 가서도, 미국에 와서도 제일 먼저 마련한 것은 피아노다. 아이들이 살면서 기쁜 시간이나, 힘든 시간이 오면 피아노를 치며 위로받으면 좋겠다. 은은한 피아노 소리 속에 담긴 엄마의 사랑도 함께 추억하며
나는 정신이 맑을 때 삶 속에서 함께 희로애락을 나눈 벗들과 미리 이별을 하고 싶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나누며 기뻤던 시간속으로 돌아가보고 싶다. “부족한 나를 사랑해주고 함께 걸어와주어 고맙다고, 행여 나로 마음이 아팠다면 미안하다고 살면서 많이 사랑했다고 말하고 싶다. 아이들이 연주하는 쇼팽의 “즉흥 환상곡”을 벗들과 함께 들으며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다.
거실 구석에 말없이 놓여있는 피아노를 조심스레 열어본다. 숨조차 쉴 수 없는 사랑이라면 내려 놓으라고, 빗장을 열고 나와 함께 날아보자고 피아노는 속삭여준다. 더 늦기 전에 피아노와 벗 삼아 아름다운 음률을 타고 훨훨 날아 보리라. 내 안에 있는 나의 행복을 찾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