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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오늘도 하나님을 거룩하게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의 삶과 가정 가운데, 또한 일터 가운데 충만하게 임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십니다.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 표현을 하시고자 독생자 아들을 이 땅에 보내주셨다는 것이죠. 그만큼의 큰 사랑의 표현은 이 세상이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그 사랑의 표현을 받은 자로서 오늘 우리의 마음 가운데 있는 그 사랑의 마음을 담아서 우리 좌우에 계신 분, 앞뒤에 계신 분과 서로 인사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9번째 재앙을 경험했죠. 첫번째부터 순차적으로 9번의 재앙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애굽 왕 바로는 하나님이 여호와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거예요. 만약 바로 왕이 하나님이 여호와라는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말씀 앞에 순종하며 살았을 텐데 하나님이 여호와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결정의 순간 그가 내린 결정은 항상 불순종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불순종의 결과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에게, 또한 그 땅 가운데 재앙으로 임했다는 거예요. 실제 하나님께서 애굽땅에 재앙을 보내신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죠. 성경에 이미 앞서 기록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애굽 왕을 비롯한 애굽 백성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까지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여호와라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 10가지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이 여호와이십니다는 고백을 듣고 싶어 하신 것이죠.
여러분,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자연 재해로, 때로는 개인적 아픔으로, 때로는 관계 속에서, 때로는 이 세상이 허락하신 만물, 아름다운 창조물을 통해서, 때로는 감출 수 없는 행복과 즐거움을 통해서, 때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든 환경 속에서 하나님이 여호와라는 사실을 알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삶의 현장 속에서, 또한 나의 가정과 나의 걸음걸음 걸어가는 그 자리 위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이 여호와라는 사실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 앞서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을 앞두고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말씀을 하십니다. 무려 9번의 재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지 않던 바로에게 이번 10번째 재앙을 통해서는 애굽의 초태생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임을 경고하라고 최후 통첩을 전하라 그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만 말씀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유월절 규례, 무교절 규례를 말씀해 주심으로 인해서 10번째 재앙이 임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가르쳐 주셨다는 것이죠.
그리고 오늘 읽은 본문은 앞서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신 내용을 함축해서 이제는 모세와 아론이 누구에게요? 장로들에게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가르쳐주는 내용이 기록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즉, 애굽의 초태생이 죽임당하는 심판이 임할 때에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고 있다는 것이지요.
더불어서 이 일이 임할 때에 너희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경험했다면 훗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자녀들에게 이것을 잘 가르칠 수 있도록 규례로 지켜라 그렇게 명령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훗날 자손들이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엊그제 많이 들으셨죠. 명절을 통해서 만나 묻게 되거든 여호와께 드리는 유월절 제사인데 여호와께서 애굽 땅을 치실 그때에 우리 이스라엘 집을 넘어가시고 우리를 살려주셨기 때문에 기억하여 드리는 제사라고 가르침을 명령했다는 거예요. 모세로부터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은 그 자리에 엎드려서 하나님께 경배를 합니다. 그리고 돌아가서 모세와 아론이 명한 대로 행하게 되었다는 것이 오늘 본문에 골자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본문은 우리가 계속해서 반복해서 들었기 때문에 잘 알 것이라고 믿고 좀 다른 측면에서 말씀을 전개해 보려고 합니다. 이 본문을 자세히 보시면 전도의 5가지 단계가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로마서 10장 13절에서 15절의 말씀과도 같은 것인데 여러분 먼저 우리가 이 로마서 10장에 있는 말씀을 함께 읽어보시고 오늘 본문과 한번 이렇게 잘 연결해서 제가 말씀을 선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로마서 10장 13절에서 15절 말씀 우리 앞에 화면을 보시고 함께 읽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오.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오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바로 이와 같으니라.
함께 읽은 본문을 여러분 보셔서 아시겠지만 구원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허락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구원을 이루기 위한 분명한 과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또한 발견할 수가 있는 것이죠. 읽으신 로마서 10장의 말씀은 전도의 5단계로 역순으로 소개를 해주고 있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지막 구절부터 역으로 읽어나가셔야 아 이것이 전도의 단계구나라는 것을 알 수가 있죠.
첫번째는 보내심을 받아야 한다는 거예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면 전파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죠.
두번째는 전파함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전파하는 자가 없다면 들을 수가 없다는 것이지
세 번째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듣지 못하고는 절대로 믿음이라는 것이 생겨날 수 없기 때문이죠.
네번째는 믿음입니다. 믿을 때야 비로소 우리의 입술을 열어 하나님을 여호와를 부를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섯번째 부름이에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그 사람이 구원을 얻는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입술을 열어 예수가 나의 구주되심을 날마다 고백하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복음 전파를 위해서 이것이 선순환이 되어질 때 즉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내가 이제는 하나님의 복음 사명자로 부름을 받은 사명자가 되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써 이것이 복음의 확산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보냄, 전파, 들음, 믿음, 부름의 순으로 잘 생각하면서 오늘 본문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보냄을 받았다는 것이죠. 모세는 떨기나무 가운데 임하셨던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애굽 땅으로 보냄을 받게 되었습니다. 자신은 말이 둔하고 혀가 뻣뻣해서 도저히 갈 수가 없습니다는 외면 속에서도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를 통해 그는 그의 발걸음을 애굽을 향해서 가게 되었던 것이지.
그리고 오늘 본문은 10번째 재앙이 임할 때에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보냄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1절 서두에 보시면 모세는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유월절의 규례를 전해주기 위해서 이스라엘 장로들과 대면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구약 성경에 보시면 구원 사역을 위한 사명자로 노아를 부르시기도 하셨고요. 아브라함을 부르시기도 하셨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선지자들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명자로 세워주셨던 것이죠.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12 제자를 부르셔서 그들을 사명자로 세워주셨고 더 나아가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던 바울 그도 부르셔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다는 거예요. 그리고 시대가 흘러 이제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복음을 듣게 하심으로 복음의 사명자로 불러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믿으신다면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깊이 묵상해 보시고 더불어 주신 사명을 위해서 나는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던가 또한 이 사명을 위해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 보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두 번째는 전해야 한다는 것이죠. 모세와 아론이 전해주었던 유월절의 규례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죽음의 재앙이라는 것이 임하는 거예요. 이 재앙 가운데 이 소식은요 생명을 건질 수 있을 복된 소식이었다라는 거예요.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에게 전해주었던 복된 소식의 내용이 기록되어져 있죠. 어린 양을 택해서 유월절 양으로 잡아라 그렇게 말했고요. 우슬초 묶음을 그 그릇에 피에 담긴 것에 적셔서 뿌리라는 거예요.
어디예요? 문인방과 설주에 뿌리라는 것이죠. 그리고 그 집을 떠나지 말고 아침까지 기다려라. 이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복음의 소식이었다. 우리 21절에서 22절 말씀 같이 읽어보실까요?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의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여러분 이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사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소식이었기 때문에 좋은 소식, 복된 소식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라고 말하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들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전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명 중에 사명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내가 사랑하는 가족, 친구와 이웃들이 복음을 듣지 못해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 그처럼 안타까운 일이 어디가 있겠습니까? 바울은 디모데에게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시죠.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때를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 교단의 총회장 목사님이 전도법을 이야기하는데 때때 전도법이래요. 때때 전도법 때를 얻든지 좋은 때이든지 때를 못 얻든지 내 상황이 정말 좋지 않은 때일지라도 어떤 상황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을지라도 복음을 전하는 일은 우리의 사명 마땅히 감당해야 할 사명임을 꼭 기억하고 살아가는 것이 때때 전도이다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16절을 통해서 고백하고 있죠.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으면 내가 부득불 할 일이니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여러분 바울이 왜 복음을 전하는 것에 대해서 부득불할 일이라고 이야기했을까요?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가 된 것은 실제 자신의 의지로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회를 박해하기 위해서 다메섹 도상을 걸어가는 그 자리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주셨고 그의 삶을 새롭게 바꿔주셨기 때문에 어쩌면 강제적인 사명이 된 것이죠.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것은 내가 부득불해야 할 일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요 이 복음 전하는 것이 자랑이 될 수가 없었다고 말하는 거예요. 복음을 위한 헌신과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오히려 자신에게 화가 미칠 것이라는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그의 인생을 다 걸고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말씀처럼 엄중한 명령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우리에게 부탁하신 말씀이잖아요.
마지막 유언 우리가 꼭 이 땅에서 살아가며 믿음으로 살 때 전하며 살기로 소망하면서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라
그렇게 명령했다는 것이죠. 바울은 이 명령의 준엄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면서까지 복음 전하는 일에 매진하였다는 거예요.
자신이 고난을 받더라도 이 일로 복음이 전파된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여러분 이 마음 갖기가 쉽지가 않아요. 그런데 성령께서 그의 마음을 주장하시고 붙으시고 인도하셔서 복음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케 하셨다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러한 사명감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시대는 복음 전하는 것이 꺼려지는 시대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이 복음을 거부해요. 또한 교회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고 영향력도 잃어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와 여러분들이 고백하는 한 가지가 있잖아요. 그게 무엇입니까? 예수의 길 외에는 없다예요. 이걸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확실히 믿고 있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복음 전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따라서 우리는 이 길을 믿는 자로서 언제 어디서나 어떠한 상황이라도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신다 그리고 그것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전도에 미련한 것은 무엇입니까? 십자가 도이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한 사건입니다. 이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표현에 있어서는 가장 미련한 것이에요. 우리는 복음을 믿고 살기 때문에 그게 가장 은혜이고 지혜인 게 맞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것이 가장 미련한 것이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진짜 미련한 게 뭔지 아십니까? 세상 사람들이 미련하다고 해서 진짜 지혜를 말하지 못하는 것이 미련한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진짠데 여러분 병원 좋은 데 갔다 오면 절대로 소개 안 해줍니까? 나는 병원 좋은 데 갔다 와서 정말로 열심히 설명해 주시는 분들을 많이 봤거든요. 왜? 내가 경험했으니까 그걸 말할 수 있는 거예요. 내가 체험하고 그 체험 속에서 경험하고 나니 그것을 전해줄 수 있었다는 저와 여러분들이 진짜 복음을 믿음으로 받으시고 그 복음을 전하는 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해야 될 이유는 우리가 종종 찬양으로 고백하는데 옛날 찬양이기도 합니다. 복음 들고 산을 넘는 자들의 발길 아름답고도 아름답도다.
여러분 이사야 52장 7절 말씀을 한번 읽어보실까요? 이사야 52장 7절입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내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그러니 뭐니 뭐니 해도 여러분 구원받는 자가 복음을 전하는 것처럼 아름답고 고귀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전도에 힘쓸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왜요? 우리의 사명으로 부득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고, 예수 외에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고, 복음이야말로 참 지혜이며 복음의 발길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한 가지 꼭 더 기억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통해서 이 복된 소식을 전해주고 이들이 직접 행했잖아요. 그런 다음에 무엇을 요청합니까?
야, 너희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이것을 다음 세대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너희들이 경험한 것이 다음 세대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규례를 정해서 지켜라.
그렇게 명령하셨다는 것이죠. 그래서 자녀들이 이 예식이 뭐냐고 물으면 과거 출애굽 사건 때 있었던 하나님의 구원 역사, 그 놀라운 일을, 그 좋은 소식, 복된 소식을 그들도 듣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너희의 다음 세대를 위해서 꼭 기억하고 그것을 가르쳐야 된다.
그렇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사사기에 보시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합니다. 그래서 바울을 섬기죠.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이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따라 절하고 섬기는 것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4세기 2장 10절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 또 뒤에 뭐라고 돼 있어요?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 뭐예요? 과거에 출애굽에서 가나안 땅을 향해 진군하며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던 그것도 알지 못했다. 문제는요 여호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약 선지자들의 외침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들은 항상 동일합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그리고 여호와를 힘써 알자. 특별히 여러분 에스겔서를 보시면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는 이 표현이요 50회가 넘게 표현돼 있어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따라서 우리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되지 않도록 여호와 즉 하나님이 여호와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선포하고 양육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라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을 지키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자녀들에게 또한 다음 세대에게 복음을 확실히 가르치고 전수해 주는 이 중엄한 사명을 잘 감당하는 우리 신은의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도 1박 2일 동안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목요일 아침에 일찍 출발해서 금요일 밤 늦게 도착했습니다. 옛날에는 우리 아이들이 좀 어려서 아기 때는 밤 늦게 출발했어요. 애들 자면 카시트에 태워서 그러면 이제 새벽에 도착하고 이제 그런 일정이었는데 요즘은 조금 여유가 생겨서 아침에 출발합니다. 물론 역방향이긴 하지만 올라가는 길이 조금씩 막히기도 하더라고요. 어쨌든 다녀오면서 1박 2일 가족들과 담소도 나누고 예배도 드리고 또한 이런저런 시간들 보냈습니다. 엊그제 조카와 이렇게 함께 노는데 저희 형님이 늦게 결혼해서 아이를 늦게 낳았어요. 그래서 첫째가 초등학교 1학년이고 둘째가 아직 유치부 아이예요. 갑옷 장난감을 딱 팔에 차고 뭘? 카드를 꼽으니까 너의 소원을 말해봐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아이한테 너의 소원을 말해봐 그러면서 장난을 쳤죠. 그랬더니 말을 못해요. 그래서 이제 장난하다가 그 누나가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데 왔길래 또 남자애하고만 놀아주면 서운해 하잖아요. 그래서 이 아이를 자꾸 너의 소원을 말해봐 이렇게 했죠. 그랬더니 이 아이가 곰곰히 생각하더니 뭐라고 대답하는 줄 아세요? 예수 믿고 구원받는 거예요.
제가 깜짝 놀랐어요. 너무 진지한 거 아니야? 나는 장난으로 했는데 그래서 제가 그 틈을 타서 한번 물어봤어요. 그러면 너 예수 믿는 게 뭔지 아니? 초등학교 1학년입니다. 무엇을 믿어야 되는 거야? 그때부터 갑자기 표정이 이상해져요. 뭐라고 대답해야 될지를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물었어요. 잘 모르겠니? 끄덕끄덕거려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잖아. 그건 들어봤지? 내 교회에서 많이 들어봤다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그렇게 죽으신 것이 나의 죄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죽으신 것이고 그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살아갈 때 우리는 천국에 가는 것을 믿고 사는 거야.
그 내용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을 걸이라고 이야기하니까 그냥 받아들이고 이해하더라고요.
초등학교 1학년 유튜브부터 교회를 다니기는 열심히 다녔어요. 앞에서도 찬양도 하고 열심히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믿으면 구원받는 거는 아는데 뭘 어떻게 믿어야 되는지 모르는 거예요. 그걸 알지 못하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예수님께서 나의 생명을 위해서 다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게 너무 즐거운 거고 하나님께 찬양하는 게 기쁜 거고 하나님을 자랑하고 복음을 전하는 게 너무나 기쁜 거야라고 이야기하니까 또 고개를 끄덕이더라고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좋은 소식이에요. 죽어 마땅한 인생인데 살리신 거죠. 여러분 그러니 나는 생명을 걸고 예수를 따를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어야 된다. 그래서 잘 전해줘야 됩니다.
세 번째는 들어야 합니다. 앞서 말씀에 언급했듯이 믿음이라는 것은 들음에서 시작이 됩니다. 따라서 듣지 않으면 믿을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베드로가 말씀을 전하는 장면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거기에 보시면 말씀을 듣는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라고 돼 있어요.
어떤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다고요? 말씀을 듣는 사람 중에 말씀을 듣지 않은 사람이 믿었다가 아니라 말씀을 듣는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라고 돼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예루살렘 총회가 있을 때 베드로는 자신이 택함 받은 것은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기 위해서 오래전에 택하셨다고 고백을 합니다.
사도행전 15장 6절, 7절인데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전부터 너희 가운데 나를 택하시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임 가운데 할 이야기가 참 많죠? 세상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도 해야 되고 자녀의 이야기도 해야 되고 그런데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이 모여서 해야 할 이야기는 무엇인 줄 아십니까? 복음이에요. 한 주 동안 우리 주님이 나에게 어떻게 은혜를 베풀어주셨는지 그 주님과 동행하는 나의 삶이 얼마나 기뻤던가 그것을 나누면서 서로 간의 신앙을 세워가는 것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그 은혜를 서로 나눔으로 풍성하게 세워가는 것이 믿음의 공동체라는 거예요.
오후에 목장 모임을 하고 세대별 모임을 하고 소그룹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 이야기하고 남의 이야기하려고 모이는 것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거는 세상에서도 수없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한 주 동안 내가 경험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그 놀라운 은혜를 옆 사람에게 전해주고, 나도 그 말씀 앞에 공감하며 나도 나의 삶 가운데 영향을 주셨던 그 하나님을 묵상해 보는 시간 그러한 것을 통해서 풍성하게 성장하는 것이 교회 소그룹의 모임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서로의 고백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모일 때마다 주의 은혜가 풍성한 모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네 번째, 다섯 번째인데요. 즉 믿음과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같이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27절, 28절을 한번 읽어보실까요?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함에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물러가서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리라.
여러분 믿음이라는 것은 순종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혹 믿음과 순종을 별개로 보고 싶다면 다시 생각하셔야 돼요. 믿음과 순종은 별개가 아닙니다. 함께 가는 것이죠. 그래서 로마서 1장에 보시면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에 자신이 사도가 된 이유와 또한 로마서를 기록한 목적을 말씀하기 위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5절을 같이 읽어보실까요?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믿어 뭐 하게 하려고요? 순종해 믿어서 순종하게 하기 위해서 편지를 쓴 거예요. 그 편지를 읽으면서 로마 교인들이 또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 확고해지고 순종하기 위해서 편지를 쓰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야고보는 강조하지 않습니까?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마치 영혼이 없는 몸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그렇게 말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것이라 말하며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보이리라 그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말이 아니라 행함이라는 사실이 말로 믿는다 믿는다 그게 믿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습으로 보여지는 것이 믿음이다. 그래서 여러분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장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거기에 뭐라고 기록돼 있습니까? 믿음으로 누구는 어떻게 했다? 믿음으로 누구는 뭘 말했다가 아니라 믿음으로 누구는 이렇게 했다 믿음으로 누구는 이렇게 했더라 이것을 기록해 준 것이 믿음장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어요.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반응을 했습니까? 머리 숙여 하나님께 경배했다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명령하신 대로 행하는 자들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직 10번째 재앙이 이르지 않았지만 이들이 왜 머리 숙여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명령한 대로 행했을까요? 잘 생각해 보셔야 됩니다. 이들이요 첫 번째부터 9번째 재앙을 경험하면서 누구를 알아간 거예요? 누구를 알아간 거예요? 하나님이 여호와라는 사실을 알아가기 시작한 거예요.
여러분 재앙의 과정이 없었을 때 이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했던 것을 혹시 기억하십니까? 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만나서 협상을 시작할 때 그것으로 인해서 자신들에게 오는 더 힘든 시간들이 찾아왔을 때 그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했던 이야기입니다. 출애굽기 5장 20절, 21절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그들이 바로를 떠나 나올 때에 모세와 아론이 길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여러분 이들이요 9번의 재앙을 경험하지 않았을 그때만 해도요 모세와 아론을 저주하면서 하나님의 판단이 있기를 바란다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경배했다고 성경은 기록할 뿐만 아니라 순종하여서 말씀하신 그대로 행하더라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구별하여서 재앙을 통해 애굽이 심판을 받고 자신들이 이렇게 구별되어지는 삶의 과정을 통해서 점점 누구를 알아간 거예요 하나님의 목적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아 그리고 이제 10번째 재앙 앞에서는 그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서 내가 하나님을 경배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을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을 더 경배하고 순종하며 살겠노라고 고백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기억하셔서 아 그래 내가 어느 때부터 예수를 믿었던가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나의 신앙은 전진하고 있는지 후퇴하고 있는지 나 스스로를 한번 점검하시고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더 경배하는 자로, 더 예배하는 자로 서시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해져서 그 과정 속에서 느껴지는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그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전도의 다섯 과정 이것은 우리가 믿었기에 이제는 그 자리에 서야 합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둘 중에 하나입니다. 나는 복음을 전하는 자인가 듣는 자인가? 아직 복음을 듣지 못했다면 마음을 활짝 여시고 복음을 들으십시오. 진정한 복음을 들으셔서 이것이 정말 생명이구나라는 것을 깨닫는 지혜가 있기를 소망하고, 그것이 정말 나에게 생명으로 왔다면 이제는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