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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시는 정형이 생명이다.
이 봉 수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오늘날 시조라고 하는 문학 장르는 자유시에 맞선 정형시로서 존재하는 것이며 정형이 없거나 정형을 지키지 못하면 존재가치가 없다. 정형시는 정형이 생명이다.
멀리 신라 향가에서 희미한 가락을 얻은 태아가 고려말에 세상에 나와 창(唱)과 결합하여 600년 동안 애송되어왔지만 100여 년 전부터 물밀듯이 들어오는 자유시와 대중가요를 이기지 못하고 늙은 시가로 전락하였다. 음악과 문학의 결합체인 시조에서 음악이 떨어져 나가니 시조는 필연적으로 순수문학의 정형시로 남게 되었다.
가락을 곁들인 고시조는 자수를 가감하여도 정해진 가락을 살릴 수 있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순수 글로서의 현대시조는 글자 수가 틀리면 읽는 것이 껄끄럽고 목에 넘어 가지 않는다. 이러한 근본적 차이를 가볍게 보고 고시조의 울타리 안에서 현대시조의 정형을 찾으려고 하니 통일된 정형을 찾지 못하고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의 주장만 무성하다.
대다수의 시조시인은 물론 학자나 논자들이 통일된 시조정형을 제시하지 못하는 원인이다.
일찍이 시조시인 이병기는 ‘整形詩’, 이은상은 ‘定型而非定型 非定型而定型’(정형시이면서 정형시가 아니며 정형시가 아닌듯하면서 정형시이다)이라고 시조를 정의하였고, 조동일 교수도 [한국시가의 전통과 율격]에서 고시조의 정형을 찾으려고만 하였다.
김제현 교수는 고시조에 기초한 음보율을 주장하여 명료한 정형을 제시하지 못하고(김제현 시조문학론 P 58). 윤금초 시조시인은 ‘평시조는 자수율보다 내재율(리듬)을 중시해야 한다’면서 ‘시조는 융통성이 많은 자유로운 시’라고 정의하고 ‘음수율이나 음보율만 가지고서는 도저히 그 율격을 잴 수 없는 정형시’라는 이상한 결론을 도출하였다(윤금초 현대시조쓰기 P27). 자유로운 시이면서 정형시라고 하고, 정형시인데 음수율로는 안 된다고 하니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정재호 교수는 아예 시조의 형식에는 언급이 없이 고시조의 내용만을 논하였고(정재호 [한국시조문학론]) 그 외에 조윤제, 정병욱, 이태극, 김학성 누구도 창이 탈락한 현대시조의 정형을 제시하지 아니하고 고시조의 형식만 각인각색으로 설명하였다,
1930년 도남 조윤제 박사가 평시조 2,739수를 표본 조사한 결과 초장 율격이 3.4.4(3.)4 에 일치하는 작품은 47%, 중장 40.6%, 종장 3.5.4.3에 일치하는 작품은 21.1%, 이것을 확률론의 공식에 따라 계산하면 모두 일치하는 작품은 고작 4%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도출해 내었다는데(윤금초 현대시조쓰기 P28), 이 4%가 그나마 가장 많이 나타나는 형이기 때문에 교과서에서 현대시조의 정형으로 인정된 것이 아닌가 싶다.
평시조가 이 정도이니 엇시조와 사설시조는 말 할 것도 없이 자유시에 가까운 문학사의 유물에 불과할 뿐, 현대 정형시의 반열에 올리는 것은 더욱 당치 않은 일이다.
따라서 평시조 초,중,종장의 자수 344(3)4 344(3)4 3543 만을 ‘시조형 정형시’의 정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이러한 정형이 확고하게 정착되기 전에는 3.4조 음보를 깨지 않은 범위 내에서 한두 자 가감을 허용하자는 것이 다수의 쓰디쓴 묵계이다.
이와 같은 정형시의 심장인 정형을 훼손하고, 현대시조를 고시조의 연장인양 착각하여 자수를 마음 내키는 대로 늘였다 줄였다하며 자유시의 흉내를 내는 것은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최근 계간 [현대시조]를 무대로 하여 시작된 시조 정풍운동이 시조단의 호응을 얻어 시조문예지들은 물론 일간지들의 신춘문예나 중앙시조백일장에까지 파급되어 있음을 본다.
3년전 까지만 해도 잡초같이 무성하던 수(首)의 붙여 쓰기, 자유시형 자수가감과 행갈이, 자유시적인 시어 즐겨쓰기 등 일그러진 시조의 모습이 현저히 줄어들었고 이목구비가 반듯한 시조가 많이 눈에 뜨인다.
다만 신춘문예나 시조백일장의 젊은 작품들은 정격을 찾아가는데 고령층의 작품들은 아직 파격관행을 벗어나지 못하는 느낌이 있어 안타깝다.
이하 2010년 여름과 가을에 걸친 시조단의 작품들을 대강 살펴본다.
1. [월간문학]의 작품들
(1) 10.4월호
시조 11편 중 [진정(眞正)](이순공), [사랑의 십자가](전 경) 등 2편은 3수 연시조이지만 1수도 흐트러짐이 없는 정격시조이다. 다음 작품은 어떤가?
임대료
鄭泰秀
이 몸의/ 원재료를/ 거슬러/ 올라가니/
빅뱅(Big Bang)*에/ 터진 원소/ 우주를/ 떠돌다가/
지구와 조상을 거쳐/
잠시 받은/ 빚덩이./
한 백 년/ 빌렸더니/ 환원(還元)의 날/ 다가온다/
본디/ 내 건 줄 알고/ 임대료를/ 잊었었네/
원자재/ 돌려 줄 그날/
무엇으로/ 갚을까./
*빅뱅(Big Bang): 우주 탄생의 근원이 되었던 137억 년 전의 대폭발 사건.
19C 서정시의 그늘에서 벗어나 현대 감각을 살린 재미있는 작품으로, 2음보 파격을 제외하면 정격시조이다. 고령자의 작품임을 짐작할 수 있지만 흔히 보는 짜증스러운 탄로가(歎老歌)를 벗어나 고도의 메타포를 동원한 현대시조이다.
제목과 [임대료를 잊었었네]의 ‘임대료’는 빌린 사람 입장에서 ‘임차료’가 되어야 할 것 같다.
(2) 10.5월호
시조 9편 중 [달빛 사냥](장 청), [길](이재곤) 등 2편은 정격 연시조이며, [봄길 위에](김은숙)와 [봄볕 속에](최상호)는 아직도 수의 구별을 못하는 작품이며, [낙타](권혁모), [단오날](박록담), [수국개화(水菊開花)](李宇映) 등 3편은 파격이 심한 사이비시조이다.
낙 타
권혁모
발자국/ 지우며/ 그렇게/ 가는 거라고/
순종의/ 가슴으로/ 당신 앞에/ 서는 거라고/
저무는/ 지평은/ 그렇게/ 붉게 타나/ 봅니다./
(3수 중 셋째 수)
→ 글을 억지로 구겨 넣어도 자수만 맞으면 정격이 된다고 착각하고 있다. 정격시조는 읽음이 자연스러워야 하고 뜻이 왜곡되지 말아야 한다.
[단오날] 첫째 수 종장: [초록은/ 꽃보다 신선하여라/ 사람의 장이/ 서는 날]
둘째 수 종장: [저마다/ 구름이 되어 꽃이 되어/ 여인의 나라를/ 세우는 날.]
→ 종장 둘째마디는 몇 자 까지 늘여도 되는지 물어보고 싶다.
[수국 개화] 둘째 수 중장: [한결/ 보드랍길래/ 웃고/ 어루만져 보는/ 꽃]
→ 시조 리듬이 없으니 솔직히 자유시라고 하는 것이 어떨지?
(3) 10.6월호
이 달에는 시조가 16편으로 비교적 많이 실렸다.
[구두 한 짝에 대한 보고](추창호), [오래 된 것에 대한 사유](김민성), [꽃무릇 이야기](김선희) 등 3편은 특히 파형이 심한 사이비시조이다.
이에 비하여 [노지 백자 하늘 청학](양원식), [나팔꽃을 바라보며](이들샘), [선운사 동백꽃](李雲亭), [민들레](박연순) 등 4편은 깔끔한 정격시조이며 내용도 신선하다.
구두 한 짝에 대한 보고
추창호
구름 할배의/ 증언 확보/ 그 진술에/ 따르면/ 5443
꾀죄한/ 모습과는 달리/ 진골 출신의/ 명품 구두였음/ 3656
자르르/ 윤기 흘렀던 시간/ 몇 점/ 증거물로/ 확보함/ 37243
(4수 중 둘째 수)
도저히 시조라고 볼 수 없다. 3.4조를 너무나 벗어났기 때문이다.
버려진 헌 구두 한 짝에 대한 상상의 세계를 그리고 있으나, 적절한 메타포를 구사하지 못하고, 억지스러운 가정(假定)이 심하여 거부감을 유발하며 경찰조서를 읽는 느낌을 준다.
(4) 10.7월호
시조 11편 중 [여한(餘恨)](정증수)과 [푸새](조성제)는 자유시의 흉내를 내려고 무척 애 쓴 흔적이 보인다. 불필요한 행갈이를 하여 일부러 음보를 깨고 행을 늘여 놓았다.
[두메골 식탁](정태모), [별리(別離)](류창렬), [일몰](진길자) 등 3편은 여러 수로 구성되어 있지만 1마디도 파형이 없는 정형시이다.
일몰
진길자
시뻘건/ 햇덩이가/ 거침없이/ 떨어진다/
햇살은/ 목덜미에/ 관능으로/ 친친 감겨/
빈 배만/
여린 바람에/
갈매기와/ 어울린다/.
막혀 있던/ 가슴이/ 비릿하게/ 터지고/
일렁이던/ 물보라/ 불꽃 되어/ 솟구치면/
나는 또/
잔광(殘光)을 찾아/
침묵 속에/ 빠진다./
시뻘건 해가 급속히 바다로 떨어지는 일몰의 순간을 잘 포착한 작품이다. 빈 배와 갈매기와 바람이 함께 일렁이다가 해가 바다에 빠지는 순간 그 여운으로 물이 솟구치는 듯 하고, 남은 빛을 따라 가며 잔잔한 침묵이 흐른다.
한 음보의 파형도 없는 정격시조이며 일몰의 광경을 잘 형상화하였다.
(5) 10.8월호
시조 11편 중 정형시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은 [먼 풍경](柳仁惠) 뿐이다.
대다수가 한 두 음보 깨져 있고 특히 [통도사 홍매화](강세화)는 파형이 심하며, [소품의 의연한 점, 독도](아상범)와 [목련이 필 때](이양순)는 아직도 수의 구별을 못하고 이유 없이 2수를 붙여 자유시의 흉내를 내고 있다. 이런 그릇된 타성이 언제나 없어질지...
더욱 가관인 것은 [칠월 은하수](정상수)이다. 첫수에서 종장을 날려 버리고 둘째 수 종장은 ‘나 홀로 종장’을 만들어 쓰고 있다.
칠월 은하수
정상수
하늘 높은/ 찬 기운은/
오동 추엽/ 칠월이라/
북극성을/ 가로질러/
은하수를/ 놓았구나/
견우직녀/ 그리운 정/
멀리서만/ 그리다가/
오작교/ 가로놓여/
칠석에/ 상봉하여/
한없이/ 눈물을/ 흘렸으리라./ 335
(6) 10.9월호
이 달에도 시조는 11편이 실렸지만 특히 파형, 변형이 심하며 정격시조는 1편도 찾아 볼 수 없어 참담한 심정이다.
[월간문학]은 한국을 대표하는 원로 중견 시조시인들의 최고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지만 이 달의 작품을 보면 너무나 한심하다.
정형시의 반열에 들 수 없는 사설시조 [뜬금없는 소리.9](윤금초)가 첫 페이지를 오염시키고 마지막 페이지에는 파형이 심한 사이비시조 [겨울 나무](이남순)가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뒤질세라 첫 연은 평시조를 흉내 낸 3행시 둘째 연과 셋째 연은 9행의 자유시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공허새](김순연)가 ‘시조는 이렇게 파괴하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버티고 있다.
[피 흘리는 달](오동춘), [가을 밤](정정배) 등 2편도 파격이 심하고, [오늘의 삶의 노래](황몽산), [산그늘](민병도). [먼동](김경자-상주), [길](송길자), [연근](이희규), [아내.3](김장규) 등 6편은 약간의 파형을 범하였다.
고령의 원로시인들은 아직도 현대적 감각을 살린 정형시다운 정형시 한 편 쓰지 못하고 낡은 자유시 흉내 내기에 빠져 있거나 조선시대의 사설시조를 즐겨 쓰며 글 장난을 한다. 이에 비하여 뒤에 나오는 중앙시조백일장 신인들의 작품은 거의 정격시조로 한국형 정형시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 기성 원로 시인들이 크게 각성해야 할 대목이다.
2. 계간지의 작품들
(1) [계절문학]<10 여름호>
시조 12편 중 [푸른 잔치](조희식)는 4수로 된 긴 연시조이지만 깨진 음보가 하나도 없는 정격시조이다.
[길 두고 메로 가는 증후군.1](우흥순)과 [절집풍경](조명선)은 파격이 심한 사이비시조이며 나머지 8편은 약간의 음보가 깨진 파형시조들이다.
마지막 남은 [바람의 목말을 타고](이대전)의 제 2편은 괴상한 모습을 하고 시조를 욕보이고 있다.
바람의 목말을 타고-고추잠자리
이대전
1. (생략)
2.
바람이/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노라면/
꿈 하나/ 이루기 위해/ 또/ 허물을/ 벗어야 하는/
아픔이/ 가까이 있다 하고/ 그 깊이와 방향은/
알 수가/ 없다고 하네/
안일을/ 바란다는 것은/
생의 물음이/ 아님을/ 아네./
이것이 평시조는 고사하고 엇시조인지 사설시조인지 아는 시조인은 손들고 나와 보면 좋겠다. 괴상하게 분장한 하회(河回)탈춤을 보는 기분이다.
[계절문학]<10가을호>
시조 19편이 실려 비교적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정격시조는 [가벼움에 대하여](조흥원), [이 다음 미뤄 오다가](홍병선) 및 [무대 아라리](조창환) 3편에 불과하다.
[단상, 마라톤](정형석)은 심한 파격도 모자라 수의 구별마저 없애버린 1연 9행의 자유시이다. [백초차를 마시며](이민영)는 정격시조이나 2수를 연결시켜 아깝게도 변형시조가 되었다.
닭장에 뛰어든 오리 같이 시조마당에 완전한 자유시도 오리발을 내밀며 휘젓고 다닌다. 내용도 허술하다.
멋모르고
박종대
한생/
지내 놓고 보니/
멋모르고/
였지 그치/
그/
런/
가/
아무리/
그런 것이래 / 그것이/
그 사랑/
이 사랑/ 다/ 어쩌라고/
멋 알고/다/ 멋/ 다 알고!/
(2) [현대 시조]<10여름호>
시조 전문지인 현대시조에 정격시조가 많아지고 있으나 아직도 정형시를 이해하지 못한 작품이 버젓이 머리를 들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오월의 송가](김태은)와 [북천 코스모스 역驛에서](강수성)는 특히 파형이 심하여 정형을 모르고 쓴 작품 같다.
다음 작품은 어떤가?
귀향
유상용
나/ 돌아가리/ 고향으로/ 가리/
자식들/ 못잊어/ 뼈로도/ 삭지 못하신/
부모님/
무덤에 들어가/
한 점 흙을/
다독이리/
인연의/ 원천인 고향/
불을 껴도/ 보인다/
흙에서/ 자란 흙이/ 그립고/ 343
조상의/
숨결이 베인곳/
고향에서/
살으리./
파형이 심하여 시조율격을 벗어났고, 수의 구별을 없앤 대신 행과 연을 이유 없이 무질서하게 늘어놓아 자유시 모양을 취하고 있다. 도저히 정형시라고 볼 수 없는 자유시이다.
[(숨결이) 베인곳]은 [배인곳]이라야 하고 [(불을)껴도]는 [꺼도]라야 맞다. 이런 실수는 애교로 받아들이더라도, [뼈로도 삭지 못하신]과 [부모님]을 왜 떼어 연(聯)을 달리 하고 맥을 끊어 놓았는지, [흙에서/ 자란 흙이/ 그립고]는 왜 시조 중장의 형을 따르지 않고 3.4.3자로 하여 따로 한 연을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내용면에서 [뼈로도 삭지 못하신]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육탈(肉脫)은 ‘뼈로 삭는 것’즉 ‘삭아서 뼈가 되는 것’이 아니고 ‘(살이 삭고)뼈만 남는 것’이다. [살도 삭지 못하신] 또는 [육탈을 못하신]이라야 된다. 파묘(破墓)를 해 보지 않고 육탈을 했는지 안 했는지를 어떻게 알았을까?
[부모님 무덤에 들어가]? 어떤 불효자가 (죽어서) 부모님 무덤을 파헤치고 거기에 들어간다는 말인가? 또 [흙에서 자란 흙]은 무엇인가? 흙도 자라는가? 온통 의문투성이이다.
(3) [시조문학]<10여름호>
여러 수로 된 장문의 연시조이지만 한 음보도 파형이 없는 정격시조가 있는가 하면 심한 파격으로 기분을 상하게 하는 사이비 시조도 많다.
[방향지시기(네비게이션)]외 3편(박상문), [조화]외 3편(양점숙), [엄지손가락]외 3편(유동삼), [길]외 1편(조영두), [명곡가을]외 1편(황다연), [은행나무](권명희), [섬](이동배) 등 무려 18편이 정형을 무시한 사이비시조이다. 겉으로는 시조와 비슷하나 실속은 정형을 크게 벗어난 작품으로 시조가 아니다.
채석강
박상문
넓직한/ 엉 그럼 반석/
깔려있는/ 관람석 댄 듯/
춤추는 파도/ 말없는/
주재자(主宰者)의/ 연출인 것을/
대자연/
관망석 앉아/
모양 안 뵌/ 조성신(造成神)을/ 읽는다./
(채석강 둘째 수)
파형음보가 많아 시조율격을 잃었다.
[말없는-주재자(主宰者)]로 연결되어야 하는데 행을 달리하여 맥을 끊어 놓고 있다. 시조의 구는 따로 떼어 놓아도 독립할 수 있어야 하는데 [춤추는 파도 말없는]은 다음 구가 없이는 따로 서지 못한다.
[관망석 앉아]는 [관망석에 앉아]로 되어야 어색하지 않다. 또한 ‘대자연인 관망석’인지 ‘대자연이 관망석에 앉아 있다는 것인지’ 의미가 모호한, 시적 표현의 미숙이다.
[시조문학]<10가을호>
여름호에 비하여 심한 파형을 일으킨 사이비시조가 많이 줄어들었고 오랜만에 산뜻한 명품시조 1편과 변형시조 1편을 비교하여 보게 한다.
매화
임종찬
뜰 앞/ 늙은 매화/
겨울잠을/ 털고 서서/
가지마다/ 왕궁 같은/
꽃봉오리/ 터뜨린다/
왕업(王業)은/ 외로운건가/
나비 아직 없구나./
[뜰 앞]은 2자로 자수정형에는 맞지 않으나 3자음보로 읽지 않을 수 없음으로 자수정형이 확립되지 아니한 오늘날에는 정격으로 인정된다.
‘매화’는 많은 작품의 주제로 등장하여 신선감이 없으나 화려하고 큰 꽃봉오리가 마치 [왕궁 같음]을 발견하여 독자를 놀라게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비 아직 없구나]하는 대 반전을 일으켜 또 한 번 충격을 주고 있다.
아픈 만월(滿月)
황다연
은빛 바다/ 깊은 얘기로/
수만리/ 적신다 해도/
꽉 찬/ 한 벌 사랑도/ 지킬 수/ 없는 곳/
빈손의/ 끝 모를 여행길/
새들이 울며/ 따라간다./
[꽉 찬]도 3자 음보로 읽어야 함으로 정형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4자의 자리에 3자 또는 5자의 음보가 다수 점령하고 있어 파형시조이다.
[깊은 얘기] [한 벌 사랑] 등 추상적인 시어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 벌 사랑을 왜 지킬 수 없는지, 새들이 울며 따라가는 끝 모를 여행길은 어디인지 너무나 현실세계와 동떨어진 추상의 세계를 그리고 있으며 메타포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3. 중앙시조백일장의 작품들
(1) 10.4월 (심사위원: 오종문 강현덕 )
<장원> 장다리꽃 (김영란)
일요일 아침 햇살은// 막 헹군 국수 가락// 한 그릇 멸치장국에// 고단한 몸 풀고는//
춘삼월 계란고명을// 살며시/ 와// 얹었네.//
<차상> 기러기, 붉게 울다 (이필은)
입 벌린 파도가 삼키고 간 자리에는// 부서진 조개껍질 게 껍데기가 말라 있다//
아버지 뒷모습에서// 소금 맛이 난다고.//
바다가 품고 있던 물결들 솎아내자// 속내를 내보이며 물러난 바닷물//
갯벌의 언저리까지// 쓴물이 한참이다.//
질펀한 발걸음을 끌고 온 사내들이// 붉은 글씨 철썩거리는 현수막을 펼친다//
새만금 막힌 저 바다// 기러기 붉게 울다.//
<차하> 달팽이 자국 (백은효)
밤새 담 넘어간 너의 흔적 뒤를 밟고// 습기 밴 벽돌 사이 안개 강이 흐른다//
가풀막 낭떠러지에 걸린 허물이 섬뜩하다//
자꾸만 무릎 꺾인 아득한 진흙 벌을// 수만 번 배밀이해서 물길을 틀었구나//
마침내 달빛 지고 간 흰 허리의 그림자//
우렁잇속 같은 세상 뒤쳐나가고 싶었겠지// 끈끈한 고집 있어 육필로 쓴 간밤 일기//
가만히 다가온 햇귀 그 궤적을 비춰준다//
* 필자의 작품평
당선작 3편 모두 약간의 파형을 범하였지만 수,장,구의 구별이 뚜렷하다.
장원작의 [춘삼월 계란고명을// 살며시/ 와// 얹었네.//]는 장다리꽃의 꽃술을 계란고명으로 잘 묘사하고 있으나 [살며시/ 와]는 붙여 읽을 수 없음으로 깨진 음보이다.
차상작의 셋째 수 종장 [(기러기) 붉게 울다.]는 현재형[붉게 운다]로 되어야 할 것 같다. 제목과 같이 원형을 쓰면 중장의 [현수막을 펼친다]와 어울리지 않으며 현장감이 떨어진다.
차하작의 [가풀막 낭떠러지]는 의미의 중복이다. ‘가풀막’은 몹시 가파르게 비탈진 곳이므로 낭떠러지와 비슷한데 하나의 ‘허물’이 두 곳에 걸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2) 10.5월 (심사위원: 오종문 강현덕)
<장원> 안방 농의 일기장 (정연석)
운문사 범종 울음 아슴푸레 댐에 눕고// 진달래 물에 빠져 양산에 번져 올 때//
쑥스레 웃는 어머니// 구름 사이 낮달 같다//
엄전한 할머니는 댓진 향 장죽 길고// 아버진 하와이 간 이민 일 세 헐렁한 옷//
앞줄에 고만 당돌한// 방울눈이 다부지다//
광복 찢는 대문 열면 다습게도 햇살 망울// 홍매화 터질 듯이 옆집 처자 가슴일 때//
늘그막// 동네 사진사가// 하나 둘 셋// 그때 실록//
<차상> 이사 (이필은)
손 없는 날// 아버지가 이삿짐을 꾸린다// 테이프를 찢는 이빨// 칼바람 추위 같고//
밧줄은//십 년 살았던// 가계를 포박한다//
춘사월 음력 초까지// 빼달라던 방 두 칸// 얼룩진 안방 벽에// 모르는 얼굴 오가고//
제 몸을// 헌 짐짝처럼// 트럭에 묶는 가족들//
손 없는 날// 귀신도 쉬이 안 든다는//손 흔드는 이 없는 뒤편// 동네가 멀어진다//
조금씩// 밀린 세금처럼// 갈 길이 무거워진다//
<차하> 천지서커스 (인은주)
부모 없는 이승은 맨발의 외줄타기// 태어나 걷자마자 주어진 길이었다//
아슬한 낭떠러지 끝 천번만번 오른다//
식초 들이키며 마디마디 녹여서// 뱀처럼 문어처럼 여기 넘고 저기 붙어//
그토록 재주넘으며 이어가는 생의 곡예//
허공에 몸을 기대 도는 공중살이// 박수갈채 받으며 온 몸을 불사르듯//
허기진 불나방처럼 품을 찾아서 난다//
* 북격 천지서커스 단원은 95% 이상이 고아 출신이다.
* 필자의 작품평
장원작은 깨진 음보가 없는 정격시조이나 안방 농에 얽힌 옛 사연을 풀어 감에 있어 표현이 산만하여 일관적인 흐름을 가늠할 수 없다. 어머니, 할머니, 아버지, 옆집 처자, 동네사진사가 안방 농과 어떤 끈끈한 사연이 있는지 독자가 짐작하기 어렵다. 특히 셋째 수 종장은 완결미가 없다.
차상작[이사]는 파형이 많아 파형시조이다. [춘사월/ 음력 초까지]는 어차피 파형이 될 바에야 [음력/ 춘사월 초까지]라야 말이 되지 않을까?
차하작 또한 약간의 파형을 범한 파형시조이나 시상의 전개와 표현에 무리가 없는 점은 장원 작 또는 차하 작보다 돋보인다.
(3) 10.6월 (심사위원: 오종문 강현덕)
<장원> 코뿔소 음모론
-하나의 유령이 서울을 떠돌고 있다. 코뿔소라는 유령이* (서 덕)
과천공원 코뿔소는 첫눈이 너무 시려// 세상을 뒤엎고자 간악한 음모를 꾸며//
태양을 부르려하니, 이름하여 ‘지구온난화’//
백 년 뒤 종로거리에 야자수가 자라기를// 시민들은 발가벗고 훌라춤을 추려나//
매연이 분분히 흩날려 아름다운 서울에서//
나는/ 혁명의 앞잡이, 인류의 배신자// 망고나무 무성한 모스크바를 보기위해//
하늘을 찢어발기고 태양을 쏟는다네.//
오폐수가 아름다운 천 년 뒤 한강에서// 혁명가 코뿔소 선생 마른 목을 축이리//
모든 건 그의 음모일 뿐// 네 탓은 아닐 걸.//
*[공산당 선언]첫 문장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공산주의라는 유령이’에서 빌려옴.
<차상> 낙조, 거듭나다 (노 업)
또 하루 끈이 질겨 퍼덕거린 불새이듯// 뱃전으로 매달리는 찬란한 몸부림은//
벼리는 다짐을 두고 담금질한 고집이다.//
어느 궁수 눈빛인들 저리도 장엄하랴// 빗발치는 황금 살로 어우러진 갯벌자락//
그 멋에 취한 몽돌도 알몸 들어 사른다.//
파장머리 사연 같은 하늘 끝을 뉘엿대다// 어느 처음 그대로 바다고랑 일구는가//
사위는 아픔을 딛고 활짝 웃는 저 밑불.//
<차하> 와이퍼를 움직이다 (안은주)
일 미터 스크린 밖// 세상은 안개 속이다/// 눈물 지우기가 이토록 힘이 들까///
힘없이 삐걱거리며 손사래를 치는 오후///
풀어 놓은 일상들을 순간, 뿜어 올린다/// 가멸찬 몸부림은 시간 속에 흩어지고///
서른의 안쪽 날개에// 남겨진 얼룩무늬///
* 필자의 작품평
장원작은 깨진 음보가 많아 시조로서는 실격이다. 내용면에서도 시적화자가 고정되어 있지 않아 누구의 진술인지 전달하고자 하는 초점을 종잡을 수 없다. 셋째 수에서 ‘나’로 화자가 바뀌고 넷째 수 ‘그’와 ‘너’는 누구인지 누가 말하는지 알 수가 없다. 넷째 수의 종장은 무슨 이유인지 떼어 놓아 독자를 더욱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글 장난으로 독자를 우롱하는 기분이다.
차상 [낙조,거듭나다]는 정격시조이다. 그러나 [하루 끈이 질겨 퍼덕거린 불새] [벼리는 다짐을 두고 담금질한 고집] [파장머리 사연] [어느 처음] 등 추상적인 관념들로 채워져 있을 뿐 구체성이 없고 형상화되어 있지 않다.
차하작은 수의 구별을 없애고 6연의 자유시형을 취하고 있다. 내용 또한 추상적이며 시적 논리가 부족하다.
(4) 10.7월 (심사위원: 오종문 이종문)
<장원> 붉은머리오목눈이 -월남댁 (송필국)
산자락 들쑥날쑥 안고 내린 개울 지나// 야트막한 언덕배기 휘 늘인 솔수펑이//
골기와 하얀 회칠이 알른알른 보인다//
옹이 빠진 솟을대문 해묵은 저 대갓집// 어눌한 그녀가 산다 붉은머리 오목눈이//
에움길 바다를 건너 먹이 찾아 날아온//
반달음질 뱁새 걸음 뙤약볕 날갯짓에// 늙수그레한 벽오동 가뭇가뭇 씨 떨어져//
안마당 바지랑대에 탈춤 추는 저 기저귀// 겨드랑이 피붙이의 살가운 배냇짓에//
하루치 잰걸음도 사려 녹는 어슬 무렵//낯익은 개밥바라기 징검다리 별이 뜬다//
<차상> 시계풀-공생원*생각 (구애영)
실비 그친 햇살에 바람 겨운 여린 풀씨 작은 손 하늘거리며 앉은키 서로 재듯 흰 꽃잎 맑은 이슬이 아침을 붉게 연다/
벌,/나비도 깃을 접고 살포시 찾아오는데 오가며 마주칠 때 무심히 지나온 시간 이제는 무릎 꿇고서 너를 향해 노래 부르리/
가난한 화가들의 은은한 기도 소리 낮은 자를 기다리는 노틀담의 종소리일까 사람들 평안해진다 그 풀밭 환한 그늘/
세 이파리 안과 밖 내일도 볼 수 있으면 연초록 바람의 살들 가슴으로 안고 싶다 잔잔한 무지개음표 한 옥타브 내려서...
*공생원:목포시에 있는 아동생활공동체
<차하> 공양 (오창래)
우째, 그런 일이 내 집 앞서 생긴 걸까//
빗방울 내 던지는 시위대의 말발굽소리//
늦봄에 찾아온 무리, 텃밭으로 집결했다//
일삼아 심지도, 뿌리지도 않았는데//
80평 그 뜰에서 살짝 붉힌 아이섀도//
수줍음 다 못 참는 듯 노을로 몸 가린다.//
내 삶의 가뭄 밭에 소리 없이 내려앉아//
그 누가 딸기 몇 알 공양을 했던 걸까//
햇살을 더듬으면서 익어가던 그 해 여름.//
* 필자의 작품평
장원작은 파형음보뿐만 아니라 이유 없이 셋째 수와 넷째 수를 붙여 놓아 자유시 흉내를 내었다. [솔수평이][에움길][어슬무렵][개밥바라기]등 사전 깊숙이 묻혀 사장된 단어를 꺼내 쓰고 있다. [소나무숲][굽은 길][어스럼][금성(金星)]등 현대 한국의 보통사람들이 알 고 있는 단어를 쓰면 탈나는가? 심사위원들은 ‘잊혀져가는 우리말들이 곳곳에 양념처럼 섞여 있어서 씹을수록 맛이 더 난다’고 하였다. 독자가 사전을 찾지 않고는 알 수 없도록 어렵게 쓸수록 좋다는 말인가?
차상작은 수의 구분은 명확하나 장은 이유없이 산문형으로 붙여 놓았다. 이것도 자유시 흉내내기의 일종이며 파형음보도 많아 시조로서는 실격이다.
차하작은 수의 구별을 흩어버린 1연 9행의 자유시형을 취하고 있다. 딸기 몇 알 익어가는 텃밭을 잘 묘사하고 있다. 첫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좋은 현상(긍정적 이미지)을 나쁜 현상(부정적 이미지)으로 오인하게 표현한 것 또한 흠이다.
(5) 10.8월 (심사위원: 오종문 이종문)
<장원> 질그릇의 노래 (이행숙)
고운 얼굴 단장하고 손님상에 올라앉은// 미끈한 본차이나 부럽지는 않았어요.//
날마다 당신 손때로 옷 입으며 사는 걸요//
무심한 그 손길에 시나브로 금이 가도// 흘리시는 눈물마저 내 몸 안에 스미기를//
질박한 꿈 하나 담고 부대끼며 살아요.//
치유 못한 상처로 내 삶이 깨지거든// 가꾸시는 화단가에 맘 한 자락 놓아줘요.//
흙 한 줌 눈비에 말아 민들레꽃 키울게요.//
<차상> 여행 (조혜수)
청량한 매미소리 하늘을 물들이고// 시냇물 그 길 위로 나뭇잎 배 흘러가면//
외로움// 눈멀게 하는// 소리 없는 빛의 산란//
내딛는 걸음마다 푸르름이 펼쳐진다// 수줍게 고개 내민 긴 여정 그 첫 자락//
계절의// 한가운데서// 들려오는 서사시//
막다른 길목에서 잠깐의 숨 고르기// 바라보면 멀기만 한 내일에의 슬픈 순례//
장엄한// 자연속으로// 저녁놀이 곱게진다.//
<차하> 부재 (김술곤)
긴가 민가 망설이다// 몇 번 버튼 눌러댔죠/// 낯설게만 느껴지는// 아침에 뵌 그 사람///
휴대폰 발신음 소리 이명처럼 울린다///
* 필자의 작품평
이 달의 당선작 3편은 1음보도 파형이 없는 정격시조들이다. 내용도 제목에 맞고 차분하게 잘 짜여 진 작품들이라 신인들의 작품임을 감안하면 흠 잡을 데가 없다. 다만 장원작의 [(미끈한)본차이나]는 특정상품을 지칭하고 있어 순수문학의 마당에 어울리지 않는 시어이다.
(6) 10.9월 (심사위원: 오종문 이종문)
<장원> 홍시 (이종현)
떫은 여름 우려낸// 노루 꼬리 햇살들이//
감나무에// 똬리 틀어// 燈 하나// 걸어두면//
툇마루// 채반 속 가득// 불 밝히는// 어머니.//
<차상> 봄맞이 (나남선)
겨울 옷 벗은 옥사// 봄내 맡는 전중이들// 발돋음 힘겹도록 철창살 움켜쥔 채//
개나리//노오란 새순// 눈동냥이 한창이다//
세상의 봄볕들도// 비껴가는 그늘진 곳// 지구를 뚫어 꿰찬 새 생명이 불티난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저리 맑은 초록들//
유난히 크고 높은// 담장 안 초목의 눈// 곳곳에 앉은 자리 음양을 마다 않고//
또 한 철 희망 안겨줄// 메아리로 솟는다//
<차하> 양초, 울다 (임은정)
희었던 심지가 속앓이에 그을리면// 석류 알 타오르며 머리끝을 끌어안고//
뜨겁게// 깨물린 과육// 미련 속에 떨군다//
매끈한 정수리 위 푸른빛이 시리던가// 눈가에 그렁그렁 맺힌 촛농 한 움큼//
살며시// 몸을 짚으며// 느릿느릿 스러진다//
허리를 우그리며 하늘 위로 손 뻗을 제// 점점 더 높아지는 묵음(黙音)의 붉은 고함//
단단히// 멈춰서버린// 눈물자국 드러낸다//
* 필자의 작품평
이 달의 당선작 3편도 모두 정격시조이다. 내용도 흠잡을데 없다.
차하작 [희었던 심지가]는 3.3조로 3.4조보다는 못하지만 음보율을 깨지는 않았다.
장원작의 [燈]은 굳이 한자로 쓰지 않아도 누구나 뜻을 알 수 있는데 오히려 한글세대들이 읽을 수 없도록 어려운 한자를 쓰고 있다. 문학은 국어 사랑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한글을 더 갈고 다듬어 아름다운 새 낱말을 만들어 내고 글의 품위를 높이는 것은 시인의 몫이다.
* 중앙시조백일장에 대한 종합평
매월 발표하는 중앙 시조백일장은 연초의 신춘문예와 더불어 시조흐름에 크나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유일한 신문지상의 시조마당이기 때문에 수 십 년 동안 구부러져 있던 시조를 정형수술하는데 가장 선도적인 역할도 담당한다.
최근 중앙시조 백일장에서 정격시조가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아직도 일부 파형과 변형, 자유시 흉내 내기, 나 홀로 작품 등이 있기는 하지만 수년전, 아니 몇 개월 전에 비하면 크게 변화한 느낌이다.
내용면에서도 19C 서정시의 탈을 벗고 현대생활을 직시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어 기성시인들의 작품을 앞지르고 있다. 다만 과욕을 못 참고 추상에 흐르거나 돌출 표현을 하여 돋보이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경계해야한다. (끝)
* 현대시조 2010 가을겨울합병호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