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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중호 |
대표작품 1 | 장경각(藏經閣)에 핀 연꽃 |
대표작품 2 | |
수상년도 | 2019년 |
수상횟수 | 제10회 |
출생지 |
장경각(藏經閣)에 핀 연꽃
최중호
팔만대장경이 폭파될 뻔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대장경이 만들어진 후 700여 년. 그동안 해인사에 많은 재난이 있었지만, 유독 대장경만이 그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은 무슨 연유였을까?
신비의 대장경을 보기 위해 해인사로 갔다. 겨울철이라 산과 들도 진면목을 보이고, 길 또한 한가해서 유적을 둘러보고 감상하기엔 겨울이 제격인 듯싶었다.
해인사는 일주문 앞에서부터 축제 분위기였다. 얼마 전, 대장경이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것을 봉축했던 연등과 깃발들이 그 여운을 함께 하고 있었다. 이제 대장경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세계인이 함께 자랑스럽게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이 된 것이다.
우선 대적광전에 들러 배관(拜觀)한 후, 돌아 대장경이 모셔져 있는 장경각(藏經閣)으로 간다. 대적광전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장경각은, 대적광전에 모셔진 비로자나 부처님이, 법보(法寶)인 대장경을 머리에 이고 있는 형상이라 한다. 거미줄 한 번 친 적 없다는 장경각은 담으로 둘려 있었고, 다시 그 담을 담쟁이 넝쿨이 덮고 있어, 귀중한 법보를 모시는 곳이라 이중 수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장경각 위론 새도 함부로 날지 않고, 안으론 들짐승 한 번 들어 온 적이 없다고 한다. 장경각 문으로 들어서니 대장경을 모신 첫 번째 건물인 수다라장(修多羅藏)*이 나왔다. 수다라장의 문은 여느 문하고는 달랐다. 열고 닫을 수 있는 문이 아니라, 판자를 범종 모양으로 둥글게 뚫어 통로로 사용하고 있었다.
대장경은 수다라장의 통로 양편에 모셔져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출입할 수 없도록 막아 놓았기 때문에, 전시용으로 진열된 반야심경의 경판 한 장이, 8만 1천1백 34판의 대장경을 대신하고 있었다. 구양순체로 정성을 들여 새겨놓은 경판의 글자, 그 글자의 정교(精巧)함에 대해선 추사 김정희도, ‘이것은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신이 쓴 것이라’며 감탄했다 하지 않았던가.
반야심경이 진열된 맞은편 통로에는 흑백 사진이 한 장 걸려 있다. 스님이 수다라장으로 들어서면서 합장하고 계신 모습인데, 그 앞에 한 송이 연꽃이 피어 있는 게 아닌가. 사람이 통행할 수 있도록 만든 통로 중앙에 연꽃이 피다니? 주위를 아무리 살펴봐도 통로에 연꽃이 필 만한 곳은 없었다. 사진에 나타난 연꽃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의문의 연꽃은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신 성상(性相) 스님한테서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수다라장 통로에 있는 문은 입구를 판재로 고정해, 범종 모양으로 둥글게 뚫어낸 공간을 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둥근 모양의 문으로 들어온 햇빛과 바로 앞 담에 있는 기와지붕의 처마 그림자가 어우러져, 한 송이 연꽃을 피워 냈던 것이었다. 빛과 그림자가 함께 연출한 하나의 절묘한 걸작품이었다. 그 장면을 촬영해 그곳에 걸어 놓은 것이다. 하지만, 연꽃은 항상 피는 것이 아니라 일 년에 두 번 춘분과 추분에만 핀다는 것이었다.
서고에 보관된 책들처럼 빽빽이 꽂혀 있는 대장경을 바라본다. 대장경이 장경각에 보관된 후에도 해인사에는 일곱 번의 화재가 일어나, 많은 건물이 피해를 입었을 때도, 대장경만큼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어려운 고비마다 재난을 피해 왔던 대장경. 그 대장경이 최대의 위기를 맞았던 때가 있었다.
한국전쟁 때였다. 전력(戰力)의 약세로 후퇴만을 거듭하던 국군이 유엔군의 참전으로 반격을 가할 때, 퇴로가 막힌 공산군은 지리산과 가야산 등지로 숨어들었다.
1951년 12월 18일, 오전 8시 30분. 경찰로부터 긴급 지원 요청을 받은 공군 제1 전투 비행단 상황실에 출동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울렸고, 이에 김영환(金英煥) 편대장은 제10 전투비행 전대 보라매들을 이끌고 즉시 출격하였다. 이때 각 전투기에는 폭탄과 로켓탄, 기총(機銃) 등을 장착하고, 편대장은 그 외에 고성능 폭발력이 있는 네이팜탄을 추가로 더 보유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내려진 훈령은 해인사와 그 인근에 몰려 있던 공산군의 소굴을 폭격하여, 지상군을 지원하라는 내용이었다.
네 대의 전투기가 낙동강 줄기를 따라 북상하다가 함안 상공에서 기수를 가야산 쪽으로 돌렸다. 해인사 상공에 이르러 미군 정찰기를 따라 비행을 하던 김영환 편대장이 갑자기 무엇을 발견한 듯 해인사 계곡으로 급강하했다. 폭격 지점을 알리는 미군 정찰기의 연막탄이 해인사 앞마당에서 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폭격 지점은 해인사 앞마당이었다. 편대가 공격에 돌입하려는 순간, 편대장은 무슨 생각을 했던지 다급한 어조로, “나의 명령 없이는 폭탄과 로켓탄을 발사하지 말라. 기총만으로 사찰 주변의 능선을 공격하라.” 이때 미군 정찰기에선 “편대장은 뭘 하고 있는가, 해인사를 네이팜탄과 폭탄으로 공격하지 않고.” 하지만 편대장은 “각 기는 공격하지 말라.”고 재차 강조한 후, 해인사 뒤쪽으로 몇 개의 능선을 넘어 폭탄과 로켓탄으로 적을 공격하고 귀대해 버렸다.
문제는 그 날 저녁에 있었다. 미 공군 고문단과 정찰 안내를 맡았던 미군 장교가, 폭격 명령을 거부한 편대장을 문책하기 시작했다. 미군 정찰 장교는, “사찰이 전쟁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당신은 사찰이 국가보다도 더 중요하단 말인가?”라며 화를 냈다. 이에 편대장은 “사찰이 국가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지만, 공산군보다는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사찰엔 700여 년간, 우리의 민족정기가 서린 귀중한 문화재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프랑스가 파리의 문화 유적을 보존하기 위해 프랑스 전체를 나치에게 넘겼고, 미국이 일본의 문화 유적을 보존해 주기 위해 교토(京都)를 폭파하지 않았던 사실을 상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편대장의 답변은 조리 있고도 당당했다. 이에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던 미군 정찰 장교가 벌떡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한 후, 경례를 하며 “김영환 편대장과 같은 지휘관이 있는 한국 공군의 앞날은 밝기만 합니다.”라고 말했다 한다.
이차 대전 때 독일의 코르티츠 장군이 히틀러의 파리 폭격 명령을 거부한 것처럼, 김영환 편대장은 해인사를 폭파하지 않았다. 오늘날 프랑스가 파리의 문화 유적을 자랑하고,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 빛나는 문화유산으로 남아, 많은 사람에게 지난 역사의 숨결을 들려주는 것도 생각해 보면 미래를 내다볼 줄 알았던 이러한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운명 앞에선 그도 어쩔 수 없었던지, 그 후 그는 준장으로 승진하여 복무하다가 54년 3월, 3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가야산 상공을 비행하며 무엇을 보았을까? 가야산으로 주름 잡고, 분지에다 수(繡)를 놓은 해인사를 보았을 것이다. 둥근 능선으로 둘려 있는 가야산이 연꽃이라면, 그 속에 곱게 피어난 것은 대장경을 모신 장경각이 아니던가?
수다라장 통로 벽에 걸린 사진을 다시 본다. 연꽃 앞에 두 손 합장하고 서 계신 스님은 무엇을 기원하고 계실까? 팔만대장경의 영구 보존과, 고(故) 김영환 편대장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계신 것 같다.
봄이 오고 춘분이 되면, 장경각의 연꽃도 다시 피어날 것이다.
* 수다라장(修多羅藏) : 팔만대장경을 모신 장경각의 첫 번째 건물로 수다라전(修多羅殿)이라고도 하며, 여기서 수다라(Sütra)는 불교 용어로 불교의 경전을 일컫는 말이다.
*약력
1991년『수필문학』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문학가협회, 한국수필문학진흥회 이사, 대전 ․ 충남 수필문학회 회장 역임. 수필집『장경각에 핀 연꽃』중도일보에「중도춘추」,「교육단상」 연재. 수필춘추문학상(2002), 한국수필문학상(2007), 대전문학상(2007),박종화문학상(2018) 수상. 대전광역시교육청 중등학교 교감, 장학사, 장학관, 교장 역임,
인산기행수필문학상 심사평
2019년 ‘인산 기행수필 문학상’ 수상자로 최중호 수필가의 기행수필집 「장경각에 핀 연꽃」을 선정했다. 이 수필집은 문화유적 테마에세이로 ‘역사에 맥박 치는 민족의 영혼을 찾아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선조들의 훌륭한 업적을 보듬기 위해서 유적지를 찾아 탐방하고 그들이 남긴 문화유산의 얼을 기리기 위해 인물의 후손을 찾아 이야기를 듣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도 영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글을 쓰지 않았다는 필자의 노력은 편 편의 작품 속에 혼연히 숨 쉬고 있다. 1부 ‘백성이 춤추는 땅-조광조와 운주사 천불 천탑’에서 5부‘산에서 찾은 보물-보문산의 전설’까지 50편으로 나누어진 대한민국 문화유적 역사탐방은 혼신을 기울이지 않으면 체득할 수 없는 섬세하고 선명한 견문의 결실임을 엿볼 수 있었다. 해인사의 보물 ‘팔만대강경이 폭파될 뻔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로 시작하여 빛과 그림자가 연출하여 장경각에 핀 연꽃의 내력까지 현장 묘사에서 예리한 통찰력으로 독자의 인식을 새롭게 열어내는 안목은 심사위원들의 시선을 모았다. ‘기행수필은 여행의 동기가 뚜렷해야 하고, 여정旅程이 눈에 보이듯 분명히 나타나야 하며, 견문이나 소감이 알맞게 전달되어야 한다.’고 했다. 심사위원 세 사람은 기행수필이 요구하는 요건에 더하여 문학성 예술성이 깃든 문장의 최중호 수필집 「장경각에 핀 연꽃」을 흔쾌히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심사위원/유혜자, 장호병, 지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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