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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사는 일에 힘들어 질 때 /푹 삭힌 홍어를 먹고 싶다 /값비싼 흑산 홍어가 아니면 어떠리 /그냥 잘 삭힌 홍어를 먹고 싶다 … 썩어서야 제 맛내는 홍어처럼 /사람 사는 일도 마찬가지지 /한 세월 썩어가다 보면 / 맛을 내는 시간이 찾아올 거야 - 정일근 시 <홍어> 중에서
홍어, 전라남도의 눈물과 웃음
그랬다. 홍어는 전라남도의 애경사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눈물바다의 장례식장과 화기애애한 결혼식장에서 손님을 대접하는 건 바로 홍어. 다만, 최근 결혼식장에서는 홍어를 자주 볼 수는 없다고 한다. 최근 들어 결혼식 피로연을 뷔페를 빌려 하기 때문에 홍어를 따로 준비하지 않는 이상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아직도 중요하다싶은 행사에서는 빠지지 않는 음식이 바로 홍어다. 전라남도 중에서도 목포는 흑산도 홍어 잡이배가 가장 먼저 닿는 항구이기 때문에 홍어로 유명하다. 특히 알맞게 삭혀진 홍어회에 탁주 한 사발은 세상 시름을 조금이나마 씻어내기에 더 없이 좋은 벗이다. 홍탁으로 잘 알려진 목포를 찾았다. 그 중에서도 27년간 흑산홍어요리 전문점으로 입소문이난 금메달식당 문을 두드렸다. 옛 목포상고인 전남제일고등학교 정문 앞에 자리한 자그마한 가게. 흰색 간판에 금메달식당이라고 쓰여져 있다. 문 앞에 다가가니 식당문을 열지도 않았는데 삭힌 홍어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금메달식당은 박정숙(60) 사장이 1984년 10월 10일 홍어전문점으로 문을 열고 27년째 한 곳에서 홍어만 팔고 있는 곳이다. 단골손님이 많은 이 곳은 오랜 세월 한 자리에 머문 만큼 골수 단골뿐만 아니라 입소문을 듣고 외지에서 알음알음 찾아오는 손님들도 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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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이 유명한 이유는 흑산도 홍어만을 내놓기 때문이라고. 예전엔 흑산도 홍어인지, 수입산 홍어인지를 구분하려면 어려움이 많았으나 요즘엔 흑산도에서 홍어를 잡을 때부터 흑산도 홍어임을 증명하는 바코드를 홍어 각각에 달아놓기 때문에 흑산도산 홍어 구분이 조금 더 쉬워졌다고 한다. 박 사장이 홍어전문점을 연 이유는 이렇다. 성격이 워낙 예민해서 음식에서 티끌만 봐도 탈이 나버릴 정도. 이렇듯 예민한 성격에 어떤 식당을 내야할까 고민하다가 홍어라는 음식이 탈이 없는 음식이라서 홍어전문점을 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홍어는 잔치나 애경사에 나왔을 때 모든 탈이 날법한 음식도 홍어랑 곁들여 먹으면 중화가 돼요.” 박 사장은 홍어가 속을 훑어주는 음식이라고 예찬했다. 속을 훑어준다는 것은 홍어를 먹음으로해서 장 청소가 깨끗이 된다는 것. “홍어가 전라도에서 유명하지요. 근데 사실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에는 배가 든든한 게 최고였거든요. 그런데 홍어를 먹으면 밥을 배불리 먹었더라도 금방 소화가 되어버리니까. 홍어 먹으러 가자고하면 사람들이 싫다해요. 왜? 홍어 먹으면 속만 훑으고 배려버리니까.” 배가 금방 꺼져버리는 게 아쉬웠던 시절. 홍어를 먹으면 소화가 잘되고 장을 씻어내는 역할을 해줬기 때문에 배가 금방 고파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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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에서 숙성 중인 홍어를 들어보이는 박정숙 금메달식당 사장.(왼쪽) 흑산도 홍어 바코드 라벨(오른쪽)
박 사장의 홍어 예찬은 더 이어졌다. “홍어가 왜 좋으냐, 인간이 숨이 끊어질 때 암모니아가 배출되고 죽는데 인간이 살다보면 풍선 바람 빠지듯 암모니아가 빠져 힘이 없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삭힌 홍어를 먹으면 암모니아가 보충되어서 힘이 생겨요. 역도 선수들이 무거운 역기를 들기 전에 힘을 내기 위해 코로 암모니아를 흡입하는 이치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되요.” 삭힌 홍어에 암모니아 성분이 많은 이유는 홍어가 바다 속에서 삼투압을 조절하기 위해 사람보다 100배 정도 높은 요소를 몸안에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삭힌 홍어에서 톡 쏘는 냄새가 나는 이유는 홍어 속의 요소가 분해되어 암모니아가 발생되기 때문이다. 이 암모니아가 사람 몸 안에 들어가면 살균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목포가 홍어를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은 1800년대로 추정된다. 흑산도에서 잡힌 홍어는 지역적으로 나주 영산포보다는 목포가 흑산도와 거리상으로 가까워 덜 삭혀진 홍어를 맛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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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반시간이 훨씬 더 길수밖에 없었던 옛날에는 흑산도에서 목포를 지나 나주 영산포까지 가면 홍어가 톡 쏘는 맛이 강하게끔 삭혀진 상태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목포보다는 나주 영산포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더 많이 삭혀서 톡 쏘는 맛이 강한 홍어를 즐긴다고 한다. 홍어를 삭히는 방법은 계절마다 다르다. 며칠 동안 삭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온도의 높낮이에 따라 얼마만큼 삭히느냐가 중요한 것. 홍어를 삭히는 전통적인 방법은 홍어를 닦아서 지푸라기와 함께 독에 넣고 삭히는데, 추운 겨울에는 15일 정도 띄운다. 지푸라기를 넣는 이유는 지푸라기가 함유하고 있는 곰팡이균이 홍어를 발효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 또한 홍어를 갓 잡아오면 물과 핏물 등이 빠지는데 지푸라기를 깔면 흥건하게 젖지 않고 수분을 흡수하는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더운 여름날에는 단 이틀만에도 홍어가 삭혀진다. 보통은 일주일 정도 삭히는데 조금 더 톡 쏘는 강한 맛을 원하면 보름 정도 띄우기도 한다
오묘한 미각의 반란, 삼합 홍탁
“세월아 너를 쫓아가려니 숨이 차는 구나.” 금메달식당 안에는 이 곳을 방문한 사람들의 삶과 철학을 읽을 수 있다. 종이에 자신의 삶과 홍어에 대한 짧은 이야기들을 써서 벽에 붙여놓았기 때문. 삼합 홍탁을 기다리는 동안 벽면에 씌여진 글들을 보니, 사람 사는 애환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보인다. 삼합 홍탁은 홍어, 묵은지, 돼지고기를 차례로 얹어 세 가지 맛을 한 번에 즐기는 음식이다. 이에 탁주를 곁들이면 삼합 홍탁이 된다. 홍어를 알맞게 삭히고 돼지고기는 된장, 식초 등을 넣고 삶아 잡냄새를 없애고 썰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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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묵은지를 한 점 얹어서 한 입에 넣어 씹으면 홍어의 삭힌 맛과 돼지고기의 고소함에 묵은지가 간이 되어 입 안에서 오묘한 미각의 반란이 일어난다. 특히 탁주를 마시면 목이 칼칼해지는데 칼칼한 맛을 씻어낼 때도 삼합이 제격이다. 홍어 삼합과 탁주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우선, 홍어, 묵은지, 돼지고기를 한 입에 넣고 씹다가 입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코로 톡 쏘는 내음을 뿜어내는 것이다. 홍어는 씹을수록 톡 쏘는 맛이 그윽하게 퍼진다. 삼합을 채 삼키기 전에 탁주를 한 모금 마시며 다시 씹으면 그게 바로 삼합 홍탁 맛이다.
삭힌 홍어, 처음에 어떻게 먹기 시작했나
삭힌 홍어를 처음 먹게 된 유래에 대해서는 몇몇 설이 있다. 흑산도에서 홍어를 잡아 목포까지 배를 타고 운송해 오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한다. 풍랑이라도 치면 잡아놓은 홍어는 목포항까지 가는 동안 자연히 삭혀지게 된다. 특히 흑산도에서 나주 영산포까지 가게 되면 그 거리가 더 멀어서 톡 쏘는 맛이 목포에서 먹는 홍어보다 더 강하게 된 것. 이렇게 운반 도중 자연스럽게 삭혀진 홍어를 뭍에서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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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설은 어느날, 푹 삭혀진 홍어를 누군가 짚더미 위에 버렸다고 한다. 먹을 게 귀했던 시절 한 거지가 그 홍어로 요기를 할까 싶어서 그 홍어를 가지고 동굴로 들어갔단다. 그 모습을 본 동네 아낙네들은 저렇게 썩은 음식을 먹고 탈이 나거나 죽을 것이라고 걱정을 했지만 며칠 뒤 그 거지는 아무 탈 없이 멀쩡하게 동네를 돌아다녔던 것. 이에 홍어는 저렇게 삭아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이 하나 둘 그 맛을 보았다는 것이다. 정확한 유래는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삭힌 홍어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분명한 듯싶다.
목포종합수산시장서 저렴하고 다양한 홍어 구매
조금 더 저렴하게 홍어를 사서 집에서 먹고자한다면 목포종합수산시장을 들러보자. 이 곳에 가면, 홍어만 전문으로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고, 일반 활어와 함께 홍어를 파는 곳까지 포함하면 목포종합수산시장 내에서 어느 곳에서든지 홍어를 구매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길게 늘어선 홍어 전문 판매점들. 한 여름에 수박을 살 때 수박 한 쪽을 잘라 먹어보고 과일을 고르듯이, 이 곳에서는 그 자리에서 홍어를 썰어내 주는데 초장이 항상 준비되어 있어서 한 점 찍어 먹어보고 자신의 입맛에 맞으면 홍어를 구매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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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홍어를 포함해 흑산도 홍어보다 가격이 저렴한 칠레산, 알래스카산, 아르헨티나산 등 다양한 수입산도 판매하고 있어서 가격 흥정이 보다 자유롭다. 아쉬운 점은 홍어를 판매하고 택배 운송으로 외지에 주문발송까지 하고 있지만, 시장 안에 자리 잡고 앉아서 홍어를 먹을만한 식당은 찾아보기 힘들다. 때문에 저렴하고 싱싱한 홍어를 구매하는 것에 만족해야 할 듯싶다. 홍어 별미여행을 마쳤다면, 목포의 유달산, 해질 무렵 평화로운 북항, 목포항 등을 찾아 마무리 여행을 즐겨도 좋다. 특히 북항은 어슴푸레 해가 질 무렵 조용한 항구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첫댓글 경상도 입맛에는 영 아닌것 같은돼요~~~ㅋㅋ
최근 집안 행사가 있어 흑산도 홍어 8kg짜리 45만원 줬네여^^^맛은 끝내줘요^^
삭힌향과 어우러저서 맛이 좋더라구요 ~~~~
홍탁먹구시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