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개요
1) 무거운 죄를 처리하는 곳이 내 마음의 지성소다.
2) 역사적으로 오신 육체 예수가 우리 죄를 대신 사해 주는 것이 아니다.
3)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몸 된 성전(누스)이 된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나. 본론
1) 무거운 죄를 처리하는 곳이 내 마음의 지성소다.
“그 하늘들과 그 땅은 형성된 괴로움의 덩어리다. 형성된 것은 진리가 아니다(창 1:1)”
형성된 것은 조건에 의해 나온 것으로 변하는 것으로 무상하며 괴로움의 덩어리로서 죄의 결과일 뿐이다. 죄의 결과는 광야 생활의 과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가는 불행 그 자체다. 이 무거운 죄가 처리되는 곳이 바로 내 안의 마음 너머에 있는 지성소(베레쉬트) 안에서 일어난다. 몸 밖의 예수가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다. 나로 알고 있는 오 온(몸과 마음)을 내 안에서 스스로 처리해야 한다. 내 안에 있는 이 십자가를 통해서다.
그런 이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한다. 내가 내 마음의 휘장을 찢고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깨달아 터득해야 한다. 그리고 지성소 안에서 피 뿌리는 것을 직접 해내야 한다. 모두 비유다. 왜냐하면, 내가 왕이요 제사장이기 때문이다. 모두 자신의 내면에 있는 지성소로 들어가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구약에서는 방주 안으로 들어감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골방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2) 역사적으로 오신 육체 예수가 우리 죄를 대신 사해 주는 것이 아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왕의) 제사장들이요, 번역이 잘못되었다. ‘왕 같은’이가 아니라 실제로 왕이요 제사장이다(벧전 2:9)”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왕이요 제사장이며,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는 선지자이셨다. 그러므로 하늘의 왕 곧 대제사장은 자신의 마음의 휘장을 찢고 그 너머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직접 들어가서 속죄하는 일을 내가 직접 해내야 한다. 역사적으로 오신 예수가 대신해 주는 것이 대속이 아니다.
이론으로 학문으로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단지 손가락으로 이정표를 가리키는 역할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세상 학문은 하나님과 관계없는 모두 다른 곳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바라, 옥토 밭으로 경작하다) 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사 65:17)”
가) “또 내가 새 하늘(우라노스)과 새 땅(게)을 보니 처음 (그) 하늘과 처음 (그) 땅이 없어졌고 (그)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 21:1)”
창 1:1에 나오는 ‘에레츠’와 신약에 나오는 땅으로 번역한 ‘게’는 동의어다.
나) ‘첫 사람은 땅(게)에서 났으니’라고 성경 말씀은 땅에 관하여 사람에 관하여 정의하고 있다(고전 15:47).
‘땅(게)은 혈과 육으로 난 겉 사람의 썩어질 존재로서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전 15:50)’ 하였다.
다) ‘첫(겉) 사람은 땅(게)에서 났으니 흙(코이코스 : 더러움)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속) 사람은 하늘(참 하늘)에서 나셨느니라(고전 15:47)’
겉(첫) 사람과 속(둘째) 사람을 대비하여 설명하고 있다.
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사르크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전 15:50)’
겉(첫) 사람은 썩어서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요한복음 8장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을 들고 여인(귀네)에게 던지려고 하는 바리새인들의 마음 밭(게)에 글씨를 쓰신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마음에 들고 있던 돌(리도스)을 잠시 내려놓는다.
그러므로 창 1:1에 등장하는 땅(에레츠)은 새 언약에서 땅(게)으로 등장시켜 설명하고 있다. 이 땅(게)은 우리의 겉 사람으로 썩어서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땅’으로 번역한 ‘에레츠’와 새 언약에서의 게(땅)는 모두 사람의 마음을 가리킨다. 우주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천지 창조가 아니라 썩은 마음을 하나님 말씀으로 새롭게 회복시켜서 하나님과 나를 하나 되게 만드는 내용에 관하여 사도 바울이 설명하고 있다.
3)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몸 된 성전(누스)이 된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몸 된 성전이 된 나를 발견하게 된다. 누스(휘장 너머의 세계)의 세계가 열린 것이다. 몸 밖의 일이 아니라 내면의 일이다.
계 21:1과 창 1:1에 처음 등장한 그 마음의 그 하늘과 그 땅과 그 바다가 사라졌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창 1:1에 ‘그 바다가’ 원문에서 빠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창 1장에 내용에 바다가 나오기 때문이다. 창세기(베레쉬트)를 기자들이 다시 받아 적을 때 지구 안에 바다가 있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그 바다’를 넣지 않은 것 같다. 오해한 것이다. 마음의 바다는 에고의 덩어리로서 우리의 무의식을 지칭한다. 성경에서 이 무의식을 제일 깊이 언급하고 있다.
번역의 잘못으로 큰 오해를 가져 왔다. 이는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반드시 각자 내면의 마음 밭을 개간하여 해체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걸러내어 옥토 밭으로 가꾸는 일 곧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의 일이 각자 안에서 일어나야 한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