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개요
1) 몸과 마음의 眼耳鼻舌身意를 통한 고뇌가 있어야 그 실상을 바로 알 수 있다.
2) 우리 마음 너머에는 변하지 않는 베레쉬트(근본 하나님)가 있다.
3) 몸과 마음이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면 내면(자신)을 들여다보지 않게 된다.
나. 본론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20)”
1) 몸과 마음의 眼耳鼻舌身意를 통한 고뇌가 있어야 그 실상을 바로 알는 계기가 된다.
험난한 고난 속에서 깨달음이 찾아온다. 몸과 마음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하여 오는 고뇌가 있어야 그 실상을 바로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정과 욕심이 일어나는 몸과 마음이 중요한 교제인 셈이다. 이 도구가 없이는 깨달음으로 갈 수가 없다. 겉 사람이 없이는 속사람을 발견할 수가 없다. 젊은 과부가 있어야 그와 비교되어 참 과부가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에게 주는 큰 교훈이다.
기쁘고 행복하고 즐겁다는 것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마음에서 생긴 것은 무엇이든지 영원하지 않고 변한다. 변하는 것은 모두 생겨난 것으로서 생겨난 것은 모두 변한다. 변하는 것은 어떠한 것이든 실체가 없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이유는 생겨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변하는 것은 기쁨도 행복도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2) 우리 마음 너머에는 변하지 않는 베레쉬트(근본 하나님)가 있다.
말씀에서는 우리 속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원래부터 있어 온 것이 바로 베레쉬트(근본)다.
창 1:1부터 이 베레쉬트가 나오는데 근본 하나님이다. 태초로 오역하였다. 베레쉬트(근본)는 시제가 없다. 이것을 발견하여야 한다. 이를 발견하려면 생겨나고 변하는 몸과 마음을 잘 관찰하여야 하는 것은 이것이 바로 죄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을 맞대면하여 이 베레쉬트가 있는데 베레쉬트로 인하여 모든 죄(하마르티아)가 드러난다.
그래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계속적으로 관찰하여야 한다. 바울 사도는 쉬지 말고, 기도(프로슈케스데)하라고 하였는데 끊임없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 속성을 관찰하라는 것이다. 종교 행위가 아니다. 마음 안을 들여다보고 그 실상을 알아야 한다는 취지다.
참 과부는 자신의 전 재산인 비오스를 드렸다. 이 과부 안에서 베레쉬트(근본)를 조금 발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 너머에 있는 베레쉬트를 발견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과부가 드린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는 적은 양이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글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3) 몸과 마음이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면 내면(자신)을 들여다보지 않게 된다.
몸과 마음이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면 절대로 그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게 된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즐겁고 기쁘고 행복한 것들과 결혼하였기 때문이다. 여기 등장하는 가난한 과부는 이들과 결별하였다. 이들에 대하여 경수(몸과 마음)가 일어나지 아니한다.
세상 일이 잘 되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어렵다. 바쁘기 때문이다. 만나러 오는 자들도 만나야 하고, 만나야 하는 이도 많이 생긴다. 몸과 마음에서 계획하고 즐기고 해야 할 일이 태산이다. 그래서 몸과 마음에 고난이 오면 그때서야 몸과 마음 안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 보통의 인생이다. 몸과 마음을 통해 이루고 싶어 하는 일들에 장애가 와야 종교행위를 끊고 내면을 향하게 된다.
답답하고 세상 일이 안 풀려야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이 이야기가 성경 말씀이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