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들과 딸 자랑
우리 부부는 아들 하나 딸 하나 남매를 낳아서 키웠다. 만년 아기 같은 아들이 대학에 다니다가 군대 영장이 나왔다. 아들이 군에 가기 전에 충분한 대화와 아들의 걱정과 고민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것이 중요한데 매일 그 원수 돈 때문에 아들과 이야기도 한 번도 못 하고. 차일피일 시일이 지나갔다. 아비의 가슴속으로 하고 싶은 말도 많은데 하지 못하고 가슴앓이만 하고 있었다. 아들은 나라의 부름을 받아 씩씩하게 논산훈련소를 입대 하였다. 아들이 입대하니 내 어릴 적 생각이 났다.
어머니께서 주신 돈 5.000환 생각이 지금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데 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전방에서보다 후방근무를 하는 것을 어느 부모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아들은 논산훈련소 훈련을 마치고 어느 날 아침에 집으로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 나 00사령부 수송부대에 왔다 한다. 근무 잘해라 말하고 집사람에게도 아들이 후방 00사령부 수송부에 근무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우리 집사람은 속으로는 기분이 좋은 것 같은 마음이다.
아들은 후방에서 근무를 하니 좋기는 하나 한 가지 불편한 점은 일요일마다 외출을 온다는 것이다. 집사람이 이번 주 외출 나오면 다음은 주는 오지 말라고 용돈을 만들어 주어서 보내면 그다음 주에 또다시 왔다.다.
.세월이 흘러 아들이 제대했다. 제대하고 다니던 대학에 졸업하고 나는 포항에 있는 나의 동서가 근무하는 제철소에 한 번 다녀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가 하는 전기 일을 하겠다면서 우리 집 직원들과 공사 현장으로 가서 열심히 전기 공사 일 하고 있다. 아들에게 앞으로도 사업을 잘하려면 많은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다고 몇 가지 당부를 했다…. 첫째 자격증을 취득하여 전문 지식을 습득하고 최신 기술과 규정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전기공사는 안전이 최우선이므로 안전 규정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안전 장비를 사용하고 작업 시 안전사고를 방지하려는 조처를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고객과의 원활한 소통과 응대가 중요하다. 고객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신속히 대응하여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성공에 필요한 요인이라고 말해주었다.
전기공사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분야이므로, 지속적인 교육과 기술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최신 기술과 동향을 파악하고 자기 계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고객에게 높은 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객의 만족을 위해 지속적인 품질 향상과 서비스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들은 자기가 다니던 학교 친구 소개로 같은 대학전기과 여자 친구를 만나서 결혼식까지 했다. 아들 신혼살림을 모 아파트 전세로 구입하여서 신혼 생활을 하도록 하고 아들은 더욱더 열심히 일을 했다. 며느리는 집에서 혼자 공부하여 전기공사 2급 자격증도 소지하여 유진전기에 면허를 사용하고 있다.
내가 공사업을 할 때는 열심히 하고 단단하게 하자 없이 공사하여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나서 여러 곳에서 공사 발주 의뢰가 들어오고 있다. 요사이는 골프장에서 공사 발주가 많이 나오고 있다. 아들이 앞으로도 우리의 공사업을 잘하려면 많은 전기공사업은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이 필요할 것이다.
전기공사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분야이므로, 지속적인 교육과 기술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나의 바람은 아들이 전기공사업을 잘 수행하고 성공적으로 경영할 수 있도록 바란다.
다음은 하나밖에 없는 딸 이야기를 하겠다.
나는 배우지 못하여도 자식들에게는 자기들 하고 싶은 일이면 미국 유학이라도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 딸 이름은 강경미(아비인 내가 지었음)고 등하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4년제를 졸업하고 자기는 꼭 공무원이 되겠다고 공부를 한번 해 본다고 하면서 시내에 있는 모 학원에 다니면 아침 8시 전에 학원에 가야만이 자리가 있다며 우리 집사람은 새벽에 일어나서 도시락 3개를 싸서 딸에게 주면, 도시락 3개를 싸 가지고 매일 학원까지 아침마다 태 위주었다. 근 1년간 공부를 하더니 공무원 시험에합격하여 근무지가 인천세무서로 발령이 났다. 거리가 멀어가지는 못 가고 인터넷으로 인천세무서 근처 부동산에서 연락하여 방 하나 깨끗한 것 계약하고 간단한 살림살이 챙겨서 나의 차에 싣고 인천으로 아침 일찍 출발하였다. 대구에 인천까지 약 5시 간만에 도착 그곳에서 모자라는 물건 준비하고 집사람은 밑반찬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같이 하룻밤 자고 경미는 인천세무서로 출근하고 집사람하고는 대구로 왔다.
세월이 흘러 경미는 그곳 사내(세무공무원) 남자 친구를 만나 우리가 한번 올라가려면 2일 이상 시간이 소요되니까 자주 못 가고 그때 집사람이 허리가 아파서 경미 근무하는 곳에 진단서 기타 서류와 함께 제출하여 경미는 대구로 근무처를 옮겨왔다. 그리고 서울 모 국세청에 근무하던 경미 남자 친구도 대구로 왔다. 경미 남자 친구는 고향이 영양이고 머리가 좋아서 수원 세무대학을 나와서 세무 공원이 되었다. 경미는 그 남자 친구와 결혼하였다. 사위는 모 국세청 근무하다가 세무사 자격증을 따서 대구 대명역 3번 출구 바로 앞 건물 6층 전 층에 조수양 사무실을 하고 있고 우리 딸 경미는 과장직으로 모 지방국세청에 근무 중이고 나의 외손은 부산의대 대학에 다니고 있다.
지난 5월 5일 어버이날 어린이날 한꺼번에 한다고 학명리 집에서 가족들이 다 모였다. 내가 가족 다 모인 앞에서 금화리 밭은 나의 외손 앞으로, 주기로 한다고 이야기하고 집사람과 내가 힘이 없어 농사일을 못 하면 주겠다고 서류에 도장을 찍어서 사위에게 주니 사위는 안 주셔도 된다고 말로는 하지만 속마음은 어디 그러 했겠는가? 요사이는 법이 법이니 사위 자식도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다. 내 고향에 있는 밭은 하루 종일 햇볕이 들어 일조량이 많아서 모든 곡식이 잘 된다. 내 바람은 내가 이 세상에 없어도 그 땅을 남에게 팔지 말고 먼 훗날에 전원주택을 짓고 채소 심고 가꾸면서 여생을 보내고 살았으면 하는 나의 부질없는 생각도 해본다. 아무튼 너희들이 훗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먹고 싶은 것 안 먹고 안 입고하여 구입한 밭이라는 것만 알아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