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일곱째 봉인과 여섯 나팔 8,1-9,21
일곱째 봉인은 일곱 나팔과 연결되어 일곱 나팔에 의한 재앙을 이끄는 것으로 묘사된다. 어린 양이 일곱째 봉인을 뜯자 하늘에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고 표현한다. 8,1. 성경에서 침묵의 시간은, 새로운 일을 앞두고 준비하는 시간을 말한다. 이 시간이 지난 후 일곱 나팔에 대한 본격적 환시가 시작된다. 나팔에 의한 재앙은 점진적으로 강해진다. 이 환시는 재앙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통치가 시작되었음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처음 네 나팔에 대한 환시
일곱 천사에게 나팔이 주어졌다고 한다. 기원이 하느님께 있음을 나타내며, 일곱 천사는 토빗기에 나오는 일곱 대천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토빗 12,15. 이들에게 주어진 나팔은 ‘주님의 날’(요엘 2,1 스바 1,16)이나 종말의 때를 알리는 도구로 사용된다. (이사 27,13 ; 즈카 9,14). 3절에 또 다른 천사가 나와서 금향로를 들고 있다고 나온다. 향이 담긴 금 대접은 성도들의 기도이다. 5 장 8 절 참조. 이제 천사들의 손을 거쳐 향이 타올라 그 연기가 하느님 앞으로 올라가는 것처럼, 성도들의 기도 역시 하느님께 이른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숯불을 가득 담아 땅에 던졌습니다’ 라는 8장 5 절은 에제키엘 10 장 2 절처럼 재앙을 가져오는 상징적인 행위이다. 일곱 나팔의 환시는 ‘천사가 나팔을 불자’라는 표현은 시작한다. 그리고 나팔을 통해 주어질 재앙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재앙의 결과를 설명한다.
봉인에 대한 환시와 마찬가지로 나팔에 대한 환시도 처음 네 나팔을 묶어서 표현한다.
첫째 나팔은 하늘에서 ‘피가 섞인 우박과 불’, 8 장 7 절. 이 땅에 떨어진다. 이 일로 땅과 나무의 삼분의 일이 타버린다. 이 환시는 이집트에 내린 일곱째 재앙(탈출 9,23-26)과 비슷하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일곱 봉인에서는 땅의 사분의 일(6,8)이었는데 여기서는 삼분의 일로 커졌다. 첫째 나팔과 함께 시작된 재앙에 나오는 ‘나무와 푸른 풀’은 양식과 관련되어 있고, 인간에게 필요한 양식이 부족할 것이라는 상징이다.
둘째 나팔은 바다에 내리는 재앙이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생명체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파괴된다. 이 재앙은 이집트에 내린 첫째 재앙, 곧 나일강이 피로 변하는 재앙을 생각나게 한다. 첫째 재앙이 땅의 소출과 관계된 것이라면, 둘째 재앙은 바다에서 나는 소출과 관계된다.
셋째 나팔은 물과 관련된다.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과 샘의 삼분의 일을 덮친다. 8,10-11 절. 여기 나오는 ‘쓴 흰 쑥’은 독초와 비슷한 것으로 잠언 5,4과 예레미야 9,14절에 등장한다. 그리고 이 표현은 물을 마실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땅에서 나는 양식과 바다의 생물이 피해를 입은 데 이어, 이제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마실 물이 피해를 입는다.
넷째 나팔은 어둠의 재앙이다. 빛을 내는 해와 달과 별이 빛을 잃어 낮이나 밤이 더욱 어두워진다. 8,12. 이 재앙은 이집트에 내린 아홉째 재앙인 ‘어둠’(탈출 10,21-23)에 상응한다. 그리고 어둠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빛의 상실을 의미한다. 이 네 재앙들은 모두 인간의 삶과 직접 관련된 것이다. 땅과 바다의 소출, 물과 빛이 부족하다는 것은 하느님의 재앙이 좀 더 직접적으로 그리고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8 장 13 절에 독수리의 외침이 등장한다. 독수리는 신비한 동물로 여겨졌고, 또 높이 나는 것, 높은 곳에서 지상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신과 관계된 동물로 생각했다. 그래서 독수리는 하느님의 심부름꾼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느님의 명령으로 세상에 재앙을 알리는 독수리는 또 다른 천사일 수도 있다. 독수리는 세 번에 걸쳐 ‘불행 하도다’를 외친다. 세 번에 걸쳐 외쳤다는 것은 앞으로 나올 세 개의 나팔 소리와 관계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땅의 주민은 ‘믿지 않는 이들’을 가리키며(6,10; 11,10; 13,8.12.14; 17,2.8) 앞으로 다가올 심판의 대상자들이다.
9 장부터 다섯째 나팔의 환시가 나온다(9 장 1-12 절).
다섯째 나팔로 인한 재앙은 메뚜기에 대한 환시이다. 메뚜기는 이집트의 여덟째 재앙에(탈출 10,12-20) 등장했다. 이전까지의 재앙과 비교해 볼 때 다섯째 재앙은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향한다.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 별’(9,1)에서 별이 나락의 구렁(지옥의 구덩이)을 여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의인화되어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위임을 받아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천사를 표현한 것이다. 20 장 1 절에서도 지하의 열쇠를 가진 천사를 같은 이미지로 표현한다. ‘지하’는 성경에서 죽음 후에 머무는 장소(시편 71,20; 로마 10,7)를 의미하지만 요한 묵시록에서는 악령이 머무는 곳을 의미한다(루카 8,31; 2 베드 2,4). 지하는 보통 불길에 휩싸여 있고 항상 닫혀 있는 장소로 여겨졌다. 이런 지하로 가는 길이 열리면 불로 인한 연기가 자상으로 올라온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고 이런 이미지는 종말에 일어날 일들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 ‘나락’이란 타락한 천사들이 갇혀 있는 장소로 인식되고 있다(루카 8,31; 2 베드 2,4; 유다 1,6). 나락에는 레비아탄과 악을 상징하는 다양한 괴물들이 갇혀있다고 생각했다. 이 나락은 땅 밑으로 바다와 통하여, 협소한 구멍을 통해 육지와도 통한다. 이 협소한 구멍을 나락의 구렁이라고 부른다. 욥기 38,16 절에서는 이 협소한 구멍이 봉인된 돌로 막혀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봉인을 풀기 위해서는 열쇠가 있어야 한다. 이 구멍을 막아 놓은 것은 타락한 천사들이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고 용광로의 열기와도 같은 연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나락과 땅 사이를 연결시키는 통로로서의 지형적 이미지는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힌놈(Hinnom, 게헨나) 계곡을 상기시킨다. 그 계곡에서 제철 업자들 도자기 제조 공들이 끊임없이 불을 지피고 있는 용광로에서는 불과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그 옛날 그 음침한 곳에서 사람들을 희생 제물로 바쳤던 것을 기억하게 해 준다. 2열왕 16,3; 예레 32,35절 참조. ‘풀과 푸성귀나 나무는 해치지 마라’ 라는 명령이 나온다. 이 메뚜기는 식물을 먹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인장이 찍히지 않은 사람들만 해치라’ 9,4 는 명령을 받았다. 이 재앙은 악의 세력에 동조한, 하느님을 반대하는 이들을 향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재앙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다섯 달 동안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여기 나오는 다섯 달이 메뚜기가 실제로 살아가는 주기를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메뚜기는 봄부터 여름까지 발견되기 때문이다. 메뚜기들은 지하의 사자인 아바똔, 곧 아폴리온을 임금으로 섬기고 있다고 표현된다. 저승 또는 지하 세계를 나타내는 히브리어 아바똔을 그리스어로는 아폴리온(부패 또는 파괴하는 자)라 한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하느님의 힘이 지하 세계에도 미친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지하 세계의 세력들은 지상으로 올라올 수 없다.
여섯째 나팔은 더욱 강화된 환시이다. 메뚜기들은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네 천사에게는 사람들의 삼분의 일을 죽이는 권한이 주어진다.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요인은 ‘불과 연기와 유황’ 9,18 인데 전통적으로 이것들은 하느님의 벌을 나타낸다.
여섯째 중요한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 재앙으로 죽임을 당하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도 저희 손으로 만든 작품들을 단념하지 않았습니다.’ 9,20 이라는 표현이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성경에서 우상을 가리키는 전형적인 표현이다. 9장 21절에서도 ‘그들은 또한 자기들이 저지른 살인과 마술과 불륜과 도둑질을 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 두 표현은 묵시록에 나타나는 재앙들을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려준다. 하느님의 재앙은 믿지 않는 이들, 믿는 이들을 박해하는 사람들, 하느님께 맞서는 세력에 동조하는 이들을 향해 있고, 이 재앙의 목적은 회개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을 한 번에 심판하지 않고 여러 차례 재앙을 내리는 것은 하느님을 반대하는 이들에게 회개의 시간을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시간이 지나면 회개를 위한 기회는 더 이상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선택받은 이들에게 이 회개의 기회가 고통의 시간일 수 있지만, 하느님의 뜻은 잘못된 길을 선택한 이들에게 회개의 가능성을 남겨 두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