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악(禮樂)사상과 조선 음악의 비극 - 한국음악 미학 강의 6 냉이 ・ 2024. 5. 7. 16:54 URL 복사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앞서 당악과 아악을 공부하며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유교 이념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는 예악(禮樂)사상은 대체 무엇인가? 향악과 당악, 아악이 어우러져 형성된 조선 궁중 음악을 왜 아악으로 통칭하는가?
1. 예악(禮樂)사상
조선의 지도자들은 음악으로 유교적 이상을 나타내려 했다. 그러나 대체 철학을 어떻게 음악에 담는다는 말일까? 가사 외에 어떤 이념을 드러낼 수단이 있긴 한가? 나에게는 ‘민주주의적 음악’ 정도로 들렸다.
사실 예악사상이란 ‘음악 속에서 예를 나타내는 것’이라기보다는 ‘예와 악을 병행하는 것’에 가깝다.
禮(예) : 예절 - 질서 樂(악) : 음악 – 화합
‘예절’이라고 했을 때 먼저 떠오르는 사항들은 보통 이렇다. 선생님께 인사하기, 쩝쩝대지 않고 밥 먹기, 부모님께 존대하기, 장례식에 어두운 옷 입기 등. 어린이 예법서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규정하는 내용들이 곧 예절이다. 간단히, 사회의 규칙과 질서다.
음악은 지위고하와 상관없이 누구나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집단 내에서 엄밀한 격식을 허물고 다 함께 음악과 분위기를 즐기도록 한다. 대학 축제에서는 교수님들도 캠퍼스로 나와 학생들과 왁자지껄하기도 한다. 운동 경기에서 팀 주제가는 서로 모르는 관중들이 단합해 응원하도록 만든다. 단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있을 때도 음악이 들려온다면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진다. 화합! 음악은 이처럼 사람들이 화합하도록 한다.
질서가 과하면 구성원 간 격이 너무 멀어지고, 화합이 과하면 격이 너무 없어진다.
MZ가 제일 싫어한다는 부류, ‘꼰대’가 과한 옛날 질서를 고집하는 사람이 아닌가. 한국! 최고야! 과한 질서, 즉 과한 예는 사회 내 각 집단의 폐쇄성을 극대화한다. 꼰대 문화, 가부장제, 갑질 등 예의 남용 사례는 많다.
한편 과한 화합, 즉 과한 악(樂) 역시 사회에 혼란을 야기한다. 음악의 자유로움과 즐거움만 남기면 맨스티어와 뷰티풀너드의 ‘AK47’ 따위 노래가 나오는 것이다. “AK47 맞고 사망한 외할머니 그 말대로 악소리 47번 외치셨지”
이 가사를 살아있는 외할머니 앞에서 직접 부르는 영상도 볼 수 있다.
이는 사실 두 개그 유튜버가 한국 힙합씬을 풍자하기 위해 만든 노래다. 과장된 불행 서사, 경박하게 느껴질 정도의 돈 자랑, 마약이나 폭력 범죄 미화, 여성을 성적 도구로 묘사하는 모습 등 현재 한국 래퍼들의 허세스러운 모습이 극적으로 나와 있다. 악의 남용은 이런 문란함을 초래한다.
예악사상은 예를 악으로써 조절하고 악을 예로써 절제하는 체제다. 음악을 우아하게 만들어 그 안에 주역 사상 등 성리학적 내용을 담으려는 의도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음악 자체가 유학적 이상 사회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제례작악(制禮作樂), 즉 예를 세우고 악을 만드는 것은 건국 이후 필수 코스였다. 제례작악 첫 단계는 기준 음 세우기였다. 법률(法律)의 률(律)도 음악 용어인 음률(音律)에서 유래한 것이다.
2. 아악(雅樂)
앞서 살펴본 아악은 송나라의 의식 음악이었다. 조선 궁중 음악은 세종이 한 차례 한국화하여 개조한 작품이다. 그런데 왜 현대에 조선의 제례 음악을 아악이라고 칭할까?
본래 당악(唐樂)은 서역악에 영향받아 생긴 당나라의 속악(俗樂)이다. 당 이후 송나라 때도 이는 계속 당악으로 불리며, 아악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북송시대에 우리 땅에 아악이 들어온다. 향악, 당악, 아악이 합쳐져 조선의 궁중 음악이 만들어진다. 조선시대에도 향악, 당악, 아악이라는 용어는 있었다. 계층별 음악 특징도 뚜렷이 갈렸다. 그러나 ‘민속악, 정악, 아악’이라는, 음악을 계층별로 나누어 지칭하는 용어는 근대에 생겼다. 조선 궁중 음악이 ‘아악’으로 통칭되는 이유는 역시 일제와 관련 있다.
일본의 영향으로 통감부 시절 이전에 없던 ‘국악’이라는 용어가 생긴다. 이후 1911년 한일합병 직후 이왕직 아악부가 생겨 기존 궁중 음악을 담당하게 된다. 조선시대에는 장악원(掌樂院)이라는 기관에서 궁중 음악을 관장했다. 일제의 영향으로 이(李)씨 왕가의 음악부라는 이름으로 격하된 것이다. 이 기관은 현재 국립국악원과 국립국악고등학교의 전신이다. 국립국악원 / 국립국악고등학교 이때부터 아악이 궁중 음악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같은 1911년, 민간 음악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조선정악전습소가 생긴다. 이에 따라 ‘정악’ 용어가 등장한다. 정악전습소에서는 조선악(구악)과 서양악(신악)을 나누어 가르쳤다. 조선악은 상류층과 중인 계층의 시조나 영산회상 등을 주로 가르쳤다. 아악부와 정악전습소에 속한 교사들은 서로 오가며 교육했다. 따라서 궁정 음악과 민간 상류 계급 음악이 섞여 정악으로 통칭된다. 광복 이후 이 기관들은 폐지되고 궁중 개념도 없어진다. 아악과 정악이 통틀어 정악으로 불리게 되었고, 정악과 민속악이 대비된다. 이들을 모두 통틀어 국악으로 통칭한다. 국악에 대해서는 다음 글, 세 번째 시기에서 자세히 다룬다.
본래 정악과 아악이 추구하는 바가 같긴 하다. 정악과 아악은 우아하고 정제된 음악을 추구한다. 미학적으로는 같은 개념이다. 우륵이 말한 “락이불류 애이불비(樂而不流 哀而不悲)”가 이 정신을 잘 나타낸다. ‘즐겁지만 방탕하지 않고, 슬프지만 비통하지 않다’는 의미다. 논어 구절 “락이불음 애이불상(樂而不淫 哀而不傷)”에서 비롯된 문장으로 보인다. ‘즐겁지만 음탕하지 않고, 슬프지만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륵의 문장보다 더 강한 뉘앙스를 풍긴다. 우륵
그렇다 해서 우리 음악의 역사를 통폐합할 수는 없다. 마치 요즘 대학에서 순수 인문학과를 통폐합하는 모습과 비슷해 보인다. 우리는 중국 및 외국을 받아들여 끊임없이 한국화했다. 중국 용어인 ‘아악’으로 조선 궁중 음악을 통칭하거나, 조선 음악 자체를 한 개념에 욱여넣을 수는 없다.
다음 글에서는 마지막 세 번째 시기에 대해 다룬다.
Coursera 강의 "Korean Music, A Philosophical Exploration" 참조. 태그#미학#한국미학#한국음악#예악#예악사상#조선음악#궁중음악#AK47#아악#일제강점기#이왕직아악부#조선정악전습소#정악#우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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