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필 목사의 일본선교 비망록 - 18 - 일본에서 첫 회사생활
일본에서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졸업했고 한국에서도 일본어를 가르쳐왔었기에 언어상에 있어서는 문제가 없었다. 아니,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문제는 학교가 아닌 직장생활이 처음이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학교를 졸업하고 신입사원으로 취업했을 당시 몇 개월 동안 사내교육을 받기도 하였으나 일본에서는 그와 같은 경험이 없다.
대체적으로 문화나 생각도 비슷하기에 큰 차이가 없다고는 하나, 그래도 어른들 특히 직장인들이 사용하는 말투는 일상적인 대화와 조금 다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나 막상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으니 괴롭다.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문제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했던 부분이 초기에는 무거운 짐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바로 일본어로 일본어를 가르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일본어로 일본어를 가르친 적이 있었던 적은 단 한 번 있긴 했다.
그것은 아직 한국에서 일본어 강사생활을 하고 있었을 때였는데, 그날 오전에 학원측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것은 바로 오늘 오후에 있는 원어민 수업의 선생님이 갑자기 못 나오게 되었는데 오늘 하루만 수업을 진행해줄 수 있는가 하는 문의였다. 학생은 3~4명 정도의 한국인이었고 그저 아마도 90분 수업이 아니었을까 하는데, 간단한 교재로 마치 원어민 강사처럼 수업 내내 일본어로 진행했었다.
그 때는 일본어로만 진행하는 것이 처음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자신의 수업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나 당시에는 시간이 좀처럼 가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비록 일본어로 진행하는 수업이기는 하나 어차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내용이었기에 한국에서의 경험은 대단히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상증세는 조금 뒤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출근하기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까. 갑자기 심한 두통을 앓기 시작했다. 진통제를 먹어도 일시적으로 잠잠해질 일 뿐, 조금 있으면 다시 나를 괴롭힌다.
나는 처음에 몹쓸 병에라도 걸린 줄 알았으나 1주일 뒤에는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아마도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일본어로만 생활해야 하는 정신적인 부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당시 나는 부모님과 함께 교회 건물에서 살고 있었기에 교회가 있는 시부카와 시에서 아침 7시 20분 경에 출발해야 한다.
회사의 공식적인 근무시작은 9시인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늦어도 8시 20분까지 나와야 했다. 그 이유는 매일 아침 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회 때에는 당일 직원 간에 있어서 업무연락이 대략 5분 정도, 그리고 다음은 사장님 말씀을 15분정도 들어야 한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자면 정시 출근 비정시 퇴근이다. 내가 이 곳에 2년 반 정도 근무하면서 정시 6시에 퇴근한 적은 거의 한 손가락으로 셀 정도였으며, 대부분 집에 도착하면 오후 9시가 넘어 있었다.
며칠 근무하다가 나는 처음 면접을 보았던 주임선생님께 말하기를 학생들을 좀 가르치고 싶다는 뜻을 전하자 사장님과 상의를 해보겠다고 했다. 그 결과 나도 수업을 맡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내 일상적인 업무량이 줄어든 것이 아니기에 피로는 더해져 가기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놓지 못했던 이유는 단 하나, 월급 때문이었다. 교회에서 재정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보니 나로서는 30만엔도 안 되는 급여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월화목금토에 출근, 수요일에는 수요예배를, 주일에는 주일예배를 인도한다. 그리고 당시에는 비록 가족끼리였으나 매일아침 새벽예배도 인도하고 있었기에 몸은 점점 피폐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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