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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세상은 시스템이다. 메커니즘에 에너지를 태운 것이 시스템이다. 메커니즘은 두 대칭을 연결하여 직진성을 획득하게 한다. 무질서에 에너지가 작용하면 제자리로 돌아와 자기 자신을 찌르는 자충수가 된다. 그것은 모순이다. 계속 가운데로 모인다. 우주는 뻗어나가지 못한다.
메커니즘은 구조를 연결한다. 구조는 방향전환의 단위다. 구조는 방향을 전환하고, 메커니즘은 방향을 결정하며, 시스템은 에너지를 공급한다. 시스템이라는 궁수가 메커니즘이라는 활로 구조라는 화살을 쏘면 변화라는 화살이 날아가고 명중이라는 존재를 우리는 목격한다.
대칭성
대칭은 비대칭의 자궁이다. 대칭의 활이 비대칭의 화살을 쏜다. 활은 대칭이다. 활몸과 활시위가 대칭이다. 화살의 머리와 꼬리도 대칭이다. 그러나 화살은 항상 머리쪽으로 날아간다. 화살은 뒤로 날아가지 않는다. 대칭은 비대칭의 일방향성을 조직하는 절차에 다름 아니다.
직각을 작도하려면 컴퍼스가 필요하다. 컴퍼스가 대칭의 활을 만들면 화살은 직각으로 날아간다. 대칭은 비대칭을 만드는 도구다. 만약 비대칭이 아니면 어떻게 될까? 원래의 위치로 돌아와서 자기 자신을 침범한다. 비뚤어져 자란 황소의 뿔이 두개골을 찌르는 것과 같다.
모든 동물과 식물은 대칭을 이룬다. 인간이 만든 기계도 마찬가지다. 모순, 자충수, 자가당착, 자중지란을 피하는게 모든 설계의 출발점이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기계든 메커니즘의 본질은 같다. 에너지 전달이 가능한 구조라야 한다. 대칭은 에너지가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비대칭이면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려서 방향전환을 할 수 없다. 무생물은 대칭을 이루어야 형태가 깨지지 않는다. 양양해변의 몽돌은 전방위로 대칭이다. 몽돌의 크기도 같다. 자기 내부에서 대칭을 이룰 뿐 아니라 다른 몽돌과도 대칭된다. 모든 변화하는 것은 대칭된다.
대칭은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형태다. 동물은 좌우대칭을 이루어 직진하고 식물은 좌우대칭을 이루어 햇볕을 찾아간다. 대칭이 아니면 에너지의 방향전환이 안 된다. 외부에서 작용하는 힘을 반대로 틀어서 반작용으로 맞서야 하는데 비대칭은 반작용을 못하므로 깨진다.
대칭은 본질이 아니고 직진성이 본질이다. 무질서가 에너지를 얻으면 대칭을 낳고 대칭이 또다른 대칭을 낳는다. 두 대칭이 연결되어 직선이 만들어지면 비로소 에너지가 말단부로 전달된다. 대칭은 비대칭을 낳고 비대칭은 직진성을 낳는다. 이에 널리 우주가 만들어졌다.
우주의 메커니즘을 이루는 3요소 - 카오스 > 대칭성 > 직진성
태초에 무질서가 있었다. 이윽고 에너지의 용틀임에 의해 메커니즘이 작동을 시작한다. 태초의 무질서에서 대칭과 직진으로 가는 3단계의 방향전환을 거친다. 이는 생물의 진화, 문명의 발달, 기계의 발전에 공통되는 우주의 보편원리다. 우주는 혼돈과 대칭과 직진이다.
직진성
과학자들이 대칭은 아는데 대칭의 축을 모른다. 우리는 두 발로 걷는게 아니고 상체를 기울여서 걷는다. 대칭은 비대칭을 만들기 위한 빌드업에 불과하다. 두 다리는 직각을 만드는 컴퍼스다. 만약 대칭이 아닌 무질서가 에너지를 얻으면 어떻게 될까? 제자리에서 맴을 돈다.
대칭을 거치지 않은 비대칭은 부메랑처럼 제자리로 돌아온다. 한쪽 다리가 짧은 사람이 숲에서 길을 잃으면 원래 위치로 돌아오므로 숲을 탈출하지 못한다. 빛이 직진해도 전자 내부에서 대칭을 만들고 다시 그 대칭을 깨며 직진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볼 수 있다.
존재는 메커니즘이다. 우주는 메커니즘이다. 메커니즘의 직진성이 우주가 만들어지는 첫 단추다. 이 하나의 원리를 우주의 팽창, 생물의 진화, 문명의 진보, 지식의 복제, 기계장치의 발달이 공유하며 변화의 꼬임을 방지하여 구조의 모순을 해소하고 한 방향으로 계속 간다.
물레방아는 물레와 방아에 각각 대칭이 있다. 물레와 굴대의 대칭에 방아와 확의 대칭을 연결하여 에너지 전달의 비대칭성을 얻는다. 여야대칭, 선악대칭, 머리와 꼬리의 대칭을 비롯한 모든 대칭이 직진성을 획득하여 자충과 자멸을 막는 장치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방향성
구조의 대칭성이 직진성을 만든다. 곡선이 플러스라면 직선은 마이너스다. 로켓은 직진하며 연료를 잃는다. 무언가 플러스 되면 대칭의 축에 붙잡혀 원래 위치로 되돌아온다. 눈이 쌓이면 나뭇가지가 휘어진다. 살이 찌면 몸은 곡선이 된다. 풍선이 부풀어도 곡선이 된다.
곡선은 어렵고 직선은 쉽다. 당첨은 어렵고 낙첨은 쉽다. 성공의 비결은 곡선을 직선으로 바꾸고, 플러스를 마이너스로 바꾸는 것이다. 주는 것이 마이너스다.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려면 객체를 붙잡는 도마가 필요하다. 매개가 있어야 한다. 주머니가 필요하다.
곡선이 직선을 낳는다. 대칭이 비대칭의 자궁이다. 상부구조가 있어야 방향전환이 가능하다. 메커니즘을 갖추어야 구조가 작동하여 의사결정에 성공한다. 물레가 있어야 방아가 돌릴 수 있다. 바퀴와 지면의 대칭이 만드는 회전운동이 자동차의 직선운동을 끌어낸다.
플러스는 무겁다. 곡선은 무거워서 균형을 깬다. 마이너스는 가볍다. 직선은 가벼워서 균형이 유지된다. 전략은 곡선으로 연결하고 전술은 직선으로 타격한다. 전략이 수평연결이라면 전술은 수직공격이다. 전략은 횡대로 적을 포위하고 전술은 종대로 적을 타격한다.
플러스 - 마이너스
곡선 - 직선
메커니즘 - 스트럭쳐
도마 - 재료
전략 - 전술
수평 - 수직
횡대 - 종대
세상은 구조다. 구조는 직진성을 만든다. 이때 대칭성을 거친다. 곡선운동을 직선운동으로 바꾼다.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꾼다. 우리는 다리가 둘이므로 똑바로 걸을 수 있다. 선과 악이든, 진보와 보수든, 머리와 꼬리든 두 다리가 대칭이 되어야 직진할 수 있다.
소거법
비대칭은 대칭을 만들고 대칭은 직선을 만든다. 비대칭의 카오스는 원을 그리고 제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전진할 수 없다. 중력이 만들어지는 원리다. 로켓의 무게중심이 맞지 않으면 궤도가 휘어져서 지구로 추락한다. 어떤 카오스적 존재는 반드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세상은 마이너스다. 플러스는 에너지 보존 법칙과 충돌한다. 플러스는 0에서 시작한다. 0은 무다. 무에서 유가 생길 수 없다. 자연에서 플러스는 불가능하다. 변화는 유에서 일어난다. 유는 0이 아닌 수다. 유는 있으므로 거기서 뺄 수 있다. 오로지 마이너스만 가능하다.
우리는 살면서 쉽게 플러스를 구사하지만 거짓이다. 플러스는 받는 것이다. 주는 사람이 있어야 받을 수 있다. 어디서 마이너스가 일어나야 플러스가 가능하다. 우주 안의 모든 변화는 자리바꿈이며 저쪽에서 일어난 마이너스가 이쪽에 플러스 된다. 마이너스가 먼저다.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연결되어 하나의 메커니즘을 이룬다. 마이너스가 먼저 가고 플러스가 따른다. 머리가 먼저 가고 꼬리가 따른다. 전략이 먼저 가고 전술이 따른다. 위치에너지가 먼저 가고 운동에너지가 따른다. 곡선운동이 먼저다. 직선운동으로 바뀌어 전달된다.
사건은 마이너스로 시작되어 플러스로 종결된다. 우리가 플러스를 봤다면 사건의 종결부분을 본 것이다. 사건의 전모를 보지 않았다. 원인을 놓치고 결과만 봤다. 활이 화살을 뺏기는 마이너스를 놓치고 과녁이 화살을 얻는 플러스만 봤다. 사건의 전모는 메커니즘이다.
메커니즘은 모래시계다. 상단의 마이너스가 하단에 플러스 된다. 의사결정은 상단에서 일어난다. 머리에서 결정되고 꼬리에서 집행된다. 물레에서 결정되고 방아에서 실행된다. 도마에서 결정되고 냄비에서 요리되므로 상단에서 일어나는 마이너스를 주목해야 한다.
마이너스는 쉽다. 돈을 줍기는 어렵고 잃기는 쉽다. 그런데 동전의 양면이다. 우리는 어려운 플러스 구조를 쉬운 마이너스 구조로 변환할 수 있다. 도마를 쓰는 것이다. 객체를 붙잡아주는 매개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때 대칭된다. 대칭의 도마에 직선의 칼로 요리한다.
축구라면 단독드리블은 적의 영토를 빼앗는 플러스다. 직선으로 돌파한다. 팀전술은 공을 뺏기지 않는 마이너스다. 곡선으로 패스한다. 적의 것을 빼앗기는 어렵지만 내것을 잃지 않기는 쉽다. 모든 플러스 구조에 도마를 도입하여 마이너스 구조로 변환하면 막강하다.
도마는 재료를 붙잡아 방향전환이 가능한 구조로 만든다. 침팬지에게 과일을 주면 입이 터지도록 집어넣는다. 볼이 가득차면 손에 쥐고 발가락에 끼운다. 플러스가 불가능한 한계에 도달한다. 침팬지는 주머니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플러스는 이런 딜레마에 봉착한다.
곰이 연어를 잡아 옆구리에 낀다. 한 마리를 더 잡아서 옆구리에 끼는 순간 이전에 잡은 연어를 놓치는게 플러스의 딜레마다. 총을 발사하려면 약실에 붙잡아야 한다. 화살을 날리려면 활시위에 걸어서 붙잡아야 한다. 대칭에 태워서 축으로 붙잡는 기술이 메커니즘이다.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학생을 붙잡아놓는 곳이다. 통제가능한 상태로 만든다는데 의미가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좁은 공간에 가둬놓고 호르몬을 공유하게 하여 통제가능한 상태로 만든다. 사람을 말랑말랑하게 만든다. 반드시 이런 단계를 거쳐야 한다.
창의력.. 지난주
지식의 복제
동양수학은 유클리드가 없어서 망했다. 수학의 출발점을 모색한 사람은 동양에 없다. 칸토어의 집합론은 출발점의 모색이다. 수학은 연역이고 연역은 복제다. 복제의 원본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동양은 수학은 문제풀이라는 편견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청나라와 명나라의 수학자는 포기해버린 것이다. 그들은 출발점에서 너무 멀리 와버렸다. 출발점으로 되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다신교 믿는 인도인은 공자의 엄격주의 사고가 없어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실용주의 중국도 공자와 멀다.
5천년간 중국인 중에 소실점을 본 사람은 없다. 뒤집어보면 되는데 뒤집지 못한다. 바람이 부는게 아니라 부는 그것이 바람이다. 원자가 집합되는게 아니라 집합된게 원자다. 물질이 성질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방향전환의 성질이 교착된것이 물질이다.
대장 수컷 고릴라 실버백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앵무새도 아는데 실버백만 모른다. 실버백은 다른 실버백을 피하므로 상대를 정면으로 보지 않고 곁눈질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 식의 보이지 않는 사유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시골천재가 혼자 골방에서 연구해서 성과를 이룰 확률은 0이다. 인간은 창의할줄 모를 뿐 아니라 창의를 못한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지식인들은 자신이 집단사고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일본과 독일의 많은 천재들도 패전을 눈치채지 못했다.
궁지에 몰리면 인간은 나쁜 결정을 내린다. 물리적 구조 안에서 스트레스 받기 때문이다. 사유의 함정이다. 사유는 환경에 지배되고, 세력에 지배되고, 흐름에 지배되고, 집단에 지배된다. 집단의 에너지 흐름은 관성의 영향을 받는다. 휩쓸리고 만다.
우리는 막연히 자유롭게 풀어놓으면 창의를 한다고 착각한다. 들판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사는 인디언들이 무엇을 창의했지? 없다. 사바나에서 자유롭게 사는 아프리카 형님들은 어떤 대단만 것을 만들었지? 막연한 자유는 진정한 창의의 적이다.
1만 5천년 전 알타미라 동굴의 원시인 화가는 걸작을 만들었다. 이후 1만년간 인류는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했다. 진정한 창의는 맷돌에서 갈리는 것이다. 인터넷은 전쟁에 대비한 물건이다. 많은 창의가 전쟁과 관련하여 얻어졌다. 죽지 못해 창의한다.
만화가들은 동료의 기술을 훔친다. 가수들은 보이지 않게 표절한다. 표절이 금지되자 만화도 죽고 음악도 죽었다. 다른 나라의 만화와 음악이 죽자 엉뚱한 곳에서 대박난 것이 한류다. 한국인들이 미국인보다 자유롭고 일본인보다 자유로운 것인가?
플러스 사고
왜 창의가 안될까? 플러스 사고 때문이다. 자기소개 어법을 탈출하지 못하면 창의할 가능성은 0이다. 창의는 자연을 복제하므로 메커니즘을 알아야 한다. 결따라 가야 한다. 관성을 따라가야 한다. 톱니의 맞물림을 따라가야 한다. 창의는 총을 쏘는 것과 같다.
플러스 사고.. 피라밋은 외계인이 만들었다. 필연적으로 이렇게 간다.
마이너스 사고.. 왕이 죽지 않아서 그냥 계속 지어봤다.
틀에 집어넣고 압박해야 한다. 어떤 붕어빵틀을 쓰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파라오의 즉위와 동시에 무덤을 만드는데 왕이 오래 살면 죽을때까지 만들게 된다. 기술이 늘어서 더 잘 만든다. 조세르왕의 계단식 피라미드는 원래 작게 설계되었는데 계속 증축한 거다.
플러스 사고를 하면 저것을 만들 돈과 인력이 어디서 나오느냐 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외계인 밖에 해결책이 없다. 마이너스 사고를 하면 왕의 재위기간 만큼 돈과 인력이 불어난다. 문제해결이 쉬워진다. 방해자가 제거되기 때문이다. 이스터섬의 거석상을 보자.
‘그냥 한번 만들어봤는데 의외로 잘 만들어져서 계속 만들어 봤어요.’ 이렇게 된다. 처음에는 될까 싶었는데 만들어보니까 되더라고. 조금 더 큰 것을 만들었지. 기술이 늘어서 더 잘 만들게 되었지. 더 큰걸 만들었어. 더 많이 만들었지. 고인돌도 같은 방식이다.
만들지 못하게 하는 방해요인이 제거된다. 플러스 사고로는 목적, 동기, 이유, 자본, 기술, 인력이 필요하다. 권력자의 횡포로 생각이 흘러간다. 이걸로 설명이 안된다. 하나도 틀어지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냥 만들어봤어. 어 되네? 이번에는 더 큰 것을 만들자고.
그러다가 갈때까지 가버린다. 플러스 동기보다 방해요인의 마이너스다. 전쟁이나 국가의 멸망으로 방해자가 등장하여 고인돌 만들기가 중단된 것이다. 타지마할 묘당을 만든 이유는 미친 왕 샤 쟈한을 말릴 사람이 없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유폐시켜 중지되었다.
윤석열은 왜 그랬을까? 미친 놈은 원래 그런 짓을 한다. 미쳤다는 것은 주변과의 관계가 깨져서 관계를 복원할 요량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관종 짓을 하는 것이다. 그것을 말릴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변과의 서열관계가 깨진 마이너스가 진짜 원인이다.
국힘당 의사결정 시스템이 붕괴된게 원인이다. 왜 박근혜와 최순실의 삽질을 내부에서 막지 못했나? 우리는 마이너스로 사고해야 한다. 채워놓고 빼는 것이다. 플러스는 분산되지만 마이너스는 수렴되기 때문이다. 정답을 찾는 플러스 사고로는 창의할 수 없다.
소거법의 힘
정답을 찍기보다 오답을 제거하는 마이너스 사고로 창의할 수 있다. 완전성에 대한 감각이 필요하다. 완전한 상태에서 오염을 빼는 것이 창의다. 완전한 것은 에너지가 걸려 있다. 풍차는 완전하지 않다. 바람이 불어야 완전하다. 자동차는 불완전하다. 시동을 걸어야 완전하다.
언어감각이 중요하다. 언어적으로 어색하면 잘못된 것이다. 말만 잘해도 창의력은 늘어난다. 자신의 언어를 관찰해야 한다. 일방적인 선언으로 상대를 자극하여 반응을 끌어내는 말대꾸식 말하기를 버리고 전제조건을 달고 메커니즘에 태워서 판단이 가능한 말하기라야 한다.
사건에 자기를 개입시키는 자기소개 어법을 버리고 객체 내부의 자체질서를 찾는 관점을 배우면 창의력이 향상된다. 초딩이 장문의 일기를 쓸 수 있다. 초딩은 자기 이야기만 일기에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이야기만 쓰고 주변 이야기는 쓰지 않으므로 소재가 고갈된다.
자유로운 사고가 필요할 때도 있다. 정상에 서 있는 사람은 자유로워야 한다. 정상은 외부를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장은 적진을 정찰해야 한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에서 질의 포지션에 선 사람은 외부에서 에너지를 끌어와야 하므로 자유롭게 움직여야 창의를 할 수 있다.
자유가 창의의 원인은 아니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남의 아이디어를 훔쳐야 한다. 훔치지 말고 직접 창의하라는 압박이야말로 창의의 방해자다. 보폭이 넓어야 한다. 많이 보면 훔칠 것이 보인다. 자연에서 훔쳐야 한다. 에디슨은 불완전한 것을 훔쳐 완성한 다음 특허를 냈다.